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0화
“아파?”
내 아프다는 말에 도승이 형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나름 막내 대접을 받긴 받는 거 같아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과는 별개로,
‘어쩌냐.’
그냥 투정 한번 부려보려 했다가 일이 좀 커질 거 같은 불안함도 들었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좀 걱정이 많이 돼서 정신적으로 피곤하단 말이에요.”
해서 빠르게 말을 붙였다.
방금 도승이 형 반응대로라면 당장 날 들쳐 엎고 병원이라도 갈 사람 같았으니까.
“진짜 안 아픈 거 맞아?”
도승이 형이 한 발 더 다가오며 묻는다.
이거 안 아파도 아프다고 말해야 할 거 같다.
“무슨 일 있어?”
“뭐 하는 거야?”
때마침 대기실 밖으로 나갔던 형들이 돌아왔다.
대충 얼버무리고 나가려 했는데,
“태윤이가 아픈 거 같은데. 어쩌죠?”
도승이 형이 말을 인터셉트 한다.
일 났다.
형들한테 아프단 소리를 했으니,
“뭐?”
“태윤이 아파?”
“야! 진작 말을 했어야지! 하아. 어디 아파? 괜찮아?”
연훈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까지 다들 놀라서 이리 묻는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정신적으로 조금 압박이 돼서 그런 거예요.”
난 아까 도승이 형에게 했던 말을 다시 반복했다.
그럼에도 형들은 정말 몸 아픈 데가 없는지를 자꾸 살폈다.
연훈이 형은 자꾸 몸 곳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눌렀을 때 아파? 괜찮아? 라는 물음을 계속 던졌으며.
운이 형은 체기가 있는지,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인지 꾸르릉 하고 속이 꼬이는 느낌인지를 물었다.
동준이 형은 한발 빠르게 근처 병원을 서치하며 최단 거리를 찾고 있었다.
내가 끝까지 아프단 걸 부정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됐다.
“세이렌! 스탠바이할게요! 지금 시간 없습니다!”
타이밍 맞춰 나서준 제작진 덕에 형들은 더 이상 문진을 하진 않았다.
“진짜 무대 걱정돼서 그런 거지? 아픈 건 참지 마.”
“네.”
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형들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이후 무대 뒤 백스테이지로 이동해 우리 무대 세트가 세팅되기를 기다렸다.
“후우우.”
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긴장할 거 없다.
연습한 대로 하면 된다.
그때,
“걱정 많이 되냐?”
도승이 형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괜히 대답했다간 또 아까 같은 난리가 날 것 같다.
다만 도승이 형은 내 무응답을 긍정으로 받았나 보다.
대신 아까처럼 난리가 나는 건 내가 바라지 않는 걸 눈치챈 건지.
“걱정하지 마. 우리 무대 잘 준비했잖아. 이길 수 있어.”
귀에다 대고 좋은 말을 해줬다.
이 사람이 이런 좋은 말을 해줄 성격이 아닌데.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도승이 형이 속이 다 뒤집어진 듯 얼굴을 구긴 채 말하고 있었다.
좋은 말 꺼내는 게 어지간히도 심사가 뒤틀리나 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러곤 나도 혹시 좋은 말 할 때 남들 눈에 저렇게 보이나 싶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이런 게 거울 치료인 건가.
암튼.
도승이 형이 건네주는 좋은 말들이 긴장감을 털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건 사실 아니었다.
그냥 듣기 좋은 말이군, 하는 식의 감상일 뿐이었지.
도승이 형도 본인의 말에 큰 설득력은 없단 걸 아는 눈치다.
참.
누구 위로하는 법 모르는 두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위로해 주려는 쪽도, 받으려는 쪽도 삐걱댄다.
그때 도승이 형이 오래 고민한 듯 침묵을 깨고 다시 귓속말을 이어갔다.
“너를 못 믿겠으면, 너 말고 그냥 우리를 믿어.”
이게 뭔 소린가 싶었지만 오래 고민하고 한 말인 거 같아 좀 더 들어봤다.
“우리 다 무대 열심히 준비했고, 댄서분들도 열심히 도와주시고, 세트도 멋있게 나왔잖아.”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나 외의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져보란 말이었다.
“그러니까, 무대 올라가선 너를 믿지 말고 우릴 믿고 조금이라도 즐겨봐.”
도승이 형은 거기까지 말하곤 내 귀에서 멀어졌다.
흐음.
도승이 형이 이렇게까지 감성적인 말을 해준단 건 나름 고민을 많이 했단 뜻이다,
지금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다.
티를 안 내려고는 하지만 스스로 쪽팔려 하고 있단 게 눈에 보인다.
난 형이 해준 말을 조금 더 곱씹어 봤다.
‘무대를 즐겨보라니.’
사실 무대를 즐긴 적은 한 번도 없다.
회귀 전에도 그랬다.
정해진 일을 해냈던 것에 대한 뿌듯함은 있었지만,
‘무대를 즐긴단 게 뭐야.’
무대 중에 무언가를 느낀 적은 없었다.
애초에 스스로도 내가 아이돌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 아이돌 안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한 거였고.
난 고민에 잠겼다.
도승이 형을 살리기 위해 데뷔를 하려고는 하지만 내가 정말 아이돌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그때,
“이제 슬슬 끝나간다.”
연훈이 형이 세팅 중인 무대를 보며 그리 말했다.
형 말대로 세트가 이제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난 심호흡을 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했다.
그러곤,
‘즐긴다.’
도승이 형이 해줬던 그 말에 조금 더 집중해 볼 생각이었다.
* * *
더쇼케2의 2차 경연이 이뤄지는 스튜디오.
그곳에 앉아 있는 한 방청객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하품을 하고 말았다.
첫 번째 무대였던 온리원의 무대 이후로 이렇다 할 재미가 없는 무대만 이어졌다.
‘이제 세이렌 애들 나오겠지?’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대하는 것 하나.
바로 세이렌이었다.
사실 오늘 방청 자체도 세이렌을 보기 위해 온 거였다.
몇 달 전 그녀가 좋아하던 최애가 열애설이 터지며 가라앉았다.
그냥 열애설이면 흐린눈 하고 정신 승리하며 어떻게든 버텨보겠는데 도가 지나쳤다.
열애설의 주인공인 일반인 여성이 SNS에 온갖 자랑질을 해대며 팬 기만을 숨 쉬듯 시전했고.
거기에 더해 자신의 최애였던 남돌은 그런 기만질에 호응을 해주기까지 했다.
후반에 가선 거의 빠혐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행보도 이어졌다.
그런 기만질과 혐오에 지친 그녀는 결국 최애를 놓아주는 결단을 내렸다.
뭐 결단을 내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본인이 온갖 병크 터뜨리며 정 털리게 해준 덕에 탈덕은 손쉽게 이뤄졌다.
하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헛헛한 마음에 돌판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망령 생활 좀 했다.
그러던 차에 눈에 밟힌 파랑새 게시글이 있었는데,
-봉떤남자랑 결혼하고 싶어요
└영화감독이요?
└미쳤어요?
자신의 SNS 친구가 공유한 유머러스한 글이었다.
원래 이 SNS 분위기 자체가 유쾌하고 가벼운 느낌이기에 이것도 그런 결의 흔한 게시물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그 게시글이 웃겨서 클릭한 게 잘못되었다.
클릭은 바로 다음 클릭으로 이어졌다.
봉떤남자가 봉태윤이란 걸 알게 됐으며.
몇 개 없는 세이렌 영상들을 전부 돌려보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봉떤남자 극악무도함 진짜 결혼하고 싶게 만들어놓고 아직 데뷔도 안 함;;
이런 게시글을 직접 쓰는 단계에까지 오고 말았다.
당연히 더쇼케2 2차 경연 방청이 올라왔을 때 신청을 했다.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으니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방청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그 연락 받았을 땐 어찌나 흥분했는지 심장 박동수가 너무 급격히 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흥분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언제 끝나.’
지금은 동태눈이 되어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 세이렌 애들이 나오니 텐션을 끌어올려야 하는 걸 아는데도 힘이 안 난다.
앞선 3개의 무대가 흥미가 전혀 안 생기는 무대들이라 기가 다 빨려 버렸다.
중간중간 뭐 텐션 올려줄 구간이라도 조금 있어야 힘이 날 텐데.
지금은 방청에 당첨된 케이팝 덕후가 아닌, 돈 받고 일하러 온 방청 알바생이 된 것 같다.
언제 세이렌 등장해, 라는 생각을 백번 반복하며 무대를 노려본 순간,
“와 저거 뭐야.”
“세트 살벌하네.”
거대한 조형물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도 세트를 보며 죽어가던 기대감을 다시 끌어올렸다.
‘제단인가?’
무슨 고대신에게 제사 지낼 때 쓸 법한 커다란 제단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다만 묘하게 오버 테크놀로지스러운 요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제단을 타고 푸른색 네온이 흐른다든가.
제단의 재질이 돌이 아닌 금속이라든가.
하는 부분들에서 말이다.
대체 어떤 무대를 준비한 거고, 어떤 컨셉을 정한 건지.
슬금슬금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번에도 태윤이가 아이디어 냈으려나.’
더쇼케2 1화 내용을 보면 봉태윤이 팀 내 아이디어 뱅크인 느낌이던데.
이번 무대도 봉태윤 머릿속에서 나온 건지 기대가 됐다.
역시 우리 막내 천재야, 라는 식의 주접이 떠오르려 하는 찰나,
“근데 봉태윤이 무대 못한다면서요?”
“후기글 보면 얘가 피지컬은 괜찮은데 묘하게 끼 없단 말은 있던 거 같아요.”
앞쪽에서 이런 대화가 들렸다.
반박을 하고 싶었으나,
‘그런 거 같긴 해.’
어느 정도 객관성을 유지한 채 보자면, 그렇긴 하다.
세이렌의 대면식 곡인 에서도 봉태윤은 딱히 눈에 띄진 않았다.
저 얼굴과 저 피지컬로 무대에서 저렇게까지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1차 경연에선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끼 없음, 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기는 역부족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뭐 끼 좀 없으면 어떤가.
저렇게 잘생겼고 저렇게 피지컬 좋은 막내가 또 어딨다고,
심지어 성격도 어딘가 차분한 게 더 호감이고, 아이디어도 좋아서 팀에 도움까지 된다.
이 정도 요소들이면 그녀 입장에선 끼 없다는 단점쯤은 덮고도 남는다.
때마침,
“어?”
“시작하나 보다.”
MC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두 MC는 이전 무대에 대한 소회를 밝히곤 다음 무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번 무대는 온리원의 대면식 무대를 가져온 팀의 무대죠.
-세이렌의 2차 경연 무대! 지금 시작합니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온리원 무대가 엄청 좋았단 건 그녀도 인정한다.
하지만 세이렌도 마냥 밀리진 않을 것 같다.
물론 물증은 없는 그녀만의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다.
그 순간.
탁.
조명이 켜지더니,
“와.”
이운이 누군가에게 붙잡힌 채 제단 위에 서 있었다.
아직 아무런 반주도 들려오지 않는 상태였다.
무대 초반에 반주 없이 액팅으로만 분위기를 잡는 건 요즘 흔히 쓰는 연출법이긴 하다.
한데 의상이,
‘와 퀄리티 미쳤는데?’
사이버펑키한 느낌에 동양풍을 담았다.
크롭한 도포에 테크웨어 느낌의 바지.
이게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 조합인가 싶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이 잘 녹아들어 있었다.
언밸런스한 두 요소를 조합하는 데 성공하면 자연스레 고급스럽다는 이미지가 생긴다.
그녀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바로 돈 냄새를 말이다.
사이보그로 분장한 댄서 둘이 이운의 양어깨를 붙잡은 채 무릎을 꿇렸다.
이운은 저항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제단 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니 저건 제단이 아니었다.
아니, 제단은 제단이지.
하지만 고대 국가에서 제단의 역할이 생명을 앗아가는 처형대로써의 역할도 한단 걸 그녀는 떠올렸다.
즉 이운은 지금 어떤 범죄를 저질러서 저기에 잡혀 온 거다.
그 순간,
치지지지직.
-에에에에-
스크래치 음들이 쏟아져 나오며 스튜디오를 매웠다.
뒤따라 나온 사이렌 소리에 다들 몸을 흠칫 떨었다.
동시에,
탁.
억류되어 있던 이운이 어깨를 돌려 경찰 둘을 제압하더니 제단에서 벗어난다.
그 연결이 매끄러워 마치 춤처럼 보일 정도의 액션이었다.
이후 사이렌과 스크래치 사운드가 멎고.
무대가 잠시 적막해졌을 때,
“어어어?”
갑자기 커다란 제단이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방송 사고인가 싶은 찰나,
제단이 쓰러지는 그 타이밍에 맞춰.
-콰아앙!
녹음된 듯한 폭발음이 들려오며.
-Guess WHO!
무너져가는 제단을 뒤로한 채 세이렌이 천천히 무대 위로 등장했다.
이후 묵직하고 쫀득한 질감의 베이스 반주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라이트의 ?’
이 곡이 한 세대 전에 돌판을 휩쓸었던 명곡임을.
온리원의 대면식 무대를 가져왔다기에 어떤 곡인가 싶었는데.
‘미쳤어, 진짜!’
생각보다 더 좋은 곡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인 건,
‘태윤이가 센터야?’
지금 도입부 센터가 봉태윤이었다.
한데,
‘뭐?’
무대가 본격적으로 이어지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게 과연 그 끼 없다던 봉태윤이 맞나 싶었다.
오늘 무대는, 분명 무언가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