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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75화 (7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5화

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소리 내지 않기 위해 입술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에라도 욕을 지껄이게 될 것만 같았다.

연훈이 형이 자고 있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러곤 눈앞의 장면을 똑바로 바라봤다.

배경은 한 커피샵이다.

이 근처에서 본 적 없는 프렌차이즈의 커피샵인 걸 보니 숙소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닌가 보다.

고모가 의자에 앉아 날 바라보고 있다.

미래시 속 나는 맨투맨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둘 다 내가 가진 옷들 중엔 없는 옷인 걸 보니 아마 가까운 미래는 아닌 모양이었다.

미래시, 라는 게 3인칭의 시점으로 미래를 보여주니 이런 것도 확인이 가능하다.

난 고모의 인상착의와 얼굴을 확인했다.

품이 넉넉한 홈드레스에 이상한 패턴 등이 잔뜩 그려져 있는 옷이다.

언제나 그렇듯 화려하고 요상한 인상착의다.

얼굴 상태는,

‘더 늙었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3년 전에 비해 더 늙었다.

그렇게 술을 퍼마셔대고 담배를 피워대니 관리가 안 될 수밖에 없겠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예상이 가능하다.

당연히,

-너 돈 좀 벌었겠더라?

돈에 관한 거다.

어쩜 이리 클리셰적으로 못된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철이 들 무렵부터 놀랐던 거다.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리셰적인 못된 어른의 표상이 내 옆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단 것에 말이다.

어쩌면 그 덕에 정신을 빨리 차리고 그 집구석을 벗어날 수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근데 넌 나한테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먹여주고 재워준 정은 정 아니냐? 넌 은혜도 갚을 줄 몰라?

그래.

당연히 이런 말도 나와줘야 한다.

-당장 급한 대로 방송 나가면서 받은 출연료라도 좀 줘봐. 연예인들 출연료 회당 몇백에서 몇천씩도 받는다며.

미래시 속의 고모는 내 예상을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난 이제 말 따위엔 집중하지 않았다.

주변 환경을 보며 다른 걸 찾아보려 했다.

날짜를 확인할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나와주길 바랐다.

벽에 달력이 걸려 있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누군가의 말소리로 날짜를 유추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후웅!

미래시가 끊어졌다.

날짜를 알아내지 못한 채 말이다.

‘하아. 망할.’

소득이 없이 끝난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다만,

‘고모가, 날 찾아오는 건 확정이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알았으니 됐다.

고모.

내가 꿈에라도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내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도 않았던 시기에.

해서 그다지 애틋함이 있다거나 하진 않다.

문제는 그 후에 내게 일어난 일들이다.

내 친권을 가져간 게 하필이면 고모였고.

고모라는 인간은 윤리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후우.’

머리가 지끈거린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저 인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두고 생각해 봐야 한다.

급히 핸드폰을 뒤졌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직 있네…….’

철이 들 무렵부터 난 대비를 해왔다는 거다.

언젠가 고모와의 지긋지긋한 연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한 시기가 올 것임을 알고 말이다.

아, 내가 말한 철이 들 무렵은 남들보다 꽤 이른 나이다.

지금부터 대략 9년 전.

10살 무렵부터다.

난 손상된 데이터들은 없는지 확인한 후 몇 가지 준비 사항들을 생각해 봤다.

되도록 고모라는 인간이 내 삶에 더 이상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리는 없지.’

그 인간의 성격상 그럴 리가 없단 걸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얼씬도 못 하게 해야겠어.’

다가올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어야 한다.

* * *

박수철 피디와 작가진은 가평에 있는 한 펜션에 앉아 밤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편집할 게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일 핑계를 대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여기 좋네, 진짜 좋다.”

박수철 피디는 술 한 잔을 쭈욱 들이킨 후 그리 말했다.

어지간히도 이 공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편집실 갇혀 있다 나와서 더 좋은 거 아니에요?”

한 작가의 물음에,

“사실 편집실에만 있다 보면 그냥 화장실만 가도 좋아.”

“하긴, 뭐.”

오늘 그들이 가평의 펜션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더쇼케2 MT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다만 MT는 기획단계에서 엎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아이디어가 사라진 거냐.

그건 아니다.

MT 기획안은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파쇄기로 들어가지 않고 디벨롭 되어 다른 형태의 기획으로 재탄생했다.

“합숙 훈련이 과연 도움이 될까요? 참가자들 무대 퀄리티에?”

바로 합숙 훈련이었다.

이젠 낡다 못해 닳아 빠진 아이디어긴 하다.

합숙, 이라는 테마는 너무 많이 사용되어 그 신선함이 죽어버린지 오래니까.

다만,

“연합팀이잖아. 이런 그림 딸 기회가 이번뿐이야.”

지금 만들어진 연합팀은 흔치 않은 그림이다.

따두면 두고두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며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거다.

당연히 시즌 3나 4가 이어질 때 무형의 이득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도 방송국에만 있지 말고 공기 좋은 곳 가서 좀 쉬면서 하자.”

한곳에 참가자들 가둬두고 경치 좋은 곳에서 일과 힐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만,

“일은 우리가 다하잖아요. 사실 일이 훨씬 많아진 건데.”

“참가자들도 딱히 좋아하진 않을 거 같은데요?”

밑에 작가진들은 불만이 많다.

많을 수밖에 없다.

일과 힐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건 피디뿐이고.

결국 작가진은 더 많은 일, 더 높은 노동, 더 긴 노동시간 외엔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따로 더 챙겨줄게. 미안해.”

피디는 그리 말하며 술 한잔을 더 들이켰다.

“내일부터 공지 다 나가는 거지?”

“네.”

“그래. 우리도 딱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 빡일 하자.”

박수철 피디는 그리 말하며 안주를 한 점 집어 먹었다.

“자~ 잘 해봅시다~ 건배!”

“……건배.”

“……와아아.”

그렇게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대형 기획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아침이 되었다.

새벽 6시에 기상하는 건 이제 익숙해진 패턴이었다.

운이 형이랑 잘 때는 6시면 둘이 같이 일어나서 이불 정리를 했는데,

“……연훈이 형.”

“…….”

“연훈이 형!”

“…….”

“형!”

“……으으?”

연훈이 형은 꼭 세 번을 불러야 일어나는 사람이다.

형이 뜬 건지 감은 건지 애매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침이라 얼굴이 부었는데도 잘생기긴 했다.

“아침이에요.”

“아. 아아! 나 좀만 더 잘래!”

“씻어야죠!”

“태윤이 너 먼저 씻어.”

“저 씻는 동안 일어날 거예요.”

“어어어. 그럴게. 씻어.”

“진짜죠?”

“엉! 빨리 씻어.”

저 말이 진짜일 리는 없다.

아마 당연히 더 자겠지.

난 헛웃음을 지은 후 욕실로 들어갔다.

방마다 욕실이 있으니 이런 게 참 좋다.

씻고 나와보니 당연히 연훈이 형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탁탁 털며,

“연훈이 형!!”

“으아악!”

아주 큰 소리로 형을 깨웠다.

그제야 연훈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얼른 들어가서 씻어요.”

“……응.”

연훈이 형이 털레털레 욕실로 들어가는 걸 본 후에야 난 방 밖으로 나왔다.

거실엔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져 있었다.

오늘 식사 당번은 원래 난데,

“일어났냐.”

“네.”

도승이 형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그냥 내가 했어. 먹자.”

아마 어제 운이 형이랑 싸워서 팀 분위기 안 좋게 만든 게 미안했나 보다.

시키지도 않은 아침 당번을 자처해서 하다니.

때마침 샤워를 마친 운이 형이 방에서 나왔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간밤에 화해를 마친 걸까.

“와아. 맛있겠다. 간만에 한식이네?”

“어제 먹고 싶다 했잖아.”

“아침부터 준비하기 어렵다며.”

“한 30분 일찍 일어나면 되는 건데 뭐.”

스스럼없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평소의 그 노부부 텐션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한데 이 정도 반찬의 가짓수면,

‘1시간은 일찍 일어났겠는데?’

30분 일찍 일어난 걸로는 안 될 거다.

계란말이에, 된장찌개에, 겉절이도 새로 무치고, 불맛 나게 바짝 볶은 제육볶음까지 있다.

‘동준이 형이 좋아하겠네.’

동준이 형이 사랑하는 밥도둑 한상차림이다.

“저 동준이 형 깨울게요.”

“응. 다녀와.”

“안 일어나려 하면 그냥 욕실에 집어 던져 버려.”

“네.”

난 동준이 형 방문을 열었다.

당연히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킁. 킁.

눈을 감은 채로 앉아서 코를 킁킁대고 있다.

“……?”

이게 뭔가 하고 보니,

“……태윤이냐?”

“네.”

“……그, 된찌랑 제육, 계란말이야?”

“……네?”

“……나 얼른 씻고 나올게.”

최근에 샐러드만 먹인 게 한이 된 건가.

음식 냄새 맡고 일어나다니.

놀라울 정도다.

저 정도면 진짜 개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강아지로 모에화 해주니 서서히 더 개를 닮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형들이랑 다 같이 한 식탁에 모이니 그제야 마음이 평안해졌다.

사실 간밤에 본 그 고모에 관한 미래시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탓에 잠도 설쳤고.

하지만,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나, 진짜 오늘만 고봉을 허락해 주면 안 될까, 도승이 형?”

“안 된다니까.”

“우음! 너무 맛있어! 도승아! 너 된장찌개에 뭐 약 타는 거 아니지?”

“약이요?”

“아니,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거야?”

아침 밥상 앞에 서니 근심이 사라진다.

뭐가 됐든 닥쳤을 때 해치우면 되겠지란 근거 없는 희망이 샘솟기도 한다.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형들은 오늘 몇 시쯤 돌아올 거예요?”

“으음. 아마 10시?”

“하아. 그 자식들 고집 꺾으려면 더 늦어질 수도 있지.”

“잘 견뎌내고 올게.”

우린 각자 연습실로 찢어지려 했다.

그때,

지잉.

지잉.

지잉.

…….

우리 모두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응?”

“뭐야?”

동시에 진동이 울리니 당연히 의아할 수밖에 없다.

화면을 보니,

“어?”

형들 입장에선 꽤 난감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건 내 입장에서도 꽤 난감했다.

난 분명 MT를 가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데,

-더쇼케2 단체 합숙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일부턴 팀별 연습실로 찢어지지 말고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연습하세요!

-내일 오후 12시까지 아래 링크로 달아드린 펜션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합숙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MT가 합숙 훈련으로 바뀌었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고작 하루 앞두고 알려주다니.

참 일 한번 지독하게 한다 싶었다.

아마 더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우리보다,

지이잉.

“어? 현아 씨한테 전화 왔다.”

WD엔터의 유일한 실무진이라 할 법한 현아 씨와 승연 씨일 터였다.

‘이런 것도 갑질인 걸 방송국 놈들은 모르는 걸까.’

어쩌면 하루 전에 말해줬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합숙이면, 이런저런 컨텐츠는 많겠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단 좋은 일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진짜 합숙 훈련만 시키기보단 유입을 끌어모을 수 있을 법한 포인트나 게임, 기회 등을 제공할 테니 말이다.

아직 온리원에 비하자면 팬덤이 약하기에 이런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때,

지잉.

내 핸드폰이 한 번 더 진동했다.

뭔가 싶어 보니,

-우리 합숙 간다던데, 확인했어요?

뜬금없는 인간의 문자였다.

번호 교환하고 나서 한 번도 사적인 연락은 없었는데,

‘뭐야 이 새끼.’

강현성이 갑자기 나한테 문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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