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69화
“그러면 영상부터 한번 볼까요?”
강현성이 태블릿 피씨를 들고 왔다.
그러곤 라이트의 무대 영상을 재생했다.
이미 다들 들어본 곡이기에 크게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게 대중들에게만 안 유명한 곡일 뿐이지 아이돌 팬들과 업계 종사자들에겐 명곡으로 유명하다.
다만 노래는 자주 들었어도 무대는 처음 보는 인원도 있었던 건지.
“아, 이게 이런 분위기의 무대구나.”
이런 멘트들이 나오기도 했다.
어쩌면 이미 본 적 있는데 관찰 카메라 의식해서 한 말일 수도 있고.
영상 시청이 끝났다.
일단 급선무로 이야기해 봐야 할 건 이거다.
“이거 안무 이대로 갈 건가요?”
이 곡은 미디엄 템포에 밝은 멜로디를 갖춘 곡이다.
중독적인 후렴구가 귀에 맴도는 곡이고.
샤워하거나 공부하다 보면 귓가에 멜로디가 은은하게 맴도는 느낌의 곡이었다.
해서 안무도 가볍고 경쾌하다.
이게 무대로 볼 때는 곡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는 요소이나,
“경연용으로 쓰기엔 포인트로 쓸 곳이 없는 거 같아서요.”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볼 수도 있다.
내가 던진 안건에 팀원들이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시작했다.
먼저 입을 뗀 건 원바이원의 김상훈이었다.
“경연용으로 훅이 없는 건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안무를 바꿔버리면 이 밝은 느낌이 안 살지 않을까요?”
저 말도 일리가 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었다.
다만,
“밝은 것도 좋지만 어쨌든 경연은 압도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니까요.”
이 포인트도 분명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흐음.”
“어렵다 어려워.”
다들 진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난 강현성을 잠시 바라봤다.
강현성도 이 곡을 경연곡으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연하남, 이라는 컨셉의 첫 제안자도 강현성이었고.
어쩌면 강현성에게 모든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현성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현성은 먼저 나서서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한참 이야기가 진행된 후 마지막에 자기 말을 꺼내는 타입에 가까웠다.
이게 경청하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라 그런 것 같진 않고,
‘셀유돌 때 생긴 버릇인가.’
자기 의견만 주장하다가 골로 가버린 셀유돌 참가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걸 보고 배운 처세술일 것 같았다.
강현성은 천천히 입을 뗐다.
“경연에 어울리는 포인트도 잡고, 경쾌한 느낌도 잡아보면 어떨까요?”
이런 모범 답안이 나올 것 같았다.
저 답은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답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저걸 실현하느냐다.
“곡에 후렴구가 세 번 나오잖아요. 1절에서 한 번. 2절에서 한 번. 브릿지 후 하이라이트로 또 한 번. 이 중 첫 번째는 기존 안무대로 가고, 나머지 두 번을 조금 포인트 있는 안무랑 구성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요? 그에 맞춰 편곡도 하고요.”
강현성은 나름 청사진을 갖고 말을 했다.
첫 번째까지는 기존 후렴구 안무대로 가고 2절과 브릿지, 하이라이트부터 조금 더 임팩트를 준다.
정석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이러면 경쾌한 느낌과 경연으로서의 압도감 있는 느낌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오, 좋은데요?”
“그쵸. 원곡 느낌도 살리는 게 중요하니까요.”
“나쁘지 않다!”
다들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나도 딱 듣자마자 거부감 없이 저 발언을 받아들였다.
이게 나름 강현성의 강점인 것 같았다.
모두가 손쉽게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방안을 제시할 줄 아는 거.
다만,
‘흐음.’
[1등 확률 : 55%]
줄곧 56%에서 떨어지지 않던 확률이 1% 감소했다.
심지어,
“그러면 이 구성대로 편곡팀에 의뢰를…….”
강현성이 입을 떼자,
[1등 확률 : 54%]
1%가 더 떨어진다.
“잠시만요.”
난 급하게 말을 내 쪽으로 끌어왔다.
“네?”
“왜요?”
시선이 내 쪽으로 집중된다.
난 머리를 짜냈다.
일단 난 강현성의 구성이 좋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발전될 순 있을 것 같다.
강현성이 말한 결에서 크게 멀어지진 않되, 그래도 나름 파격적인 변화를 갖춰보는 구성안을 지금 뱉어야 한다.
통찰을 쓸까 싶었지만 지금은 통찰 타이밍이 아니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본 결과,
“아예, 후렴구를 늘려 버리는 건 어때요?”
이런 답안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1등 확률 : 55%]
수치가 다시 상승한다.
이 방향이 맞단 거다.
“후렴구를 늘려요?”
“네.”
“무슨 말이에요 그게?”
“지금 후렴구 멜로디가 등장하는 게 총 3번 정도잖아요. 1절에서 한 번. 2절에서 한 번. 마지막에 한 번 더.”
“그쵸.”
“차라리 아예 1절에서 후렴구를 두 번 해버리죠.”
“음?”
“그리고 2절은 크게 손볼 것 없이 그대로 살리고요.”
다들 내 발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강현성도 몸을 내 쪽으로 서서히 기울였다.
“3절 초반까지도 비슷한 구성으로 가다가, 이제 브릿지 넘어가고 아웃트로쯤에서…….”
난 잠시 말을 쉬었다가,
“후렴구 멜로디를 그냥 무한 반복시켜 버리는 거 어때요?”
이 구성의 포인트를 뱉었다.
그 순간,
[1등 확률 : 58%]
확률이 또 한 번 급등했다.
“오!”
“아! 나 태윤 씨가 뭐 하고 싶은지 바로 알아챘어요!”
“아아! 뭔지 알겠다!”
“좋은데요?”
반응이 긍정적이다.
강현성이 방안을 냈을 때보다 조금 더 진심에 가까운 반응들이 터져 나온다.
무한 반복, 이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다들 비슷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나 보다.
‘성공이다.’
이렇게 또 한고비 넘긴 것 같아 다행이다.
그때 허공에서 강현성과 내 시선이 잠시 부딪혔다.
왜 갑자기 쳐다보나 싶었지만 그냥 내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금 굳이 눈싸움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면, 방금 그 방안대로 편곡 의뢰해 보죠.”
“넵!”
그렇게 1차적으로 중요한 안건의 회의가 마무리됐다.
이제 기본 안무를 따오는 시간을 가질까 싶었는데,
“안무를 따기 전에 앞서.”
강현성이 다시 입을 뗐다.
“우리 포지션부터 정할까요?”
그 말에,
‘아.’
난 올 게 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런 연합 미션에선 무조건 거쳐 가야 하는 관문.
포지션 정하기였다.
그리고,
‘서바이벌에서 이 타이밍에 갈려 나간 멤버들 많았지.’
아주 맛집 같은 악편 타이밍이기도 하다.
* * *
포지션을 정하자는 말이 나오자 다들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그러곤 입을 꾹 닫은 채 강현성의 눈치만 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섣불리 입을 뗐다간 일 날 거 같다.
이 1등 확률이란 것도 기껏 올려둔 게 다시 떨어질 것 같고.
일단 희망하는 포지션은 리드보컬이다.
무대가 즐겁다, 라는 걸 저번 무대에서 느끼긴 했지만,
‘아직 익숙하진 않으니까.’
이제 한 번 느낀 거다.
난 아직까진 무대가 낯설다.
전면에 나서서 무대를 끌고 가기보단 뒤에서 지원하는 포지션이 되고 싶다.
이건 자신감의 문제라기보단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문제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눈에 띄는 포지션을 하는 게 좋긴 하겠다만, 괜히 메인 포지션 욕심내서 덜컥 받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요즘 케이팝 소비층은 보는 눈이 높아져서 엉망인 무대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으니까.
정말 잘해서 무대 캐리할 자신 없으면 메인 포지션 가져가서 무대 망치기보단, 1인분은 할 수 있을 포지션을 가져가서 무대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게 낫다.
그러니 전략적으로 지금 내겐 ‘리드보컬’이 가장 적합하다.
“태윤 씨 어떤 포지션 하고 싶어요?”
때마침 들어온 질문에,
“저는 리드보컬이요.”
난 1지망을 먼저 말했다.
이 곡에서 리드보컬은 나름 킬링 파트도 많이 있으니 메인 포지션 못지않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안전한 선택지인 셈이다.
“흐음. 일단 알겠어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저는, 그래도 메인보컬 한번 노려보겠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래퍼다 보니 랩을 계속하고 싶긴 한데.”
“저도 아무래도 보컬 라인이다 보니…….”
나름 다들 하고자 하는 포지션과 이유를 잘 말한다.
크게 과열되는 양상 없이 서로 대화를 잘 주고받는다.
보컬 라인이 많아서 그런가.
메보 자리가 좀처럼 잘 안 나긴 하지만,
“그래도, 저보단 시운 씨 보컬이 조금 더 이 곡에 맞는 거 같으니, 메보 자리는 시운 씨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헉! 그러면, 걸어주신 기대에 걸맞은 보컬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온리원 김시운으로 메보가 결정 났다.
메인래퍼는 블레슈의 강진규, 서브는 온리원의 김주현이 됐다.
“한번 잘해봅시다!”
“랩 파트 잘 만들어 보죠!”
두 사람은 메인, 서브 없이 화합하는 모양새였다.
메인댄서는 사실 가장 쉽게 결론이 났는데,
“메댄은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강현성이 지원했기 때문이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1군 경력 특별전형 같은 건 아니고 객관적으로도 강현성이 이 중 춤을 제일 잘 추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팀원 정할 때 메댄 포지션은 한 명도 안 골랐네?’
새삼 강현성의 치밀함에 놀랐다.
“이제 그러면 센터를 정해보죠.”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그게 나왔다.
센터 경쟁.
내가 센터에 큰 욕심이 없는 것과 달리, 몇몇 팀원들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지.
아마 피디도 이 구간을 집중해서 볼 거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건 온리원의 박영호였다.
“연하남 컨셉이니, 제가 나름 잘 살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치. 박영호가 이 팀에서 가장 말랑하게 생긴 편이긴 하다.
“저도, 염치없지만 한번 연하남 센터 지원해 봅니다!”
“저도 센터 한번 노려봅니다! 하하!”
원바이원의 김상훈과 최진영도 지원했다.
난 누가 되든 상관없겠다 하고 관망하고 있었는데,
[1등 확률 : 55%]
‘뭐야 이건 또.’
이 확률이 아주 지 맘대로 줄어든다.
하지만,
‘아직, 50%는 넘잖아……!’
난 조급해하지 않았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확률을 올릴 포인트가 등장할 테니까.
한데,
[1등 확률 : 50%]
‘뭐야 진짜.’
이게 마치 날 가지고 노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절반은 넘는 수치를……
[1등 확률 : 49%]
……안 되겠다.
“염치없지만, 저도 센터 한번 지원해……보겠습니다……. 리드보컬 포지션은 잠시 내려놓겠습니다.”
난 시스템의 닦달에 못 이겨 센터에 지원했다.
그 순간,
[1등 확률 : 50%]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후 지겨운 설전이 벌어졌다.
누가 더 센터에 어울리는가를 두고 한참을 토론했다.
하지만 이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중재안을 내놓은 것은 강현성이었다.
“후렴 안무 따본 뒤 가장 느낌 맞춰서 추는 사람이 센터 가죠.”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나를 포함한 센터 지원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 후렴구 안무를 땄다.
어려운 안무는 아닌지라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심지어 난,
후웅!
이 센터 경쟁에 사활을 걸었기에 아끼고 아껴두었던 통찰을 이 타이밍에 사용했다.
결과야 뭐…….
“태윤 씨 춤을 이렇게 잘 췄어요?”
“와 몸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그렇게 나풀나풀 잘 추시죠……?”
“이게 체격이 커도 말라서 그런 건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인정합니다. 와, 이건 태윤 씨가 센터 서야겠네요.”
“머, 멋있어요……!”
멋있어요는 대체 뭐지. 이게 멋있을 춤은 아닌데.
박영호 눈이 삔 건가.
그렇게,
“봉태윤 씨가 이번 무대 센터 서는 걸로 결론짓겠습니다.”
난 센터가 되어버렸고,
‘하아. 망할. 잘할 수 있으려나.’
걱정스러운 내 마음관 다르게,
[1등 확률 : 65%]
확률은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