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1화
방청객은 눈을 의심했다.
그러곤 입을 틀어막고 봉태윤을 바라봤다.
저게 끼 없다고 소문 난 봉태윤이 맞나 싶었다.
제단이 무너지고 그걸 배경으로 세이렌 멤버 다섯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다들 천천히 걸어 나왔는데 그 센터가 봉태윤이다.
눈빛이며 고개 각도며 걷는 모양새까지.
뭔갈 준비해도 단단히 준비한 사람 같았다.
단순히 걷는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안무처럼 느껴진다.
특히 시선이 가는 곳은 무대 위의 봉태윤의 눈빛이었다.
배경이 제단이고 휴머노이드들이 등장한다는 데에서부터 SF 같은 게 세계관인 건 알았다.
한데 봉태윤의 눈을 보자마자 이건 그냥 SF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무슨 혁명 같은 게 일어나는 중이다.
아니면 전쟁 같은 게 일어나는 중이거나.
아무튼 세계관 내에서 가장 큰 대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체감됐다.
초반에 펼쳐진 액팅과 제단이라는 배경과 휴머노이드로 분장한 댄서들, 그리고 비장한 봉태윤의 표정까지.
‘미쳤어! 진짜 미쳤어!’
자연스레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서사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묵직한 베이스음 위로 부드러운 피아노음이 겹쳐지고.
어울리지 않을 법한 두 소스가 적당한 화음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 아슬아슬한 화음 위로 봉태윤의 목소리가 가볍게 올라탔다.
-의심할 수 없이 다가와
-전부 다 빼앗고 달아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방청객은 입을 틀어막다 말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봉태윤이 노래를 못하진 않는단 걸 알았다.
한데 이 정도로 음색이 좋은 줄은 몰랐다.
-그 사이 빼곡하게 피어난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
방청객은 봉태윤의 눈빛과 목소리에 푹 빠진 채 무대를 지켜봤다.
이후 갑작스레 휴머노이드들이 봉태윤에게 들이닥쳤다.
봉태윤은 그것들과 육탄전을 벌이며 무대 뒤로 밀려났다.
그 동작이 액팅보다는 춤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봉태윤이 댄서들과 합을 맞추며 사라진 순간.
그 사이를 우연훈이 차고 들어온다.
-Who is the traitor
-할 수 있는 건 오직
-hunt down a traitor
-발자취를 따라가
우연훈과 강도승이 합을 맞추며 페어 안무를 선보였다.
우연훈이 팔을 뻗으면 그 팔을 강도승이 잡아채고.
발을 뻗으면 그 발을 다른 발로 휘감았다.
한 차례의 페어 안무가 끝난 후 우연훈은 강도승에 제압당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들 앞으로 다시 박동준이 치고 나오며 센터에 섰다.
-치밀하게 파고든
-가장 안쪽까지 스며든
-은밀한 곳에 자리를 잡아
-끝내 나를 무너뜨릴
박동준은 허공의 무언가를 잡는 듯 손을 뻗은 후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손바닥을 펼쳐보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다.
그런 박동준 위로 휴머노이드들이 덮쳐온다.
마치 연행되듯 휴머노이드들이 박동준을 끌고 간 순간,
-We will TAKE OVER! HOOK!
-내 걸음에 발맞춰!
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후렴구가 터져 나오며 강도승이 센터에 섰다.
그런 강도승 뒤로 오와 열을 맞춰 휴머노이드들이 도열한다.
-TKAE DOWN! HOOK!
-결국 널 무너뜨릴 LAST ONE!
휴머노이드들이 세이렌 멤버들을 붙잡은 무대 위.
강도승이 홀로 서서 그들을 조정한다.
곡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던 ‘배반자’가 강도승임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Yes I’m the Traitor
-이 땅 위에 내세워
-Yes I’m the king
-당당하게 내뱉어
강도승의 각 잡힌 래핑이 끝나고.
1절이 마무리되었다.
멤버들은 로봇들에게 억류되었고.
강도승이 손을 위로 뻗자 쓰러졌던 제단이 다시 세워졌다.
그 위로 강도승이 올라서자 왕좌와 같은 모양으로 제단이 변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방청객은 입을 틀어막았다.
중소도 아니고 그냥 초소형 회사에서 나온 게 세이렌이다,
한데 지금 그녀의 두 눈에 보이는 건,
‘이게 돈을 바른 거야 연습량으로 찍어누른 거야?’
도저히 초소형 회사에선 나올 수 없는 수준의 무대 퀄리티와 스케일이었다.
‘개미친놈들!’
그녀 기준 최고의 극찬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온리원의 대기실.
그곳은 티브이 화면에 떠오른 세이렌의 무대에 잠시 말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내 터져 나오는 건 탄성이었다.
“와, 세상에.”
“대박!”
“저 제단이 저렇게 다시 세워지는 거야?”
“안무 난이도가 완전…….”
아직 1절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와우 포인트가 몇 개나 있었다.
단순히 하루 이틀 열심히 연습한다고 맞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몇 개월간을 준비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곡은 배반자가 드러난 1절을 지나 반격을 준비하는 2절로 이어졌다.
-짙어진 어둠 속
-빛을 찾아 날아들어
초반에 휴머노이드들과 전투를 하러 사라졌던 봉태윤이 다시 등장하고.
-비록 재가 되어 타버린다 해도
-한 뼘 빛을 발할 수만 있다면
강도승에게 붙잡혔던 우연훈이 센터에 다시금 올라섰다.
이후 휴머노이드들이 우연훈을 에워싸고.
붉은색 조명이 사방으로 쏟아지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 끝,
탕!
총성과 함께,
솨아아악.
반주가 잠시 끊기고.
센터에 서 있던 우연훈이 뒤로 넘어간다.
수많은 휴머노이드들이 넘어가는 우연훈을 받아낸 후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우연훈은 그대로 제단까지 끌어 올려진다.
다시 반주가 시작되고.
-We will TAKE OVER! HOOK!
-내 걸음에 발맞춰!
2절 후렴구와 함께 댄스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봉태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봉태윤이 꺼내 든 검에 로봇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봉태윤과 이운, 박동준이 제단 위로 올라간다.
제단을 배경으로 극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듯한 전투가 춤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이후 봉태윤이 검을 제단에 중앙에 박아넣고.
-결국 널 무너뜨릴 Last one.
강도승을 제단 아래로 밀어버린다.
강도승이 추락하고.
제단도 함께 무너지며.
멤버들 모두가 정신을 잃는다.
로봇들도 일제히 작동을 멈춘 듯 바닥에 쓰러졌다.
결국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끝이 나며.
솨아악.
조명이 전부 꺼졌다.
무대라기보단 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에 더 가까운 구성이었다.
그 덕일까.
“미친…….”
“와…….”
“대체 연습을 얼마나 많이 하신 거야…….”
“나 제단 다시 세워질 때 진짜 소름 돋았어.”
무대가 끝난 후 절로 이런 반응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한다는 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글거릴 수도 있는 설정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잡힌 안무와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저 한복 의상 믹스 매치한 거 진짜 대박인 거 같아.”
“흔한 사이버 펑크 느낌이 아니라 진짜 유니크해진 느낌이던데.”
온리원의 멤버들은 경쟁자이기 전에 동종업계의 사람으로서 순수하게 세이렌에게 감탄했다.
다만 그 사이.
웃지 않는 사람은 강현성 한 사람이었다.
건강상에 문제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위험한데.’
그는 경쟁 그룹이 무대를 잘하는 걸 보고 마음 편히 감탄할 만큼 유들유들한 사람이 아니었다.
<월야>를 로 바꾸며 2차 경연에서의 1등을 예상했던 그였다.
탈진을 할 만큼 연습했고, 음식까지 극단적으로 줄이며 2주 전보다도 분명하게 얼굴선이 살아난 상태였다.
그만큼 그는 이번 경연에서 1등을 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
물론 그 마음이 과해 무대 전에 잠깐 뻗어버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시 이곳에 돌아와 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보였다.
한데 마지막에 이런 무대가 붙어버리니,
“세이렌분들, 진짜 열심히 하셨네.”
“맞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강현성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푹 쉬곤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멤버들은 그런 강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온리원 멤버들 모두 강현성이 탈진까지 할 정도로 이번 무대에 공을 많이 들인 걸 알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들 느낀 바가 있었다.
단순히 불편한 그룹 리더, 가 아닌 존경할 만한 그룹의 리더로 강현성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해서,
“그래도, 난 우리가 1등 할 거 같은데.”
“맞아. 가능성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우리 안 꿇려. 진짜로.”
그들은 강현성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가 아닌,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멘트들을 내뱉었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다.
리더는 탈진까지 할 정도로.
그러니 세이렌의 무대가 좋다 한들 자신이 있었다.
그간 그들이 강현성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단 걸 이젠 알고 있다.
강현성은 멤버들을 한 차례 스윽 둘러보더니,
“카메라 아직 돌아간다. 말조심해.”
이리 답했다.
“엡.”
“알겠습니다!”
“말조심.”
강현성의 그 말에 온리원 멤버들은 장난스레 답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강현성은 여전히 1등을 원했다.
다만 동시에 1등 말고도 다른 걸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에 마음이 조금 풀어지려 했다.
* * *
무대가 전부 끝이 났다.
제단이 쓰러지며 그 위에 서 있던 우리 모두는 제단 아래로 추락했다.
그냥 떨어지면 위험하니 바닥에는 매트를 깔아두었다.
난 매트 위에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조명이 꺼지고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악!”
관객들의 함성이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하아.”
난 매트 위에 누운 채 함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오늘 무대는 세계관과 자그마한 디테일들까지 형들과 다 함께 짰다.
누가 배반자를 맡을지.
어느 곳에서 최후의 전투를 할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그 외 등등등.
동선도 엄청나게 복잡했고, 타이밍 한 번만 어긋나도 와장창 깨지게 될 페어 안무도 많았다.
해서 예상은 했다.
무대가 끝나고 나면 후련한 무언가가 있겠구나.
이 어려운 걸 해냈다는 뿌듯함이 조금 크겠구나.
한데 지금 이건 그 정도의 감정과는 달랐다.
마음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하다.
무대에 센터로 서서 오프닝을 끊었을 때.
한 방청객과 시선이 맞았다.
내 등장 한 번에 입을 틀어막고 좋아하던 팬이었다.
그 순간부터 무언가 마음이 울리는 게 있었다.
도승이 형의 조언이던 무대를 즐기면서 해봐라.
들을 땐 몰랐는데 막상 관객과 눈을 맞추니 알 수 있었다.
‘조금, 재밌었어.’
무대는 그저 일만 하고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내가 가족놀이를 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아마 어린 시절, 아이돌이란 직업에 끌렸던 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던 모양이다.
조명은 아직도 켜지지 않았다.
사방은 여전히 어둡다.
몸에선 땀이 흐르고.
바닥의 매트는 마냥 푹신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마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귓가에 울리는 함성이.
그 함성에 맞춰 둥둥 울리는 온몸이.
“이야~ 재밌었다 진짜.”
“후회 없이 했어. 오늘 무대.”
“다들 너무너무 잘했어.”
그리고 옆에 들려오는 형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커다란 감정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 잊고 살아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알 거 같았다.
그래.
“아……. 행복하다.”
나는 지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