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2화
난 모니터링을 끝내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래, 매운맛일 거라곤 예상했다.
현재 더쇼케2는 돌판에서 가장 화제인 소재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반응들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 매운데.’
사람들이 과몰입한 게 핸드폰 액정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아주 열정적으로 누구를 사랑하거나.
아주 열정적으로 기행을 하거나.
아주 열정적으로 누구를 까내린다.
저 열정들이 다 어디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다.
뭐 이런 반응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쉽지 않네.’
매번 모니터링을 할 때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후우.’
난 모니터링을 하느라 과열된 머리를 식혔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방금 막 방송이 끝났다.
-상큼하게 터지는 맛! 킹시 콜라 라임!
광고가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화면과 달리 우리가 있는 연습실 현장은 적막하기만 했다.
방송은 끝났지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온리원 멤버들은 생각이 많은 듯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고.
강현성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블레슈의 강진규는 현장 눈치를 슬쩍 보고는 엉덩이를 들락 말락 하고 있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런 각 재는 거다.
이내,
“전, 이제 연습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진규가 먼저 엉덩이를 떼고 연습실에서 사라졌다.
온리원 멤버들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하하,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했을 뿐이었다.
강진규가 먼저 스타트를 끊자 원바이원의 김상훈과 최진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저녁 일정이 있어서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내일 또 봐요……!”
저 둘도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뒤 연습실을 나섰다.
그래.
이제 내 차례다.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으니 나름 양심은 지켰다고 할 수 있다.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내일 뵙죠.”
의자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뗀 순간,
“뭐 해요.”
강현성이 갑자기 날 부른다.
“네?”
왜 나만 전개가 좀 이상한 건가 싶었는데,
“청소 같이하고 가야죠.”
나보고 청소 같이하잔다.
그러고 보니,
‘맞네.’
뒷정리 안 하고 그냥 튈 뻔하긴 했다.
한데,
‘그럼 앞에 먼저 간 놈들은?’
왜 나만 뒷정리를 도와야 하는 건가.
아니, 돕는 게 맞는 거긴 한데,
‘묘하게 억울하네.’
손해 본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앞서간 사람들은 내일 청소하라 할게요. 오늘은 우리끼리 좀 하죠.”
강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리 말했다.
강현성이 일어나니 온리원 멤버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리 멘탈이 갈려 있어도 강현성이 하자 하니 슬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연습실 청소가 시작되었다.
* * *
온리원과 함께 연습실 청소를 시작했다.
뭐 청소니까 당연히 크게 번거로운 작업은 아니었다.
우선 테이블을 접어서 구석에 두고.
빔 프로젝터 전원을 끈 후.
빔을 쐈던 하얀 천도 치웠다.
그러곤 걸레로 전신 거울을 반딱반딱하게 닦고.
바닥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 뒤.
다시 대걸레로 뽀득뽀득하게 닦아냈……,
‘……왜 이렇게 대청소를 하는 거야?’
문득 정신 차려 보니 이 청소 꽤 큰 작업이었다.
연습실이라는 게 사실 치울 만한 게 많은 공간이 아니다.
연습을 위해 대부분의 공간을 비워두니까.
먼지가 쌓일 만한 구석이 없단 거다.
해서 이렇게까지 청소가 길어질 리가 없는 공간인데,
‘이러다 왁스칠까지 하는 거 아니야?’
바닥에 왁스라도 먹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난 전신거울을 마른걸레로 한 번 더 닦아내다 말고 주변을 둘러봤다.
강현성을 비롯한 모두가 청소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특히 강현성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다.
창틀에 손가락을 스으윽 훑더니 묻어나오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꼼꼼히 체크한다.
난 저거 만화에서나 봤지 실제로 하는 사람 있는 줄 몰랐다.
한쪽에선 진공청소기 돌리고.
다른 쪽에선 걸레질하고.
한 사람은 한 톨의 먼지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깐깐하게 굴고.
환상의 청소쇼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 마른걸레로 거울을 마저 닦았다.
이게 괜히 나도 청소 작업에 열중하게 된다.
‘이 먼지 괜히 거슬리네.’
유리라 그런지 마른걸레로 닦아내도 떨어지지 않는 먼지가 있게 마련이다.
일단 닦아야 할 면적은 전부 닦은 후 먼지가 있던 포인트들로 돌아가서 손가락으로 먼지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작업이라 마치 홀린 듯 거울 위 먼지만 찾아보고 있는데,
“……태윤 씨.”
“아 깜짝이야.”
뒤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박영호가 손에 대걸레 봉을 붙잡고 서 있었다.
“네?”
왜 날 불렀나 싶은데,
“아, 이제 슬슬 가셔도 된다고요. 너무 청소에 열중하신 거 같아서요……. 하하.”
이제 가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난 마지막으로 봐뒀던 먼지만 손가락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걸레를 정리했다.
이제 가려는데,
‘뭐야.’
박영호가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영호 멘탈이 좋지 않은 건 얼추 알고 있다.
한데,
‘오늘 방송에서 박영호 탓에 욕을 더 먹은 느낌도 있으니까.’
박영호의 무대 실수가 결정적 포인트가 되어 여론이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상황이었다.
다만 이건 박영호의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
물론 실수한 건 안타깝긴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네?”
“실수는 실수지만, 방송을 그렇게 만들어낸 건 피디잖아요. 자책하지 말고 차라리 남탓을 해요.”
굳이 누가 더 잘못했냐를 따지자면 편집을 이따위로 한 피디 탓이다.
또한,
“다음 주만 돼도 여론 뒤집힐 수 있으니 괜한 걱정하지 마요.”
아마 4화분부터 온리원을 위한 눈물의 똥X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원래 한 번 꺾였다가 다시 올라가는 게 추진력이 더 강한 법이다.
물론 너무 꺾이면 안 되긴 하다만.
이 정도 꺾인 거면 어떻게든 복구 가능할 거다.
이 눈물의 똥X쇼는 우리 팀이 받았으면 싶었던 건데.
‘하아. 엉켰어.’
이게 어째 예상과는 반대로 간다.
이게 내가 왜 박영호를 위로해 주는지는 모르겠다.
맘 같아선 나도 위로받고 싶은데.
하지만 그냥 지나가기엔 비 맞은 개마냥 낑낑대는 거 같아서 양심에 찔렸다.
“그, 저 갈게요. 힘내세요.”
난 박영호의 팔을 두어 번 툭툭 두드려준 후 인사했다.
다른 온리원 멤버들에게도 인사하니 다들 잘 가라며 작게 인사를 해줬다.
난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 *
박영호는 봉태윤이 나간 자리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곤 봉태윤이 툭툭 치고 간 팔뚝을 잠시 매만졌다.
위로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위로를 받았다.
전에 넘어질 뻔할 때도 구해주고.
뭔가 삶의 귀인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내가 한 살 많지 않나?”
묘하게 자신을 동생 대하듯 대한다는 거였다.
생각이 깊어지려 했으나,
“슬슬 준비하고 우리도 내려가자.”
“네.”
“네에.”
“후우우.”
강현성의 한마디에 현실로 돌아왔다.
박영호는 들고 있던 걸레를 정리했다.
봉태윤 말대로 지금은 자책을 하기보단 차라리 남탓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그게 정말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멘탈 잡자.’
지금 멘탈 마저 잃으면 안 될 테니까.
아직 방송 끝난 것은 아니다.
언제고 반등의 순간은 올 것이다.
* * *
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지하엔 WD엔터의 승연 씨가 차량을 주차시킨 채 대기하고 있었다.
늘 타던 승합차가 아닌 자그마한 경차였는데,
“제 개인차예요. 승합차는 지금 현아 씨가 타고 멤버들 이동시키는 중이라서요.”
뭐, 무슨 차든 상관없었다.
대중교통보다야 무조건 편할 테고, 괜히 사람들 눈에 띌 일도 없을 테니까.
“감사해요. 데리러 와주셔서요.”
“아뇨! 당연하죠! 자 그럼 출발할게요~”
승연 씨는 그리 말하며 시동을 걸었다.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 방송 모니터링하셨어요?”
그때 승연 씨가 내게 물었다.
“아, 네. 했어요.”
“지금 진짜 반응 장난 없지 않아요?”
“아, 네. 그러더라고요.”
“진짜 이러다가 일 나는 거 아니에요? 막 진짜 우승을 하거나…….”
난 승연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째 나보다 더 흥분하신 것 같긴 하다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말이다.
실제로 오늘 방송을 통한 유입이 상당히 많아질 것 같긴 했다.
현재 더쇼케2는 뚜렷한 팬덤 없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꽤 많은 방송이다.
망돌들 모아서 한다는 화제성과 자극성 덕분에 말이다.
한데 어느 팬덤이라 하기 어려운 그 중간층을 이번 무대를 통해 대거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슬슬 오피셜 SNS를 그룹명으로 파야 하나 싶다가도, 이게 조금 시기상조인 것 같기도 하고…….”
현재 우리 SNS는 세이렌 오피셜이 아닌 WD엔터 계정이었다.
WD엔터 계정을 통해 간혹 우리 사진이나 방송 알림 같은 것만 올리는 중이었다.
사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기에 오피셜이 아닌 회사 계정을 쓰는 건 자연스럽긴 하다.
다만,
‘만들 타이밍이 지났긴 하네.’
사실 이미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니 진작에 만들었어야 했다.
“이건 형들이랑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겠네요.”
공식 세이렌 SNS에 대한 건 형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데,
“아, 그, 태윤 씨.”
“네?”
“지금 숙소 가면, 조금 분위기 잘 확인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예?”
난 승연 씨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숙소 가서 분위기 확인할 게 뭐가 있단 거지.
“그게, 지금 현아 씨한테 전달받아 보니 연습실 현장 분위기가 엄청 엉망이었다고…….”
현장 분위기?
아마 현장 분위기라 하면 그 연습 현장이었을 텐데.
‘뭐가 있나 보네 진짜.’
아까 연훈이 형이 오늘 방송도 같이 못 볼 거 같다고 말한 걸 보면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문제인지는 가면 확인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지잉.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문자가 온 거다.
누가 보냈나 싶은데,
‘원바이원 최진영?’
방금 나랑 연습하고 간 원바이원 멤버였다.
내용은,
-그, 태윤 씨. 일단 먼저 사과부터 드릴게요. 이게 저희도 방금 숙소 와서 들은 건데 저희 팀 멤버랑 세이렌 멤버분들이랑 마찰이 조금…….
원바이원의 멤버 김준혁, 이영준과 우리 팀 형들 간에 마찰이 있었다는 거다.
김준혁과 이영준은 봉태윤 없는 봉태윤 팀의 팀원들인 사람들이다.
한데 내용을 쭉 읽어보니,
‘뭐야 이거.’
지금 나한테 문자를 보낸 원바이원 최진영조차 본인 멤버들을 두둔하는 게 아니라 탓을 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 우리 쪽 애들 잘못일 거라고.
최진영의 문자는 꽤 장문이었는데 마지막은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아마 준혁이랑 영준이가 꽤 다루기 어려울 텐데, 멤버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씀 전달 부탁드립니다.
대체 본인 팀 멤버조차 이렇게 말할 캐릭터라면 어떤 캐릭터인 건지…….
분명 무대는 잘했던 거 같아서 내가 뽑았던 건데,
‘뭐야 대체.’
아마 엄청난 트롤을 내가 들였나 보다.
원바이원은 회귀 전에도 너무 망했던 그룹이라 정보가 부족해서 멤버들 인성에 대한 건 잘 알지 못했다.
그래도 평균 정도의 인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아.’
문제가 있나 보다.
“그, 저희 숙소로 빨리 좀 가봐야겠네요.”
“아, 네! 얼른 가죠.”
세상엔 대가리를 깨야 할 종자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