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6화
눈을 비비고 다시 수치를 확인했다.
이게 현실인가 싶어 두 번 다시 봤다.
하지만 두 번을 보든, 세 번을 보든, 수치는 여전히 51%였다.
“눈에 뭐 들어갔어요?”
강현성이 눈을 비비는 나를 보며 이리 물었다.
“아, 아뇨.”
난 고개를 저으며 말한 뒤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건 연하남을 해야 하는 거구나.’
연하남 컨셉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1등 확률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근데 이게 왜 1등 확률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데?’
이 메커니즘을 내가 전혀 납득을 못 하고 있단 거다.
나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를 내가 못 하고 있는 건가.
“연하남 컨셉이 별로인가요?”
강현성이 내게 묻는다.
내가 뭐라 먼저 답하기 전,
“그, 그, 저는 그래도 태윤 씨가 말했던 내러티브적인 요소가 있는 무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영호가 먼저 말을 한다.
저게 진짜 내 아이디어가 맘에 든 건지 아니면 맥락 없는 내 편 들기인지는 모르겠다.
‘왜 저러지 박영호.’
전에 뜀틀에서 구해준 이후로 나한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 같다.
저 신뢰 가득한 눈빛을 배신하는 것 같아 미안하긴 하나.
“……연하남 컨셉……. 좋습니다.”
지금 수치를 보면 연하남 컨셉으로 가야 한다.
내가 온 마음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걸 무릅쓰고 연하남 컨셉이 좋다 말하니.
[1등 확률 : 52%]
이 확률이 올라갔다.
내가 이 컨셉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확률이 올라가나 보다.
강현성은 만족스럽단 듯 작게 웃었고.
박영호는 왜인진 모르겠으나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다른 팀원들의 반응도 확인하려는데,
“연하남, 좋죠!”
“하하! 이거 팬분들이 진짜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다들 좋다고 말은 하고 있으나.
‘묘하게 삐걱대네.’
아주 온 맘을 다해 격렬히 좋아하진 않고 있었다.
다들 강현성의 말이니 무지성으로 따라가려고는 하지만 연하남이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이 있나 보다.
그래, 보통 이 나이대 남자들은 대부분 오빠 소리 듣고 싶어 하지 동생 소리 듣고 싶어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게 먹히는 소스인 것도 알고, 다른 누가 아닌 강현성이 하는 말이니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나 보다.
한데,
[1등 확률 : 50%]
저 자식들이 이 연하남 컨셉에 진심이 아니어서일까.
수치가 떨어지나 보다.
아마 모두가 진심으로 이 컨셉에 과몰입을 해야 하나 보다.
“연하남이 별로라면 다른 컨셉을 다 같이 찾아보죠.”
강현성이 사람들 반응이 석연치 않음을 알고 한발 물러나려는데,
“아뇨. 저는 연하남 컨셉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내가 나서서 막았다.
연하남을 사수하지 않으면 1등 확률이 떨어진다.
나도 썩 내키진 않지만 이런 내 사사로운 마음보단 1등이 더 중요하다.
강현성이 의외란 듯 날 쳐다본다.
난 꿋꿋이 할 말을 했다.
대충 말을 짜 맞춰서 되는 대로 일단 던져보는 거다.
“아까 우리가 말했던 내러티브적인 요소를 연하남 컨셉에 충분히 녹여볼 수 있지 않을까요?”
즉석에서 이야기를 짜 맞춰보기 시작했다.
이런 건 내 전문이다.
웹소설 작가로 먹고살려면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단순히 우리 연하남이니까 귀여워요~ 라는 느낌보단 연하, 라는 단어가 주는 그 감성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짜보는 거죠.”
이쯤 되니 나도 내가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연하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성으론 풋풋함이 우선이겠고, 교복, 이라는 아이템도 떠오를 법하고, 저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약간 초여름 느낌도 나거든요. 전반적으로 서툴고 벅찬 첫사랑의 감성을 잘 다듬어서 연하남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괜찮지 않을까요?”
환상의 주둥아리 쇼를 펼치고 난 후 반응을 살폈다.
나름 설득이 된 걸까.
“오. 좋은데요?”
“그냥 연하남보다는 연하남으로 이야기 만들어서 무대 하는 거면…….”
“확실히 그 벅찬 감성을 잘 살리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 표정이 아까보다 한결 나아졌다.
지금은 강현성이 한 말이니 따라야겠다가 아닌, 이거 정말 될 것 같은데? 하는 표정이었다.
때마침,
[1등 확률 : 55%]
수치가 또 한 번 급등했다.
연하남 컨셉이 처음 나왔을 때만큼의 대상승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꽤 높은 폭으로 올라간 셈이다.
내가 입을 털면서 나 스스로도 설득을 시켜버린 걸까.
‘정말 나쁘지 않을 수 있겠는데?’
나 또한 이 컨셉에 조금 진심이 되었다.
그걸 시스템도 알아차린 건지,
[1등 확률 : 56%]
한 번 더 수치가 올라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자괴감이 조금 든다.
강현성은 날 보며 묘한 미소를 흘렸고.
박영호는 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 연하남 컨셉으로 무대 하는 걸로 픽스하죠.”
강현성이 입을 떼며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네에~”
“좋습니다!”
팀원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인 듯싶었다.
“그러면 이제 곡을 정해봐야 하는데…….”
강현성은 말을 더 이으려다,
“그건 내일 만나서 상의할까요? 각자 후보곡 추려서 내일 다시 만나는 걸로 하죠.”
이리 말하곤 제작진 쪽을 흘끔 바라봤다.
때마침 제작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마 이쯤에서 촬영을 마무리 지으려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촬영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팀별 회의는 이걸로 끝이었다.
아마 딸 장면은 다 땄다 싶었나 보다.
“1등 했던 팀인 온리원만 남고 다들 퇴근하시면 됩니다!”
제작진의 외침에 우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제작진들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인사를 얼추 마친 후 우린 팀원들끼리 아직 마저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빠르게 나눴다.
“그러면 내일 우리 어디서 만나죠?”
“저희 회사 연습실로 오전 9시까지 모이죠.”
“각각 후보곡 몇 개 추려서요?”
“네, 그렇게 합시다.”
내일 오전 9시, 온리원 연습실로, 후보곡 몇 개 추려서.
빠르게 필요한 정보들만 머릿속에 정리했다.
그렇게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저쪽을 보니 형들도 팀원들과 마무리 인사를 나눈 후 헤어지는 중이었다.
내가 형들에게로 다가가자.
“뭐야, 배신자 잘 다녀왔어?”
“팀을 버린 봉태윤!”
“태윤 없는 태윤 팀~”
형들이 맹렬한 기세로 날 비난한다.
아니,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잖아요. 뭐가 배신자예요.”
지금 이런 처우는 꽤 억울하다.
물론 장난으로 저러는 건 알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장난이지, 장난~”
동준이 형이 능글맞게 웃으며 내 허리에 손가락을 올려 간지럼 태웠다.
내가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로 빼자 더 빠르게 간지럼을 태우려 한다.
아예 도망갈 기세로 뒤로 빠지자 그제야 장난을 멈췄다.
우린 대기실로 이동하며 대화를 마저 나눴다.
“태윤이는 팀에 잘 적응했어?”
연훈이 형은 내가 새 팀에 잘 적응했을지를 걱정했다.
“가서 기죽지 말고 다 죽여놔.”
도승이 형은 내가 가서 기죽을까 걱정하는 모양새였고,
“가서 막 은근하게 소외되는 느낌 있고 그런 건 아니지?”
운이 형은 내가 팀에서 밀려날까 걱정하고 있었다.
동준이 형은,
“아 재밌겠다, 연합 미션.”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후 대기실에 도착한 후 우린 의상을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의상이 오늘 진짜 크게 한몫했지.”
“이건 진짜 못 버릴 것 같아.”
형들은 오늘 우리 의상을 보며 한마디씩을 했다.
엉망인 의상을 되살리느라 같이 고생했던 게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앞으론 이것보다 좋은 의상만 입어요.”
난 형들에게 이리 말했다.
“무조건 그래야지.”
“더 열심히 하자.”
형들은 나름 이 말에 꽤 감화가 된 모양이다.
이후 우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이제부터 이어질 건 연합 미션이다 보니 우리끼리 따로 연습을 할 게 없었다.
해서 연습실로 가지 않고 바로 숙소로 올라갔다.
“여긴 와도 와도 적응이 안 돼.”
동준이 형이 제공해 준 강남 프리미엄 신축 아파트는 역시 몇 번을 와도 적응이 안 된다.
몸에 안 맞는 호사에 다들 몇 주째 정신을 못차리는 중이었다.
각자 욕실로 들어가서 샤워를 마친 후 거실에 모였다.
난 자연스레 거실 한가운데에 이불을 깔려고 했다.
이게 대리석 바닥이 은근히 허리가 배기는 느낌이라 얼마 전 마트에 가서 바닥에 깔 이불을 몇 개 더 사 왔다.
두툼하게 올라온 이불들을 보며 나 혼자 묘하게 흐뭇해하고 있는데,
“근데 우리 계속 거실에서 다 같이 잘 거예요?”
동준이 형이 소파에 앉은 채로 무심하게 툭 뱉었다.
그 말에 이불을 깔던 나를 포함한 모두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샤워를 마친 후 목에 수건을 걸고 나오던 운이 형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 슬슬 방을 정하긴 해야지.”
소파에 앉아서 티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던 연훈이 형은 조심스레 티비를 끄곤 바닥으로 내려와 앉았다.
“난…… 난 그래도 다 같이 자는 거 정답고 좋았는데…….”
형은 아무래도 다 같이 자는 게 여전히 좋나 보다.
“나도, 뭐.”
도승이 형도 답지 않게 다 같이 낑겨서 자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반면,
“에이~ 그래도 방이 몇 갠데 이젠 좀 써야죠~”
동준이 형은 다 같이 자는 것보단 따로 자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두 명, 두 명, 한 명, 이렇게 나눠서 자면 어떨까?”
운이 형도 인원을 나눠서 자는 게 어떤가 하는 입장이었다.
형들의 시선이 이젠 나를 향한다.
둘, 둘로 의견이 갈리니 내 의견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형들이랑 다 같이 자는 것도 좋긴 하지만…….’
일단 내 개인적인 마음은 다 같이 자는 게 좋다는 거다.
얼마 만에 만난 형들인데.
아직은 좀 더 같이 부대끼며 자고 싶긴 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다들 라이프 스타일도, 생체리듬도 다르니까, 분명 어딘가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거야.’
분명 언젠간 문제가 터질 거다.
그렇다면,
“방도 많으니까 나눠서 쓰죠.”
이게 가장 현명할 방법일 테다.
“예스!”
동준이 형은 왠지 모르겠지만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좋아한다.
“흐음.”
“아쉽네.”
도승이 형과 연훈이 형은 다소 아쉬운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방 누가 쓸지 정할까요?”
동준이 형이 주도하며 방 나누기를 한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제가 독방 써도 될까요, 형들?”
역시.
동준이 형은 독방을 원했나 보다.
하긴.
부동산 재벌(?) 3세가 우리랑 다 같이 부대껴 자는 데엔 한계가 있었을 거다.
사실 동준이 형의 저 요구는 굉장히 타당한 요구다.
“당연히 되지.”
“동준아 여기 네 집이잖아.”
“뭘 동의를 얻고 있냐. 그냥 통보하고 혼자 독방 써도 우리 아무 말도 안 했을 텐데.”
여긴 동준이 형의 명의로 된 집이다.
우리는 동준이 형 집에 얹혀사는 거고.
“그러면 제가 작은 방 혼자 쓸게요. 고마워요.”
형은 만족스럽단 듯 웃으며 물러났다.
이제 큰 방을 둘, 둘 나눠쓸 때 어떤 구성으로 나눠쓸지를 정해야 하는데,
“데덴찌로 할까요?”
“그래. 엎어라 뒤집어라로 하자.”
“아무래도 편먹기 편먹기가 가장 공평하긴 하지.”
“덴찌 덴찌 덴찌로 하죠.”
각양각색의 언어로 표현된 데덴찌가 튀어나왔다.
근본은 데덴찐데 다들 이걸 끝까지 인정을 안 하는 게 나름 열받는다.
아무튼 우린 데덴찌로 둘, 둘 방을 나눴다.
그 결과,
“나랑 도승이가 한 방. 운이랑 태윤이가 한 방이네.”
연훈이 형 도승이 형이 한 방.
나랑 운이 형이 한 방이 되었다.
“그럼 오늘부터 방 나눠서 쓸까요?”
“넵.”
“그러죠.”
“이거, 이불 다 깔아뒀는데…….”
난 열심히 깔아둔 이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으나.
“내가 두 장 가져갈게.”
“우리도 두 장 가져갈게요.”
“난 한 장이면 돼요~”
형들은 내 손가락 따윈 무시하고 재빨리 이불을 분해해서 각자 방으로 사라졌다.
운이 형도 바닥에 깔 이불 두 장을 품에 안은 채 날 바라봤다.
“태윤이는 덮을 이불 챙겨서 방으로 와.”
“……네.”
이 형들이, 이럴 땐 참 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