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4화
형들과 나는 연습실에서 마지막 기합을 넣은 후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이젠 얼추 익숙해진 숙소에서 빠르게 샤워만 마친 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타이밍 맞춰 승연 씨와 현아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연 씨와 현아 씨는 오늘 숙소에 처음 와본 거였다.
두 사람은 멍하니 서서 주차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은,
“지금 여기 주차 되어 있는 차들이 저희 집값보다 비싸요…….”
“혹시 잘못해서 옆 차 긁으면 저흰 이 차 팔아도 수리비 못 낼 거 같은데요…….”
이곳이 참 살벌한 동네라는 말을 했다.
“하하하.”
“저희도 처음에 진짜 적응 안 됐어요.”
“지금도 뭐 사실…….”
우린 승연 씨와 현아 씨의 말에 적당히 공감해 주며 차량에 올라탔다.
승연 씨와 현아 씨는 동준이 형에게 궁금한 게 잔뜩 있는 눈치였다.
대체 이런 집을 어째서 갖고 있는 건지.
이런 걸 갖고 있는 사람이 왜 굳이 힘들게 아이돌을 하려는 건지.
뭐 그런 물음들이 잔뜩 떠오른 눈빛으로 동준이 형을 바라봤지만,
“출발~”
동준이 형은 그런 눈빛을 다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 척했다.
우리 외의 사람에겐 자신의 집안 사정을 굳이 말해주고 싶진 않은 눈치였다.
현아 씨와 승연 씨도 더 이상 동준이 형을 쳐다보진 않았다.
그렇게 강북에 있는 샵으로 차는 부드럽게 나아갔다.
* * *
샵에 도착해서도 평소와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우릴 반겨주고,
“사장니이임!”
연훈이 형은 사장님에게 가서 재롱을 떤다.
“하하하! 연훈 씨는 참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
“저도 사장님 뵐 때마다 좋아요!”
“어머, 어머 말도 얼굴만큼 예쁘게 하네~”
연훈이 형과 샵 사장님은 대화의 결이 참 잘 맞는 사람들이었다.
둘 다 수다가 한가득인 사람들이었으니까.
연훈이 형이 사장님과 근황 토크를 하는 동안 우린 각자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담당 선생님들이 와서 우리 헤어와 메이크업을 시작해 주셨다.
“오늘 컨셉이 뭐라고요?”
“스페이스 오페라요~”
“스페이스 오페라? 그게 뭐예요?”
“스타워스랑 둔 같은 거 생각하면 돼요.”
동준이 형은 샵 선생님과 무대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머. 근데 왜 오늘 헤어랑 메이크업은 평소랑 비슷하게 가는 거예요?”
“에?”
“좀 막 더 눈길 끌 만한 것들 추가해도 좋을 텐데.”
동준이 형 담당 선생님의 말에 우린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
“그, 갑자기 고개 돌리시면,”
“억!”
그 탓에 각 담당 선생님들이 당황하셨을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우린 다시 고개를 원 상태로 돌렸다.
대신 아까 그 주제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평소랑 다르게 메이크업 가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의상이 좀 강해요?”
“네, 강렬한 편이긴 해요.”
“그러면 조금 더 메이크업도 세게 가는 게 좋은데. 흐음. 눈가에 이런 장식 같은 걸 더해도 좋고…….”
우린 각 담당 선생님들이 추천해 주는 메이크업 방향을 경청했다.
확실히 무대와 의상 생각하면 메이크업을 강렬하게 가는 게 나을 터다.
어느 한쪽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만 화려한 메이크업과 장식들도 그걸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받는 거다.
“연훈 씨는 아예 눈가에 좀 붉은끼도 더하고 큐빅 같은 거 더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정말요?”
“아예 화려하게 한번 가보죠.”
연훈이 형 같은 경우는 화려한 메이크업과 장식들을 주는 대로 다 받을 테다.
한데,
“어, 태윤 씨는 음.”
“전 그냥 화장만 더 진하게 해주세요.”
“아, 네.”
나도 안다.
나 같은 얼굴은 저런 화려한 걸 하면 다 뱉어낸다.
“귀걸이 정도만 우리 한번 차볼까요?”
“네, 뭐.”
결국 난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정도의 귀걸이만 차는 선에서 얼굴 쪽 단장을 끝냈다.
이후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고 나자,
“의상 왔습니다!”
뒤늦게 의상이 도착했다.
“아이고야.”
“늦게 왔네.”
“죄송해요……. 업체에서 배송을 늦게 해줘서…….”
보통은 의상을 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곤 한다.
의상 갈아입다가 메이크업과 헤어가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의상 기다렸다간 시간이 안 맞을 거 같아 헤어와 메이크업을 먼저 시작해 버렸다.
“옷 살살 벗어서 환복하고 오죠.”
우린 메이크업과 헤어가 망가지지 않게 신경 써서 환복을 끝냈다.
오늘 우리가 입을 의상은 테크웨어다.
검은색 일변도의 의상인 게 살짝 걸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대는 밝은 의상이 어울리지 않는 무대니까.
실제 온리원도 테크웨어를 입고 대면식 무대를 했었고.
다만 완전히 똑같은 의상으로 가는 건 임팩트를 주기 어려울 거 같아 몇 가지 아이템들을 추가했다.
광선검 대신 지팡이를 택했으며.
생짜 테크웨어 대신 중세풍의 짧은 망토를 더했다.
언밸런스한 아이템의 매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런 맛에 보는 거다.
기술은 오버 테크놀로지인데 문화는 고대국가 느낌이니까.
한데,
“아…….”
“음……?”
환복을 마치고 나온 연훈이 형과 도승이 형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우릴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도 다소 멍한 눈빛으로 연훈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샵에 짧은 정적이 지났다.
그 짧은 순간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 지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옷이…… 왜 그래요?”
의상의 퀄리티가 조악해도 너무 조악했다.
무대용 의상이 아닌 느낌이랄까.
학생들이 코믹콘 참가하려고 용돈 모아 저가로 맞춘 코스프레 의상 느낌이었다.
원단의 재질부터 자그마한 포인트들의 디테일까지.
전부 싸구려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싸구려 의상일지라도 모델이 좋으면 핏이 산다는 말이 있긴 하다.
실제로 저 의상들도 연훈이 형과 도승이 형이 입으니 핏은 좋다.
다만,
“아…….”
“일 났네.”
핏이 좋은 것과 퀄이 안 좋은 것은 동시에 느껴질 수 있는 요소다.
그냥저냥 안 좋은 거면 그냥 넘기겠는데,
“이거, 관객들이 무대 보다가 의상 보면 몰입도 확 깨지겠는데요.”
우린 스페이스 오페라가 컨셉이다.
광활한 우주 신화를 기록한 이야기.
자그마한 소품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있어야 그 컨셉츄얼한 무대가 납득이 가는 거다.
한데 이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의상 퀄리티였다.
* * *
일단 받은 의상이니 환복을 마친 후 우린 샵을 나섰다.
원장님과 담당 선생님들은 끝까지 우릴 걱정했다.
그래도 위로의 말은 잊지 않았다.
“조명 받고 그러면 또 의상 괜찮아 보일지도 몰라요!”
“의외로 카메라로 보면 또 그런 디테일은 잘 안 보이니까 걱정 마요!”
다만 저게 진짜 위로로 다가오진 않았다.
방송으로 봐도 요샌 자그마한 디테일들이 잘 나오며.
조명을 아무리 받아도 의상의 퀄리티가 좋아 보일 리는 없단 걸 우리도 잘 알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차량 안은 분위기가 죽어 있었다.
승연 씨와 현아 씨도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현아 씨는 운전을 위해 화를 죽이는 중이었지만 승연 씨는 아니었다.
의상을 제작해 준 업체에 전화를 걸곤 욕을 한 바가지로 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업체가 일을 이따위로 합니까! 디테일 다 엉망이고 원단도 전에 말해주신 느낌이랑 전혀 다르잖아요! 이거 분명하게 업체 측 실수니까 배상해 주셔야 합니다! 이거 사기라고요!”
다만 이미 벌어진 일.
배상받는다 해서 나아질 건 없었다.
형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사실 의상 문제가 한 번은 터질 거라 예상은 했다.
‘지금까지 의상 퀄이 나쁘지 않았던 게 기적이지.’
우린 제한된 예산 내에서 무대를 꾸려야 하는 팀이다.
그 예산이 다른 회사보다 한참 부족할 건 당연한 이야기고.
우린 가사도, 작곡도, 편곡도, 심지어는 안무와 레슨까지도 가내수공업을 돌리며 부족한 예산을 버텨왔다.
또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분투해 준 덕에 조금의 예산을 추가로 배정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이리저리 아끼고 악착같이 얻어낸 예산들을 의상에 올인하며 남들 보기에 꽤 괜찮은 구색은 갖출 수 있었다.
다만 이번 무대는 의상에 예산을 올인할 수 없었다.
무대의 스케일이 크다 보니 댄서들도 고용해야 했고.
무대 위에 올릴 세트들도 따로 외주를 맡겨서 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소보다 예산을 오바해서 썼음에도 불구하고 의상 쪽은 최저 금액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최저 금액들 중 그나마 타협 가능한 퀄리티의 업체를 골라 의상을 발주했던 건데,
‘업체 측 사진이 사기였네.’
뭐 포토샵을 한 건지 아니면 대외용 사진만 좋은 원단을 쓴 건지.
우리가 사진으로 봤을 때완 영 딴판의 의상이 도착했다.
사실 그 금액으로 좋은 퀄리티를 바란 게 조금 양심 없는 짓이긴 하지만,
‘이건 우릴 속인 거니까. 문제가 조금 다르네.’
이건 금액과는 별개로 업체가 우릴 농락한 거다.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문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대 한 번으로 커리어가 달라질 수 있는데.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엔 더더욱.
다만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새 의상을 공수할 순 없다.
즉 이 엉망인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
그걸 알아설까.
화를 내던 승연 씨도 결국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죄송해요, 여러분.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았어야 했는데.”
승연 씨가 우리에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승연 씨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업체가 사기 친 건데…….”
연훈이 형은 우선 승연 씨를 달래듯 말했다.
다만 현장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들 한숨만 푹푹 내쉰다.
이후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나니 카메라 감독님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자! 우리 이제 다시 텐션 올려서 들어가자!”
연훈이 형은 떨어진 텐션을 억지로 올리며 차량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우린 연훈이 형의 말대로 텐션을 올리며 차량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 감독님들을 비롯한 제작진분들에게 밝게 인사하며 대기실로 이동했다.
한데 스튜디오 복도를 걷다가 블레슈를 만났는데,
“어! 안녕하세요, 세이렌분……들?”
저 투명한 반응에 우린 단체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블레슈 멤버들이 우리 의상을 보곤 흠칫하며 놀랐기 때문이다.
남이 보기에도 퀄리티가 안 좋은 게 티가 많이 나나 보다.
형들은 이를 악물고 블레슈분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요~”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좋게좋게 가져갔다.
다만 블레슈와 가까워질수록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이유론,
‘블레슈 의상 엄청 좋네.’
저 팀은 이번 무대에 사활을 걸었는지 의상 퀄리티가 한눈에 보기에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올 화이트의 제복에 은장식들을 더한 의상이었는데 고급스럽다는 인상이 남는 복장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도 아닌 척하지만 꽤 속상했던 모양이다.
“그럼, 나중에 무대에서 뵐게요!”
원래 같았으면 한참 수다 떨었을 사람들이 빠르게 대화를 종료하곤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걸음을 빨리했다.
대기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아아.”
“후우우우.”
형들이 단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량에 있었을 때보다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다.
“우리 의상…… 진짜 어떻게 하지?”
연훈이 형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단 듯 그리 말했다.
의상 하나 때문에 팀 사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연습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2주간 잠 줄여가며 빡세게 살았는데.
고작 의상 하나가 발목을 잡는 게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때.
투두둑.
아주 오늘 불운의 끝을 볼 생각인 건지.
내 의상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아까 문 닫을 때 조금 급하게 쾅 닫은 것밖에 없는데,
“태윤아……. 지금 의상 찢어졌어…….”
상의 등 쪽이 훅 하고 찢어져 버렸다.
대체 얼마나 저가형 원단을 써야 이딴 일이 발생하는 건지.
“하아. 잠시만요.”
난 짜증을 꾹꾹 눌러 담으며 거울 앞에 섰다.
망토로 가릴 수 있으면 대충 가려보려 했는데 그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난 메이크업과 헤어가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레 의상을 벗은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심각한데.”
“진짜 어쩌지.”
“하아아아. 진짜 속상해.”
형들이 단체로 한숨을 쉰다.
난 찢어진 의상을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벗고 올라가는 게 낫겠네.’
그 생각을 한 순간,
“아.”
발상이 전환되며 생각이 이리저리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난 눈앞의 의상을 보며,
‘통찰.’
통찰을 사용했다.
그러자.
‘미친.’
이 엉망인 의상을 활용할 수 있을 만한 수많은 방안들이 도출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