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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55화 (5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5화

통찰이 이런 곳에서까지 활용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런 곳에서 활용되지 않을 이유도 없긴 했다.

말 그대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힘인데.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 못 한다는 점만 아니라면 상시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고양감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샘솟듯 터져 나온 순간.

탁.

통찰의 발동이 끝이 났다.

세상이 원래 속도로 돌아오니 현기증이 돌았다.

다만 지금 급한 건 따로 있었다.

“형들.”

“응?”

“우리 전에 입었던 그 한복 의상 아직 남았죠?”

“아, 응?”

“아마 차 트렁크에 있긴 할걸?”

“한복 입자고?”

“아뇨. 입을 건 아니고 쓸 거예요. 가능하면 전부 다 가져와 주세요.”

“지금?”

“네.”

내 요구에 먼저 움직인 건 연훈이 형이었다.

아마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가장 먼저 눈치챈 거 같았다.

평소엔 눈치가 느린 사람인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빠르다.

“다른 건 안 필요해?”

“어, 그, 가위랑 좀 접착력 좋은 테이프랑 실핀? 지금 바느질할 시간까진 없을 거 같아서요.”

“아……. 오케이!”

연훈이 형은 잽싸게 대기실 밖으로 이동했다.

“바느질? 뭔 소리야 지금?”

도승이 형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도승이 형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옷을 바꾸려는 거야?”

“수선을 하겠다고, 지금?”

동준이 형과 운이 형도 내 행보가 수상쩍은 모양이었다.

“네. 옷 수선할 생각이에요.”

“미쳤어?”

“태윤아. 아무리 그래도 수선은 좀…….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잖아.”

형들은 내가 수선을 잘할 수 있을지 의아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확신은 없다.

하지만 별수 없다.

“이 찢어진 의상 입고 나갈 순 없잖아요.”

지금 이건 선택사항이 아니니까.

“만일 별로면 그냥 벗고 갈게요.”

“뭐 임마?”

“미쳤어, 미쳤어.”

“아이고…….”

형들은 단체로 멍한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옷 비슷하게 만들어서 입어볼게요. 사실, 여기서 더 안 좋아질 데가 없잖아요.”

형들은 내 말에 아무 답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입고 있는 의상 그대로 입고 올라가면 조롱만 당하고 끝날 게 뻔하다.

인터넷에 박제되어 아마 망돌들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참고 자료로 활용되며 두고두고 조리돌림당할 거다.

그러니 뭐라도 해보고 올라가는 게 덜 억울할 거다.

무엇보다,

“그리고, 사실 이 찢어진 의상 입고 올라갈 바에야 그냥 좀 더 찢은 다음에 노출 주는 게 임팩트 면에선 나을지도 몰라요.”

난 진심으로 이렇게까지 생각한다.

사실 지금 하려는 수선은 못해도 본전 이상의 게임이나 다름없긴 하다.

“하아…….”

“진짜 속상해…….”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한숨을 푹 쉬며 뒤로 물러났다.

“차라리 지금 사비 조금 털어서라도 새 의상 공수해 오는 건…….”

동준이 형이 다른 방안을 내놓았으나,

“어차피 늦었어요.”

새 의상을 맞출 시간이 없다.

때마침,

“가져왔어, 태윤아!”

연훈이 형이 차량에서 의상을 가져왔다.

저번 무대 때 입었던 그 한복이다.

“여기, 가위랑 테이프는 제작진분이 본인들 장비 빌려주셨어.”

“일단 이 정도면 됐어요.”

난 형이 건네준 옷들을 가위를 사용해 북북 찢었다.

“으아아…….”

“왜 이렇게 떨리냐.”

사실 나도 떨린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니까.

그래도 일단 해보는 게 나을 거다.

지금 내가 만들려는 건 기장을 크롭시킨 도포다.

전체적인 기장은 망토보다 조금 더 길게 만들 예정이었다.

그리고,

“멀쩡한 옷은 왜 찢어?”

“차라리 찢는 게 나아요.”

원래 입고 있던 테크웨어 바지도 살짝 가위로 찢었다.

아까 등이 찢어졌던 의상도 조금 더 난도질을 해두었고.

이게 통찰을 통해 만들어진 디자인을 보고 와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도 수선에 거침이 없다.

아마 통찰을 쓰는 과정 중에 수선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도 함께 넘어온 모양이었다.

세상에 가위질을 못 하는 사람은 없으니 통찰을 통해 보정빨을 조금 받은 것 같았다.

이내 내가 입을 의상을 얼추 만들어서 입으니,

“이걸……. 지금 만들었다고?”

“……와?”

“미친…….”

형들은 잠깐 감탄했다.

난 거울에 만든 의상을 비춰보며 말했다.

“컨셉을 조금만 바꾸죠.”

의상이 바뀌었으니 컨셉도 바꿔야 한다.

“동양풍 사이버 펑크 스페이스 오페라로.”

동양풍이 저번 무대와 겹친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의상의 디테일과 꼭 맞는 느낌이다.

또 저번 무대랑 묘하게 연결점이 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선 저번 무대와 이번 무대가 멀티버스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형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스르륵 옷을 하나둘 벗어던졌다.

난 당연한 일이란 듯 형들이 벗어 던진 옷을 받아들었다.

“수선해 줘, 태윤아.”

“그 방향이 맞다.”

“이젠 놀랍지도 않네.”

“처음엔 억지 같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억지였던 걸로~”

형들도 내가 만든 의상이 맘에 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때아닌 수선 행렬이 이어졌다.

아이돌이 아니라 수선집을 할 걸 그랬다.

* * *

방금 루미닌과 블레슈, 원바이원의 리허설이 끝이 났다.

더쇼케2의 피디 박수철은 무대 아래에 서서 스튜디오 쪽을 노려봤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온리원 늦는다고?”

“아, 네. 멤버 중 한 명이 아파서.”

“누구?”

“강현성이요.”

“뭐, 왜 아프대?”

“그거까진 모르겠고 여기 앞 병원에서 수액만 하나 맞고 가겠대요.”

원래 리허설 순서였던 온리원이 오지 않아서였다.

스케줄대로였으면 진작에 와서 리허설 끝냈어야 한다.

온리원이 오늘 1번 오프닝 무대이니 리허설도 1번으로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한데 시간이 슬슬 다가오는데도 스튜디오에 등장하질 않더니 결국 도착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니 다른 팀 먼저 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왔다.

수액 맞은 멤버가 강현성만 아니었어도 한 소리 했겠지만 하필이면 강현성이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됐다.

아직까진 리허설이기도 하니 본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만 도착하면 될 터였다.

“세이렌 올라오라 그래.”

“네.”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며칠 동안 편집에만 시달렸어서 그런가 1화가 방영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컨디션 회복이 안 됐다.

“근데 피디님, 세이렌 관련해서 이슈가 하나 있는데요.”

“……뭔데?”

또 무슨 일로 자신을 귀찮게 하려나 싶은데,

“의상 퀄리티가 상당히…… 별로라고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게 나왔다.

“별로라고?”

“네.”

“걔네 원래 의상이나 이런 거 괜찮지 않았어? 1화 나가서 푸시 좀 받아야 할 애들이 왜 갑자기 중요한 시점에 미끄러져?”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회사에서 1등 안 했으면 싶어서 의도적으로 지원 끊은 거 아닐까요? 1등 하면 계약 이관이니까.”

“스읍. 그렇다기엔 댄서도 쓰고 세트도 만들고 돈은 꽤 쓴 거 같던데…….”

박수철은 머리가 아파 왔다.

1화에서 공들여서 주인공 롤 줬더니 결정적일 때 실수를 한다.

이 정도로 방송국에서 힘을 줬으면 없던 돈이라도 만들어서 입혀줘야 하는데.

왜 하나씩 원가 절감을 하려는 건지를 모르겠다.

“이게 그 아까 입장할 때 땄던 등장 신인데요, 이미지만 살짝 보시면…….”

“……심한데?”

박수철은 온리원이 수액 맞느라 늦는단 사실도 까맣게 잊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하는 모습도 좋고 각각 멤버들도 스타성이 보여 한번 맘잡고 띄워보려 했던 애들인데,

“기구하다, 기구해.”

아이돌풍 의상 잘 입다가 갑자기 인터넷에서 3만 원 주면 사 올 법한 싸구려 의상을 입고 왔다.

이미 망돌로 이미지 잡았으니 그걸로 한 번 더 밀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여기서 어그로 더 끌면 과해.’

이미 망돌로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다.

이 이상으로 가면 눈살 찌푸리게 되는 수준이다.

편집빨로 아무리 비벼도 이런 부분은 결국 티가 날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늘 방청에 들어올 일반인들 눈에도 띌 테고.

“뭐, 결국 지들 복이지. 에휴. 올라오라 그래.”

다만 무대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리허설은 해야 한다.

가뜩이나 온리원 때문에 딜레이가 생긴 상황.

이런 부분에서까지 시간이 늦춰지면 촬영에 차질 생긴다.

그렇게 세이렌이 무대 위로 올라왔는데,

“뭐야?”

방금 봤던 그 이미지와는 다른 의상이었다.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

“잠깐만.”

박수철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늘 직접 끼어드는 것 없이 누굴 시켜서 일하는 타입인데 이렇게 직접 끼어드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잠시만 스탑할게요.

그는 아예 메가폰을 잡고 말했다.

반주가 흘러나오려다 말고 멎는다.

그는 세이렌을 보며 물었다.

-이거 의상 바뀐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예요.

숨긴다고 숨겼지만 묘한 기대감이 묻어난 말투였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에게로 향했다.

이윽고,

“제가 직접 수선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그 대답이 나왔고.

“하, 참나.”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됐다.’

속으로는 쾌재를 외쳤다.

-끊어서 미안합니다. 다시 진행하세요.

그는 메가폰을 내려놓곤 뒤로 물러났다.

오늘도 예감이 나쁘진 않았다.

* * *

리허설이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격한 안무에 어려운 동선.

쉽지 않은 무대였다.

댄서분들과 처음으로 무대에서 합을 맞추는 거라 난이도는 더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셨어요!”

“너무 멋있었어요~”

우린 실수 한 번 없이 한 큐에 끝냈다.

댄서분들과 우린 하이파이브를 하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동안 의상에 대한 말도 많이 들었다.

“전에 받아봤던 시안이랑은 또 느낌이 다른데 즉석에서 수선한 거예요?”

“네. 직접 만들었습니다.”

“디자인 너무 좋은데. 이쪽에도 소질 있구나.”

“아뇨, 뭐.”

“우리 막내가 진짜 천재라니까요.”

“아 좀, 동준이 형…….”

“우리 태윤이 완전 천재지!”

“진짜 근데 이 의상은 놀랍긴 했어, 태윤아.”

“대체 이런 건 언제 배운 거야, 봉태윤.”

대부분 우리 의상을 좋게 봐준 모양이었다.

형들은 그럴 때마다 내 자랑을 하기 바빴다.

리허설도 녹화되고 있으니 아마 이 장면들은 방송에 나갈 것만 같다.

난 적당히 재수 없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본 무대 할 때 또 봐요.”

“네엡!”

“좀 이따가 봐요!”

우린 댄서분들과 복도에서 갈라진 뒤 대기실로 이동했다.

의상 문제가 해결되고 리허설도 문제없이 끝나설까.

“후후후.”

“오늘 진짜 느낌 좋다.”

오히려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한 번 위기를 극복하고 나니 긍정 에너지가 마구 솟는 모양이다.

사실 뭐,

‘나쁘지 않네.’

나도 기분이 꽤 괜찮았다.

“이제 조금 릴랙스 하고 있다가 무대 전에 우리끼리만 러프하게 한 번 맞춰보자!”

“네엡!”

우린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 본 촬영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려 했다.

‘아직 한 세 시간 남았네.’

본 촬영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했다.

밥도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마냥 넉넉한 시간은 아니긴 하지만 뭐.

일단 당장 급할 필요까진 없는 시간이긴 했다.

핸드폰이나 보며 1화 모니터링과 이것저것 상황들을 체크하려 했는데,

[돌발 미션 발발]

‘뭐……?’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 망할 미션이 떨어졌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은 찰나.

[온리원 멤버, 강현성을 찾아내시오.]

[성공 시, 미래시(未來視) 일부 획득.]

[실패 시, 온리원 프로그램 하차.]

더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또 떨어진다.

‘망할.’

이 시스템이란 건 뇌절을 끝도 없이 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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