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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76화 (7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6화

왜 나한테 문자질인 거지 이 자식은?

그간 사적인 연락 한 번 없다가 합숙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런 문자가 왔다.

뭐 꿍꿍이라도 있는 사람 같은 문자다.

합숙 훈련이 있단 말은 그곳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한단 거다.

‘뭐 먹고 자고 하는 곳이니 기합이라도 주겠다는 경곤가.’

이 문자가 일종의 선전포고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헛웃음을 지으며 생각을 접었다.

강현성 관련한 무언가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과하게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그냥 별 뜻 없이 문자 한 걸 수도 있을……

-가서 각오해요. 연습 열심히 시킬 테니까.

……진짜 기합이라도 줄 생각인가 보다.

그것보다 얘 문자 말투는 왜 이리 묘하게 아저씨 같은 건가 싶다.

난 핸드폰을 껐다.

뭐라고 답장을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어차피 몇 시간 후면 얼굴 볼 테니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합숙 훈련 어떻게 하지?”

“그러니까.”

“가면 아마 그룹별로 모이는 게 아니라 팀별로 모이는 거겠죠?”

형들 얼굴 위로 수심이 깊어졌다.

“그 원바이원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자고 해야 하는 거지……?”

연훈이 형의 말에,

“……하아.”

“진짜…….”

“나, 가서 걔네 때리지 않게 잘 좀 잡아줘.”

“……응. 근데 장담 못 해. 나도 때릴 수 있을지 몰라.”

동준이 형, 도승이 형, 운이 형이 이런 반응을 쏟아냈다.

나 같아도 원바이원의 김준혁과 이영준이랑 같이 자야 한다 하면 이런 반응일 거다.

연습할 때에도 그렇게 밉상인데.

생활을 같이해야 하는 거면 얼마나 밉상이겠는가.

심지어,

“우리 일주일 합숙하는 거지?”

“네.”

“하아아.”

하루 이틀 합숙하는 게 아니다.

무려 일주일을 합숙한다.

일주일 동안 멘탈 갈릴 일이 없을 리가 없다.

“……참을 인 세 개면 살인을 면한다잖아.”

“……나 이미 한 백 번은 참을 인 새긴 것 같은데.”

“……후우우.”

형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카메라 앞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표정 관리 하자.”

“어쨌든 잘 웃고 대답만 잘하면 된다.”

“사람이 아니라 개가 짖는다 생각하자.”

“주먹이 나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형들은 무슨 염불이라도 외우듯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일단 합숙은 합숙이고 오늘치의 연습은 또 따로 해야 하는 거니까.

우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주차장엔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얼굴이 좋진 않다.

아마 합숙 훈련 관련해서 우리랑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게 한가득일 거다.

한데,

“아, 그 연훈…… 씨?”

“……네?”

더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 형들 탓에 아무 말 못 하고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형들은 털레털레 차량에 올라탔다.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올라가기 전.

“그, 현아 씨. 승연 씨.”

“네?”

“음?”

난 두 사람을 잠깐 불렀다.

두 사람 다 합숙 훈련 관련해서 머리가 아플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말해야 할 게 있는데,

“혹시, 저희 가족 관련해서 전달받은 특이사항 있으신가요?”

고모에 관한 거다.

현재 팀장이 있기 전 전임 팀장은 내 가정 상황에 대한 부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걸 현재 팀장인 윤태형에게도 인수인계했을 거고.

그렇다면 현아 씨와 승연 씨도 해당 부분에 대해 전달받은 게 있어야 할…….

“아뇨?”

“무슨 일 있으세요?”

……역시 어림도 없다.

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른 후 천천히 입을 뗐다.

“그, 아마 제 고모라는 사람이 어쩌면 회사로 연락을 해올지도 몰라요.”

“네.”

“고모분이요?”

“네. ‘고모’가요. 제 스케줄에 관한 거나 숙소 위치 등 아무것도 알려주시면 안 돼요. 아니, 그냥 모든 질문에 다 대외비라고만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난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거듭 당부해서 말했다.

두 사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줬다.

묻고 싶은 게 꽤 많은 얼굴이다.

왜 하필 고모인 건지.

그리고 왜 아무것도 알려주면 안 되는 건지.

다만 두 사람 다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다.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챈 건지,

“알겠어요!”

“걱정 마요!”

추가 질문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다만,

“근데, 그거 말고 합숙 훈련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사전에 출연진들한테는 통보가 되었던 거예요?”

내 가족 문제 말고 합숙 관련해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나 보다.

“아, 저희도 오늘 처음 전달받은 겁니다. 짐이나 그런 건 저랑 형들이 알아서 챙길 테니까 그냥 차 끌고 오셔서 펜션으로 이동만 시켜주시면 됩니다.”

“아, 네. 알겠어요.”

“만일 필요한 거 생기면 연락 줘요.”

우린 필요한 정보들만 서로 공유한 뒤 차량에 올라탔다.

나는 강현성의 연습실이 있는 곳 바로 앞에서 내렸다.

형들은 단체 연습실이 있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이따 밤에 보자.”

“잘 가.”

“연습 잘 해.”

형들은 먼저 내리는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데 몰골들이,

‘어디 팔려가는 사람들 같네.’

힘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번 합숙 때 김준혁, 이영준을 밟긴 밟아야겠어.’

이대로 뒀다간 형들 사기에 크게 영향을 끼칠 것 같다.

난 멀어지는 차량을 뒤로하고 연습실로 올라갔다.

* * *

연습실로 올라가니 오늘은 다른 팀 멤버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저들끼리 모여 합숙 훈련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이게 우리 형들이랑은 참 대비되는 것이,

“이거 링크 보니까 완전 풀빌라던데요?”

“수영장 있는 거 봤죠?”

“와, 진짜 이런 데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수영복 챙겨가는 게 좋겠죠?”

“지금 3월인데 수영을 하겠다고요……?”

“……혹시 모르니까요.”

다들 합숙 훈련을 엄청 기대하고 있단 거였다.

전에 미니게임을 할 때엔 이렇게까지 신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미니게임 대회는 연습시간을 뺏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그런 것 같고.

이건 어쨌든 합숙으로 연습 효율을 올릴 수 있는 거다 보니 다들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특히 박영호가 가장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는데,

“저 이런 여행 같은 거 가는 거 처음이에요! 그, 여름 성경학교 빼고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같은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단다.

“어? 저돈데.”

“저도요.”

“사실 여기 다 그러지 않을까요?”

그 말에 다른 연습생들도 공감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나이가 다 이십 대 초반이다.

그 말은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했단 거다.

연습생 생활을 하다 보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같은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워지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간에 연습을 더 할 수 있으니까.

비슷한 예로 체육부 애들이 그런 여행 안 따라가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물론 그런 행사 전부 참여하는 애들도 있겠지.

다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더 이런 합숙 훈련에 들뜬 것 같았다.

“태윤 씨도 이런 여행 처음이시죠?”

그때 박영호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다만 자주 가본 것도 아니긴 하다.

“몇 번 가보긴 했어요.”

“와! 부럽다!”

“영호 씨도 여름 성경 학교 갔다면서요.”

“아, 저는 그, 가서 전도사님들 도와드리느라, 놀지를 못해서.”

그렇게 박영호와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니 멀리서 강현성이 다가왔다.

눈은 웃고 있는데 뭔가 입은 할 말이 많은 듯한 입꼬리였다.

뭔가 싶어 보니,

“늦었네요?”

“아, 늦었나요? 정각에 맞춰 왔는데.”

“어제보다 늦어서요.”

“아, 네.”

이 무슨 꼰대 부장 같은 발언인가 싶었다.

댁이 내 월급 주는 사람도 아닌데 정시에 맞춰 오기만 하면 되는 걸 왜 트집질인가,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 참았다.

“문자 봤어요?”

“네. 봤습니다.”

내 말에 강현성은 약 3초간 아무 말이 없었다.

“가서 연습 열심히 해보죠.”

“네.”

그렇게 별 소득 없는 대화가 끝나고.

이제 슬슬 연습에 들어가려나 싶은데,

“그, 태윤 씨.”

내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원바이원의 최진영과 김상훈이었다.

얼굴들을 보니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지 알겠다.

“그, 어제 세이렌 멤버분들 멘탈 괜찮으셨나요?”

역시.

김준혁과 이영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왔나 보다.

“사실, 어제 숙소 들어가니까 영준이랑 준혁이가 자기들이 막 세이렌 기강 잡았다면서 이상한 무용담 같은 걸 풀길래, 세이렌분들이 정말 고생하셨을 것 같아서 내내 걱정했거든요.”

숙소 가서 기강 잡았다며 무용담을 퍼뜨리다니.

세상 저렇게 밉상인 캐릭터가 어찌 있나 싶었다.

진짜 맘 같아선 대가리 한 대씩 세게 때리는 건데…….

내 표정이 싸해지는 걸 느낀 걸까.

“진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걔네가 말은 그렇게 해도 본질은 착한…….”

“네. 알겠습니다.”

난 더 말을 섞지 않았다.

여기서 뭐 본질은 착한 애들이다, 알고 보면 정 많은 애들이다, 이따위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그랬다간 오늘 연습 분위기를 내가 다 망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한데 세이렌 기강 잡았다며 좋아하다니,

‘어처구니없네.’

우리 형들이 어떤 마음으로 지들을 품었는지 알아야 하는데.

맘먹고 기죽이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외모부터 실력과 아이디어까지.

뭐 하나 우리 형들보다 나은 게 전혀 없는 놈들인데.

어떤 꼴로 주둥이를 놀렸을지 뻔히 상상이 가니 더 치가 떨린다.

가능하면 분쇄기에 갈아버리고 싶은데…….

“연습에 집중하죠, 저희.”

인간을 분쇄기에 갈아버리면 범죄가 되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네. 연습합시다.”

“……잘 부탁드릴게요.”

연습은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이어졌다.

안무를 따고.

안무를 외우고.

강현성이 따로 편곡자에게 부탁해서 받아온 편곡 러프 버전에 맞춰 코레오를 조금 손봤다.

편곡자가 굉장히 손이 빠른 건지 러프본임에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괜찮았다.

“이번 주 중으로 완성본 나올 텐데, 일단 구성이나 느낌은 이 러프에서 바뀌는 거 없을 거예요.”

“와.”

“이런 능력자를 어디서 찾아오신 거예요.”

“역시 리더님. 편곡을 뒤집어 놓으셨다.”

이제 다들 제법 강현성이 편해진 건지 이런저런 농담을 던졌지만,

“연습하죠.”

강현성은 사람 무안하게 아무에게도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코레오는 대부분 강현성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다들 이런저런 아이디어는 많이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강현성의 안무가 최종 안무로 선택됐다.

눈치 보는 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강현성이 짠 안무가 가장 곡에 어울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춤을 원래 그렇게 못 췄어요?”

“……노력 중이잖아요.”

통찰 없이 맨몸으로 그 안무를 따다 보니 내 밑천이 조금 털렸다는 거다.

관찰 카메라 메모리 갈 때 나온 강현성의 솔직한 한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이러다간 센터에서 밀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결국 오늘치의 통찰을 또 한 번 안무 따는 데 써버렸다.

갑자기 내 실력이 일취월장해서일까.

“……?”

연습 중 강현성이 의아하단 듯 날 쳐다봤고.

“노력 중이라 했잖아요.”

난 의연하게 그 시선에 대답했다.

그렇게 저녁 8시까지 연습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제 슬슬 연습이 끝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을 즈음.

띵-동.

누군가가 연습실 벨을 눌렀다.

한창 연습 중이던 우리들은 처음 울린 벨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지어 온리원 멤버들도 벨이 울린 건 처음 보는 눈치였다.

오직 강현성만 예상한 일이란 듯 마스크를 끼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내 녀석은 양손 가득 박스들을 들고 올라왔는데,

“응?”

“뭐죠?”

“배달음식이 아니었어요?”

다들 본능적으로 그 박스 주위로 몰려들었다.

“팀 만들어졌을 때 팀워크를 다질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나름 준비해 본 겁니다.”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박스를 뜯었다.

“운 좋게 합숙 훈련 바로 전날에 도착했네요.”

뭔가 싶어서 보니,

“응?”

“와!”

“단체복이에요?”

“헉! 이거 이번에 새로 나온 모델 아니에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맨투맨, 트레이닝 팬츠 세트였다.

두 피스 합한 가격이 대략 20만 원은 하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안 받아가요? 태윤 씨?”

그 옷의 디자인이었다.

강현성이 이런 걸 준비했다는 것에 놀랄 틈 따위 없었다.

저 옷은,

“……감사해요. 잘 입을게요.”

미래시 속, 내가 고모와 있을 때 입고 있던 옷과 동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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