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8화
미래시가 보여준 장면.
그건 우리가 아닌 온리원이 2차 경연의 1등이 되는 장면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값진 1등인 것 같습니다. 전부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더 열심히 무대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강현성이 1등 소감을 발표하며 어딘가 벅차오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게 방금 전까지 번아웃 와서 골골대던 녀석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니.
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온리원이 왜 1등인가.
그게 중요한 거다.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던지라 골이 살짝 아파왔다.
물론 온리원이 1등 할 수도 있다.
쟤네도 열심히 연습했을 테니까.
강현성이 번아웃 올 정도로 연습했단 건 이미 상식적인 연습량을 넘어섰다는 걸 의미할 테다.
그리고 리더가 탈진해서 병원 가서 수액 맞는 걸 눈으로 직접 봤으니 팀 내에 어떤 각성 효과도 있었을 거고.
하지만,
‘우리가 1등이 아니야?’
난 굳게 믿고 있었다. 우리가 1등일 거라고.
우리의 연습량도 결코 인간적인 수준이 아니었으며.
우리 팀의 사기도 결코 다른 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높다.
개개인의 능력치도 내가 보기엔 온리원보다 우리가 우수하다.
지난 1화 방영 이후 작지만 우리에게도 팬덤이라고 칭해도 될 만큼 팬이 생겼고, 무엇보다 시청자 여론이 호의적이어서 이젠 정말 온리원을 이기고 1등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이번에도 온리원이 1등을 차지한다는 건,
‘실력적으로 깔 수 없을 만큼 잘했다는 건가.’
누가 봐도 1등은 저거다, 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를 했단 거다.
왜 하필 미래시는 무대 하는 장면이 아닌 결과 발표하는 장면을 보여준 건지.
무대를 봐야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 가능할 텐데.
다만,
‘애초에 무대만 보여줬으면 그래서 결과가 뭔데, 라고 따졌겠네.’
어차피 둘 중 하나만 볼 수 있는 거였다면 차라리 결과 쪽을 보는 게 낫긴 할 거 같았다.
난 미래시가 보여주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온리원 멤버들 모두가 꽤 벅찬 얼굴이다.
저렇게 후련한 표정을 짓는단 건 다들 이번 무대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일 거다.
보면 볼수록 무대에 대한 궁금증만 커져간다.
그때,
지이잉.
공간을 가득 장악하고 있던 아지랑이들이 일순 사라지더니,
후웅!
미래시가 꺼졌다.
세상이 다시 원래의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밥 어떤 거 먹을래?”
“흐음.”
“어차피 또 샐러드 아니에요?”
“오늘은 도시락 먹자.”
“그래 봤자 닭가슴살 도시락일 거면서.”
난 메뉴를 정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형들을 바라봤다.
미래시를 보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런가.
묘하게 이질적이다.
“태윤아?”
연훈이 형이 날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거린다.
“아, 네.”
“뭐 그렇게 멍하니 서서 멀뚱멀뚱 허공만 바라보고 있어.”
“아, 그냥요. 긴장했나 봐요.”
“밥부터 고르자. 일단 먹고 해야지.”
“네.”
난 적당히 형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고른 후 소파에 가서 앉았다.
사실 지금 밥이 들어갈 때가 아니었다.
‘온리원이 1등이라.’
미래시에서 보고 온 그 미래를 어떻게 하는 게 먼저다.
2차 경연에서 온리원이 1등을 하면 이후 전개가 꽤 암담해진다.
대면식과 1차 경연에서 살짝 꺼림칙한 1등을 하며 겨우 체면유지만 하던 온리원이 2차에서 깨끗한 1등을 한단 건,
‘독식의 신호탄일 수도 있지.’
본격적으로 온리원의 판이 된단 걸 의미할 수도 있다.
기껏 주인공 롤 받으며 온리원과 라이벌 구도 잡아놓은 게 역풍이 되어 온리원 중심으로 새 판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방송국이 온리원 죽이고 세이렌 밀어줬는데, 온리원이 실력으로 다시 뒤집은 거라며 온리원 팬들이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지며 더 강하게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대로 3차랑 4차까지 다 뺏길지 몰라.’
우리가 1등 하는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온리원은 오늘 1등을 하고 3차 경연까지 1등을 하면 그대로 최종 1등을 확정 짓게 된다.
4차가 50퍼센트의 반영률을 갖춘 마지막 경연이라 한들 1, 2, 3차에서 전부 1등 하며 쌓아둔 승점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무 빨리 떴어.’
사실 원래 내 계획은 대면식과 1, 2차까진 내어주다가 3차부터 1위 하며 판을 뒤집는 거였다.
다만 지금 1화 방영의 여파가 꽤 강한 탓에 이 그림이 깨져 버렸다.
온리원이라는 강적에 도전하는 세이렌, 이라는 그림이 아닌.
세이렌이라는 다크호스에게 도전하는 온리원, 이라는 그림이 되어버린 거다.
여러모로 좋지 않다.
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승하지 않았을 시의 상황들을 머리에 그려봤다.
초동 10만 달성 못 하면 도승이 형이 죽는다.
그 지경까지 가게 내버려 둘 순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
손발이 묶인 상황이라 더 암담하다.
왜 하필 지금 미래시를 얻어 버려서.
조금만 더 빨리 얻지.
뭐라도 대책을 세워뒀을 텐데.
“도시락 왔다~”
형들은 배달 온 도시락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태윤! 밥 먹어!”
동준이 형이 내 위에 도시락과 젓가락을 올려준다.
난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기로 했다.
‘미래시가 꼭 맞을 거란 보장은 없어.’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기에 미래다.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단 거다.
다만,
‘하아.’
불확실한 확률에 우리의 거취를 맡기는 것만큼 찜찜하고 무력한 게 없다.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게 도시락을 다 먹었다.
형들과 가볍게 안무를 맞추고.
의상도 다시 손보며.
나름대로 무대까지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다만 머릿속은 여전히 온리원 1등에 대한 화두로만 가득했다.
“태윤아 어디 안 좋아?”
“아직까지 배 안 좋은 거야?”
“흐음. 지사제 지금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고 형들이 걱정을 할 정도였다.
“괜찮아요. 배는 정말 별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난 형들을 안심시킨 뒤 표정을 정리했다.
지금 너무 형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으니 벌써 걱정할 필욘 없다.
난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때마침,
-온리원 스탠바이하겠습니다!
본 촬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시작되려나 보다.”
“티브이 켜자!”
“온리원분들이 우리 <월야> 리메이크 한 무대지?”
“기대된다.”
형들은 그리 말하며 모니터링을 위한 티브이의 전원을 넣었다.
화면이 밝아지고.
그 위로 온리원이 등장했다.
* * *
더쇼케2의 메인 피디 박수철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온리원을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온리원은 오늘 지각을 했다.
강현성이 아팠다고는 하나 그 지각한 시간이 너무 늦었다.
심지어는 도착 후 제대로 된 리허설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카메라 동선을 맞추기 위한 약식의 리허설은 진행했다.
그조차 하지 않으면 방송 촬영이 불가하니까.
하지만 실제 촬영이라 생각하고 하는 본 리허설은 진행하지 못했다.
강현성의 컨디션 난조 때문이었다.
본 무대 전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하겠다며 리허설을 거부하다니.
‘하아. 이래서 애매하게 뜬 애들이 더 문제야.’
원래 이 바닥이 갑질이 만연한 곳이긴 하다.
제작진이 출연자에게.
출연자가 제작진에게.
이 돌고 도는 갑질 생태계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
뭐 어쩌겠는가.
자기네들이 알아서 잘 준비했다니까 믿는 수밖에 없다.
현장엔 150명의 방청객이 가득 차 있었다.
무대 위로 더쇼케2의 MC들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또 무대를 찾아와 주신 방청객 여러분. 저는 더쇼케2의 MC를 맡은 개그맨 김영진.
-가수 나현입니다.
-오늘도 많은 분이 무대를 찾아주셨는데요. 아마 대기실에 있는 다섯 그룹 모두 지금 흥분에 가득 차서 무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MC들은 큐시트에 적힌 대로 멘트들을 읊으며 분량을 채워 나갔다.
본인이 피디이긴 하지만 저 모든 멘트가 방송에 쓰이진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뭘 쓸진 모르니 일단 다 따두긴 하는 거였다.
그렇게 의미 없는 멘트들이 조금 더 이어지고.
-순위 산정 방식 설명해 주시죠, 영진 님.
-네, 2차 경연 순위 방식은 기존 1차 경연과 똑같이 A, B, C라는 등급을 각 그룹에게 매기면 되는 방식으로…….
순위 산정 방식 설명.
-1등 그룹에게는 초호화 데뷔 앨범 제작 및…….
1등 혜택 설명.
-2차 경연의 컨셉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Your Showcase, 바로 너의 노래라는 컨셉입니다. 다섯 팀은 각각 서로의 무대를 하나씩…….
마지막으로 이번 2차 경연 무대에 대한 설명까지 이어졌다.
딱히 마가 뜨는 구간 없이 부드럽게 멘트들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더 이상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할 순 없겠죠?
-네. 바로 무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무대는요, 바로!
관객들이 무대에 대한 관심을 가장 크게 드러내는 순간,
-세이렌의 <월야>를 리메이크하여 로 재탄생시킨 팀이죠.
-온리원의 무대입니다!
첫 번째 무대가 온리원임을 밝혔다.
“꺄아아아아아악!”
“허어억!”
“대박!”
그러자 스튜디오 곳곳에서 격한 탄성이 나왔다.
오프닝이 온리원일 줄은 다들 생각지도 못한 듯싶었다.
더군다나 이 방청객 중 절대 다수가 온리원 팬일 테니 우리 애들을 빨리 볼 수 있단 생각에 더 기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내 무대가 암전되고.
본격적인 무대 시작 전의 그 긴장감이 스튜디오를 덮었다.
‘어떠려나.’
대충 편곡 방향이나 무대 구성을 듣긴 했으나 본 무대는 박수철도 처음 보는 거다.
피디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이 무대가 궁금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무대를 노려봤다.
무대가 밝아지기 전.
여전히 암전 상태일 때.
딴-
반주가 먼저 들려왔는데,
‘샘플링?’
세이렌의 <월야>와는 전혀 다른 구성이었다.
클래식을 샘플링해 온 인트로였다.
‘쇼팽의 녹턴인가.’
대중들에게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이었다.
그 멜로디를 조금 더 느리고 우울하게 편곡해서 인트로에 넣은 것 같다.
느릿한 반주에 맞춰 천천히 조명이 켜진다.
푸르고 차가운 조명이 무대 위를 부드럽게 덮은 순간.
무대 세트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저택 베란다네.’
2층짜리 저택의 베란다를 형상화한 듯한 세트였다.
실제로 2층이라는 층고를 보여주기 위해 베란다 세트가 꽤 위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느릿한 클래식 샘플링 인트로에 맞춰 강현성이 베란다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른하고 어딘가 교태가 섞인 발걸음이었다.
프릴 달린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중세풍의 귀족적 의상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얀 피부와 금발에 더 없이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착장이었기 때문이다.
강현성은 손가락으로 베란다를 슬그머니 쓸었다.
그걸 기점으로,
‘반주가 바뀌었어?’
클래식 샘플링이 끝나고.
월야의 반주가 시작되었다.
다른 건,
딴- 따안- 딴.
기존 월야의 반주는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배치한 것에 반해, 이건 서양 관현악기에 피아노를 더한 반주였다.
월야의 멜로디만 가져올 뿐 전체적인 소스가 전부 다른 음악이었다.
-깊고 어둔 밤. 잠 못 이룬 날.
-부드럽게 휘어감아.
베란다에 선 강현성은 클래식풍으로 편곡된 월야의 도입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다만 진짜 파격은 그다음부터 시작되었다.
-망망한 창공에. 푸른 달빛은.
-또 날 거리로 내몰고.
강현성의 청아한 미성이 무대로 잔잔히 퍼져 나갈 때.
쾅!
난데없는 파열음과 함께,
“어어어어!”
강현성은 베란다 밖으로 스르륵 추락했다.
탁.
그걸 기점으로 조명이 밝아지더니,
멤버 넷이 강현성이 쓰러진 자리 위로 하나둘 피어올랐다.
아니, 원래 그 자리에 누워 있던 멤버들이 강현성의 추락을 기점으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 거였다.
다만 그 동작이 마치 꽃이 피어나듯 유려하게 표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다, 라는 감상까지 남게 했다.
-다신 돌아올 수 없을 그날의 온기
-더 멀어질 수 없던 우리 둘 사이
온리원 멤버들의 안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각 멤버들은 둘씩 페어를 이뤄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를 쓰다듬는 안무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베란다에서 추락한 강현성이라는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대로 무대로 깊이 빨려 들어갔다.
그걸 보는 박수철조차,
‘미친놈들.’
경악하며 무대를 노려보면서도 마음속으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세이렌의 월야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말한 거라면.
온리원의 월야. 아니 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