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7화
이불을 들고 나랑 운이 형 몫으로 배정된 큰방에 들어갔다.
뭐 크게 감흥이 느껴지거나 그러진 않았다.
“방이 좀 휑하네요.”
그나마 감상이 남는다면 방이 조금 휑하다는 정도.
“하나씩 채워넣으면 되지.”
난 비어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고 말했는데 운이 형은 앞으로 채워질 공간이라 생각하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치.
여기가 이제 우리 숙소지.
한데 느낌이,
“여기에 뭘 채워넣어도 될까요?”
“하하하! 그게 무슨 말이야. 안 될 거 같아?”
“그냥, 뭐랄까. 친구 집에 내 짐 채워넣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해서요.”
내 집이 아닌 남의 집 같다.
“뭐, 살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네.”
난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운이 형과 둘이서만 누워 있으니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불도 끄고 이불도 목 끝까지 올렸는데,
‘흐음.’
……잠이 안 온다.
원래 이 정도 스케줄을 끝내고 돌아왔으면 바로 뻗어야 하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자니
“……자? 태윤아?”
운이 형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뇨.”
“그래?”
“형은 안 자요?”
“……잠이 안 오네.”
이게 잠자리가 바뀌니 잠이 안 오나 보다.
원래 다섯 명이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야 하는데.
늘 느껴지던 그 인구밀도가 없으니 휑하기만 하다.
“……오늘 촬영 어땠어? 재밌었어?”
“이미 알면서 뭘 물어봐요.”
“아니, 그냥 입으로 듣고 싶어서.”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형들 사이에선 내 옆구리 찌르는 게 요새 유행인가 보다.
내가 입을 떼지 않으면 그때까지 옆구리를 계속 찌를 거 같아 겨우 입을 뗐다.
“……무대 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
“도승이 형이 우릴 믿고 즐겨보라고 했던 말이 도움됐던 거 같아요.”
“도승이가 좋은 말 해줬네.”
“그쵸. 엄청 뚝딱대긴 했는데, 뭐.”
“근데……. 사실 너네 대화하는 거 옆에서 듣고 있었어.”
“……에?”
“하하하!”
운이 형은 소리 내어 웃으며 날 쳐다봤다.
생각해 보니 형들이랑 다 따닥따닥 붙어 있었으니 도승이 형과 내 대화가 안 들렸을 리 없을 거다.
“아주 둘 다 뚝딱뚝딱대면서 대화하더라.”
“……제가 도승이 형만큼 뚝딱댔어요?”
“응!”
“……하아. 개쪽팔린데.”
“뭘 쪽팔려 해 또.”
운이 형은 한참을 혼자 웃음을 터뜨리다가 겨우 진정했다.
“잘했어. 나도 오늘 뒤에서 너 보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동작이 더 좋아 보이더라고.”
오늘 무대 하면서 실제로 난 몸 쓰는 게 평소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한데 그걸 본인 안무 수행하면서 캐치해 낼 정도라니.
확실히 몸 쓰는 거에 있어서는 운이 형에겐 천부적인 무언가가 있나 보다.
“난 태윤이 네가 무대 하는 게 즐거웠으면 좋겠어.”
운이 형은 조심스레 입을 떼며 그리 말했다.
그저 같은 팀원끼리 주고받는 덕담 정도이겠거니 싶었는데,
“난 우리 팀 다 같이 오래오래 활동했으면 싶거든.”
좀 더 속 깊은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려면 모두에게 이 활동이 행복한 활동이어야 하잖아.”
맞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불만이 과중되면 그 집단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실 전에 네가 아이돌 안 하겠다고 했던 말이 내내 걸리긴 했거든.”
운이 형은 예상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하나 보다.
“무대 할 때마다 매번 긴장도 많이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거 같았고.”
흐음.
저것도 맞는 말이다.
무대 체질이 아니다 보니 올라가기 전이면 형들에 비해 많이 긴장한다.
“그래서 언제 한 번은 네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 다행히 그 고비를 잘 넘긴 것 같네.”
“……고마워요. 신경 써줘서.”
“뭘 고마워해. 당연한 거지.”
운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내 가슴을 손등으로 툭툭 쳤다.
“잘까?”
“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슬슬 잠이 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한 10분쯤 눈 감고 있으면 잠들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끼이익.
누군가 우리 방문을 연다.
“응?”
운이 형과 내가 동시에 일어났다.
문 쪽을 보니,
“그……. 우리 오늘까지만 다 같이 잘까요오……?”
동준이 형이 서 있다.
그 뒤로 도승이 형과 연훈이 형까지 착착 서 있었다.
“아무래도…… 숙면을 위해선 다 같이 자는 게…….”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잖아.”
각자 스타일로 변명을 해대는 모습이 꽤 웃기다.
“하하하!”
운이 형은 그 모습에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난 어처구니없단 듯 형들을 바라봤다.
그래.
“오늘까진 같이 자죠.”
딱 오늘까진 다 같이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거실에 모여서 같이 잠든 우리는 새벽 6시에 기상했다.
“형들 오늘 블레슈네 연습실로 간다고 했죠?”
“응! 저녁까지 거기서 연습할 거야.”
3차 경연은 연합 미션이다 보니 형들과 떨어져야 했다.
나만 이리 동떨어지게 되는 게 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팀은 이미 갈라졌으니 떼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고 안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등 확률 : 56%]
시야 한편에 이런 것도 떠 있고 한 걸 보니 강현성네 팀에 간 게 어쩌면 신의 한 수가 된 걸 수도 있으니까.
‘우주의 흐름이 우릴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자.’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일보 후퇴한 거라고 행복회로를 돌리면 그나마 덜 억울했다.
“오늘 저녁 8시에 숙소에서 보는 거죠?”
난 형들에게 마지막 점검을 했다.
오늘 저녁 8시.
더쇼케2의 2화가 방영된다,
해서 오늘 저녁에 다 같이 보자고 8시까지 숙소에 모이기로 했다.
“응~ 걱정 마.”
“다 같이 볼 거야.”
“8시에 보자!”
형들은 그리 말하곤 숙소 밖으로 떠났다.
블레슈의 연습실이 꽤 멀리 있다 보니 나보다 먼저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난 형들이 떠난 후 잠시 숙소에서 더 대기하다가,
“하아. 가자.”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간단히 짐을 챙기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핸드폰 화면엔 강현성이 보내준 연습실 주소가 찍혀 있었다.
어제 스튜디오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급하게 팀원들끼리 번호 교환을 했다.
그리고 밤에 강현성이 단체 톡방을 파서 우리를 초대했고.
잡담은 하지 않고 딱 주소만 올렸다.
‘어제 박영호가 내 번호 받을 때 배신감 느껴지는 얼굴이던데.’
난 양심에 찔리던 순간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낸 뒤 걸음을 옮겼다.
* * *
강현성이 보내준 주소는 회사 건물 주소가 아니었다.
연습실 주소라기에 당연히 온리원 소속사인 TH엔터 건물 주소인 줄 알았는데
‘여긴 어디야.’
강남 쪽에 있는 한 안무연습실이었다.
보아하니 렌트해서 사용하는 개인 연습실인 걸로 보였다.
건물 전체가 연습실로 사용되는 곳이었는데 강현성은 그중 층 하나를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강현성이 찍어준 층수로 올라가니,
“뭐야.”
바로 연습실로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철문이 하나 있다.
도어락이 있어 함부로 열 수도 없다.
‘이래서 도착하면 전화하라 한 거군.’
강현성에게 전화를 거니,
-왔어요?
“네.”
-열어줄게요.
철문 안쪽에서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늦지 않았네요.”
강현성이 쓰는 개인 연습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오.”
난 감탄하지 않으려 했음에도 짧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으로 마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넓은 게 보인다.
공기 청정기도 세 대나 돌아가고 있고.
거울도 반딱반딱 광이 나며.
에어컨까지 최신형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TH엔터 연습실인 줄 알았던 곳이 강현성 개인 연습실이었던 거네.’
이만한 연습실을 개인이 굴린단 게 놀라웠다.
내 눈에서 놀라움을 느낀 걸까.
“년 단위로 장기 계약하면 월로 따지면 얼마 안 나가요.”
강현성이 먼저 돈 이야기를 한다.
“월에 한 백…….”
“괜찮습니다.”
“네.”
현재 연습실엔 나 외에 다른 멤버들은 없었다.
원바이원과 블레슈 멤버들은 조금 늦을 수 있다 쳐도,
“온리원분들 어디 가셨어요?”
온리원 멤버들까지 없는 건 조금 이상하다.
“얘들이 뭐 커피 같은 거라도 조금 사오겠다고.”
“아.”
“쉬고 있어요.”
난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강현성은 뒤쪽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강현성과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습실 끝과 끝을 점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각선상으로 끝과 끝이다.
이 연습실이 가로로 긴 연습실이니 가능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거다.
마치 혹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둘 다 이 악물고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는 느낌이다.
난 슬쩍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강현성의 동태를 살폈다.
강현성은 핸드폰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거울을 슬쩍 보며 머리칼을 정돈했다.
그러곤,
“아직도 궁금한데.”
“네?”
밑도 끝도 없이 대화를 시작했다.
내 쪽으론 시선도 안 주고 거울만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날 기도실에 어떻게 찾아온 거예요.”
아.
그래.
둘만 남게 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 예상은 했다.
강현성 입장에선 여전히 미스터리겠지.
“아니, 그전에. 대체 왜 날 찾아온 거예요?”
사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 같아도 어이없을 거다.
나랑 사이 안 좋던 애가 내가 입원한 병원에 대뜸 찾아와서 ‘너 왜 거기에 그 꼬라지로 앉아 있냐?’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아마 나였으면 주먹 날아갔을 거 같은데.
이걸 뭐라 말을 해야하나 싶은데,
“동기가 뭐였든 간에, 고마워요.”
“……?”
강현성이 고맙단 말을 했다.
“어쨌든 그쪽 아니었으면 그날 무대 하러 못 갔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날 분명 난 인성 터진 발언만 했는데.
지금 그 발언 대한 감사를 받고 있다.
“물론 듣는 순간엔 화가 나긴 했는데, 지나 보니 본뜻은 그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강현성은 내가 자기를 일으켜 세우려고 억지로 도발한 걸 아는 눈치였다.
하긴.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해 보면 모를 수 없긴 하다.
그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아무리 인성 터진 미친놈이라도 아픈 사람 앞에 가서 도발하고 돌아오진 않으니까.
다른 꿍꿍이가 있었단 걸 모를 수 없긴 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요. 왜 날 찾아와서 밖으로 끄집어낸 거예요?”
강현성이 이번엔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맞추며 묻는다.
어떻게 넘어가야 하나 싶은 순간,
띠, 띠, 띠디띠!
띠리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철문 너머로 온리원 멤버들이 등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여러 가지 사 왔어요~”
박영호가 양손 가득 음료 캐리어를 든 채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강현성과 나는 시선을 돌리곤 각자 핸드폰을 바라봤다.
“응? 뭐지?”
“어? 안녕하세요, 태윤 씨!”
“벌써 오셨어요?”
순식간에 주변에 시끌벅적해졌다.
‘다행이네.’
이렇게 또 한 번 위기를 모면했다.
다만,
‘이거 경연 준비하는 내내 틈만 나면 나한테 왜 찾아왔냐 물을 거 같은데.’
이제야 강현성이 왜 나를 자기 팀으로 끌어왔는지 이해가 갔다.
저 자식은 그날 기도실에서의 미스터리를 풀고 싶어 하는 거였다.
‘하아.’
굉장히 고되고 기 빨리는 경연 준비가 될 것 같았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데,
“그, 태윤 씨, 이거 드실래요……?”
내 쪽으로 다가온 박영호가 음료 한 잔을 건넨다.
한데,
‘이건 또 뭐야.’
휘핑이며 초코칩이며 아무튼 토핑이란 토핑은 다 추가한 벤티 사이즈의 무언가였다.
“……아, 감사해요.”
“맛있게 드세요!”
……오늘 여러모로 쉽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