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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48화 (4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48화

난 내 쪽으로 허물어지는 형을 받아냈다.

머릿속에서 이 상황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다만 쓰러지는 형을 가만둘 수도 없으니 안전하게 형을 안았다.

미안해, 태윤아라니.

뭐가 미안한 건지.

또 방금 그 말을 한 사람은 이 세계의 연훈이 형인지 다른 세계의 연훈이 형인지.

머리가 아프다.

난 연훈이 형을 안아 든 뒤 얼굴을 확인했다.

내가 알던 그 얼굴이다.

표정을 보니 지금은 잠든 것 같았고.

사람이 부엌에 꼿꼿하게 서 있다가 이리 허물어지듯 잠들 순 없다.

병이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뭐에 씐 것 같네.’

뭐에 씐 거든, 아니면 속에 있던 다른 게 튀어나온 거든.

분명한 건 방금 전의 연훈이 형은 이 세계의 연훈이 형은 아닌 거 같았다.

통찰이 그렇게 강제로 흩어진 적도 처음이고.

끌어내려 했는데 바위처럼 꿈쩍도 않던 것도 처음이다.

분명 시스템이 개입한 거다.

그렇지 않고선 설명 안 될 상황이었다.

우선은 연훈이 형을 이불 위에 눕혔다.

깊게 잠든 건지 중간에 깨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연훈이 형 옆에 누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 세계가 과연 무엇인지.

대체 왜 내가 여기에 온 건지.

방금 전 그 연훈이 형은 대체 누구인지까지도.

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왔다.

일개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모든 일이 너무 초현실적이다.

정보도 너무 부족하고.

“하아.”

난 한숨을 푹 내쉰 후 눈을 감았다.

오지 않는 잠이지만 억지로 청해봐야 했다.

좋든 싫든 내일은 찾아올 테고, 그러려면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하니까.

긴 밤이 시작되었다.

* * *

긴 밤.

SNS와 커뮤니티 등을 비롯한 인터넷은 더 쇼케이스2에 대한 건으로 활발하게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첫 시작은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한 유명 SNS 계정이 게시하면서부터였다.

-애들아 내일 나랑 같이 더쇼케2 1화 보면서 새로운 oppa 탐색하자

딱히 길지 않은 간결한 한마디였다.

세이렌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이 미니 게임 대회를 하는 동안, 더쇼케2는 소소하게 화제성을 키워가며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저 유명 계정의 말도 그런 소소한 글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뻘글 하나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아이돌보다는 게임이나 스포츠 등을 주로 이야기하는 커뮤니티에서였는데,

-ㅅㅂ 방송국 알바하다 ㄹㅇ ㅈ됐다

이런 제목의 글이었다.

내용을 보니,

-방송국에서 촬영 보조 알바하다가 뭐 좀 찍었는데 걸려서 쫓겨남. 고소당할 수도 있을 듯. 진짜 개ㅈ됨 ㅅㅂㅅㅂㅅㅂㅅㅂ

이런 식이었다.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없었다.

이 사람도 그저 신세한탄용으로 커뮤니티에 뻘글을 올린 거였다.

다만,

└이 새낀 도촬하다 짤려놓고 뭐가 당당해서 글을 올리냐

└ㅋㅋㅋㅋ업보임

└이쉑 며칠 전부터 지 방송국 알바한다고 ㅈㄴ 어그로 끌던 새끼 아님?

그 밑 댓글들은 글 게시자를 물어뜯으며 신나게 욕을 했다.

원래 누군가의 파멸에 돌을 던지는 게 가장 즐거운 법이었다.

결국 그 글은 조롱만 당하고 사라져 버렸다.

작성자도 이게 더 퍼졌다간 진짜 고소당할 걸 알고 댓글창과 본 게시글 전부 내려 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 글은 다른 곳에 퍼다 날라졌는데,

-이거 더쇼케2 얘기라는데? (커뮤니티 글 캡쳐본.jpg)

아이돌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들이었다.

└도촬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ㅋㅋㅋㅋ

└근데 뭐 도촬한 거임?

└뭐 누가 갑질이라도 함?

└애들끼리 맞짱이라도 떴음?ㅋㅋㅋㅋ

그저 사진만 퍼다 날라진 거면 금세 묻혔을 테지만, 그 글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소문과 루머를 더해 이상한 글로 변질되어 있었다.

제작진들이 갑질을 했다.

누군가가 큰 부상을 당했다.

멤버들끼리 욕을 하며 싸우는 게 찍혔다, 등등등.

물론 어떤 사고인지, 그 사고가 갑질인지 폭언인지 싸움인지, 아니, 저 글이 정말 사실이 맞긴 한 건지 등등 확인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기에 논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소한 화제로까지 번지는 데에는 충분했다.

-진짜 w넷 이 새끼들은 뭐 하나 했다 하면 구설수는 필수구나

-이 정도면 걍 노린 거 아님?

-ㅋㅋㅋㅋ아니 대체 어케하면 서바 할 때마다 뭐 구설수가 이렇게 터짐??

-저번 더쇼케1에선 누구 다쳤다 하지 않음?

-ㅇㅇ 누가 무대 하다가 무릎 아작났다고 소문 돌았음. 물론 개구라ㅋㅋㅋㅋ

더쇼케2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더쇼케2 사고 관련 얘기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해당 떡밥을 물고 뜯었다.

다만 꼭 부정적 피드백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지칭 안 되어 있는데 저게 더쇼케2 라는 건 대체 누가 알려준 거임? 뭐 ㅅㅂ 접신이라도 해서 계시받음?

-증거 없이 몰아가지 좀 말자 제발;;;

-w넷 쉴드가 아니라 억측하지 말잔 거잖아

-루머글이나 볼 시간에 현성이 사진이나 한 장 더 보셈ㅇㅇ

저런 루머글에 신경 안 쓰고 프로그램과 멤버들을 영업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루머글 보고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람들은 자연스레 피드에 쏟아지는 영업글들도 접하게 되었다.

그 과정 중에 사고가 났다는 식의 증거가 빈약한 루머는 자연스레 힘을 잃었으며, 오히려 출연 그룹들에 대한 인지도만 상승하게 되었다.

-잠시만……. 응……? 이 와기는 누구……?

└세이렌 우연훈! 팀 리더고 메보!

-와 나 왜 이 예고편 이제 봤지? 서바 서사 X나 맛집일 거 같은데

-그래서 세이렌 우연훈이 X나 잘생겼다는 거지?

-와 쟤네 망돌 맞음?

그중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건 세이렌이었다.

원래도 온리원을 제외하곤 가장 많은 인지도를 쌓아 올린 팀이었기에 화제성이 올라가자 그 올라간 화제성만큼의 인지도를 그대로 받아가는 중이었다.

특히나 우연훈을 늘 센터에 세워두고 이동하는 덕에 비주얼 그룹이라는 이미지까지 확실하게 얻어갈 수 있었다.

-우연훈 얼굴 진짜 대박임

-이 잘생긴 와기들이 망돌이라고요??

기본적으로 예고편에 대한 반응이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이 세이렌이 올린 지원 영상에 대한 반응이었다.

-얼굴 jonna 재밌네

그들은 지원 영상을 코믹한 영상으로서 소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얼굴만을 보기 위한 영상으로써만 소비했다.

굳이 따지자면 영상 화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얼빡으로 보니까…… 우연훈…… 더 잘생겼네……?

-근데 얘네 다 괜찮은디?

-가장 끝 누구임?

└가장 끝의 조신하고 커다란 남자는 케이팝의 기강 잡으러 온 세이렌 그룹의 막내 봉태윤입니다! 3월 4일 더쇼케2 첫 방송 많관부~

└막내? 맏이가 아니라?

└맏이는 우연훈임

└ㅅㅂ 세계관 통일 좀;;

-세이렌은 그림체 이거 같음

늑대즈 : 태윤 도승

토끼즈 : 연훈 운

댕댕 : 동준

└ㄴㄴ 연훈이는 복숭아임

└동준이는 댕댕보다는 개죽이 느낌 아님?(개죽이.jpg)

└ㅋㅋㅋㅋㅋ동준이 개똑같음ㅋㅋㅋ

세이렌은 더쇼케 방영 하루 전에 다시 한번 인지도를 키우며 푸시를 받았다.

-온리원이랑 세이렌 얘네 서사 ㅈㄴ 맛있을 거 같은데

-방송에서 얘네 가지고 혐관으로 엮어 먹을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츄베릅임

-잘생긴 와기들끼리의 서바……. 그냥 다 같이 데뷔해…….

-세이렌 온리원 10인조 나쁘지 않은 듯

이런 흐름 속 방영 전 마지막 밤이 지나갔고.

더 쇼케이스2는 한 남성이 커뮤니티에 쓴 뻘글 덕에 마지막 화제성까지 알뜰하게 챙기며 방영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 * *

아침이 밝았다.

난 일어나자마자 옆자리의 연훈이 형부터 살폈다.

어젯밤처럼 또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으음…….”

연훈이 형은 아무런 변화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하아.”

태평해 보이는 연훈이 형 얼굴을 보니 묘하게 안정이 되었다.

어젯밤 일이 마치 먼 옛날 일어났던 일처럼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난 자리에 앉은 채 시계를 확인했다.

원래 새벽 6시면 일어나는데 지금 7시가 다 되었다.

늦잠을 잔 셈이었다.

어젯밤 생각이 많아져 잠들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진 것 같았다.

그 탓에 더 늦게까지 잠들어 버린 거 같았고,

내가 멍하니 있자.

“봉태윤, 일어났냐?”

도승이 형이 욕실에서 나오며 내게 말했다.

“아, 네.”

“웬일로 늦잠을 다 자냐?”

“어제 조금 피곤했나 봐요.”

“들어가서 씻어. 오늘 아침은 내가 할게.”

도승이 형은 내게 새 수건 하나를 던져줬다.

난 그걸 받아챈 뒤 욕실로 들어갔다.

물을 머리에 끼얹으니 잠이 달아난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어젯밤 기억도 더욱 또렷해졌다.

그 순간의 연훈이 형은 분명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누굴까.’

내가 회귀하기 전 전화를 걸었던 그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실 그게 맞는지도 확인하긴 어렵다.

난 고개를 털며 생각을 끊어냈다.

여기서 더 생각해 봐야 내가 알 수 있는 건 없다.

오늘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빠르게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도승이 형이 아침밥을 그새 차려둔 상태였다.

“밥만 네가 좀 퍼주라.”

“옙.”

“박동준 밥은 절반만 푸고. 쟤 어제 방송하면서 군것질 너무 많이 하더라.”

“알았어요.”

난 알겠다 말하며 동준이 형 밥을 절반보다는 조금은 더 펐다.

식탁을 세팅하니 형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으음.”

“밥이야?”

“……맛있는 냄새 나네.”

동준이 형까지도 웬일로 투정 안 하고 바로 깼다.

항상 아침밥 안 먹고 더 자겠다며 투정부리다가 도승이 형한테 잡혀서 강제 기상 당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배가 고팠나 보다.

멤버들이 다 같이 식탁에 모였다.

“빨리 먹고 씻고 얼른 연습하러 가요.”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도 도승이 형을 따라 숟가락을 바쁘게 놀렸다.

처음엔 잠에서 마저 못 깬 얼굴들이더니 음식이 조금 들어가니 빠르게 잠에서 깨어났다.

특히 연훈이 형은 처음엔 눈도 채 못 뜨고 있다가 된장찌개를 한 입 먹더니 번쩍하고 눈을 떴다.

“너무 맛있다, 도승아!”

“고마워요.”

“나 진짜 평생 네가 해준 된찌만 먹고 살래!”

“그건 좀.”

난 그런 형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저게 연훈이 형이지.

어젯밤에 본 그림은 당분간은 잊고 살 생각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변화가 일어났는데,

“어?”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운이 형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선 거였다.

“형? 왜 밥을 먹다 말아요?”

난 허공에서 멈춘 운이 형의 숟가락을 보며 물었다.

“운아?”

“무슨 일 있어?”

다른 형들도 갑자기 렉이라도 걸린 듯 멈춰 버린 운이 형을 보며 이리 물었다.

운이 형은 별말 없이 핸드폰 화면을 우리에게로 돌렸다.

운이 형이 쓰는 SNS의 피드가 전부 세이렌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거, 내가 구독계로 이용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우리 이야기가 많은 거 처음 봤어…….”

운이 형의 말에 식탁 위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피드에 뜬 우리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칭찬에 가까운 거였다.

잘생겼다나 귀엽다와 같은.

물론 개중 고수위의 발언들이 다수 섞여 있긴 했다만, 그래도 긍정적인 쪽들이었다.

난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더 쇼케이스2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러곤 지원 영상이 게시되어 있는 탭을 눌렀는데,

-WD엔터 데뷔조 세이렌 지원 영상

-조회수 : 351,648회

10만 회 언저리에서 놀던 영상 조회 수가 3배로 뛰었다.

오늘은 더쇼케2 1화의 방영 날이다.

적당히 화제성만 받아먹으며 천천히 크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심상치 않아.’

오늘 뭔가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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