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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52화 (5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2화

“이사?”

“이사를 가자고?”

“갑자기?”

형들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냔 듯 날 쳐다봤다.

그럴 법하다.

이사라는 주제는 너무 뜬금없는 주제니까.

사실 나도 이렇게 빨리 이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적어도 1차 경연 무대까지는 방송에 나간 후 꺼낼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

방송이 너무 우리 위주였다.

더군다나 온리원과 라이벌 구도까지 너무 강하게 잡혔다.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란 말이다.

아직 우리들의 팬덤이야 그렇게 크지 않으니 막 위험하진 않을 수 있다 쳐도,

‘온리원 팬덤은 꽤 커.’

우리랑 라이벌 구도가 강하게 잡힌 상대편이 너무 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물론 이는 과한 걱정이긴 하다.

아무리 과몰입한다 해도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뭐 가택 침입이라던가, 재물손괴라던가. 단순도난 같은 것.

이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만 명 중에, 아니, 십만 명 중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일 거다.

문제는.

‘반대로 십만 명 중에 한 명씩은 나올 수도 있단 거긴 하니까.’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십만 명 중에 튀어나온 그 ‘한 명’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곤 한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는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는 50 대 50의 문제인 셈인 거다.

그러니,

“여기보다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이사 가야 할 거 같아요.”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우리 숙소 공개된 거 때문에 그래?”

연훈이 형이 되묻는다.

“하긴 너무 대놓고 나오긴 했더라.”

“맞아. 솔직히 이 동네 사람이면 알아볼 거 같긴 해.”

“근데 당장 이사는 솔직히 힘들지.”

형들은 내가 던진 화두에 대해 각자 한마디씩 꺼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결론은,

“언젠가 가긴 해야겠지만 일단은 좀 더 생각하자. 회사에서 들어줄지 아닐지도 사실 모르잖아.”

이런 식의 안일한 답변이었다.

내가 원했던 답은 아니긴 하다만,

‘어쩔 수 없네.’

사실 저 말이 가장 현실성 있긴 하다.

“일단 내가 내일 일어나서 회사에 건의해 볼게. 오늘은 일단 자자 얘들아.”

“네에.”

“잘 자요.”

“내일 봅시다~”

결국 건의만 한번 해보는 것으로 한밤의 회의는 끝이 났다.

나도 형들을 따라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곤 그저 빌 뿐이었다.

‘별일 없어라.’

그 십만 명 중에 한 명이 최대한 늦게 나오기를.

동시에 다른 생각도 이어갔다.

‘동준이 형 재력이라면……. 아마도 가능하겠지.’

동준이 형이라면 이 숙소 문제를 헤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깐 생각만 해봤다가 금세 지워냈다.

동준이 형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기만 하는 건 내 성격이 아니기도 하며, 더 나아가 동준이 형에게 예의도 아니다.

어쨌든 사람인지라 쉬운 길을 생각해 봤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회사에 요청을 해보거나, 아니면 최대한 타협 가능한 선의 새 숙소를 찾아보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

난 눈을 감고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오늘 밤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말이다.

* * *

오늘 밤은 안전하게 지나가길 기도한 게 어쩌면 플래그를 세운 거였나 보다.

새벽 3시경.

멤버들 모두가 잠에서 깰 만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악!”

연훈이 형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 뭐예요?”

“으아아?”

“에?”

“……형?”

목청 좋은 사람의 진심 섞인 비명은 모두를 깨우기에 충분한 볼륨이었다.

“현관문 손잡이가…… 막 혼자 움직여……!”

연훈이 형이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이리 말했고,

“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도승이 형이었다.

“대체 누가……!”

도승이 형은 곧바로 현관문을 열어젖히려는 듯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형! 잠시만요!”

그걸 말린 건 나였다.

형이 현관문을 열어젖히기 전에 내가 형을 잡아 세웠다.

“밖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나가려 해요!”

이건 감정적으로 할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 사생이 아니라 테러를 하려고 기다리던 미친 인간이면 진짜 큰일이 날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이 시간에 문 따려고 하는 거면 도둑 새끼지 뭐겠어! 가서 잡은 다음 경찰서로 가야지!”

도승이 형이 잔뜩 화가 나서 이리 받아쳤지만,

“안 돼요!”

내가 완강하게 막아섰다.

우리가 안에서 소란스럽게 떠든 걸 들은 걸까.

타다다닥.

현관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소리였다.

발소리를 들어보니,

“……한 사람이 아닌데요?”

“으아아아아…….”

“미친……. 소름 돋아…….”

최소 둘.

어쩌면 셋 이상일 수 있었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가고 난 후.

우린 멍하니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가장 표정이 안 좋은 건 현관문을 열어젖히려 했던 도승이 형이었다.

“일단, 섣불리 문 열 뻔했던 거 사과할게요.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위험해질 뻔했던 거 같아요.”

형은 차분히 생각해 보니 방금 전의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았나 보다.

“……아냐. 도승이가 사과할 문제가 아니지. 괜찮아.”

연훈이 형은 도승이 형을 위로하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다시 침묵.

멤버들 모두가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었다.

“아까 태윤이가 했던 이사 문제가 진짜 중요한 문제였던 거 같네.”

연훈이 형이 다시 입을 떼며 대화를 주도해 갔다.

“이게 오늘 바로 이런 일이 터질 줄은 몰랐어요. 진짜로.”

운이 형도 꽤 놀란 건지 멍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하아아.”

도승이 형도 꽤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중 계속 침묵을 지키는 건 동준이 형이었다.

아까부터 생각에 잠긴 얼굴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오늘 여기서 자는 건 너무 위험하다. 죄송하지만 승연 씨랑 현아 씨한테 연락해서 다른 숙소 찾아보자. 일단 근처 호텔이라도 가야 할 거 같아.”

연훈이 형은 핸드폰을 꺼내 승연 씨와 현아 씨한테 연락을 하려 했다.

“그럼 제가 근처에 보안 좋은 호텔 몇 개 찾아볼게요.”

도승이 형은 호텔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다간 오늘 밤은 호텔에서 잘 게 뻔했다.

맞는 선택이긴 하다.

한 번 털릴 뻔한 숙소에서 잠을 잘 순 없으니까.

당장 갈 수 있을 만한 보안 좋은 곳으로는 호텔뿐이다.

문제는,

‘다들 호텔 투숙비 낼 돈 없을 텐데.’

지금 호텔을 찾는다면 할인 같은 것도 못 받는다.

이 와중에도 돈 걱정을 하는 게 너무 비참하긴 하다만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니까.

“아니면 우리 집으로 일단 갈까? 내가 부모님한테 말해볼게.”

연훈이 형이 호텔 말고 다른 대체재를 내놓는다.

다만 난 추천하지 않는다.

“만일 형 본가까지 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아…….”

아까 우리 현관문을 따려고 했던 사람들은 아직 근처에서 대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때 빈집을 털려고 하거나 아니면 우리를 따라오겠지.

그때 연훈이 형 본가가 노출되면 피해의 범위가 커진다.

결국 호텔에 가는 게 가장 안전할 거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려는데,

“내 집으로 가요.”

한참 생각만 하던 동준이 형이 입을 뗐다.

멤버들 모두가 동준이 형을 쳐다봤다.

“동준아 너네 본가까지 위험해질 수 있잖아. 아까 태윤이가……,”

연훈이 형이 말리려 하자,

“아뇨. 본가 말고 내 집이요.”

동준이 형이 말을 정정해 줬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다들 말의 뜻을 잘 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난 동준이 형을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회귀 전 나도 동준이 형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야 알게 됐던 사실인데.

“마침 전세 계약 만기 돼서 저번 주에 나간 아파트 하나 있는데, 그냥 거기 우리가 쓰죠.”

동준이 형네 집은 꽤 부자였다.

동준이 형이 그룹이 잘 되든 안 되든 늘 즐기는 마인드였던 이유가 이거였다.

형한테 아이돌은 정말 취미였으니까.

“……뭐라고?”

“내 집?”

“동준아?”

형들은 단체로 굳었지만,

“일단 짐부터 싸죠.”

동준이 형은 혼자 침착했다.

* * *

우린 당장 필요한 짐들을 전부 챙긴 후 택시를 불러 동준이 형이 소유한 아파트로 이동했다.

현관문을 따려고 했던 인간들은 역시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택시를 타자 뒤따라 붙은 또 다른 택시가 한 대 있었으니까.

다만 우리라고 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복잡하게 가주세요. 저 뒤에 차를 떨어뜨려야 해서요.”

당연히 따라붙을 줄 알고 택시 기사님에게 길을 복잡하게 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좀처럼 떨어지지 않더니 사거리에서 간발의 차로 신호가 갈려 따돌릴 수 있게 됐다.

원래 숙소는 이중 삼중으로 잠금 처리를 해두었으니 아마 털릴 일은 없을 거다.

이후 동준이 형이 소유했다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미친”

도승이 형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강남에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신축 아파트였으니까.

우린 아파트 안쪽에 최대한 으슥한 곳에서 내렸다.

택시는 돌아갔고 고급 아파트엔 우리만 남았다.

“올라가죠.”

동준이 형이 앞장서 걸으며 우릴 안내했다.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23층까지 쾌속으로 올라갔다.

한 층에 두 가구밖에 입주를 안 하는 아파트였다.

2301호라고 적힌 문 앞에 서자,

“잠시만요.”

동준이 형이 주머니에서 도어락 물리키를 꺼내더니 현관문을 열었다.

“키 하나 받아두길 잘했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과 커다란 통창이 우릴 반겨줬다.

“사람이 살다가 얼마 전에 나가서 꽤 휑할 거예요. 아쉬운 대로 일단은 쓰죠. 가구야 하나씩 채워 넣으면 되니까.”

동준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부의 등을 켰다.

조명 아래 드러난 아파트 내부는 더 영롱하게 빛났다.

대리석 바닥에 은은한 호텔 느낌의 조명.

연습실보다 넓은 거실에 당장 눈에 들어오는 방의 개수만 4개였다.

형들은 여전히 멍한 눈치였다.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거다.

같이 허름한 숙소에서 먹고 자고 하던 인간이 강남에 고급 아파트를 소유한 다이아 수저라는 거니까.

형들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건지 아직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이내 입을 뗀 사람은 연훈이 형이었는데,

“난 사생들보다 이게 더 놀라워 동준아…….”

정말 순수하게 놀라움에 대한 표현이었다.

“대체, 왜 우리랑 그 옥탑에서…….”

“서민 체험……?”

“대체 아이돌은 왜……?”

형들은 다들 한마디씩을 떼며 동준이 형에게 의문을 표했다.

동준이 형은 그런 형들을 보며 겸연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옥탑은, 사실 아늑하고 좋아서 오히려 계속 살고 싶었던 거예요. 너무 막 그렇게 배신감 느낀 얼굴 하지 마요~ 언제가 됐든 밝히려고 했던 거였어요~”

형은 그리 말하며 거실 구석으로 이동했다.

“내일 조금 더 설명해 줄게요~ 일단 오늘은 잠부터 자요.”

동준이 형은 구석에 있는 터치패드를 조작해 방의 보일러를 켰다.

금세 바닥이 뜨뜻해진다.

우린 그 위에 숙소에서 가져온 이불을 깔았다.

집은 약 5배 가까이 커졌는데 아직도 다 같이 이불을 깔고 누운 게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한 포인트이긴 했다.

“그, 일단 자고, 내일 또 이야기하자 얘들아.”

“잘…… 자요.”

“일단, 자죠. 후우.”

“일단 자고 또 이야기해 봐요~”

우린 그렇게 낯선 곳에서 첫 번째 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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