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4화
난 더쇼케 제작진들이 준비한 게임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킹시콜라의 광고 모델은 더쇼케2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갖게 되니 말이다.
이전 생에선 이 광고 모델도 온리원이 가져갔는데, 그때 이 광고 덕에 온리원의 주인공 구도가 더 강하게 굳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광고를 따내게 된다면 더쇼케2의 주인공까진 아닐지언정 확실한 라이벌 구도는 가능해진단 거다.
적어도 프로그램 내에서만큼은 온리원과 확실하게 경쟁이 가능해질 정도로 인지도는 쌓게 된다.
그러니 무조건 따내야만 했다.
해서 미친 척 레몬을 먹었고.
전주 듣고 맞추기에서도 뇌를 200퍼센트로 활용했다.
전주 듣고 맞히기를 할 때엔 운 좋게 ‘통찰’이 튀어나와 줬기에 거의 독식하듯 게임을 끌어갈 수 있었다.
통찰은 내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들어봤던 멜로디라면 뇌의 주름 하나하나를 싹 다 확인시켜 주어 기어코 제목과 가수를 찾아내 줬으니까.
제작진들과 출연진들이 무슨 괴물 보듯 날 쳐다봤단 것만 빼고는 만족스러웠던 게임이다.
세 번째 게임인 푸드 파이트는 쉬어가는 타임으로 가자고 형들과 이야기를 끝냈다.
“두 게임 다 이겼으니까 푸파는 숨 좀 고르는 걸로 하는 거 어때요?”
“그래. 차라리 게임 하지 말고 식사하는 걸로 하자.”
“혹시 지금 속 제일 안 좋은 사람 누구예요? 아까 레몬 먹어서 다들 속 다 망가졌을 거 같은데.”
“나, 먹어도 괜찮을까? 아까부터 막 위액이 부그르르.”
“네. 먹어요, 형.”
형들과 의논한 끝에 연훈이 형이 푸파 선수로 올라갔고 형은 정말 맛있게 한 끼를 먹고 내려왔다.
메뉴는 푸파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미국식 핫도그였는데 연훈이 형은 그 미국식 핫도그를 딱 하나만 먹고 내려왔다.
“짱 맛있어, 저거!”
“부럽다.”
“오늘 스케줄 끝나고 무조건 핫도그 먹어야지.”
그렇게 형들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눈으로는 계속 스튜디오 주변을 훑었다.
박영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고.
노랑머리 남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일단 당장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가끔 제작진들 몰래 자꾸 핸드폰으로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찍어가는 게 거슬리긴 했지만 그거야 당장 문제될 만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수도 없는 것이,
‘뭐가 튀어나오려나.’
시스템이 분명히 내게 미션을 던져줬기 때문이다.
그 미션을 가볍게 여겼다가 연훈이 형이 화분 맞고 큰일 날 뻔했다.
한 번이야 실수할 수 있다 쳐도 두 번은 아니다.
분명 오늘 사고가 터진다.
난 심호흡하며 불안한 마음을 살짝 가라앉혔다.
그러곤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언제쯤 사고가 날 만한 타이밍이 등장할지.
그거만 기다리고 있는데,
“세 번째 게임은 블레슈가 가져가는군요! 그럼 이제 네 번째 게임을 시작할 텐데요, 방금 밥 먹었으니 이제 조금 움직여야겠죠. 뜀틀 뛰기입니다!”
역시 생각만으로 플래그가 세워지나 보다.
바로 몸 쓰는 게임이 나왔다.
심지어 사고 나기 딱 좋은 뜀틀 뛰기란 게임이었다.
난 박영호와 노랑머리 남자를 시야에 담았다.
둘 다 별 감흥은 없는 얼굴들이었다.
박영호는 살짝 걱정은 하는 눈치였지만 크게 개의친 않나 보다.
“게임의 룰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게임은 각 팀에서 다섯 명씩 나와서 번갈아 가며 뜀틀을 넘는 게임입니다.”
룰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각 팀당 다섯 명의 선수가 나온다.
사실 6인조인 루미닌을 제외하자면 모두가 5인 그룹이기에 사실상 전원이 나오는 거나 다름없긴 했다.
아무튼 그 다섯 명이 번갈아 가며 뜀틀을 넘는다.
9단을 내가 뛴다면 10단은 우리 팀의 다른 누군가가 뛰고, 11단은 또 다른 누군가가 뛰는 방식으로 가는 거다.
이때 뛰기에 실패하면 그대로 탈락, 살아남은 팀들끼리 단을 추가하여 게임을 이어간다.
결국 혼자 잘하는 건 크게 의미 없는 게임이었다.
내가 9단을 넘었다 쳐도 내 다음 팀원이 10단을 뛰지 못하면 끝나니까.
다만,
‘박영호 순서를 최대한 뒤로 미룰 수도 있겠네.’
현재 박영호가 발목 부상을 당한 온리원에게는 희소식일 수도 있겠다.
박영호 순서를 최대한 뒤로 미루거나 아니면 아예 앞쪽에 배치하여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 그러면 뜀틀 올려주세요!”
MC 김영진의 신호에 맞춰 제작진들이 나무로 된 뜀틀과 푹신한 매트를 설치했다.
“우와.”
“뭔가 고등학교 때 느낌 난다.”
“체육 수행 때 뜀틀 뛰었던 거 같은데. 몸이 기억할라나 모르겠네.”
뜀틀이 설치되는 걸 보며 형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태윤이는 뜀틀 잘 뛰어?”
연훈이 형이 날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뇨.”
사실 운동 잘 못한다.
그냥 헬스나 맨몸 운동만 좀 하는 거지.
뜀틀 같은 종합적인 몸의 근육을 활용해야 하는 건 젬병이다.
다만,
‘이 몸이면 되려나.’
19살의 육체다 보니 이상하게 될 것만 같다.
24살이었다가 19살이 되니 역체감이 장난 아니다.
이 몸이 얼마나 짱짱하고 좋은 몸인지 매일매일 놀랄 정도니까.
물론 24살도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나 5년간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사회생활 따위 조금도 하지 않은 내 몸은 그 나이 중에선 하위 1프로의 몸이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곡소리 하며 일어나고 글 한 편 쓰고는 완전 퍼져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했으니까.
그런 몸을 달고 살다가 헬스와 맨몸운동으로 꾸준히 관리하던 19살 몸으로 오니 사실 두려울 게 없을 정도다.
“자! 그러면 어느 팀부터 먼저 하실 건가요?”
뜀틀 설치가 끝나자 MC 김영진이 우릴 둘러보며 묻는다.
“저희가 1등으로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블레슈다.
“저희가 두 번째 하겠습니다.”
2등은 원바이원.
“세 번째 저희가 하겠습니다.”
3등은 루미닌이었다.
거기까지 가자,
“저희가 네 번째 하겠습니다.”
난 형들과 의논한 후 네 번째에 손을 들었다.
일부러 이 순서를 노린 거였다.
“그러면 온리원이 자연스레 마지막이 되는군요. 그러면 이 순서로 뜀틀 게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리원의 앞 혹은 뒤에 하는 게 박영호의 상태를 살피기 가장 좋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뜀틀 게임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게 진행되었다.
첫 세팅은 10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블레슈 성공!”
“원바이원 성공!”
“루미닌 성공!”
“세이렌 성공!”
“온리원 성공!”
긴장감이랄 것 없이 너무 가볍게 전원 성공이 떴다.
애초에 다들 아이돌이고 매일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몸 쓰는 거에 특화되어 있는 셈이다.
다들 나이도 어리기까지 하니까.
11단 뜀틀도 전원 성공이었다.
12단도 거뜬히 성공들을 했고.
13단부터는 이제 조금 높단 느낌이 들었는데,
“오오오! 아아! 블레슈! 아슬아슬하게 성공!”
“원바이원! 성공!”
“아아! 루미닌, 마지막에 아깝게 실패군요.”
“세이렌! 성공!”
“온리원! 성공입니다!”
이제 슬슬 한계에 부딪히는 인원들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박영호가 살짝 부담스러워 보이는데.’
이제 박영호의 차례가 다가왔단 거였다.
온리원은 박영호의 발목이 좋지 않은 걸 알고 박영호의 순서를 가장 뒤로 미룬 상태였다.
아마 다섯 번째까지 순번이 돌아갈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
하지만 의외로 다들 뜀틀을 잘 뛰어버렸다.
난 박영호와 노랑머리 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터질 거면 빨리 터지지.
이 상태로 게임을 진행하려니 머리가 아프다.
그때,
‘뭐야.’
강현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영호에게 다가가더니 무언가 귀에 속삭인다.
박영호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는 자리에서 점프를 한다.
모션을 보니 대충 박영호에게 발목 괜찮냐고 물어본 것 같다.
박영호는 그 물음에 괜찮다고 답을 한 것 같고.
흐음.
굳이 왜 괜찮다고 답을 하는 건지…….
제발 아프면 쉴 것이지.
그때 강현성이 박영호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날 쳐다본다.
우리 둘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뜀틀의 단이 하나 더 올라가서 14단이 되었다.
이젠 높다, 라는 느낌뿐만 아니라 저걸 넘을 수 있나, 싶은 압박감마저 느껴지는 높이다.
“으으으으, 할 수 있을까?”
연훈이 형이 나한테 앵기며 묻는다.
그게 재밌어 보였는지 동준이 형도 나한테 앵기며 똑같은 말을 한다.
“태윤아! 저거 할 수 있으까~”
나무에 매미 두 마리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난 몸을 흔들어 매미 두 마리를 떼어냈다.
“와, 근데 14단은 진짜 높다.”
“쉽지 않겠는데.”
우리 중 몸을 제일 잘 쓰는 도승이 형과 운이 형도 꽤 긴장할 법한 높이였다.
14단이 어려운 건 우리 팀뿐만이 아니었던 건지,
“아아! 블레슈, 아쉽게 탈락입니다!”
블레슈가 탈락하고.
“원바이원~ 아아! 아이고, 탈락이네요.”
두 번째로 원바이원까지 탈락했다.
루미닌은 13단에서 이미 탈락했으니 이제 내 차례다.
우리 팀은 나이순으로 뜀틀 순서를 정했기에 내가 뛸 차례였다.
“할 수 있겠어?”
“뛰고 올게요.”
난 가볍게 몸을 풀고는 뜀틀 앞에 섰다.
그러곤 이 뜀틀을 넘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가볍게 하고 훅, 하고 몸을 날려보니,
“세이렌! 14단 성공입니다! 막내 운동신경이 장난이 아니네요.”
역시 19살의 몸은 보통 몸이 아니다.
그렇게 우린 첫 번째 14단 성공팀이 되었다.
난 뜀틀을 넘은 후 자리로 돌아와 온리원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
‘뭐야.’
저 노랑머리 남자가 은근슬쩍 핸드폰을 꺼내는 게 내 눈에 보였다.
그러곤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카메라의 위치를 보니,
‘뭐야 저 새끼.’
온리원의 박영호를 찍고 있었다.
아마 저 자식이 박영호가 발목을 다친 걸 눈치챘나 보다.
대체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거 불길하다.
제작진들에게 말을 해서 박영호 상태를 알려야 하나 싶은 순간,
“잠시만요!”
제작진들 중 짬이 꽤 높아 보이는 작가 한 사람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전에 우리 숙소 영상을 찍으러 온 적 있던 김민영 작가였다.
그러곤,
“영호 씨, 발목 괜찮아요?”
김민영 작가는 마치 답답한 내 속을 뚫어주기라도 하듯 박영호 상태를 묻는다.
제발 지금 박영호를 촬영에서 빼내주기를 바랐다.
박영호 입에서 딱 한 마디만 나오면 된다.
‘아니요’라고 말이다.
다만,
“네. 괜찮습니다.”
저 새낀 도통 날 도와주질 않는다.
김민영 작가는 도리상 한 번 더 괜찮은지를 물었으나,
“저 정말 괜찮습니다!”
박영호는 해맑게 답했다.
“……알겠어요.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세요. 일단 여기 매트 한 장씩 더 깔아주세요!”
온리원의 다른 멤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본인이 저리 해맑으니 막을 수도 없을 테다.
하긴,
지금 나도 여기서 사고가 터질 걸 알고 있으니 저게 위험한 상황인 걸 아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냥 아픈데도 방송 열심히 하려고 분투하는구나, 정도로 안일하게 생각했을 거다.
결국 내 희망사항과는 달리,
“박영호 시작하겠습니다!”
박영호가 뜀틀 앞에 서버렸다.
딜레마였다.
작가에게 말한 후 몰카범을 잡아야 하는지.
아니면 박영호를 먼저 구해야 하는지.
하지만 그딴 고민 할 겨를 따위 없었다.
박영호가 냅다 달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14단은 발목 다친 상태로 넘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높이가 아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하고 만용을 부린 것에 대한 벌인 걸까.
박영호가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에 몸이 일직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살짝 기우뚱하며 올라갔다.
이건 사고다.
분명 크게 터질 사고다.
일단 뜀틀 단이 무너지는 류의 사고는 아닐 터다.
제작진들이 뜀틀 단을 아래에서 꽉 잡고 있으니까.
다만 단이 무너지진 않다 하더라도,
‘높이가 너무 높아.’
지금 박영호가 도움닫기하고 떨어지는 높이는 꽤 높다.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다 한들 다칠 수 있는 높이다.
특히 박영호처럼 발목에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 떨어진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어어어어!”
“꺄아아아!”
제작진들 중 몇몇은 사고의 위험을 감지한 건지 새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난 나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몸이 이미 준비되어 있던 걸까.
내 생각보다도 더 빨리 튀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 통찰이 나와주면 좋으련만,
‘망할!’
하필 이런 순간엔 안 나온다.
지금 가면 나도 다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도 없다.
만일 이게 정말 큰 사고가 되고.
그게 인터넷에 퍼져서.
박영호가 정말 하차하게 된다면.
‘도승이 형이……!’
더쇼케2가 망한다.
그 말은 곧 초동 10만을 못 찍는단 거다.
도승이 형을 두 번 잃을 순 없다.
그러니 지금 이건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도 해내야만 한다.
박영호가 떨어지기 전,
가까스로 녀석에게 닿았다.
하늘이 도운 걸까.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녀석을,
“잡았……다!”
그대로 안아 들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성인 남성을 안아 드는 거다 보니 몸에 무리가 확실히 간다.
해서 억지로 힘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매트를 믿고 무릎을 꿇으며 박영호의 무게를 지탱했다.
그 결과,
“헉!”
“하아.”
나도 박영호도 큰 부상 없이 추락 사고를 끝낼 수 있었다.
“어어어억!”
“태윤아아!”
“영호야!”
내가 박영호를 구해내고 나자 사방에서 나랑 박영호를 부르는 소리가 쏟아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품에 안고 있던 박영호를 내려다봤다.
박영호도 크게 놀란 건지 큼지막한 눈에 놀람과 무서움, 안도감이 한 번에 스쳐 지나간다.
동시에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션 성공.]
[온리원 박영호의 하차를 막았습니다.]
[보상으로 ‘통찰’의 통제권 일부를 획득합니다.]
성공했다.
이제 좀 맘 편하게 있으려는데,
솨아아악!
“흡!”
어딘가 이질적이고 묘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여섯 번째 감각이 형성됩니다.]
[잠시 통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