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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45화 (4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5화

[여섯 번째 감각이 형성됩니다.]

[잠시 통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이상한 문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솨아아악!

통증이 시작되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번질 정도의 격통이었다.

잠시 통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라니.

이건 엄청나게 큰 통증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라고 알려줬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가느다란 바늘이 온몸을 빈틈없이 파고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어난 것만 같은 느낌.

이상한 건 아프긴 진짜 아픈데 버틸 만은 하다는 거였다.

막 비명 지르면서 바닥을 떼굴떼굴 구를 정도는 아니다.

마치 내 한계치를 정확히 알고 바로 그 밑 선까지만 고통을 주는 느낌이랄까.

온몸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며 버틸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내가 고통을 참고 있단 게 남들 눈에 보이긴 하나 보다.

상황을 살피러 다가온 사람들이 박영호가 아닌 날 쳐다본다.

특히 형들 얼굴이 가장 크게 일그러졌다.

내가 아픈 게 박영호를 받다가 어디가 다친 거라 생각한 건가 보다.

“괜찮아, 태윤아?”

“봉태윤? 야!”

“이거 어떻게 해. 작가님!”

“119 불러요!”

일이 진짜 커지겠다 싶은 그 찰나,

솨아아악.

마치 씻은 듯 통증이 없어졌다.

방금 전의 그 격통이 상쾌함으로 바뀌었다.

“어?”

“태윤아?”

“괘, 괜찮아?”

방금 전까진 죽을 것처럼 아파하던 사람이 갑자기 표정이 편안해지니 의아할 법도 하다.

“봉태윤 씨! 괜찮으세요! 문제없어요?”

어느새 담당 피디와 작가진들까지 달려왔다.

분명 다칠 뻔한 건 박영호인데 관심은 내가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일단 안심부터 시키는 게 먼저다.

“……괜찮습니다.”

난 최대한 평안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정말 괜찮아요?”

“문제 있는 거 아니죠……?”

“이거 병원 다녀오시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요.”

다만 사람들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매트에 살포시 누워 있던 박영호도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 태윤 씨, 아무래도 병원 다녀오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 도와주시려다가 다치신 거면……. 제가 어떻게든 보상할 테니까…….”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게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이걸 본인 탓으로 돌리면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위축만 될 텐데.

“아뇨. 괜찮아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냥 사고잖아요.”

해서 박영호에게도 딱 선을 긋듯 말했다.

내가 멀쩡하단 걸 보여주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해서 아무 일 없단 듯 일어나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다만 영호 씨가 꽤 놀랐을 거 같으니까 잠시만 촬영 쉬었다가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형들과 제작진들은 무슨 이런 놈이 다 있냔 듯 날 쳐다봤다.

특히 담당 피디는 걱정 반, 어이없음 반의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하긴 나 같아도 저럴 거다.

무릎 꿇은 채로 눈 부릅뜨고 아픈 걸 참고 있는 거 같던 애가 갑자기 멀쩡하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있는 거니까.

다시 한번 정말 괜찮다고 못 박아 말하려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솔직하게 말해.”

연훈이 형이 평소엔 잘 내지 않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지금 말 안 하면 나중에 위험해질 수도 있어.”

“봉태윤. 괜찮은 거 맞지?”

“태윤아. 솔직하게 말해봐.”

형들이 단체로 진지해진다.

이해는 분명 간다.

나 같아도 형들 중 한 사람이 나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저런 반응이었을 테니까.

“네. 정말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그래도 아직 어떨지는 모르니까 조금 쉬면서 몸 상태 지켜보다가 안 좋아지면 꼭 말할게요.”

난 이리 말한 후 담당 피디를 바라봤다.

이건 쉬었다 가자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었다.

사실 진짜 제정신 박힌 인간이면 이 상황에서 촬영 재개를 하진 않겠지.

담당 피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뗐다.

“지금부터 점심 먹고 충분히 휴식 취한 후 3시에 다시 모이죠. 병원 가보셔야 할 거 같은 분들은 저희한테 꼭 말해주세요.”

지금이 약 12시쯤이니 3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급박하게 굴러가는 방송 현장에선 흔치 않은 긴 휴식시간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쉬었다 가겠습니다~”

제작진들은 서로 말을 전달해 주며 하나둘 장비를 철수시켰다.

작가들 몇몇이 나와서 우리 등에 꽂아두었던 마이크들도 전부 수거해 갔다.

마이크가 사라지자 정말 촬영이 중단되었음이 확 실감 났다.

형들도 긴장이 풀린 걸까.

“흐아아아아.”

“나 진짜 놀랐어.”

“태윤아.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다신 그러지 마. 진짜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매트 위에 푹 퍼지며 이리 말했다.

그때,

“감사합니다.”

반대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온리원 멤버들이 있었다.

강현성을 비롯해 멤버들 넷이 다닥다닥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태윤 씨 아니었으면 영호 진짜 크게 다쳤을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꼭 은혜 갚을게요.”

“어디 몸 안 좋으신 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온리원 멤버들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뭐 쟤네들도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니 난 감사하다는 말을 대충 넘겼다.

온리원 멤버들은 매트에 누워 있던 박영호를 부축해 일으키곤 스튜디오를 떠났다.

아마 병원을 먼저 가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온리원이 사라지고 나자 다른 출연진들도 하나둘 대기실로 이동했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를 떠났다.

가는 동안 현아 씨와 승연 씨도 만났는데,

“정말 병원 안 가도 되는 거 맞죠?”

“혹시 모르니 그냥 지금 가서 간단한 검사만 받아보고 오는 건 어때요?”

두 사람은 날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

내가 괜찮다는 말을 거듭 반복한 덕에 상황은 겨우 진정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 후 우린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잠시만요.”

“응?”

“왜”

“그, 두고 온 게 있어서요. 먼저 들어가 있어요.”

난 형들에게 말한 후 다시 스튜디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김민영 작가에게 다가갔다.

“네? 어디 아프세요, 태윤 씨?”

“아뇨. 그건 아니고요.”

난 김민영 작가에게 몰카범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미친 새끼…….”

이야기를 들은 김민영 작가의 표정이 구겨졌다.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제작진들이 하겠지.

* * *

더쇼케2의 촬영 보조 아르바이트 김경준은 화장실로 가서 헤벌쭉하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전 건진 영상을 다시 재생해 보니 생각보다 더 대박이었다.

“진짜 미쳤네, 이건. 프로그램 문 닫아야 하는 수준 아니냐.”

원래는 큰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어떤 프로그램에서 알바를 하는지 밝힐 생각은 없었다.

커뮤에 그런 걸 특정해서 올리는 순간 다신 방송국 알바는 못 하는 걸 넘어서 고소까지 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건 사안이 조금 특수하다.

올리기만 하면 사회적 파장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방송 현장의 열악함과 아이돌 산업의 현실, 뭐 이딴 헤드라인이 떠오를 법한 동영상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 올렸다간 사회적 파장으로 가기엔 약할 것이다.

꼴에 출연진 위한답시고 참여 의사를 재차 확인하거나 안전장치를 더하는 모습 등이 영상에 찍히긴 했으니까.

다만 그 장면들만 자르면 빼도 박도 못하고 갑질 현장처럼 보일 것이다.

영상 자체가 자극적으로 나왔고, 누가 보든 이건 현장의 열악함이나 산업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걸로 보일 테니 말이다.

더 좋은 건 아까 그 장면이 진짜 사고로 연결돼 누구 하나 크게 다쳤어야 했겠지만,

‘아깝게 다치진 않았네. 다쳤으면 리얼 어그로 개쩔었을 텐데. 개아깝누.’

뭐, 이 정도만 해도 꽤 화제는 될 것 같으니 적당히 타협 봤다.

분명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안이다만 자꾸 웃음이 났다.

업로드하자마자 어떤 파급력이 생길지.

본인이 만든 현상에 얼마나 큰 관심이 붙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거 같았다.

지금 당장 업로드를 하려고 커뮤니티 어플에 들어가려 했는데,

“경준 씨! 김경준 씨! 여기 계십니까!”

누군가 화장실 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와 본인을 찾았다.

현재 그는 변기 칸에 앉아 있었는데 본인을 찾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발을 변기 위로 올려 버렸다.

그러곤 손을 입으로 막은 채 최대한 인기척을 안 내려 했는데,

“뭐야. 여기 잠겨 있는데? 김경준 씨! 여기 계신 거 맞죠?”

본인이 있는 변기 칸을 누군가가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결국 계속되는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문을 열었다.

“네, 그, 저 여기에…….”

조심스레 변기 칸 밖으로 나가자마자,

탁.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곧장 핸드폰부터 가져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기에 김경준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핸드폰 화면을 미처 잠그지 못한 상태였기에 보고 있던 창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눈앞의 제작진은 그대로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하. 미친. 진짜 찍었네.”

김경준이 찍었던 영상을 발견했다.

“분명 아르바이트 시작할 때 비밀유지각서 쓰지 않았어요? 어길 시 프로그램이 받을 피해액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을 텐데요?”

김경준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새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김 작가가 말 안 해줬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순간 김경준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폰 갖고 튈까.

아니면 적반하장으로 나가볼까.

진짜 고소당하면 어떻게 될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는 가운데,

“따라오세요.”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그것뿐이었다.

‘X됐다.’

지금 본인은 분명하게 범죄를 저질렀단 사실이었다.

* * *

점심을 먹고 난 후 형들과 함께 대기실에 앉았다.

우리와 함께 공동 대기실을 쓰는 온리원은 아직까지 대기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다들 아직도 병원에 계신 거겠죠?”

“그렇지 않을까.”

“영호 씨 발목이 크게 덧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형들은 이리 말하며 온리원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온리원은 이후 오후 촬영이 재개될 때까지도 대기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곤 촬영 시작 5분 전쯤에.

대기실이 아닌 스튜디오로 곧장 올라왔다.

박영호는 아마 숙소로 보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같이 데리고 올라왔다.

여전히 발목에 깁스는 없었고.

또 사고 나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었다가,

‘오히려 지금 빠지면 더 난리가 나겠구나.’

방송 그림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터였다.

갑자기 중간에 박영호가 사라지면 온갖 글이 커뮤에 퍼질 테니까.

현장을 스윽 둘러보니 오전의 그 노랑머리 남자가 안 보였다.

아마 제작진들이 적절하게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싶었다,

“자! 그러면 오후 촬영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피디의 지시 아래 오후 촬영이 재개되었다.

“어떻게 점심 식사들은 다들 잘 하고 오셨나요?”

MC 김영진이 다시 무대로 올라오곤 자연스럽게 멘트를 이어갔다.

“그럼, 오전의 그 파이팅 그대로 이어서 오후 게임까지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떨어졌던 텐션을 어떻게든 올려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싶었다.

“지금 네 번째 게임까지도 세이렌이 가져가게 된 현재, 우승팀은 세이렌이니 이제 더 이상 등수는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닌가 싶지만, 그럼에도 다섯 번째 게임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네 번째 뜀틀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었기에 킹시콜라 광고 모델 촬영 건은 우리 몫이 되었다.

준비된 게임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섯 번째 게임을 진행하는 건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상,

“지금부터 이어질 다섯 번째 게임은 보물찾기입니다!”

이 보물찾기로 추가 경품이 주어지는 거였던 거 같다.

뭐 애매하게 구린 경품도 많았고 꽤 후했던 경품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게 제주도 여행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장 많은 보물을 찾아오신 분들 순으로 추가 경품이 주어질 예정이니 다들 열과 성을 다해 보물을 찾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경품?”

“와!”

“오늘 선물을 막 뿌리시네.”

형들은 경품이란 말에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자! 그러면! 지금 여기 스튜디오 밖 공터에 보물이 숨겨져 있으니 다들 나가서 보물을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MC 김영진의 신호 아래,

“가자!”

“호오오!”

출연진들은 텐션을 올리며 스튜디오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형들도 추가 경품이 탐이 나는 건지 스튜디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뭐든 타오자!”

“예에!”

난 그런 형들을 보며 설렁설렁 밖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태윤 씨.”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붙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할래요?”

뒤를 돌아 바라보니,

“시간 괜찮아요?”

강현성이 평소보다 조금 더 차분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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