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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68화 (6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8화

난 박영호에게서 받은 음료를 한 모금 마셔봤다.

그러곤 마시자마자 확신했다.

‘……음모다.’

이 고칼로리 음료는 나를 살찌우게 해서 무대에서 눈에 띄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

“맛있죠, 태윤 씨? 그거 제가 별다방에서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에요!”

……라고 하기엔 박영호가 너무 해맑았다.

난 초코칩 휘핑 어쩌구 저쩌구를 쭉 빨았다.

살찌는 맛이긴 함에도 불구하고,

‘맛있어……!’

솔직히 내려놓기 어려웠다.

그간 샐러드와 닭가슴살 같은 다이어트 식단만 먹고 있었다.

내 혀는 자극적인 맛을 계속 원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쭉 억제하고 있었는데,

“하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맛있어서요.”

“……? 네? 근데 왜 화를…….”

“아니에요.”

음료 한 잔에 무너졌다.

딱 절반만 마시고 더 마시진 말아야지.

난 얼추 절반까지 마신 음료를 연습실 구석에 잘 내려놨다.

그러곤 온리원 멤버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네. 잘 들어갔습니다.”

“오는 길 안 힘드셨어요?”

“네. 안 힘들었습니다.”

“아침밥 먹었어요?”

“네. 대충 샐러드를,”

“에이, 잘 챙겨 드셔야죠.”

“……?”

“하하하! 뭐, 다이어트 늘 해야 하는 거 다들 알고는 있지만, 그냥 덕담처럼 하는 말이었어요!”

난 멍하니 온리원 멤버들을 바라봤다.

사실 아직도 의문이다.

‘대체 왜 날 좋아하는 거야 얘네는.’

얘네 리더랑은 볼 때마다 기 싸움 하는 느낌인데.

이 팀 멤버들은 날 볼 때마다 싱글벙글이다.

박영호는 전에 구해준 이후부터 뭔가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게 느껴지고.

이 팀 다른 멤버들은 그저 이유 없이 내게 잘해준다.

리더랑 멤버들 간에 캐릭터 차이가 극심하니 적응이 안 된다.

‘대체 강현성은 이런 팀에 어떻게 녹아드는 거야.’

미래에 가면 강현성은 온리원이라는 팀 자체에 꽤 애정을 갖게 된다.

미래에서 하는 인터뷰나 공식 활동 때마다 그걸 은은하게 드러내곤 했으니까.

한데,

‘저 강현성이랑 이 햇살들이 친해진다고?’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 간다.

내가 이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게 더 빠르겠다.

그렇게 온리원 멤버들과 잡담……이라고 보기보단 온리원이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시간이 조금 더 이어졌다.

그러고 있자니 중간에 방송국 제작진들이 연습실에 들어오기도 했다.

어젯밤에 문자로 받았던 내용이라 크게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다.

연합팀 미션은 팀이 다 섞인지라 연습 영상을 따로 따기 어려워 관찰 카메라를 붙여두겠다고 했다.

지금 그 관찰 카메라 붙이려고 오신 모양이다.

“이거 저희가 알아서 회수하고 배터리 갈고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연습 잘 하시길 바랍니다~”

제작진들은 그리 말하곤 재빨리 사라졌다.

워낙 빠르게 설치하고 빠르게 나간지라 이 사람들이 있다 간 건지도 모를 정도였다.

“와! 이거 막 나 따라오는데?”

“카메라 진짜 작다.”

“뭔가, 진짜, 연예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인데……?”

“아……. 나 아이돌이 되어버린 걸지도……?”

온리원 멤버들은 설치된 카메라를 보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리 형들 텐션도 높은데 이쪽 텐션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싶은데,

“잡담 그만하고 스트레칭 시작하자.”

강현성이 카메라 앞에서 장난치던 멤버들에게 이리 말했다.

다소 명령조의 말이었는데,

“넵!”

“스트레칭 합시다!”

“흣쨔!”

다들 별말 없이 따른다.

뭔가 위계가 딱 잡힌 느낌이다.

이제야 팀 분위기가 파악된다.

‘체육부 스타일이네.’

우리 팀이 그냥 시끄러운 오합지졸이라면 이쪽은 위아래 서열 확실한 체육부 느낌이다.

온리원 멤버들은 강현성의 말 한마디에 잡담을 뚝 멈추곤 각자 스트레칭에 들어갔다.

그 모습이 놀라워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태윤 씨. 이거…….”

박영호가 내게 뭔가를 건넨다.

난 고개를 내려 박영호가 건넨 그 ‘무언가’를 바라봤다.

다름 아닌,

“……폼롤러.”

내가 선전포고 영상에서 애타게 구하던 폼롤러였다.

“오! 드디어!”

“축하해요!”

“얼른 써봐요!”

이게 저 말투에 조금의 비하나 비아냥이 있다면 분명 기분 나쁠 법한 반응들인데,

‘뭐야. 왜 진심으로 내가 폼롤러 받은 거에 기뻐해 주냐고.’

이 인간들은 나와 폼롤러의 만남을 진짜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아, 예…….”

난 폼롤러를 끼고 몸 곳곳을 문대기 시작했다.

다만 이게 제대로 써본 적이 많지 않다 보니 몸이 삐걱댄다.

내가 어색해하는 걸 본 걸까.

“에이. 폼롤러는 그렇게 쓰면 안 되죠~”

온리원의 또 다른 멤버. 김주현이 다가온다.

생긴 건 참 사납고 우악스럽게 생겼는데,

“부드럽게~ 스르륵~ 스르륵~”

폼롤러 시범을 보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난 김주현을 따라서 폼롤러를 써봤는데,

“자, 입으로 따라 해보세요. 부드럽게~”

“……네?”

“이게 입으로 따라 하는 거랑 아닌 거랑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

캐릭터가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체 어떻게 강현성 밑에서 활동을 하나 싶었는데,

“김주현. 태윤 씨 괴롭히지 마.”

“히히, 넵!”

‘뭐야 이건 또.’

강현성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저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사람이 바로 제자리로 돌아간다.

난 온리원 멤버들과 함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10분쯤 몸을 풀고 있자니,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요.”

원바이원의 김상훈, 최진영이 도착했고.

“진짜 죄송합니다! 제가 아래층이랑 헷갈려서 거기서 10분 동안 멍 때리다 왔어요…….”

블레슈의 강진규도 도착했다.

그렇게 팀원들 모두가 도착하고 나자,

“그럼 슬슬 회의 시작할까요?”

우린 동그랗게 모여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 * *

온리원을 비롯한 총 9명의 우리 팀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이게 이렇게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으니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셀유돌 느낌이네.’

이젠 국민 서바이벌 오디션 느낌이 되어버린 셀유돌과 비슷한 구도다.

거긴 이런 식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아 회의하는 장면이 많았으니까.

먼저 입을 뗀 건 강현성이었다.

“다들 후보곡 하나씩 가져오셨나요?”

어제 헤어질 때 강현성이 했던 말이다.

후보곡 생각해서 오라고.

컨셉은 연하남, 첫사랑 컨셉에 맞춰서.

다들 강현성의 질문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먼저 노래를 틀기 시작한 건 온리원의 박영호부터였다.

“저는 그냥 정석 같은 노래를 들고 왔어요. 하하.”

스피커에 연결해 둔 태블릿 피씨로 박영호가 골라왔다는 곡을 들었다.

‘작년 봄에 나왔던 노래네.’

1군이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2군으로 빼기에도 아쉬운 남돌의 봄 시즌 송이었다.

정석적이다.

연하남, 첫사랑. 둘 다에 어울린다.

“좋다.”

“역시 사람들 생각하는 거 다 비슷하구나.”

사람들 반응도 좋긴 하다만,

“흐음.”

난 좀 우려스럽다.

이런 내 감상과 강현성의 감상이 비슷한 걸까.

“곡도 좋고 이미지도 딱 생각하던 그 이미지라 좋긴 한데, 일단 보류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강현성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설마 그 사유마저 나랑 똑같을까 싶었는데,

“너무 최근 노래고 너무 히트한 곡이라서 위험부담이 있어요.”

……기분 나쁘게 비슷하다.

이후 다른 멤버들의 곡을 하나하나 들어봤다.

하지만 이거다! 싶은 느낌의 곡은 없었다.

이후 원바이원의 김상훈에게서 그나마 변주라면 변주라 할 법한 제안이 나왔는데,

“애니메이션 주제가네요?”

“네네! 어쨌든 첫사랑이라고 하면 추억에 가까운 이미지일 거 같아서, 한번 준비해 봤는데, 어떠세요?”

신선한 접근이긴 했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니까.

아마 우리랑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곡이다.

문제는,

‘가사랑 멜로디가 너무 올드한데.’

지금 이게 추억 보정 받아서 좋게 들리는 거지.

사실 생짜로 멜로디랑 가사만 두고 보자면 지금 나오는 곡들에 한참 밀린다.

가사는 압운과 각운 없이 줄글 형태로 쭉쭉 쓰인 전형적인 애니 주제가 스타일이고.

반주도 그 당시에 유행했던 소스들로 범벅이 된 올드한 타입이었다.

다만 이걸 그대로 말할 순 없다.

어쨌든 저 곡에 대한 애정이 있는 시청자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대체 어떻게 순화해서 말해야 하나 싶은데,

“접근도 신선하고 선곡도 좋았지만 이걸 경연곡으로 들고 올라가기엔 무대를 어떻게 짜야 할지 감이 잘 안 오긴 하네요.”

강현성이 잘 순화해서 말한다.

역시 셀유돌 짬바가 있다.

그렇게 몇 번 더 순번이 돌고 난 후.

내 차례가 되었다.

사실 나라고 막 크게 대단한 곡을 가져온 건 아니다.

그냥저냥 내가 보기에 크게 결격사유 없는 곡을 들고 왔다.

너무 최근 노래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올드하지도 않고.

첫사랑과 연하남에 어울릴 법하며.

히트했던 곡은 아니지만 숨겨진 명곡 느낌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곡.

사실 이렇게까지 필터를 많이 주면 후보군은 몇 개로 줄어든다.

그중 가장 호불호 안 탈 것 같은 곡을 골라왔다.

“라이트 선배님들의 가져왔거든요.”

우리가 2차 경연으로 했던 라는 곡을 부른 라이트의 곡 중 하나다.

라이트의 1집 미니 앨범에 수록된 수록곡이었는데 팬들 사이에서만 유명한 명곡이었다.

라이트가 이런 식의 청순하고 청량한 곡이 많이 없다 보니 그쪽 팬들 사이에선 귀한 곡이라고도 알고 있다.

멜로디도 무난하게 듣기 좋으며.

가사도 어떻게 해석해도 말이 되게끔 해체적으로 쓰여 있었다.

첫사랑과 연하남 컨셉을 하기에 전반적으로 무리 없는 분위기의 곡이었다.

내 선곡이 괜찮은 걸까,

“음.”

강현성이 눈썹을 움찔거리며 꽤 놀란 듯 군다.

다른 사람들도,

“아!”

“맞다. 이게 있었지.”

“좋은데?”

이 선곡이 꽤 맘에 든 모양이었다.

나온 지 꽤 오래돼서 라이트의 무대와 직접 비교될 위험도 적고.

무엇보다 이 곡을 부른 라이트라는 그룹이 이 노래로 무대를 한 횟수 자체가 적다.

아직 대중들에게 소비가 많이 되지 않은 곡이기에 신선함을 줄 수도 있을 터다.

이런 분위기면 이 곡으로 낙점이 되는 것 같았다.

강현성도,

“좋네요. 제가 생각했던 선곡은 안 들어도 될 거 같아요.”

이 곡이 좋단다.

한데 자기 선곡은 듣지 않아도 될 정도라니.

아마 꽤 맘에 들었나 보다.

그래도 궁금은 하다.

저 사람이 대체 무슨 곡을 골라왔을까 싶어서.

해서,

“그래도 어떤 곡 골라오셨는지 들어는 보고 싶은데, 알려주실 수 없나요.”

강현성의 선곡을 물어봤다.

그러자 강현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사실 같은 곡 들고 왔어요.”

무심하게 자기 핸드폰 화면 속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줬다.

그러자 정말로 가장 위쪽에 라이트의 가 있었다.

“그럼 이 곡으로 픽스하고 연습하죠.”

강현성은 핸드폰 화면을 끄곤 이리 말했다.

반면,

‘……망할.’

저 자식과 자꾸만 사고회로가 겹친다는 데에서 난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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