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3화
미래시가 절대적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란 증거가 갑작스레 터져 나왔다.
증거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흡, 으음…….”
“어?”
“영호 씨?”
온리원의 박영호가 1등으로 호명되자 눈물을 터뜨려 버린 게 증거였다.
내가 봤던 미래시에선 눈물 흘린 박영호는 없었다.
그저 벅차고 놀란 박영호만 있었을 뿐이다.
‘미래가 달라졌네.’
가장 중요한 1등 결과는 안 달라졌지만, 그 밖의 디테일이 달라졌다.
미래시가 절대적 미래를 보여주는 건 아니란 결정적 증거였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생긴 건진 모르겠으나.
‘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래의 디테일이 달라질 법한 사건이 발생했나 보다.
“영호야?”
“아이고…….”
온리원 멤버들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박영호를 두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좀처럼 당황 안 할 거 같던 강현성조차 조금 놀란 눈치였으니까.
그들은 박영호를 가운데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섰다.
그러곤 박영호가 눈물을 그칠 수 있도록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하하하, 영호 씨가 많이 기쁜가 봅니다.”
“훈훈한 장면이지 않을 수 없네요.”
MC들도 꽤 당황한 건지 멘트를 마구잡이로 남발한다.
난 별 감흥 없이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흐으우우…….”
“응?”
연훈이 형이 내 옆에 기대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온리원을 바라본다.
“너무 기쁘신가 보다…….”
대체 연훈이 형의 공감 능력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데 연훈이 형뿐만 아니라,
“멋있다.”
“진짜 연습 많이 하신 거 같아.”
“좋아 보이네요.”
도승이 형과 운이 형. 동준이 형까지 전부 어딘가 감상적인 표정을 지은 채 온리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 인간들이 왜 온리원에 감정이입 하는지를 모르겠다.
저 그룹 때문에 우린 무대 잘해놓고도 2위가 됐단 걸 잊었나 보다.
공감도 좋지만 조금 더 전투력을 불태울 때인데.
난 속으로만 이런 생각들을 삼켰다.
이후 강현성의 소감까지 이어졌는데,
“감사합니다. 값진 1등인 것 같습니다. 멤버들 모두와 열심히 준비한 무대로 관객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소감조차 내가 보고 왔던 미래시 속 소감과는 달랐다.
원래 소감은,
-감사합니다. 정말. 값진 1등인 것 같습니다. 전부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더 열심히 무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식의 건조하고 정석적인 느낌이었다.
한데 방금 전 소감은 원래 소감에 비해 조금 더 감상적이다.
강현성답지 않게 말이다.
무엇보다 팀워크가 강조되었다.
이 시점의 강현성이 굳이 팀워크를 강조할 만한 놈인 건가.
사실 강현성에게 진짜 ‘팀’이란 지금껏 없었을 거다.
셀유돌에서 미션을 위해 급조한 팀 몇 개와.
이후 프로젝트성으로 만들어진 1년짜리 단발성 팀 하나.
이게 강현성이 지금껏 거쳐왔을 팀들이다.
함정은 이중 진짜 ‘팀’은 없단 거다.
그냥 더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한 개인들만 있을 뿐인 거지.
즉 이 시점에서 강현성이 팀워크를 강조할 만한 멘탈은 아닐 텐데,
‘뭐가 진짜 있었나 보네.’
저 자식 입에서 팀을 강조하는 워딩이 나온 걸 보니 온리원이 내부적으로 결속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인륜적으로 보자면 축하할 일이지만,
‘쉽지 않네.’
지극히 내 개인적으로 보자면 좋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내가 온리원의 커리어 하이를 조금 더 당겨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아니었다면 온리원이 이렇게 빠르게 내부적인 결속을 다져 나갈 리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난 속으로 한숨 한 번을 쉬곤 생각을 정리했다.
“자! 그러면 오늘 무대에 대한 총점수표를 화면에 띄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MC 김영진의 멘트에 맞춰 뒤쪽 전광판과 앞쪽 모니터에 총 점수표가 떴다.
더쇼케2 점수 산정 방식은 소수점 단위부턴 반올림 방식을 사용한다.
온리원의 경우 총점 14,200점.
평균 94.6
반올림하여 최종점수 95점이 된 거였다.
우리의 경우 총점 13,750점.
평균 91.6
반올림한 최종점수 92점으로 2등이었다.
고작 450점 차이로 온리원에게 1등을 빼앗겼다.
이 정도의 큰 단위 점수가 나오는 경쟁에서 450점이면 정말 근소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형들도 수치를 보니 더욱 아쉬운 모양이었다.
“세이렌분들은 오늘 경연에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MC 나현이 그리 말하며 우리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자연스레 마이크가 연훈이 형에게로 들어온다.
2등 소감을 말하란 거였다.
“2등도 저희에겐 너무 소중한 등수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노력해서 팬분들에게 더 좋은 무대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훈이 형은 정석에 가까운 소감을 말한 후 방긋하고 웃었다.
보는 사람들이라면 절로 따라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 웃음이었다.
이후 마이크는 블레슈와 원바이원과 루미닌에게 순차적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블레슈를 포함한 세 팀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사실 저 세 팀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들에게 가려진 병풍 같은 느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저들도 그걸 아는 눈치였고.
당연히 표정이 밝을 수는 없을 거다.
아무리 허허실실한 사람이라도 대놓고 주변부로 밀려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어.’
미안함과는 별개로 난 이 구도를 깨뜨리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야 도승이 형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뭐 팀 간 감정의 골은 점점 커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여기 친목놀이 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자! 그러면 각 팀별 소감을 모두 들었으니, 이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장 기다리고 있을 시간일 거 같은데요.”
MC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제작진과 신호를 주고받았다.
“지금부터 3차 경연의 미션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MC들을 바라보며 3차 미션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전생에서 3차 미션은 우리의 무대, 라는 거였다.
여기서부턴 오리지널 곡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각 팀별로 곡을 수배해 오든, 아니면 만들어내든, 세상에 없던 본인들만의 곡을 가져와서 무대를 하란 거였다.
뭐 우리야 원래 늘 자작곡을 해왔으니 문제 될 게 없는 미션이다.
다만,
‘내 예상대로 간 적이 있어야지.’
나도 학습능력이란 게 있다.
이 미션이란 게 내가 보고 왔던 전생과 사뭇 다르단 걸 이제 모르지 않다.
같은 미션이 나올 거란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는데,
“3차 경연의 미션은 바로, Our Showcase. ‘우리의 무대’입니다!”
“예?”
전생과 같은 미션이다.
“우리의 무대?”
“자작곡 같은 걸 하란 건가?”
“오오”
사방에서 경연 미션에 대한 반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 혼자만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송이니 금방 정신 차리고 표정 관리를 하긴 했다만,
‘왜 이제 와서 이건 또 똑같이 가는 거야.’
시스템에게 농락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무대라는 게 뭘까 태윤아?”
연훈이 형이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리 묻는다.
“그냥 자작곡 하란 거 아닐까요?”
“우린 늘 자작곡이었잖아.”
“맞아요. 하던 대로 잘 준비해서 하면 될 거 같아요.”
난 대충 이리 말하며 미션의 세부 내용이 밝혀지길 기다렸다.
다만,
“우리의 무대 미션은 기존의 미션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펼쳐지는데요.”
그 미션의 내용이 내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이번 미션은 팀 연합 미션으로 여러분은 총 3개의 팀으로 재조합되어서 무대를 꾸려야 합니다!”
“네?”
“연합?”
“와, 대박.”
“헉”
난 귀를 의심했다.
이번엔 미션 제목이 똑같아서 전생과 똑같은 미션이 주어진 건 줄 알았다.
한데,
‘이렇게 바로 희망을 박살 내버리냐.’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 흘러갈 리가 없었다.
그만큼 학습했는데 또 속다니.
내 지능을 내가 의심해 봐야 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난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형들은 꽤나 놀란 건지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압권은,
“우리…… 찢어지는 거야?”
연훈이 형이었다.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리 말했다.
“팀 연합 미션은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요.”
“와, 이런 분위기에서 팀 연합이면, 진짜 살벌할 거 같은데.”
“이거 평가 방식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다른 형들도 이번 미션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지금 나다.
3차 경연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1등을 해야 한다.
3차 경연에서마저 온리원이 1등을 하면 최종 1등은 그대로 온리원이 가져가는 거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한데 이런 식의 팀 찢기 미션이 나오면 변수가 너무 많아진다.
일단 마음을 차분히 했다.
그리고 MC들이 하는 말을 차분히 들어봤다.
“이번 미션은 총 3명의 리더가 따로 배출되어서 3개의 팀을 꾸린 후 무대를 하는 미션입니다.”
이건 미션 방식이고.
가장 중요한 평가 방식이 안 나온다.
MC들은 이번 미션에 대한 몇 가지 의의 같은 걸 자꾸 읊어대며 시간을 끌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렇다면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하실 이번 미션의 평가 방식은 무엇이냐!”
평가 방식이 공개되었다.
“이번 미션에서 여러분은 개인전 방식으로 평가를 받게 될 예정입니다.”
난 MC들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들었다.
일단 들어보니 평가 방식은 간단했다.
5개의 팀을 합쳐서 3개의 팀으로 나눈다.
그러면 총 3개의 무대가 나올 텐데, 각 무대별로 투표를 하는 게 아닌, 그 무대의 멤버에게 투표를 하는 거다.
기존의 A, B, C 등급을 주던 걸 팀 단위로 주는 게 아닌 개인 단위로 준다고 보면 된다.
‘셀유돌 룰이랑 똑같은 거 아냐?’
결국 팀전의 탈을 쓴 개인전이란 소리다.
그렇게 나온 개인 점수들을 ‘무대별로’가 아닌, 각 ‘그룹별로’ 합쳐서 평균 점수가 가장 높은 팀이 3차 경연 1등 팀이 되는 거였다.
즉 세이렌이 뿔뿔이 흩어져 각각의 무대에서 받아온 개인 등급의 평균값으로 그룹 순위가 정해진단 거다.
‘한 명이 캐리하는 게 불가능해진 구조네.’
무대 별로 투표를 할 때에는 그 무대의 한 명을 보고 높은 점수를 주는 게 가능하다.
한데 이번엔 모든 팀원들이 고르게 높은 등급을 받아야만 최종 1등이 가능해지는 거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자,
‘이거, 우리한테 유리할 수도 있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온리원의 경우 강현성의 인지도만 압도적일 뿐 다른 팀원들은 아직 코어 팬덤이 붙지 않았다.
즉 온리원을 찢어놓게 된다면 이전과 같은 화력은 안 나올 수 있단 거다.
반대로 우리의 경우,
‘연훈이 형이 가장 인기가 많긴 하지만 다른 형들이 그다지 밀리는 느낌은 아니야.’
온리원에 비하자면 멤버 간 인기 균형이 굉장히 고른 편이다.
형들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걸까.
평가 방식을 듣고 나니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3차 경연 1등이 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때,
“자! 그러면 지금부터 연합팀의 리더를 뽑을 예정인데요, 혹시 이 리더에 자원하고 싶은 분이 계실까요? 리더가 되는 분에게는 팀원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MC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리더라.
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연훈이 형이나 도승이 형, 운이 형은 해봄 직할 텐데
“하하…….”
“쉽지 않네…….”
다들 크게 끌리진 않나 보다.
하기야, 리더란 게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만 푸짐하게 먹는 포지션인데.
과연 누가 할까 싶었다.
한데,
“지원하겠습니다.”
리더 지원자가 나타났다.
“오!”
“누구야?”
사람들은 절로 리더 지원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있는 건,
“아.”
“리더, 지원하실 만하네…….”
온리원의 리더 강현성이었다.
그렇지.
사실 저놈 말곤 딱히 할 만한 사람이 없긴 했다.
“오! 첫 번째 지원자가 나타났네요! 그러면 리더 특전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8인 혹은 9인의 멤버를 직접 선택해서 호명할 수 있는 특전입니다! 참고로 호명된 사람에게 거부권은 없습니다~”
생각보다 리더의 특전이 강력하다.
원하는 멤버들을 모아서 할 수 있다라.
심지어 거부권도 없단다.
이건 꽤 탐이 난다.
그렇다면 나도 리더 자원해서 우리 형들을 전부 모아올까 싶었는데,
“세이렌의 봉태윤, 지목합니다.”
“네?”
뜬금없이 강현성의 원픽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