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0화
1화의 주인공이 우리였다.
난 힘을 빡 줘서 편집한 우리 숙소 장면을 보고 확신했다.
형들은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
“우리 숙소가 저렇게 좁았나……?”
“화면으로 보니까 왜 더 안 좋아 보이지……?”
형들은 방송에서 보이는 시설의 열악함에 놀란 모양이다.
그러곤 실제론 저 정도가 아니라며 자기암시를 시작했다.
다만 실제로도 저 정도라는 걸 다들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에 분위기는 계속 처참해져 갔다.
“에이~ 잘 돼서 이사 가면 되죠~ 임팩트 있고 좋잖아요!”
동준이 형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말을 했다.
형들은 동준이 형의 말을 듣자 그제야 조금 기운을 차렸다.
방송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중이었다.
-저, 저희가 아직 팀인사가 따로 없어서 그러는데, 그냥 해도 될까요?
우리가 처음으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세이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집이 좁고 열악했던 것과 다르게 우린 밝고 희망차게 편집되고 있었다.
바로 붙어서 나오는 장면은 밥을 먹는 장면이었는데,
-자자자! 상 펴! 상 펴! 아 상 좀 펴어!
-어어어!
도승이 형이 냄비 가득 끓인 된장찌개를 들고 오며 상 펴라고 짜증을 내는 장면이었다.
그게 나오자 도승이 형이 마시고 있던 물을 풉 하고 뿜을 뻔한 걸 겨우 참았다.
“……큽! 아, 아니! 저게 방송에 왜 나와?”
형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는데 방송 시작하고 처음으로 짜증 내는 아이돌이 등장한 거였다.
물론 남이 보기에 기분 나빠 보이는 짜증이 아니라 진짜 가족에게 낼 법한 내추럴한 짜증이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냄비에 찌개 끓여서 고봉밥 쌓은 거 우리뿐이지……?”
다른 팀들과 아침 메뉴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와아…….”
“우리 지금 여러모로 레전드네…….”
사실 우리도 평소에도 매일 저렇게 먹진 않는다.
어쩌면 평소에는 더쇼케 참가 중인 팀 중 우리가 제일 적게 먹을 수도 있다.
다만 어쩌다 보니 저 날만 저렇게 먹은 거였다.
나름 방송 나온다고 고급 식재료 좀 써보겠다고 했는데, 막상 쓸 만한 고급 식재료가 스팸과 계란 이런 것뿐이었다.
해서 스팸 구이랑 계란말이를 한 거였다.
된장찌개야 뭐 매일 먹던 거고.
그 결과 우연찮게 밥도둑 조합의 아침상이 만들어져 버렸고, 그걸 못 참은 동준이 형이 밥을 고봉으로 쌓았다.
그 탓에 아침상이 굉장히 푸짐하게 연출이 되어 방송에 나온 거였다.
‘엥겔지수 장난 없는 팀이 되어버렸네.’
이다음 장면들 중에도 사실 멀쩡한 장면은 없었다.
-박동준. 고봉밥 안 된다니까.
-아 좀! 아침밥은 많이 먹어도 된다매!
-정도가 있지.
-스팸에 계란말인데 고봉밥이 안 되는 건 심한데.
아침부터 싸우는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
-도승아 동준이 너무 뭐라 하지 마.
그 와중에 혼자 우아한 운이 형.
-맛있어~ 맛있어~ 맛있으면 콧노래가 나오지요~
밥 먹다 말고 별안간 노래를 부르는 연훈이 형까지.
대환장파티였다.
난 구석에 쪼그려서 혼자 밥 깨작거리는 놈으로 묘사되었다.
다른 말로는 분량을 못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판에서 분량 받는 건 사실 쉽지 않다.
형들이 전부 분량 먹는 귀신들인데 어떻게 분량을 받으란 건가.
이후엔 우리가 밥 먹고 상을 치우는 장면이 나왔다.
여기서부턴 크게 이상할 것 없는 장면이었다.
다른 팀들도 밥 먹고 나서 다 같이 숙소 치우는 장면은 나왔으니까.
다른 게 있다면 훨씬 내추럴하게 나왔다는 것 정도?
타 그룹들은 조금씩 방송임을 인식하고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우린 그런 것 따위 없었다.
내가 형들에게 방송 전날부터 무조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내자고 거듭 강조했던 게 효과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너무 내추럴 했던 건지 방송에 빨래 건조대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보통은 방송팀 온다 하면 저런 건 치우게 마련이다.
킬포는 건조대에 올라간 빨래가 다 말라 있단 거다.
-이거 빨래들 안 걷으세요?
-그, 약간 옷걸이 대용으로도 쓰는 건조대라…….
-저기 행거는 안 쓰세요?
-저기엔 빨래를 지금 널어둬서,
-에? 건조대에 옷을 걸어두고 행거에서 빨래를 말려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 장면은 사실 예상 못 했던 장면이다.
김민영 작가가 나한테 자꾸 이것저것을 물어봐서 설렁설렁 대답을 해줬었다.
그 과정 중에 이런 장면이 있었나 보다.
답을 해줄 당시엔 이상한 걸 몰랐는데,
‘무슨 이상한 놈처럼 나왔잖아.’
행거를 빨래 건조대로 쓰고, 빨래 건조대를 행거로 쓰는 사람으로 나와버렸다.
“요새 가구는 다 하이브리드지~”
“저런 인터뷰는 또 언제 딴 거야.”
“태윤이 표정 너무 진지한데.”
이후 숙소 정리를 끝낸 후 연습실로 가는 장면으로 바로 이어졌다.
다른 팀들은 연습실 가는 장면에서 컷이 잘리던데.
우린 그런 것 없이 다이렉트로 쭉 방송이 이어졌다.
“지금 우리 분량 엄청 받은 거 같은데, 아니야?”
“잠시만요, 어? 맞네요?”
현재 우리 팀만 다른 팀에 비해 분량을 잔뜩 받았다.
숙소 신이 온리원의 1.5배, 원바이원과 루미닌에 비하자면 거의 2배 가까이 차이가 날 정도로 길게 나왔다.
심지어 중간에 끊는 것 없이 연습실 가는 것까지 다이렉트로 나오니 아마 분량은 더 길어질 것 같았다.
연습실에 가서도 숙소 신에서와 크게 차이가 없는 연출들이 나왔다.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멤버들의 모습 보여주기.
이제야 제작진들이 잡은 우리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돈 없고 가난한 망돌이지만 밝고 희망찬 아이들.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더쇼케2의 정체성이기도 하네.’
아마 얘네가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상상으로나마 그려냈던 이미지의 아이돌이지 않을까 싶다.
연습실에 가서 각자 몸을 풀고 연습을 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컷편집되어 방송에 흘러나왔다.
그중 포인트는 연훈이 형의 노래였다.
늘 방긋방긋 웃으며 뛰어다니던 인간이 노래를 시작하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늦은 봄, 꽃은 시들어 가고
-깊은 밤, 쉬이 잠 못 들던 날
-포근히 감싸준
-날 일깨워 준
-그대라는 한 줄기 빛이
이 장면이 제작진들이 보기에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카메라 감독이 놀라서 앵글이 살짝 흔들렸던 컷을 그대로 사용했다.
보통은 이런 컷은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일부러 쓴 거 같네.’
이 노래가 충격적이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의도적으로 쓴 컷인 것 같다.
-달아나도 날 쫓아와
-사랑이란 마음이
-때늦게 피어나 버린
-결코 시들지 않을 그 마…… 켁!
다만 너무 진지하게 가기 전에 분위기가 또 한 번 가벼워진다.
-벌레 입에 들어왔어! 이이이익!
연훈이 형 입에 벌레가 들어와 노래가 중단된 거다.
우리가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나오고.
자막으로 –예능신 강림-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그다음으로 내가 노래하는 장면이 짤막하게 나오고.
운이 형, 도승이 형, 동준이 형이 노래하는 장면이 나왔다.
실제 순서는 연훈이 형이 가장 나중에 노래를 불렀던 건데, 방송의 재미를 위해 순서를 바꿨나 보다.
이후 다시 한번 컷이 바뀌곤.
마지막 구성으로 진입했다.
우리가 돌림판을 돌려 선전포고할 대상을 찾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선 그렇게까지 힘을 많이 쏟진 않았던 거 같았다.
그래도 우리들의 우애는 강조하고 싶었는지 돌림판을 앞에 두고 회의하는 장면을 길게 내보내 주긴 했다.
-제가 돌려도 될까요?
-위험한데.
-괜찮겠어?
-다 같이 돌리면 되잖아! 선전포고도 다 같이 하고!
내가 혼자 돌리려고 하자 막아서는 형들의 모습과.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돌리고 선전포고까지 그 사람이 하는 게 미션입니다!
꼼수를 쓰려는 걸 사전방지하는 제작진의 모습까지.
예능 느낌이 물씬 나는 편집이었다.
이후 돌림판이 돌아가며 누가 나올지 기대감이 모아지는 찰나.
우리가 어떤 팀에게 선전포고했는지까지는 나오지 않고 컷이 끝났다.
그러곤 이제야 다른 팀으로 장면이 전환되었다.
“와아!”
“나 방금 엄청 집중해서 봤어!”
“이게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도 편집이 되니까 계속 보게 되네요.”
“신기하다.”
형들은 방송에 꽤 몰입해서 본 건지 이런저런 감상들을 쏟아냈다.
내가 보기에도 방송 재밌게 잘 뽑혔다.
다만 중요한 건 이런 거 아니었다.
“우리 분량이 지금, 엄청 나왔지?”
“네.”
“이거 너무 많이 나왔는데요?”
우리가 분량을 너무 많이 차지했다.
물론 좋은 거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넘치는 건 부족한 것만 못 할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어떨지는 뚜껑을 까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화면엔 다른 팀들이 연습실에 가서 연습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 뒤에 바로 붙은 팀은 온리원이었다.
온리원의 연습실은 우리 연습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쾌적하고 넓어 보였다.
다른 멀쩡한 회사들 기준으로 보면 사실 그렇게까지 넓은 연습실은 아닐 텐데 우리 뒤에 붙어서 그런가 더 번지르르해 보이게 연출이 되었다.
이후로 블레슈와 원바이원과 루미닌의 연습실 영상이 이어졌다.
다른 팀들의 연습실 영상까지 전부 다 합해서 분량 계산을 얼추 해보니 대체적으로 비슷한 시간을 받긴 한 거 같았다.
다만,
‘한 번에 안 끊고 쭉 나오는 거랑 중간에 한 번 끊는 거랑은 임팩트가 다르지.’
방송국 놈들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분량으로 욕 안 먹으려고 시간만 얼추 비슷하게 맞춘 걸지도 몰랐다.
이후 장면은 스튜디오 씬으로 이어졌다.
각 팀들이 스튜디오에 올라와서 인사하는 장면이었다.
여기서도 우리만 급발진을 했다.
다른 팀들은 안녕하세요, 나 반갑습니다, 정도의 인사만 서로 주고받았는데,
-하나, 둘, 세이 예스! 안녕하세요! 세이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만 각 잡고 팀구호를 쩌렁쩌렁 외쳤다.
“아.”
“미친.”
“하아……. 개쪽팔려.”
당시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를 몰라 냅다 팀구호 갈긴 거였는데.
그냥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는 정도였다니.
이런 분위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가 가장 마지막에 스튜디오 올라갔는데 저런 식의 인사가 오고 간 걸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린 그냥 급발진이 특기인 팀이 되어버렸다.
다른 팀들이 눈만 끔뻑끔뻑거리며 우릴 보다가 급하게 반응을 보이는 리액션 컷이 삽입되었다.
“형 괜찮아요?”
“나? 아, 문제없지! 괜찮아!”
난 연훈이 형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연훈이 형 얼굴이 시뻘게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았으니까.
이후 스튜디오에서 했던 잡다한 장면들이 송출되었다.
각 팀끼리 소소하게 잡담 나누는 장면.
묘하게 서로 눈치 보는 장면.
MC들을 보고 인사하는 장면과.
선전포고 영상들을 서로 돌려보던 장면까지.
선전포고 장면에선 우리의 짠내 선전포고 영상이 중심이 되어 컷편집이 이루어졌다.
아마 저 짠내 선전포고 영상이 제작진들 마음에 꽤 들었었나 보다.
이후 무대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는데,
“오!”
“와.”
“방송으로 보니까, 또 박력이 다르구나.”
무대 영상에는 제작진들이 편집 장난을 치지 않았다.
다들 동일한 분량의 동일한 컷편집을 받았으니까.
중간에 리액션 컷만 넣고 무대 동선에 맞춘 카메라 무빙만 들어간 풀영상이나 다름없었다.
무대 영상에까지 장난질을 치면 요즘엔 욕먹는다.
해서 무대영상만큼은 공평하게 분량을 할애해 준 것 같았다.
다만 같은 분량과 같은 편집을 제공해 줬다 해서 모든 무대가 같은 퀄리티의 무대로 보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팀 간의 역량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솔직히 루미닌과 원바이원과 블레슈는,
‘티가 안 나.’
이 그룹들 간 어떤 차이가 있던 건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다만 온리원이 나오니,
“와악!”
“대박…….”
“현성 선배님 진짜 표정 잘 쓰시는구나…….”
이미 한 번 봤던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리액션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실제 무대 봤을 때도 잘한다 싶긴 했는데 방송으로 보니 티가 더 난다.
이후 온리원 무대가 끝나고.
우리 무대가 시작되었는데,
“흐음.”
“후우우.”
형들은 잔뜩 긴장한 건지 다들 입을 닫고 방송 화면에만 집중했다.
한데,
“오……?”
“오오……?”
“와……!”
무대가 진행될수록 형들 얼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이렇게 잘했어?”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누가 봐도 확실하게 잘한 게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온리원보다 낫다.’
개중 가장 잘한 걸로 보였던 온리원보다도 우리가 한결 나아 보였다.
다만 형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이날 방송에서 꼴찌를 했었기에 이게 더 착잡하게 와닿나 보다.
형들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무대가 종료되고.
순위 발표식까지 방송이 이어졌다.
온리원이 1등. 우리가 꼴등을 하는 것까지 방송이 나왔다.
꼴등을 한 형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끝으로,
두둥!
“여기서 끊네.”
“하하…….”
더 쇼케이스2 1화가 끝이 났다.
곧바로 이어진 2화 예고편에선 순위 발표에 따른 인터뷰가 얼핏 나오고.
새롭게 나온 주제에 대한 격한 반응들과.
진짜 잘할 거라는 팀들의 각오가 흘러나왔다.
예고편을 끝으로 더쇼케2 1화가 완전히 종료됐다.
이제 화면엔 티브이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들은 말이 없이 노트북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분위기가 애매모호하다.
무대를 잘했지만 꼴등을 차지한 게 나오고 방송이 종료됐으니 말이다.
다만,
“그, 이거, 아무래도 우리 잘 된 거겠죠……?”
꼴등 했던 걸 다시 봐서 착잡한 것과는 별개로.
다들 비슷한 감상은 품고 있었다.
“……아마?”
“……우리 분량 엄청 받았던데?”
바로 1화가 우리 중심으로.
아니, 프로그램 자체가 노골적으로 우리 중심으로 편집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즉,
“우리, 된 거죠?”
“우리가 이긴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다른 팀들 보이지도 않았어요.”
꼴등을 한 것과는 별개로 실리는 우리가 전부 독차지했단 걸 의미했다.
“……됐어!”
“……됐다!”
“으아아악!”
“됐다! 됐어!”
형들은 됐다는 말을 연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태윤야! 됐어! 우리 진짜 됐어억!”
아직 뭐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하하. 그러게요. 됐네요.”
일단 형들이 됐다니까 난 그거면 충분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인터넷 반응을 걱정했다.
우리가 1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말은 즉,
‘원래 주인공들의 팬들이 가만있지 않겠네.’
자리를 빼앗긴 누군가는 분개할 수밖에 없단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