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6화
실패 시 온리원의 프로그램 하차?
난 계산기를 두드렸다.
과연 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계산해 보기 위해서였다.
온리원이 하차하면,
‘개꿀 아니야?’
이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건 오히려 실패해야 하는 미션이 아닌가 싶다가.
‘온리원 없는 더쇼케2라.’
사실 더쇼케2가 이전 생에서 흥했던 이유는 온리원 때문이었다.
강현성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해 초반 화제성 쭉 끌어올리고 그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가며 잭팟을 터뜨린 케이스니까.
과연 우리가 사라진 온리원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쉽게 결론이 나온다.
우린 온리원만큼 팬덤이 크지도, 화력이 세지도 않다.
온리원은 버릴 수 없는 패다.
심지어 1화까지 나온 마당에 하차라는 건,
‘문제가 심각하단 거야.’
이 문제가 결코 작진 않단 거다.
어쩌면 프로그램 보이콧까지 이어질 만큼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션 내용도 ‘강현성을 찾아라’였다.
‘……실종이라도 된 거야?’
강현성이 실종된 건 그 자체로 큰 사건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움직일 수밖에 없겠네.’
남의 팀 일에 오지랖을 부릴 수밖에 없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그냥 가.”
“뭘 그런 걸 말하고 가냐.”
형들은 나한테 크게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오래 안 돌아올 거예요.”
“응?”
“뭔 말이야 이건?”
“배가 아주 많이 아파서, 그냥 모른 척 좀 해줘요.”
“아.”
“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었지만, 일단 알려줘서 고마워.”
난 형들에게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왔다.
이 의상 그대로 입고 나갔다간 관심이 쏠릴 거 같아 옷도 갈아입었다.
옷까지 갈아입고 화장실 가냐는 형들 말에 배가 아주 많이 아파서요, 라는 말로 대체했다.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건데 형들은 또 이해한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이해한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갔으니 오케이다.
1화 방영 후부터 늘 상시 휴대하고 다녔던 마스크를 썼다.
메이크업이 망가질 수 있으니 마스크를 가급적 안 쓰려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 얼굴 그대로 나가는 건 날 좀 봐달라며 광고하는 꼴이니까.
난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일단 온리원이 아직까지 스튜디오에 도착하지 않은 건 알고 있다.
아까 리허설 하고 내려갈 때 스태프들끼리 온리원 아직도 안 왔어? 따위의 말을 하는 걸 들었으니까.
당시엔 뭐 늦잠이라도 잤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나 보다.
스태프들을 피해 밖으로 나가며 핸드폰을 조작했다.
연예인 관련한 소식은 파랑새가 제일 빠르다.
강현성이 사라졌다면 분명 어떤 글들이 올라왔을 거다.
한번 서치를 해봐야지 하는 마음에 파랑새를 켠 순간,
‘서치할 필요도 없었네.’
파랑새 실시간 순위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강현성 탈진
난 그 키워드를 클릭했다.
이미 수백 단위로 리트윗된 글이 있었다.
-ㅅㅂ 강현성 탈진함
정직한 내용에 정직한 사진까지 첨부된 글이었다.
강현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는 장면이었다.
└저거 강현성임?
└ㅅㅂ 개에반데
└의상 무대 의상 아님?
└└ㅇㅇ 맞는 듯. 오늘 더쇼케2 2차 경연일임.
사람들은 수액 맞고 뻗은 강현성 사진을 퍼다 나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예인이 스케줄 중 힘들어서 수액 맞는 건 종종 있는 일이긴 하다.
다만 이렇게 사진으로까지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
강현성의 소속사인 TH엔터에 대한 욕들이 한가득이었으며.
그다음으론 더쇼케2가 무리한 일정을 잡은 게 아니냐는 욕들이 많았다.
뭐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겠다만,
‘탈진할 정도까진 아닐 텐데.’
아직 온리원의 스케줄은 탈진할 정도로 살인적이진 않을 거다.
저쪽도 더쇼케2에만 올인하고 있을 테니까.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는 거 같다.
난 사진 속 병원으로 예상되는 곳을 찾아봤다.
의상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선 샵까지 다녀온 후 병원에 간 거 같다.
그 말은 스튜디오 근처에 있는 병원일 확률이 높단 것.
지도상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 중 응급실까지 있는 병원은 한 곳뿐이었다.
그곳 응급실 인테리어와 사진 속 강현성이 누운 응급실의 인테리어가 겹친다.
도보로 10분 정도이니,
‘갔다 오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응급실에 강현성이 멀쩡히 누워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일 강현성이 응급실에 있었다면 시스템이 내게 ‘강현성을 찾아라’라는 미션도 주지 않았을 테니까.
아직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가보면 알겠지.’
여기 서 있는다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 * *
강현성이 있다는 병원에 도착했다.
횡단보도만 건너가면 병원 정문이었다만 그쪽으론 가지 않기로 했다.
정문 쪽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몇몇 돌아다녔기 때문이었다.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사생팬이지 않을까 싶었다.
굳이 정문으로 걸어가 사진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싶진 않았다.
보아하니 지하주차장을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나 보다.
조금 더 빙 돌아서 병원 내부로 진입했다.
응급실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조용한 공간이 펼쳐졌다.
드라마에서 보면 응급실은 매번 시끄럽던데.
“되게 평화롭네.”
라는 말을 한 순간.
“환자 들어옵니다!”
의사들이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쩌면 내가 플래그를 또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난 침상을 둘러보며 강현성이 있던 자리를 살폈다.
그러자 강현성은 보이지 않고 다른 멤버 한 사람만 들어올 뿐이었다.
“태윤 씨?”
온리원의 막내 박영호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난 멋쩍게 박영호를 보며 인사했다.
박영호는 이해가 안 간단 듯 날 쳐다봤다.
“그, 왜, 여기에…….”
아마 내가 여기에 온 게 이해가 안 가나 보다.
하긴 그렇겠지.
굳이 남의 팀 멤버가 응급실까지 찾아올 필요는 없으니까.
설명했다간 귀찮아질 게 뻔하다.
“강현성 선배님 어디 가셨어요?”
해서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아, 그, 화장실 간다 하고 어디 갔어요. 지금 좀 안 돌아오고 있어서 막 찾아보려던 참인데.”
“네. 알겠어요.”
“근데, 그 태윤 씨는, 왜 여기에.”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봐요.”
“……?”
난 얼굴에 물음표가 잔뜩 떠오른 박영호를 두고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병원 로비를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일단 강현성이 사라진 건 맞다.
아직 멤버들은 강현성이 사라진 걸 인지하진 못한 듯했고.
그냥 화장실에 조금 오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디 간 거려나.’
난 로비에 서서 고민했다.
아마 이 병원 내부에 있긴 할 거다.
밖에 사생들 돌아다니는데 어찌 함부로 돌아다니겠는가.
아마 화장실 간다 하고 생각 정리하려 어디 간 모양인데.
‘흐음.’
클래식하게 생각해 보자면 옥상이다.
옥상에 서서 생각 정리하는 건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니까.
한데 강현성이 정말 그러려나.
아마 사람들이 찾지 않는 다른 공간을 찾아갈 거 같았다.
일단 옥상이나 휴게실 같은 공간은 배제다.
난 이런 식으로 몇 가지 공간들을 후보에 두고 하나씩 소거해 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공간은…….
‘기도실.’
병원 내에 있다는 기도실이었다.
기도실과 강현성이라.
퍽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가보자.’
현시점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 공간이었다.
* * *
강현성은 기도실 구석에 앉아 가만히 호흡을 골랐다.
주황빛 할로겐 조명은 강현성 얼굴 위의 음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수액이 한 방울씩 떨어지며 그의 몸에 스며든다.
억지로 만들어낸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기도실엔 은은한 성가가 흘러나왔다.
병원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현재는 강현성 홀로 사용 중이었다.
비록 신앙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기도실과 같은 공간은 좋아하는 강현성이었다.
무엇이든 말해도 될 것만 같은 공간.
감정적으로 무너져도 허락될 것만 같은 공간.
들어서기만 하면 모든 게 회복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법적 공간.
물론 강현성은 이곳에 앉아 무엇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고, 모든 게 회복되리란 환상을 품지도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런 분위기를 내는 공간은 꽤 좋아했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 수액을 다 맞는 데까진 이제 30여 분 정도가 남았을 거다.
이 30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무대로 향해야 한다.
강현성은 무대란 그의 꿈이자 삶인 곳이라고 믿었다.
지난 몇 년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후우우우.”
삶과 꿈이 가끔은 벅찰 수도 있는 법이었다.
강현성은 숨을 골랐다.
지난 몇십 분간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성가가 일순 멎었다.
아마 음원 반복 재생 중에 잠깐의 딜레이가 생긴 모양이었다.
잠깐의 적막이 기도실에 흐르던 찰나
끼익.
문이 열리더니 낯선 인영이 강현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박영호거나 다른 온리원 멤버일 거라 생각했다.
용케 본인을 찾아냈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여기 계셨네요, 선배님.”
본인 팀 막내라고 하기엔 징그럽게 큰 놈이 눈앞에 서 있었다.
“뭐 하세요, 여기서.”
“……내가 할 말 아닌가요……?”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이었다.
* * *
예상이 맞았다.
강현성은 기도실에 있었다.
기도실 문을 여니 구석에 앉아 숨을 고르는 강현성이 있었다.
수액이 절반 넘게 들어간 덕인지 얼굴색은 괜찮아 보이는 상태였다.
다만 그 꼴이 너무도 궁색 맞아서 나도 모르게 이리 물었다.
“뭐 하세요, 여기서.”
이게 멘탈 터져서 기도실 들어간 사람에게 적절한 언행은 아닌 걸 알고는 있었다.
다만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말이었다.
“……내가 할 말 아닌가요……?”
그러자 강현성도 내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 맞네요.”
“뭡니까.”
“아.”
이게 시스템이 강현성 찾으래서 찾긴 했는데 막상 찾고 보니 내 행동이 너무 규격을 벗어난 행동인 게 체감됐다.
뭐라도 변명을 던져야 할 거 같아서,
“그, 걱정돼서요?”
“뭐요?”
이따위 말이나 해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걱정돼서라니.
몇 주 전에 계단에서 서로 박박 긁어대는 말을 주고받았는데.
퍽이나 이 말을 믿겠다.
강현성은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 말을 믿으라고요?”
그렇지.
당연히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난 아무 말 없이 강현성을 바라봤다.
강현성도 날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답 안 해요? 왜 왔어요?”
강현성의 이어진 질문에,
“……굳이 말할 필욘 없잖아요.”
그냥 배짱부리기로 했다.
강현성은 아까보다 더 어처구니없단 듯 날 쳐다봤다.
난 그럴수록 더 뻔뻔하게 나갔다.
여기서 말리면 분위기 진짜 이상해진다.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겨야 한다.
내가 여기 찾아온 이유를 말이다.
시스템이 당신 안 찾아가면 큰일 난다기에 찾아왔어요, 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강현성은 날 계속 노려보며 대답을 종용했다.
다만 난 강현성의 시선에 당당히 응수하면서도 입은 굳게 닫았다.
우리 사이의 그 지루한 눈싸움이 몇 분간 이어졌다.
……피가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