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3화
더쇼케2 촬영장을 어슬렁거리는 노란 머리 남자.
올해로 서른이 된 김경준은 핸드폰을 자꾸만 만지작거렸다.
벌써 앞자리 수가 3이 되어버린 그였지만 아직 멀쩡한 사업체에 취직해 본 적이 없는 백수였다.
군 제대 후 공무원 시험 준비로 5년을 날렸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스물일곱이 되었고, 그때부터 취업 준비를 가장한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다시 3년이 흘러 지금 서른.
그는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나온 상태였다.
‘시간 더럽게 안 가네 진짜. 추노할까.’
시급 높고 실내 근무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그냥 컨테이너 안에서 하는 일용직 잡부다.
트라이포드를 비롯한 촬영용 장비들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게 빡센 일들이었다.
실내 온도도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고.
무엇보다 긴장감 있게 돌아가는 현장이라 그런지 기가 쭉쭉 빨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그가 버티는 이유는 하나였다.
-방송국 알바 ㅈㄴ힘들다 ㅅㅂ
방송국에서 알바하는 걸 갤러리에 인증하면 그 밑으로 소소하게 댓글들이 달린다.
아무 주제 없이 뻘글이나 쓸 땐 조롱성 글이 달리거나 무관심이 대부분이었는데, 뭐라도 인증하고 올리니 소소하게 반응이 돌아온다.
그게 나름 즐거운 맛이 있었다.
단순 알바더라도 방송국이다 보니 어그로가 끌리는 것 같았다.
-그러게 누가 하라고 함?ㅋㅋㅋㅋ
-니가 선택한 알바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가서 연예인 봄?
방금도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댓글이 세 개나 달렸다.
어떤 연예인을 본 건지까지 다 써버리면 다신 방송국 알바 못 할 게 분명하기에 일일이 자랑할 순 없지만 손가락이 근질거리긴 했다.
‘여기에 유어스 강현성 있다 하면 사람들 개떼같이 달려들 텐데.’
유어스 강현성 실물 후기나, 강현성 망돌된 거 본 썰 푼다ㅋㅋㅋ 라는 느낌으로 올리면 화력 좀 나올 거 같았다.
다만 그 한 번을 위해 방송국 알바 자체를 포기할 순 없었다.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어그로도 끌어야 하는데 방송국 알바만큼 쓸 만한 건 없으니 말이다.
“경준 씨! 트라이포드 가져오라고!”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부른다.
보나 마나 촬영 감독이겠지 뭐.
그는 삼각대를 들고 촬영 감독에게로 이동했다.
트라이포드를 세팅하고 촬영을 위한 기본 구성을 챙겨서 건네줬다.
이번 알바를 하며 느낀 건데 방송도 육체노동과 다를 바 없단 거다.
무거운 거 들고 나르고.
조수 짓 좀 하고.
현장 들어가면 사방 잘 살피며 조심해야 하고.
저기 앉아 있는 촬영감독이나 조명감독처럼 기술 있으면 돈 많이 벌 수 있고.
건설 현장과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어디서 화사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거다.
그는 구석에 서서 메인 스튜디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X나 잘생기긴 했네.’
스튜디오 위엔 잘생긴 남자애들 여럿이 뭉텅이로 서 있었다.
이게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니 부럽다라거나 배 아프다라는 마음도 안 생긴다.
그냥 재수 없다고만 생각하며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물론 개중 몇몇은 그냥 훈훈한 일반인 정도의 생김새였다.
한데 그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미남이었으며.
특히 세이렌이라는 그룹과 온리원이라는 그룹은 같은 남자가 봐도 눈 뒤집어지게 잘생긴 축이었다.
‘강현성 실물 개쩐다 진짜.’
가장 눈에 끌리는 건 역시나 강현성이었다.
셀유돌 때에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 왜 좋아하나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이해가 조금 간다.
저걸 보고 도화살이라고 하나.
살짝 양끼도 나는 거 같은데 아무튼 시선이 끌리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건,
‘쟤가 세이렌 우연훈이라 그랬나.’
세이렌이라는 망돌의 우연훈이라는 남자애였다.
이 자리에 있는 아이돌들 중 사실 얼굴로만 보자면 쟤가 제일 잘생긴 거 아닌가 싶다.
다만 강현성이나 우연훈 둘 다 잘생겼을 뿐 남자다운 느낌은 없었다.
그냥 미형의 인간, 이라는 느낌이었지.
그가 생각하기에 남자답게 생긴 건,
‘봉 어쩌구랑 강 어쩌구였는데.’
둘 다 세이렌에 속해 있던 멤버였다.
이름까진 기억 안 나고 둘 다 성이 독특해서 성만 기억난다.
‘봉씨는 감독 말고 처음 보네.’
지극히 일반인인 그의 기준에서 보자면 솔직히 저 중 성공할 만한 와꾸는 세이렌과 온리원밖에 없을 거 같았다.
잘 껴준다면 블레슈까지?
나머지 두 팀은.
음.
뭐.
아직 어리니 새로운 출발을 해도 나쁘진 않을 테다.
“경준 씨. 트라이팟 세울 때 여기 수평계 보고 중간 맞추라고 했잖아요.”
“아, 네, 뭐.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개뿔……. 하아. 됐어요. 내가 할게요.”
촬감이 한숨을 푹 쉬고 직접 수평을 맞춘다.
지가 하면 될 걸 꼭 한 번씩 지랄을 한다.
‘개X끼’
그는 속으로만 욕을 지껄인 뒤 다시 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MC들이 나와서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더쇼케2 출연진분들을 모신 이유는…….”
“열심히 일한 그대 놀아라! 라는 취지의…….”
“게임을 하며 단합을 다지는 등…….”
흔해 빠진 멘트 치며 분량 채우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MC 김영진은 티비랑 똑같이 생겼고.
걸그룹 출신 솔로 가수 나현은 실물이 한 백배는 예뻤다.
‘와 진짜 개예쁘네.’
이게 연예인인가 싶은 비율이었다.
너무 마른 거 아닌가 싶긴 한데 왜 마른 걸 사람들이 선호하는지 알 거 같이 생겼다.
‘미쳤다. 사진 한 장만 찍어갈 수 없나. 개쩌는데.’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으나,
‘걸리면 X된다. 참자.’
그는 행동을 멈췄다.
찍어 올리기만 하면 조회 수 엄청나게 뽑힐 거 같은데.
올리는 순간 다신 방송국 알바 못 하게 된다.
다만,
‘진짜 뭐 어그로 확 끌릴 만한 거 있으면 찍어 올려도 재밌을 거 같긴 한데.’
아직까진 이성과 욕망이 평형을 이루고 있으나.
그 평형이 깨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도 본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장담할 순 없었다.
남자는 주머니 속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 * *
촬영 보조 김경준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각을 재는 동안.
더쇼케2의 미니 게임 특집 촬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 게임은 바로! 레몬 빨리 먹기입니다!”
게임을 들은 현장 제작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뭐 이상한 게임 같은 거 한다고 오며 가며 듣긴 했다.
한데 첫 게임이 레몬 먹기라니.
다들 공복일 게 뻔한데 레몬을 먹이는 건 어떤 악마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가 싶었다.
한데,
“자! 누가 먼저, 아! 세이렌분들이 먼저 하시겠어요?”
“네. 저희 리더가 세운 업보니까 저희가 치워야 할 거 같습니다.”
“태윤아!”
“하아아.”
“레몬이라니.”
세이렌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레몬 빨리 먹기에 들어간다.
잘생긴 애들이 절실하기까지 하군.
제작진들은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뭐 빨리 먹어봤자 얼마나 빨리 먹겠어 싶었는데
“다섯 분이 나와서 레몬을 총 5개 먹으면 됩니다! 인당 하나씩도 괜찮고 한 사람이 재량껏 다 먹어도 됩니다. 순서대로 나와서 드시면 됩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레몬 다섯 개를 먹어야 하는 극악한 미션이었는데,
“제가 1등으로 할게요.”
봉태윤이 제일 먼저 나오더니,
“다섯 개 제가 다 먹겠습니다.”
“응?”
“에?”
“야 너 왜 그래?”
앉은 자리에서 눈 하나 깜빡 않고 레몬을 빠르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무슨 귤 까먹듯이 먹는 모습에 사방에서 경악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태윤 씨 신 거 잘 먹어요?”
“아뇨.”
“얼굴이 너무 평온한데요?”
“지금 이거 너무 신데요?”
“아니, 안 셔 보인다니까요.”
“아뇨, 엄청 셔요.”
“그렇게 시다고 말하면서 하나 더 까먹지 마요.”
조금씩 눈가가 꿈틀거리거나 입 근육이 경련하듯 떨리는 걸 보니 진짜 시긴 신가 보다.
“태윤아! 그만 먹어!”
봉태윤이 2개 반째 레몬을 먹었을 때 우연훈은 아예 봉태윤을 밖으로 끄집어냈다.
봉태윤은 아, 라는 짧은 침음을 마지막으로 뒤로 밀려났다.
우연훈은 봉태윤 다음으로 레몬을 집어 먹었는데,
“아아아아악!”
“연훈 씨! 괜찮아요?”
“아아아악!”
한 조각 넣자마자 거의 경기를 일으킨다.
우연훈은 벌떡 하고 일어나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억지로 레몬을 집어삼켰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우연훈은 겨우 한 조각 먹고 뒤로 물러났다.
남은 레몬 조각은 강도승에게로 넘어갔는데,
“와! 이거! 어억! 흡!”
강도승은 기합을 넣으며 레몬 한 개를 통으로 씹어 삼켰다.
남은 한 개 반은 이운과 박동준이라는 멤버가 나와서 입에 털어넣었다.
먼저 이운이 나와서 레몬 반 개를 먹었는데,
“와 이거. 스으으읍. 너무 신데요? 으으.”
뭔가 셔 보이긴 하는데 묘하게 차분해서 그게 더 웃겼고.
“와! 이거 진짜 시다! 어디서 이런 걸 구해 오신 거예요!”
박동준은 하나도 안 셔 보이는데 말로만 시다 말해서 웃겼다.
그렇게 멤버 다섯이 레몬 다섯 개를 다 먹는 데 걸린 시간은,
“2분 10초 32! 와! 꽤 빠른데요?”
척 보기에도 나름 선방했다 싶은 속도였다.
이후 다른 팀들이 레몬 먹기에 더 도전했으나,
“온리원 2분 30초! 아! 아쉬워요~”
“블레슈 10분! 대체 뭘 드신 거예요!”
“원바이원 3분. 조금 기네요.”
“루미닌 5분! 아쉽습니다.”
세이렌의 2분 10초 32라는 아성을 넘지 못하고 죄다 무너져내렸다.
첫 번째 게임은 세이렌이 승기를 잡아갔다.
이어지는 두 번째 게임은 이제 예능 게임의 클래식으로 굳어가고 있는 게임.
전주 듣고 음악 맞히기였다.
노래의 아주 짧은 일부분만을 들려준 채 곡 전체를 유추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이걸 어떻게 맞히나 싶은데,
“정답! 봉태윤! 아로의 슬픈 사진 속의 그대를!”
“정답! 봉태윤! 김남경의 부둣가 그 사나이!”
“정답! 봉태윤! 현정의 얄궂은 시간!”
세이렌의 봉태윤이 폭주기관차처럼 게임을 휩쓸었다.
심지어 곡들도 죄다 7080세대의 곡들뿐이었는데.
악마 같은 피디 놈 위에 더한 미친놈이 있었다.
웃긴 건,
“뭐 무슨 접신이라도 한 거야? 눈이 왜 저래.”
“그니까.”
게임에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봉태윤이 멍하니 굳더니 그 뒤부터 미친 듯이 정답을 뱉어내기 시작했던 거다.
오히려 그게 더 정답 맞히는 기계 같다는 이미지를 남겨서 재밌는 포인트가 되었다.
이후 게임이 끝나자 현기증이 온 건지 잠깐 비틀거리기까지 해서 한바탕 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이렌이 두 번째 게임까지 가져가네요~!”
이어지는 세 번째 게임은 푸드 파이트.
많이 먹기 대결이었다.
팀에서 대표 1인씩이 나와서 많이 먹는 게임을 하는 거였는데,
“블레슈 무슨 일이에요! 정말 굶고 다니시는 건가요!”
블레슈의 리더가 나와서 혼자 먹방을 찍어버렸다.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수영부 선출이라. 하하.”
운동부 중에서도 극강의 섭취량을 자랑한다는 수영부란다.
가장 저조한 팀은,
“연훈 씨! 지금 그거 조금 먹고 배를 탕탕 두드리시면 안 돼요!”
“에? 근데 이거 진짜 맛있어요!”
“아니! 맛 말고 많이 먹어야죠!”
“하하하…….”
세이렌의 우연훈이다.
먹는 건 가장 맛있게 먹었던 거 같은데 입은 가장 짧았다.
저럴 거면 대체 왜 나온 건가 싶은데…….
“그냥 자기네 팀 리더 식사 시간 준 거네.”
“공복에 레몬만 먹었잖아요.”
세이렌 멤버들 표정이 이번 게임은 양보하자, 라는 느낌이었다.
“세 번째 게임은 블레슈가 가져가는군요! 그럼 이제 네 번째 게임을 시작할 텐데요, 방금 밥 먹었으니 이제 조금 움직여야겠죠. 뜀틀 뛰기입니다!”
이제 네 번째.
몸을 쓰는 게임 시간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모두 무난하게 지나왔으니 이 뜀틀 뛰기도 비슷한 분위기 속에 진행될 줄 알았다.
다만,
“어어어어!”
“안 돼!”
“잡아!”
“꺄아아아!”
남고생들 체육시간 분위기가 나야 했을 게임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