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59화
난 온리원의 무대를 숨도 쉬지 않고 지켜봤다.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형들 또한 집중해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지금 대기실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유는 하나다.
‘미친…….’
온리원의 무대 완성도가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였다.
우리가 쓴 <월야>를 로 바꾼 곡이었는데 멜로디 빼곤 전부가 파격이었다.
도입부의 관현악 악기들과 피아노를 더한 조합은 소름이 돋는 편곡이었다.
통찰을 통해 보고 왔던 수많은 편곡 가능성 중 저런 식의 가능성은 없었는데.
‘통찰이 만능은 아니구나.’
뛰어난 누군가의 재능은 통찰을 통해 보고 온 가능성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엄청 잘하셔.”
“……그러니까요.”
“와……. 안무 진짜 예쁘다.”
연훈이 형과 도승이 형, 운이 형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이 정도 반응이면 리액션 컷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진심 어린 표정이었다.
늘 매사에 가벼운 느낌인 동준이 형조차,
“저걸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온리원의 무대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중이었다.
온리원이 만든 는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곡 해석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선비가 밤을 걸으며 옛 연인을 그리워한다, 라는 서정적인 배경을.
‘나르시시즘으로 받을 줄은 예상 못 했어.’
저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비극에 빠진 인물로 해석을 했다.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얼굴을 매만지는 동작들이 춤에 자주 들어갔다.
특히 압권인 부분은 강현성과 박영호가 한 페어 안무였다.
브릿지로 가기 전 하이라이트 파트였는데,
-이 밤을 겨우 또 견뎌내는
-어여쁜 날 위해.
센터에 선 박영호의 뒤로 강현성이 스르륵 등장하더니 박영호의 눈과 입을 막고 목을 꺾어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 타이밍에 맞춰 박영호는 휙 하고 쓰러지는 척 뒤로 빠졌다.
이후 강현성이 센터에 서서 관객들을 노려봤다.
한데 그 눈빛이,
‘……진짜 뭐 하는 놈이야 저건.’
정말 나르시시즘에 깊이 빠진 것 같은 눈빛이었다.
타인을 벌레같이 생각할 것 같은 오만한 눈동자였다.
전에 내가 거울 보고 지었던 그 표정과 어딘가 유사한 듯하면서도 본질적으론 달랐다.
난 보는 이로 하여금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게 하는 표정이었고.
강현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납득을 시키는 표정이었다.
나르시시즘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다.
‘어쩌면 자기한테 조금 빠져 사는 놈일지도 몰라.’
난 강현성이 정말로 나르시시즘에 빠진 놈이 아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곡은 빠르게 진행되어 아웃트로까지 이어졌다.
-달아, 달아
-푸른 달아
-끝내 못 전한 이 내 마음
-이 밤에 묻고 난 이제 가련다
우리가 부를 땐 애처로운 선비의 넋두리 같았는데.
온리원이 부를 땐 마치 저주에 빠진 사람이 내뱉는 체념처럼 들렸다.
온리원 멤버 다섯은 아웃트로를 부르며 무대에 동그랗게 섰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검은색 띠를 꺼내더니 눈을 가리고 반주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물이 이 저주를 끝내려 차라리 본인의 눈을 가리는 선택을 한 거였다.
그러자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어졌단 듯 저토록 허무하게 쓰러지는 것이다.
직관적이되 어딘가 몽환적으로 표현된 아웃트로에 관객들을 앓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
-현성아!
-와아아아아아!
모니터로도 느껴지는 엄청난 박력에 우린 단체로 할 말을 잃었다.
“……하.”
“……대박이다.”
“와…….”
형들은 짧은 감탄들을 터뜨리며 그제야 상체를 뒤로 뺐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본인들도 모르게 모니터 앞으로 상체를 쭉 뺀 상태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감탄했다.
솔직히,
‘1등이 될 만하네.’
이런 감상이 절로 드는 무대였다.
세트 활용도 좋았고.
안무 동선도 좋았으며.
곡 해석도 남달랐고.
각 멤버들의 컨셉 소화력도 이번엔 모두가 고르게 좋았다.
강현성 혼자 멱살 잡고 캐리한 무대가 아니라,
‘모두가 1인분 이상씩을 했네.’
다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냈다.
아주 잠깐이나마 내가 회귀 전 보고 왔던 온리원 커리어 하이 시절을 보는 느낌도 났다.
다만 이런 감상을 한가하게 정리할 때가 아니었다.
“……우리 어쩌죠?”
우리 무대를 걱정해야 한다.
사실 우리 무대도 저 무대에 비해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 무대와 우리 무대 사이엔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 완성도는 유사할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무대라 무의식중으로 올려치기를 한 거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주 밀리는 모양새는 아니다.
다만 이게 기선제압을 너무 세게 당하다 보니 절로 겁을 먹게 된 거 같다.
특히,
‘안 되는데.’
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하도 주먹을 세게 쥐어서 그런가.
손바닥이 하얗다.
난 피가 통하도록 손목을 주물주물하며 말했다.
“뭐라도, 아니, 연습이라도 조금 더 할까요,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엔 너무 불안하다.
난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1등을 못 하게 된다면.
그래서 계약 이관도 못 하고, WD엔터에서 결국 데뷔를 하게 된다면.
‘초동 10만 절대 안 나와.’
WD엔터가 우리 그룹에 대한 홍보 전략을 짜와서 마케팅을 해줄 놈들은 절대 아니기에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든 초동 10만이 나올 리가 없었다.
웬만큼 규모 있는 곳에서 데뷔해도 초동 10만을 찍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게 더쇼케2에서 우승하고 계약 이관된 뒤 대기업 화력 등에 업고 앨범을 내는 거다.
한데 그게 불가능해진다면,
‘도승이 형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 또 벌어진다.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 우리 동작 한 번씩 더 맞춰보자.”
“어려운 부분들을 한 번씩 다시 점검해 보면 좋을 거 같아.”
“해봅시다.”
형들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중요 부분들을 점검했다.
다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마음은 복잡해졌다.
연습한 대로만 한다면 우리 무대도 온리원 무대 못지않을 텐데.
지금 이 상태라면 그 ‘연습한 대로’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 차리자.’
난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 * *
박수철은 온리원의 무대가 끝난 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세트 치우고 다음 무대 준비하느라 현장은 잠시 소강상태였다.
그렇기에 관객들 반응이 훨씬 투명하게 보였다.
“진짜 개미친 놈 아니야?”
“와, 강현성 진짜…….”
“아까 박영호랑 같이 나와서 페어 할 때…….”
관객들은 온리원 무대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대부분이 긍정적인 여론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긍정적 수준이 아니다.
현장이 미쳐 돌아가는 수준이었다.
오늘 온리원의 무대는 박수철이 보기에도 역대급 무대라 할 만한 정도였다.
그간 온리원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사실 기대 이하였다.
물론 강현성이 있는 그룹이니 영 엉망인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보다 조금 더 구색이 갖춰져 있다뿐이지.
압도적으로 잘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세이렌에게서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더 받았다.
한데 오늘만큼은,
‘강현성 이름값 했네.’
이전에 보여줬던 그 기대 이하의 무대들을 전부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게 오프닝이었단 건데.’
이 엄청난 무대가 엔딩이 아니라 오프닝이었단 거다.
이 뒤로 무대가 4개나 더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무대들 중 지금 온리원의 무대를 능가하는 무대는,
‘있나?’
세이렌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뿐, 사실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즉 앞으로 무대가 더 이어지는 동안 관객들은 역체감을 더 강하게 느낄 거란 뜻이다.
온리원 무대 보다가 지루한 무대들 보면 그냥 봐도 지루한 게 2배는 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현장 텐션이란 게 편집으로 어떻게 만질 수가 없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든 방송에선 티가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피디로서는 어쨌든 모든 무대에 고른 텐션이 받쳐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편집하기도 편하고 방송이 잘 되어가고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니까.
‘일 났네.’
다만 지금 반응을 보자면 이어지는 무대 보면서 하품이나 안 하길 바라야 할 정도다.
‘뭐가 됐든 다들 시선 좀 끌어라.’
박수철은 그리 생각하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사실 텐션이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이 반, 그냥 이대로 냉랭한 느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반이었다.
냉랭한 반응이 쭉 이어진다면,
‘편집을 아예 그 방향으로 잡아버려도 되겠네.’
이번 화는 온리원한테 스포트라이트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밀어줘도 될 거 같으니까.
그는 일단 어떻게 될지 지켜보기로 하며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 * *
난 모니터를 바라보며 탄식이 나오려는 걸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온리원 이후 다른 팀들의 무대가 이어졌는데,
‘어쩌냐.’
온리원이 오프닝이어서 그런가.
그 뒤 무대들이 전부 밋밋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이럴 거라 예상은 했다.
온리원도 본인들이 오프닝으로 들어간 이유가 이걸 노려서였으니까.
루미닌은 과하게 긴장을 한 건지 음이탈을 내기까지 했다.
원바이원은 안무를 놓쳐서 군무가 깨졌고.
블레슈는 큰 실수는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경직된 느낌이 강해 보는 데 불편함이 느껴졌다.
온리원의 계획은 잘 먹혀들어간 셈이었다.
결국 뒤에 무대들 다 잡어먹는 데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세이렌 스탠바이하겠습니다!
“후우우.”
이제 우리 차례란 거였다.
“할 수 있다, 세이렌!”
“할 수 있다!”
형들은 구호를 외치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다들 내가 수선해 준 의상을 입은 채 동작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두려울 건 없다.
의상도 해결했고.
동작들도 다 외웠고.
댄서들과 합도 좋으며.
세트도 멋있다.
한데,
‘갑갑하네.’
숨이 막힌다.
난 가슴을 두드렸다.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이럴수록 무대에 도움이 안 된다.
기선제압 당할 필요 없다.
머리로는 우리 무대가 더 좋을 수 있단 걸 아는데,
‘왜 이러냐, 짜증 나게 진짜.’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마음이란 것도 결국 몸의 영역인가보다.
온리원에게 겁을 먹었느냐.
사실 이건 아닌 거 같다.
내가 겁을 먹은 건 온리원이 아니다.
“봉태윤. 괜찮아? 너 지금 안색이 왜 이래.”
도승이 형이 사라지는 것에 겁을 먹은 거다.
때마침 도승이 형이 다가와 내 상태를 보며 물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난 멋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걸 형들한테 말할 순 없다.
애초에 믿지도 않을 거고.
난 사실 회귀자고 이상한 시스템이 자꾸 명령을 내리며 미션 실패하면 도승이 형이 죽는다고 겁을 준다.
라는 말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난 마음을 정리하고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와, 얘들아!”
연훈이 형이 먼저 나가서 우릴 부른다.
다들 대기실 밖으로 나가는 상황 속.
“봉태윤.”
도승이 형이 내 손목을 잡았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어?”
형이 도끼눈을 뜨고 묻는다.
인상 사나운 사람이 대놓고 사나운 표정을 지으니 제법 박력 있다.
다만,
“괜찮아요, 형.”
내가 뱉을 말은 늘 같을 거다.
한데,
“뭐가 괜찮아.”
도승이 형이 오늘따라 조금 강하게 나온다.
“너 아까부터 계속 가슴 두드리고 다리 떨고 손목 주무르고 있잖아.”
난 도승이 형을 빤히 바라봤다.
“어디 아파?”
이게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몰려 있는 상황이라 그런가.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된다.
지금 무언가를 말한다 해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말하면 안 될 건데,
“……네. 좀 아파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