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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73화 (7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3화

숙소에 도착했다.

“감사합니다. 승연 씨.”

난 승연 씨에게 인사한 후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승연 씨가 뭐라고 인사를 한 것 같은데 죄송하게도 듣진 못했다.

지금은 한가하게 인사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원바이원의 김준혁과 이영준.

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그 두 새X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내가 저 두 사람을 뽑았을 땐 크게 계산이 있진 않았다.

무대를 잘했으니 뽑은 거다.

원바이원의 무대 중 가장 엉망이던 무대.

제목도 기억 안 나는 그 조폭 컨셉의 무대에서 저 둘이 그나마 살아남았다.

비주얼도 나쁘지 않았고.

잘한 무대에서 잘하는 걸 보는 것보다 망한 무대에서 잘하는 걸 봐야 실력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나쁘지 않게 팀에 녹아들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어딘가 결격사유가 있나 보네.’

내가 잘못 판단했나 보다.

원바이원 최진영이 보냈던 문자 내용 중 걸리는 단어가 있었다.

‘컨트롤 하기 어려워?’

보통 이런 말은 고집이 똥고집인 애들한테나 쓰는 말인데.

몇 가지 그림들이 그려졌지만,

‘일단 확인 먼저 하자.’

정황을 확실히 알기 전엔 섣불리 생각하진 않기로 했다.

24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왔어?”

거실 소파에 연훈이 형이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딱 봐도 기가 쭉 빨린 것 같은 얼굴로 말이다.

거실 등도 할로겐 등만 켜둬서인지 더 처량해 보인다.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

난 형광등까지 켜서 거실 조명을 좀 더 밝혔다.

하지만 조명을 아무리 밝혀도 이 어두침침함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 중인 연훈이 형 때문이었다.

“다른 형들은요?”

“……각자 방에 있을 거야.”

“제가 오늘 오면서 팀에 트러블이 있었다고 듣긴 했는…….

탁.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연훈이 형이 나한테 달려와서 안겼다.

“태유나……. 진짜……. 어쩌지……?”

“……?”

“대체……. 애들이 그렇게 나빠……?”

나쁘다고?

“진짜 하루 종일 너무 숨 막혔어. 흐읍. 우으음…….”

연훈이 형은 눈물을 참는가 싶더니 결국 울어버렸다.

대체 그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가늠이 안 된다.

물론 연훈이 형 반응을 일반적인 반응이라 볼 순 없다.

연훈이 형은 남들보다 감정선이 더 다이나믹한 사람이고.

또 지금은 서바이벌에 대한 책임감도 있다 보니 현재 더 감정적이 된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좀 더 객관적인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사람.

“동준이 형!”

동준이 형의 방문에 대고 소리를 치자 한참 있다가 문이 살짝 열렸다.

동준이 형이 방 밖으로 나왔다.

한데,

‘동준이 형도 얼굴이 좋진 않잖아?’

신경줄 굵은 저 사람도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연훈이 형 우네?”

“네.”

“형 괜찮아요? 울지 마요.”

“우우우……. 동주나…….”

“형이 오늘…… 마음고생 심했죠.”

연훈이 형은 다시 내 품에 안겨 울었다.

난 동준이 형에게 눈으로 물었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동준이 형은 한숨을 푹 쉬며 소파로 갔다.

나도 허리춤에 붙은 연훈이 형을 끌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이게, 설명하면 간단한데, 또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안 될 거 같기도 하고.”

“뭐가요?”

“정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냥 똥고집 부린 거야.”

“음.”

내가 예상했던 단어가 나왔다.

똥고집.

원바이원의 김준혁과 이영준이 고집을 부리며 의견을 꺾지 않았나 보다.

“근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자면…….”

“네.”

“그런 말 알지. 멍청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

“네.”

“근데 그거보다 더 위험한 게 있더라고.”

“뭔데요.”

“애매하게 실력 있는 놈이 신념을 가지면 진짜 위험해.”

무슨 상황인지 알 거 같다.

“그 원바이원 무대 중에 조폭 컨셉 있었지? 그게 김준혁이랑 이영준 머리에서 나온 거더라고. 에휴 참.”

저 에휴 참이라는 탄식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 무대가 멤버 아이디어였다고?’

난 1차적으로 여기서 놀랐다.

당연히 감 없는 대표가 시킨 건 줄 알았는데.

“그 무대로 꼴등 했으면 정신 차릴 법한데, 꼴등 한 이유가 컨셉 때문이 아닌 멤버들이 그 컨셉을 제대로 소화 못 해서라고 믿는 눈치야. 자기네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이제야 왜 애매하게 실력 있다고 말한 건지 알겠다.

그 조폭 컨셉 무대에서 그나마 컨셉을 살렸던 게 김준혁과 이영준이었다.

분명 그 둘은 무대 하는 능력 자체는 쓸 만하지만 아이디어가 아주 구린 타입들 인가보다.

그러니 구린 아이디어도 얼추 그럴듯하게 소화는 하고, 그럴듯한 수준으로 몇 년을 버티다 보니 자신들의 감이 좋다고 믿게 된 거다.

‘망했네.’

동준이 형의 표현이 딱 맞다.

애매하게 실력 있는 놈들이 신념을 가진 케이스라고.

한데 여기서 끝은 아닌가 보다.

“걔네는 성격도 진짜 나빠!”

허리춤에 붙어서 울고 있던 연훈이 형이 울분에 차서 외쳤다.

동준이 형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마 팀 내에서 지네가 왕 노릇 하나 봐. 그래서 막 남 놀리고 은근히 조롱하는 거에 도사더라.”

“설마…….”

“연훈이 형이 오늘 걔네 때문에 고생 좀 했지.”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 내 앞에 있었으면 진짜 아구창 딱 한 대만 세게 때리는 건데.

“어떤 타입인데요?”

“흐음. 말꼬리 잡고 늘어지고, 괜한 걸로 놀리고, 은근히 남 의견 무시하면서 둘이 여론 몰아가고?”

개쓰레기들이네.

“연훈이 형이 안건 내면 우우우우~ 별로다~ 하면서 장난스레 말하는데, 보면 알잖아. 그냥 연훈이 형이 만만해 보이니까 서열 정리하려고 나대는 거지.”

“나 안 만만해! 내가 착하게 말하니까 걔네가 나쁘게 군거야!”

“그쵸. 맞아요. 형 안 만만해요.”

단순 묘사일 뿐인데 벌써 혈압이 솟는다.

왜 최진영이 자기네 팀인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사죄 문자를 보냈는지 알 거 같았다.

이걸 뭐 어떻게 복수하지.

그냥 가서 후두려 패면 안 되나.

“뭐, 지들은 막 그런 식으로 여론 조장하면서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컨셉으로 몰고 가고 싶은가 봐.”

“뭔 컨셉을 하고 싶대요?”

“이번엔 좀 멋있는 거 하고 싶다고. 조선판 사이버 펑크에 중세풍을 섞어보재. 뭐 조선 사이버 펑크 무사랑 중세 기사랑 일대일 대결 하는 무대를 하자던데.”

“……?”

“맞아. 우리랑 온리원 무대 짬뽕하자는 거야. 거기에 구린 소스들 조금 더 발라서.”

“……뭐 하는 놈들이에요?”

동준이 형은 어깨를 으쓱하고 올리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암튼 동준이 형의 설명을 들으니 오늘 상황이 어땠을지 예상이 간다.

어떻게든 좋게 풀어보려는 연훈이 형을 계속 놀리고.

자기네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풀어가려 하고.

근데 그 방향이 너무 구려서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데.

그럼에도 저 노답 트롤러 둘은 자기네들이 맞다며 똥고집을 부리는.

‘진짜 지옥편이네.’

어처구니가 없다.

“그것들 촬영 중인데도 그따위로 행동을 해요?”

“중간중간 배터리 갈려고 카메라 끌 때만 그러더라고.”

“하, 진짜.”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와가지고.

다만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근데 도승이 형이 그 꼴을 보고 있었어요?”

이게 궁금하다.

우리의 가죽가살 강도승이 주제 모르고 설치는 트롤러 둘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

카메라가 있든 없든 우선 뚝배기부터 깬 뒤에 얼차려 시켰을 거 같은데.

한데 이 부분에서 동준이 형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은 왜 안 나와?’

두 사람이 계속 안 보인다.

처음엔 씻고 있거나 편의점이라도 간 줄 알았다.

한데 기척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게, 그냥 트롤러 둘이 있다, 하는 걸로 끝나면 우리도 무시했을 텐데, 하필이면 불똥이 우리 쪽으로 번져서 활활 타올랐어.”

“우리 쪽이요?”

“운이 형이랑 강도승이 싸웠어.”

“네?”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다.

운이 형이랑 도승이 형이 싸워?

대체 왜?

두 사람은 가끔 볼 때면 금슬 좋은 노부부가 아닌가 싶은 사이였다.

WD에 오기 전 같은 기획사 출신이었고.

그곳에서부터 연습을 같이 오래 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나 정이 깊은 사이인데,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 성격 정반대잖아.”

“네.”

“그 원바이원 멤버 둘 대하는 거에서 확 틀어졌어.”

“어떻게요?”

“도승이 형은 그냥 적극적으로 무시하고 가자는 쪽이었고, 운이 형은 어떻게든 끌어안으려는 쪽이었고.”

아, 두 사람의 성격이 극단적으로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치.

도승이 형 성격상 그런 트롤러 둘을 안아줄 리가 없다.

때리지 않은 걸로도 많이 참은 거지.

하지만 운이 형 성격상 아무리 트롤링을 하더라도 안아줄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 못된 사람은 없다, 라는 게 운이 형의 모토가 아닌가 싶었으니까.

“근데 이제 그게 도승이 형 보기에는 짜증이 났나 봐. 중간에 둘이 따로 가서 얘기를 하더라고.”

“그 뒤부터 서로 계속 쭉 냉전 상태인 거예요?”

“어. 연습실에서부터 둘이 한마디도 안 하고 시선도 안 마주치고 있어.”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가 외부에 있는 거면 욕하고 잊고 말지.

그 문제가 내부로 침투해 오면 해결하고 봉합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후자의 문제가 더 핸들링하기 어려운 편이다.

난 운이 형 방문과 도승이 형 방문을 각각 바라봤다.

사실 운이 형 방은 동시에 내 방이기도 하고, 도승이 형 방은 동시에 연훈이 형 방이기도 하다.

“연훈이 형.”

“……우음?”

격해진 감정이 좀 진정이 된 연훈이 형이 고개를 들며 날 올려다봤다.

난 형을 허리에서 떼어냈다.

“오늘은 운이 형이랑 도승이 형 해결부터 하고 자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 내부의 문제는 연훈이 형에게 맡기는 게 나을 터다.

어쨌든 리더고, 동시에 나랑 동준이 형이 가는 것보단 연장자인 연훈이 형이 가는 게 그림이 더 좋다.

“……그치. 해결해야지.”

연훈이 형은 눈물을 슥슥 닦고는 진지한 얼굴로 고심했다.

원바이원의 김준혁과 이영준은 나중에 손보기로 하고.

일단은 팀 내부부터 봉합해야 한다.

“내가 가서 얘기해 볼게.”

연훈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도승이 형 방으로 들어갔다.

끼익.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연훈이 형이 밖으로 나온다.

그러곤 이번엔 운이 형 방으로 들어갔다.

또다시 시간이 흐른 후.

끼익.

연훈이 형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나랑 동준이 형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해결됐어요?”

내 질문에,

“오늘은 이야기하기 싫대…….”

연훈이 형은 축 처진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해결이 안 된 모양이었다.

“하아.”

“후우우.”

나랑 동준이 형은 동시에 한숨을 푹 쉬었다.

“평소엔 사이도 좋은 인간들이 참. 흐으음~”

동준이 형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일단은 그럼 자고, 내일 또…….”

난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말을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이유론,

[1등 확률 : 60%]

오늘 연습 가서 통찰까지 써가며 겨우겨우 65%까지 끌어올린 확률이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아…….”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데,

[1등 확률 : 59%]

그새 수치가 또 떨어진다.

이 말은 지금 이렇게 생각만 하는 동안에 우리 팀 내의 감정적 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단 거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알 길이 없다.

난 머리를 짜냈다.

3차 경연은 1등을 해야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와줬으면 싶은데,

“그냥 운이 형이랑 강도승 한 방에서 재우면 되지 않을까~”

동준이 형이 지나가듯 한 소리 했고,

[1등 확률 : 60%]

그에 반응하듯 확률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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