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62화 (6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2화

쓸데없이 감상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이 될 것 같아 최대한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확실한 한 가지만 마음속에 남기면 될 터였다.

‘무대가 즐거운 거구나.’

무대가 즐겁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거면 됐다.

“태윤쓰~ 오늘 어때? 무대 좋지 않았어?”

때마침 동준이 형이 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같은 매트 위에 있다 보니 여기를 무대가 아닌 호텔 침대쯤으로 생각하나 보다.

뭐, 아무렴 어떤가.

우리가 엔딩 무대였고, 아직 무대는 암전 중이며, 우리가 여기서 이리 굴러다니고 있단 걸 아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가 꽤 멀어서 우리 말소리가 객석까지 전달될 일도 없었다.

“오늘 무대 좋았어요.”

“오, 뭐야. 네가 그런 말도 해?”

“뭐가요.”

“매일 무대 끝나면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만 반복했었잖아.”

“……그랬어요, 제가?”

“어. 그랬어.”

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지간히도 난 무대를 싫어했나 보다.

무슨 저런 일과 마친 후의 직장인 같은 말이나 하고 살았는지.

잘했다, 거나 좋았어요, 정도는 했어도 될 법한데.

“무슨 얘기 해?”

때마침 연훈이 형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

“오늘 무대 좋았지?”

연훈이 형도 무대가 좋았던 건지 벌써부터 목소리가 잔뜩 신이 나 있다.

“네. 좋았어요.”

“태윤이가 좋았다고 할 정도면 진짜 좋았단 건데.”

“그니까요. 우리 봉태윤이가 촉촉해졌어요.”

“뭘 또 그렇게까지…….”

“뭔 대화들을 그렇게 나눠요.”

“무슨 대화 하는 중이에요?”

어느새 운이 형과 도승이 형까지 우리가 있는 매트로 굴러왔다.

우리 다섯은 마치 숙소에 이불 깔아둔 것 마냥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눴다.

매일 밤 이런 구성으로 자다 보니 잠깐 무대와 숙소를 혼동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래 누워서 떠들 리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막 제단에서 처음 떨어질 때 발밑 보니까 엄청 아찔하더라니까.”

“제가 아까 형 제단 아래로 밀 때요?”

“어. 진짜 진심으로 비명 나올 뻔했어 나.”

“도승이 형이 그냥 비명 질렀어도 재밌었겠다.”

“뭐래. 그건 방송사고잖아.”

우리가 한창 도승이 형이 제단 아래로 떨어질 때의 토크를 나누고 있을 무렵,

우리가 당연히 무대 아래로 내려갔을 거라 믿었을 제작진들은 그대로 조명을 켜버렸고,

그 탓에 매트 위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우리는 무방비로 관객들에게 노출되어 버렸다.

상황 파악이 안 된 관객들이 약 3초간 멈칫하고.

반대로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우리들도 3초간 멈칫했다.

“……이건 진짜 방송사고네.”

동준이 형의 외마디 중얼거림을 끝으로,

“꺄아아아아!”

“하하하하!”

객석에서 환호성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세이렌! 빨리 나오세요!”

무대 옆쪽에서 제작진이 얼른 내려오라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죄송합니다.”

“으아아아아.”

우린 급하게 매트 위에서 일어났다.

내려가며 관객분들에게 인사하는 건 잊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A등급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형들과 나는 관객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인 후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우린 내려가서도 제작진분들에게 연신 사과를 한 후 대기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 * *

방청객은 무대 위에 옹기종기 누워서 대화를 나누던 세이렌을 보며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둘 수 없었다는 것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다섯 명이서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누워 있던 모습이 꽤 귀여웠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수만 있었다면 수백 장도 더 찍어주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아아아! 왜 촬영 금지인 거야!’

물론 엄연히 방송되어 나가야 하는 콘텐츠이니 촬영 금지일 수밖에 없는 건 그녀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아쉬운 마음에 그냥 속으로만 분통을 터뜨리는 거였다.

“얘들 진짜 귀엽다.”

“무대도 잘하던데.”

“봉태윤 끼 없다던 거 뭐냐. 개잘하던데.”

주변에서도 슬슬 호의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었다.

방청객은 속으로 환호하며 무대를 바라봤다.

세이렌은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빠르게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손에 든 리모컨을 조작해 A등급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곤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애들이 1등 하게 해주세요.’

그녀는 그리 기도하며 눈으로는 봉태윤의 뒷모습을 재빨리 훑었다.

“귀여워…….”

그냥 봉태윤의 흔적만 봐도 이젠 귀엽다는 말이 자동재생 되는 지경이었다.

* * *

무대가 끝나고 약 1시간 동안의 휴식 시간이 이어졌다.

이 휴식 시간 동안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빠지고 순위 발표식을 위한 세팅으로 무대가 재조립된다.

빡센 무대가 끝나서일까.

형들은 푹 퍼져서 소파 위에 늘어져 있었다.

나도 소파 구석에 자리를 잡고 늘어진 채로 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운이 형이 날 스윽 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요?”

“응? 그냥 귀여워서 웃었는데?”

“에?”

살면서 귀엽단 소리를 몇 번 들어본 적 없어서 뇌 정지가 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감상적인 얼굴이야?”

“제가요?”

“응. 무대 좋았어?”

운이 형은 그리 물으며 뭉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괜히 물은 거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운이 형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운이 형 말이 맞다.

난 벽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자꾸 무대를 복기하고 있었다.

실수한 게 없는지를 되짚어보기 위한 복기가 아니었다.

‘왜 이러냐.’

그저 그 순간의 열기를 다시 느껴보기 위한 복기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나름 티 안 나게 표정을 잘 숨기고 있다 생각했는데.

운이 형이 보기엔 그게 다 티가 난 모양이었다.

“태윤이가 완전히 아이돌 되부렀네~”

우리 대화를 들은 건지 동준이 형이 애늙은이 같은 목소리로 날 놀렸다.

난 형들이 놀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이런 놀림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이런 무대를 했는데, 우리가 1등을 못 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난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드는 형들을 바라봤다.

“댄서분들이랑 페어 안무 딱딱 맞으니까 너무 신나서 박자 놓칠 뻔했다니까.”

“확실히 댄서분들이 힘이 좋으시더라.”

“맞아. 같은 동작도 박력이 다른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이토록 흥분을 할 정도로 오늘 무대는 좋았다.

난 그만큼 오늘 우리의 무대에 자신이 있었다.

다만 온리원 무대를 다시금 복기해서 생각해 보자면,

‘어렵네.’

사실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마냥 밝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무대 수준을 두고 보자면 엇비슷하다.

사실 온리원과 우리 무대는 둘 다 비슷한 퀄리티를 냈다.

그저 취향에 따라 조금 더 갈릴 뿐이겠지.

문제는 취향 따라 갈릴 정도로 우리랑 온리원의 퀄리티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질 텐데.’

우리가 온리원을 이길 순 없다.

그간 우리가 온리원과 공동 1등이라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온리원이 생각 외로 무대를 망쳤고.

우리가 생각 이상으로 무대를 잘 해내서이다.

그래야만 겨우 비슷한 선상에라도 설 수 있다.

한데 무대 수준이 비슷했더라면,

‘안 되는데.’

아마 높은 확률로 온리원에게 질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물론 이길 수도 있다.

우리도 나름 팬덤이 조금은 생긴 상태이고.

여론 자체도 우리에게 호의적이니까.

더군다나 평가 방식은 상대평가가 아닌 모든 팀에게 등급을 매기는 절대평가 방식이며 우리 무대가 엔딩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러 가지로 보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안 되겠지.’

1등을 점치기는 어려웠다.

가장 결정적인 건 ‘미래시’를 통해 보고 온 그 모습이다.

시스템이 보여준 미래에서도 온리원이 1등을 했다.

물론 ‘미래시’가 절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여러 지표가 온리원의 1등을 가리키고 있단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난 2차 경연에서 1등을 못 하게 될 시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가슴이 설렜는데.

금세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에휴.”

난 형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무대 직전 거의 패닉까지 갔던 내가 지금은 그 정도까진 가지 않는단 거였다.

사실 상황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럼에도 마음의 변화가 이토록 분명한 건,

‘무대 전후의 차이인가.’

그 무대가 내 내부를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시킨 덕인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릴 응원하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과정을 겪으니 마음의 짐이 덜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

-세이렌 스탠바이하겠습니다~

순위 발표의 시간이 찾아왔다.

“가자!”

“갑시다아~”

“읏차!”

우린 소파에서 일어나 무대로 올라갔다.

* * *

무대 위에 다섯 팀이 적당히 거리를 벌려서 섰다.

MC 두 사람이 올라와서 멘트를 치며 방송을 진행시켰다.

“더쇼케이스2 2차 경연의 모든 무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수고하신 모두에게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린 의례적인 멘트들을 들으며 하라는 대로 했다.

“다섯 팀 모두 서로의 무대를 오마주하여 각 팀의 개성을 살린 무대를 펼쳤는데요, 그 무대들에 대한 관객분들의 평가가 방금 막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후우우.”

“떨린다.”

“으으으.”

형들은 MC들의 멘트를 들으며 긴장된다는 모션을 취했다.

저게 진짜 긴장된 모습들인지 카메라 앞이라 적당한 리액션을 취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 또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팀부터 발표를 할 예정인데요.”

MC들은 손에 순위가 적힌 큐시트를 든 채 우리를 둘러봤다.

“그럼, 아쉽게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팀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MC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른 생각을 했다.

사실 가장 낮은 팀이 누구인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다기보단 예상이 갔다.

아마,

“루미닌입니다.”

그래.

루미닌일 거 같았다.

오늘 무대는 전체적으로 온리원과 우리를 빼놓고 보자면 순위가 선명하게 보이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아마 4위는 원바이원일 거고.

3위는 변동 없이 또 블레슈일 거다.

내 예상은 정확했는지,

“4위는 원바이원 여러분입니다.”

“3위는 블레슈분들입니다. 축하드립니다.”

4위 원바이원, 3위 블레슈가 호명됐다.

“자, 그러면 이제 대망의 1위와 2위가 남았는데요. 지금 제가 호명하는 팀이 1위이며, 호명되지 않는 팀이 2위입니다.”

여기가 관건이었다.

다른 팀들도 꽤 흥미가 동한다는 눈빛으로 우리와 온리원을 쳐다봤다.

이제 온리원과 우리가 1등 자리를 두고 경합하는 건 더쇼케2의 굳어진 그림과도 같은 느낌이다.

난 온리원 쪽을 슬쩍 쳐다봤다.

내가 보고 왔던 미래시에 따르자면 저쪽이 1등을 한다.

다만 그 미래시가 절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1등을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애매할 거면 미래를 보여준단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궁금은 하다.

미래시가 보여주는 미래는 절대적인 건지.

아니면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지.

난 MC들의 입에서 나올 이름이 어떤 이름일지 지켜봤다.

이윽고,

“아, 이 팀이 경연에서 1등을 하는군요.”

어떤 이름이 MC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이름은,

“온리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온리원이었다.

아.

미래시는, 아마 절대적 미래를 보여주는 건가 보다.

마음을 접고 박수를 치려는 그 순간,

“어?”

미래시가 결코 절대적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확정적 증거가 갑작스레 터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