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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57화 (5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7화

우리 사이의 그 지루한 눈싸움이 몇 분간 이어졌다.

먼저 시선을 거둔 건 강현성이었다.

“……네. 뭐. 됐어요.”

내가 정말 말할 생각이 없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가요. 방해 말고.”

녀석은 나랑 더 대화할 마음이 딱히 없는 듯 보였다.

여기서 그냥 가면 안 될 거란 걸 눈치상 모를 순 없다.

그러고 보니,

‘왜 시스템은 알림이 안 울려?’

하란 대로 강현성 찾아냈는데 시스템은 미션 성공 알림을 울리지 않았다.

이 말은,

‘다른 게 있단 거야?’

그냥 찾아내는 게 끝이 아니란 거였다.

어쩌면 이 공간에서 끄집어내는 것까지가 미션 내용에 포함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아.’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척 봐도 강현성이 쉽게 여기서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사실 문을 열 때부터 느끼긴 했다.

지금 강현성은 명백한 번아웃 증상이었다.

힘없이 풀린 동공.

축 처진 몸.

야망 없어 보이는 표정.

어떻게 봐도 번아웃이다.

강현성 같은 놈에게도 번아웃이 올 수 있단 게 놀라웠다.

성공하기 전까진 번아웃 같은 거 안 올 줄 알았는데.

실제로 내가 살던 미래에서도 강현성은 성공에 독 오른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다.

팬싸 후기 같은 게 인터넷 등에 많이 떠돌아다녔는데 그걸 볼 때마다 감탄했으니까.

저런 놈이 성공하는 거구나 싶은 모습들이었다.

한데 아직 성공하기도 전에 퍼지다니.

이건 예상외였다.

힘들긴 하겠지.

매일 사람들이 1군에서 망돌 됐다고 밈처럼 놀리고.

본인도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다.

또 무난하게 1등 할 거라 생각했던 프로그램에 ‘세이렌’이라는 변수가 등장해 버리기까지 했다.

인생을 걸고 한 베팅이 점점 스러져 가는 걸 보는 건 꽤 큰 스트레스일 거다.

그런 와중에 연습도 하고 무대 준비도 해야 하니 번아웃이 올 만도 했다.

“……안 가요?”

강현성이 별 감흥 없는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난 기도실 구석에 앉아 있는 강현성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서 그런가, 무슨 영화 주인공 같다.

난 쪼그려 앉아 강현성과 시선을 맞췄다.

강현성의 눈도 내 위치가 아래로 내려옴에 따라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내 우리의 시선이 수평으로 맞았을 때.

“힘들어요?”

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누굴 위로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후진 없이 들어갔다.

보통 공감의 언어부터 건네 다음에 본질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난 그런 거 없이 바로 본질부터 찔렀다.

강현성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 떨림 없던 눈동자가 이토록 격하게 진동하다니.

이건 나도 좀 놀랍다.

강현성은 무어라 입을 떼려는 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가,

“……오지랖이 심하네요.”

이런 말을 내뱉었다.

위로와 격려로 강현성을 밖으로 끄집어낸단 계획은 폐기다.

애초에 먹힐 것 같지도 않았고.

내가 위로한다 해서 강현성이 들어줄 리가 없다.

오히려 기만한다 판단하겠지.

저번 주에 계단에서 서로 신경을 박박 긁어댔으니까.

그렇다면 써볼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데…….

“선배님 시간 많아요?”

도박수이긴 하다만, 차라리 도발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뭐 내가 강현성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그냥 어떻게든 여기서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당장 강현성을 안 끄집어내면 방송이 망하게 생겼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강현성은 코웃음을 치며 날 쳐다봤다.

“시비 거는 겁니까?”

“아뇨. 그냥 여기서 한가하게 앉아 있길래 시간 많은가 싶어서요.”

“이 수액 다 맞을 때까지만 있으려던 거예요.”

“밖에서 맞지 그걸 왜 여기서 맞아요. 침대가 더 푹신하고 좋겠구만.”

“…….”

강현성이 아무 말도 않고 시선을 돌렸다.

할 말 없으니까 괜히 저런 거다.

“지치셨어요?”

강현성이 다시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날 쳐다봤다.

저 표정은 마치 모욕을 당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이제야 조금 더 분명하게 보였다.

강현성의 번아웃은 일반적인 번아웃과는 달랐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쉬고만 싶은 번아웃이 아닌,

‘자기가 번아웃이 왔단 걸 인정하기 싫은가 보네.’

조금 더 복잡한 거다.

지쳤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여기 이리 숨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왜 인정하기 싫은 건지 싶었다가,

‘흐음.’

지난 생에서의 강현성의 행보를 보니 조금 이해가 갔다.

강현성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갔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말이다.

어쩌면 조금의 완벽주의마저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본인이 번아웃이 왔단 걸,

지쳐서 지금 이렇게 나가떨어져 버렸단 걸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거다.

성공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욕망이 부딪히는 중인 거다.

그리고 지금 내 입장에선,

‘성공욕을 조금 더 부추겨야겠어.’

강현성의 멘탈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만, 성공욕을 부추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온리원은 지금 퍼져 버리면 안 되는 그룹이다.

지친 건 안타까우나, 나도 우리 형들 목숨이 걸린 문제다.

“밖에 박영호 씨가 선배님 찾고 난리던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겠어요?”

일단은 멤버부터 들어간다.

강현성이 아직은 티가 잘 안 날지 모르지만 멤버를 아끼는 편에 속한다.

마음을 완전히 열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 이미 이때부터 본인 멤버들에게 정은 붙여둔 상태였을 거다.

강현성의 미간이 꿈틀댄다.

“선배님 없이 무대 하면 온리원이 제대로 된 기량을 펼칠 수 있을까요? 센터에 리더에 메댄이 빠졌는데?”

두 번째론 강현성의 책임감을 자극했다.

어찌 됐던 한 그룹의 리더다.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고.

책임감이 안 생길 수 없는 자리다.

마지막으론,

“선배님이 안 계시면 우리야 좀 더 편하죠. 수월하게 1등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강현성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강현성의 동공이 일순 고요해진다.

강현성이 날 노려봤다.

“선 넘지 마요. 봉태윤 씨.”

목소리가 싸해진 게 느껴진다.

여기서 쫄린다고 뒤로 빼면 지금껏 쌓아둔 스택이 무너져 내리는 거나 다름없다.

한 방 날려야 한다.

뭘로 해야 이 자식이 자리 털고 일어나서 연습하러 갈까 싶었는데,

‘아.’

강현성의 역린이 떠올랐다.

“아니면 더쇼케2에서도 2등으로 마무리하고 싶으신가 보네요.”

2등.

셀유돌에서 1등 참가자를 끝까지 뒤집지 못하고 2등으로 마무리했던 전적.

그걸 건드렸다.

실제로 강현성이 두고두고 아쉬워하던 일이었으니까.

솔직히 뱉는 입장에서도 조금 쫄렸다.

이건 정말 인성 터진 발언이니까.

하지만 지금 안 하면 미션 성공이 어려울 판이다.

인성이 터진 놈이 되든 말든 일단은 뱉어야 했다.

그 덕일까.

“그쪽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가죠.”

날 죽일 듯 노려보던 강현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액을 꽂아둔 이동식 폴대를 끌고는 기도실 문을 열어젖혔다.

아마 도발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나 보다.

“스튜디오에서 보죠.”

목소리가 쎄한 게 정말로 화가 잔뜩 난 모양이다.

아주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으니 다행이다.

강현성은 기도실을 떠나기 전 날 돌아보더니 한마디를 더했다.

“일단, 오늘 여기서 나 본 거 비밀로 해줘요. 그쪽도 이 이야기 밖으로 나간다고 좋을 거 없잖아요.”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들을 비밀로 하잔다.

“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성은 별다른 대꾸 없이 날 노려보더니 그대로 기도실 밖으로 나갔다.

강현성의 몸이 기도실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미션 성공]

그제야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인성 터진 싸패가 되자 그제야 미션이 완료됐다.

하여튼 지독한 시스템이다.

[강현성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온리원의 하차가 취소됩니다.]

[미래시(未來視) 일부 획득]

[잠깐 통증이 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통증이다.

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저번처럼 무방비하게 당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한들,

“헉!”

이건 이겨낼 수 없는 통증이었다.

오른쪽 눈이 미친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눈동자를 통째로 들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여긴 병원이다.

비명 소리가 밖으로 나가면 의사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바닥에 엎드려서 숨을 죽였다.

여기가 기도실이라 다행이다.

밖이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테니까.

이후,

[미래시(未來視) 일부 획득 성공]

알림이 귓가에 스쳐 감과 동시에,

“하아아…….”

통증이 끝이 났다.

난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이게 너무 아팠다가 갑자기 씻은 듯이 나아서 그런가.

“참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미래시니 뭐니 원한 적도 없다.

뭐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아플 거라면 딱히 받고 싶지도 않은데.

“에휴.”

일단 줬으니 써보긴 해야겠지.

내가 아는 그 미래시라면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일 거다.

이 정도면 사기적인 스킬이나 다름없다.

모름지기 미래를 볼 줄 아는 캐릭터가 세계관 최강인 건 국룰 같은 거니까.

한데,

‘음?’

이거 뭐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이 안 온다.

통찰은 타의적으로라도 몇 번 사용해 봐서 그 감각을 익히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이건 진짜 뭐냐.’

미래시는 아예 모르겠다.

뭐 말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

“미래시?”

입으로 외쳐도 봤다.

“…….”

남은 건 나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뿐이었다.

난 화끈해진 얼굴색을 겨우 정리하곤 기도실을 나왔다.

당장 쓰진 못해도 언젠간 쓸 수 있겠지 싶어서.

그러곤 형들이 있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스튜디오로 돌아가니 형들은 날 찾을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온리원의 박영호도 강현성을 찾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우리 형들은 태평해도 너무 태평했다.

“화장실 오래 있었네.”

“배 많이 아팠어?”

“우리가 뭘 잘못 먹은 게 있나.”

다들 내가 화장실에 있다가 온 거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다.

1시간 동안 화장실에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지사제 사뒀으니까 먹을 거면 먹어라.”

도승이 형은 그새 약국에 다녀온 건지 약 봉투를 건넸다.

이제 보니 내 걱정을 안 한 게 아니다.

내가 한 말을 굳게 믿고 진짜 배가 아픈 줄 알았나 보다.

“……네. 고마워요.”

난 도승이 형이 건네 지사제를 받은 후 가방에 넣었다.

언젠간 쓸 일이 있겠거니 싶어서.

“봉태윤! 배 괜찮은 거 맞지 이제?”

동준이 형이 나한테 앵기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난 동준이 형을 떼어내며 답했다.

“진짜 괜찮지? 안 괜찮으면 꼭 말해. 병원 가면 되니까.”

연훈이 형도 진심으로 걱정하며 그리 물었다.

방금 병원 다녀왔는데 또 병원이라.

“알겠어요.”

일단 알겠다고 답은 했다.

“자 그러면 일단 점심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

형들은 점심을 뭘 먹을지 결정하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뭐 선택지라 해봐야 샐러드 아니면 다이어트 도시락 정도일 텐데.

그래도 간단하게 뭘 먹긴 먹어야 할 거 같아 형들 곁으로 가서 같이 메뉴를 정하려 했는데,

지이잉.

‘음?’

눈앞에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이상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내 균열이 벌어지며 사방을 집어삼킬 듯 파동이 번져갔다.

시간이 일순 정지하고.

내 정신만 오롯이 깨어 있는 상황 속.

-오늘 무대의 1등은……,

갑자기 미래시가 시작되었다.

이딴 식으로 시작되는 게 미래시라니.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일단 집중했다.

미래시가 보여주는 미래의 장면은,

‘오늘 무대 결과 발표?’

2차 경연의 결과 발표식이다.

대체 누가 1등을 한 건가 싶은데,

-온리원입니다!

우리가 아닌 온리원이 1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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