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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77화 (7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7화

난 강현성이 건네준 옷을 멍하니 바라봤다.

“라지 사이즈 맞죠?”

“……네.”

이 까칠한 인간이 언제 사이즈까지 맞춰서 옷을 주문했나 싶었지만,

‘……이 옷이 여기서 나오냐 왜.’

심란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모와의 만남이 나는 꽤 후일 거라 생각했다.

미래시에서 보고 왔던 옷이 내가 가지고 있던 옷이 아니었으니까.

당분간 해당 옷을 살 계획이 없었던지라 아마 몇 개월쯤 후이지 않을까 싶었던 건데,

‘이러면 합숙 기간 중에 나타난다고 봐야겠네.’

훨씬 더 앞당겨졌다.

하긴.

지금 더쇼케2는 아이돌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도 꽤 어필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 시청하는 층은 아이돌 덕후들뿐이겠지만 그 프로그램의 이름과 몇몇 클립 등은 일반인들에게도 꽤 퍼진 상태다.

그러니 아마 내가 돈을 꽤 벌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방송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고모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보니 미래시 속 그 프렌차이즈 카페가 어딘지 알겠다.

아마 펜션 근처에 있던 카페인가 보다.

카페 창 너머 풍경에 왜 그리도 단층 건물들이 많나 싶었는데 애초에 서울이 아니었던 거다.

방송국 제작진들에게는 아마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거다.

왜 고모를 피해 다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걸 말할 생각을 하니,

‘……미치겠네.’

머리가 아프다.

내 표정이 안 좋아서일까.

“옷이 맘에 안 들어요?”

강현성이 묻는다.

“아뇨. 좋습니다. 이렇게 단체로 구매하기엔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뭐, 싸진 않죠.”

“감사히 잘 입을게요.”

난 옷을 꽉 쥐었다.

“와! 이거 핏 대박이야!”

“역시, 참 리더님. 평생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진짜 돈이 좋긴 하구나.”

팀원들은 강현성이 준 옷을 입고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 마음 환심 사는 데엔 스포츠 브랜드 옷 선물이 가장 빠르단 걸 강현성도 간파하고 있었나 보다.

강현성과 팀원들 간에 남아 있던 그 일말의 어색함마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게 보인다.

특히 온리원 멤버들은 강현성에게 이젠 가벼운 장난까지 걸 정도로 편해진 게 보이고.

긍정적인 현상이다.

처음엔 강현성네 팀에 들어온 게 다소 걱정됐는데,

‘어쩌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네.’

강현성 개인으로서의 인성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리더로서는 좋은 리더인 것 같다.

문제는,

‘어쩌냐.’

고모와의 만남이다.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문제 있어요?”

“……네?”

강현성이 또 한 번 불쑥 들어왔다.

놀란 바람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뭐 이렇게 기척 없이 다가오는 건지.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요.”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요.”

“그게 뭔데요.”

“……제가 말해줄 필요까지 있나요?”

“……그렇긴 하죠.”

강현성은 아무 말 없이 날 빤히 쳐다봤다.

난 어쩌라는 건가 싶어 미간을 구겼다.

그제야 강현성은 한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문제가 있는 거면 그냥 두지 말고 먼저 가서 해결해요.”

그러곤 나름 조언을 건네줬다.

문제가 있는 거면 그냥 두지 말고 먼저 가서 해결하라고?

뭐, 좋은 말일 수도 있으나 이걸 그대로 실행하긴 어렵다.

나보고 고모한테 직접 찾아가서 먼저 선공 먹이고 연 끊어내 버리라고?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맞는 말이잖아?’

갑자기 시야가 확 하고 트였다.

그래.

이렇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내 핸드폰엔 이미 수많은 증거와 자료들이 있다.

몇 년간 미친 듯이 모았던 것들이다.

더 나아가 지금이 아니면 쓰기 어려울 몇 가지 방법들도 있고.

굳이 언제 고모가 찾아올까 전전긍긍해할 필요 없이 먼저 선공을 날리면 되는 거였다.

“……맞는 말이네요?”

“……?”

“맞아요. 먼저 가서 해결해 버리면 훨씬 속 편한 거긴 하죠.”

강현성은 다소 놀란 듯 묘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러곤,

“누굴 때리거나, 치거나, 밀거나, 그런 건 아닌 거죠?”

“……네?”

“……아닙니다.”

이 자식이 대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뭐 나도 저 자식을 좋게만 생각하는 건 아니니 상관없다.

어쨌든 해결 방법이 나왔다.

도망만 칠 게 아니었다.

난 스물넷……이 아닌 지금은 열아홉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신연령은 스물넷이다.

고모에게 말 거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떨 나이는 지났다.

어린 시절 생긴 이미지란 꽤 오래가나 보다.

사실 고모는 이제 늙고 건강마저 잃은 중년인일 뿐인데.

맞을 일도, 고함을 듣는다고 겁먹을 일도 없다.

“고마워요.”

난 강현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뭐라고요?”

강현성은 놀란 듯 날 쳐다보며 물었지만 두 번 말해주진 않았다.

그렇게 다들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패션쇼 하는 시간이 좀 더 이어졌다.

“다 같이 옷 입고 사진 찍어요!”

박영호의 요청에 다들 거울 앞에 섰다.

이게 다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묘하게 웃기다.

그렇게 사진들까지 착실하게 찍은 후,

“자. 다시 연습합시다.”

강현성 주도하에 추가 연습이 이어졌다.

합숙 전날이라 그런가.

평소보다 더 길게 연습을 한 후 밤 10시쯤에야 다들 헤어졌다.

“수고 많았어요~”

“내일 펜션에서 봐요!”

“다들 잘 가요~”

나도 날 데리러 온 현아 씨의 차량에 타서 숙소로 이동했다.

* * *

숙소로 들어가니 형들이 소파 근처에 축 처져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왔어, 태윤아?”

“……수고 많았어.”

“……저녁 먹었어?”

“……고생했다.”

형 넷이 저러고 있으니 웃지 않으려야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웃어?”

“우리가 어떤 고생을 하고 왔는데?”

물론 형들은 내 웃음에 더 배신감을 느낀 것 같으나 웃긴 건 웃긴 거였다.

“짐은 다 쌌어요, 형들?”

난 형들이 과연 할 일을 다 하고 저러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니.

“안 쌌지.”

“이제 해야지.”

“하아아. 싫다.”

형들은 짐 싸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형들이 게을러서 지금껏 짐을 안 싼 게 아니다.

아, 조금 게으르긴 하지만 짐까지 안 쌀 정도로 게으른 건 아니다.

아마 정서적인 반발감이 강해서 미적거리고 있던 것일 터다.

“클렌징폼 챙기고…….”

“잠옷도……. 트레이닝복도…….”

옷을 싸는 형들의 손발이 한없이 느리다.

결국 내가 나서서 형들 짐을 쓸어담았다.

캐리어 네 개가 뚝딱 만들어졌다.

이제 내 캐리어를 쌀 차례였는데,

“그 옷은 처음 보는 거다?”

“이거 이번에 새로 나온 거 아냐?”

형들은 내 손에 들린 옷에 관심을 보였다.

“강현성 선배님이 단체복으로 돌렸어요.”

내가 이리 답하자,

“…….”

“…….”

“……하아. 개부러워.”

형들은 침묵으로 답하다가 부럽다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옷이 부러운 게 아닌 거다 저건.

옷을 돌릴 정도로 훈훈한 팀 분위기를 부러워하는 거다.

대체 얼마나 저 팀 분위기가 엉망일지 상상이 안 간다.

문제는,

[1등 확률 : 64%]

확률이 미미하게 떨어진단 거다.

형들의 사기 저하가 무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었다.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 팀 구성은 내가 만든 거니까. 폭탄을 만들어두고는 나만 다른 곳으로 튄 느낌이다.

“괜찮은 거죠, 형들? 오늘 유독 심한데요?”

“오늘, 연습이 유독 어려웠거든.”

“대체 왜요?”

“오늘은 자꾸 딴짓을 하려고 해서…….”

“딴짓이요?”

“안무 영상 보다가 다른 영상 틀고, 그냥 지들끼리 거의 랜덤플레이 댄스를 하더라고.”

“……?”

“틈만 나면 밥 먹고 하자고, 음료 마시고 하자고. 아직 컨셉도 제대로 못 정했는데 시간 많다고 그러고.”

“대체…….”

“화장실 한번 갔다 하면 10분 넘게 안 돌아오고.”

“말 한번 시작하면 10분 넘게 지들끼리 떠들고.”

“안무 하나 좀 집중해서 만들어 보자 하면 지네들끼리 몸개그하면서 웃고 있고.”

“근데 그거 알지. 너무 지들끼리 신나 보이니까 저기에 태클 걸면 오히려 우리가 쫌생이 되는 것 같은 그림인 거야.”

형들은 한번 입이 터지자 마치 화수분마냥 말을 쏟아냈다.

정말 얹힌 게 많나 보다.

어제까진 김준혁과 이영준을 끌어안으려 했던 운이 형이었는데.

“나도 이제 도저히 못 참겠더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이 형이 포기한 인간이란 건 이미 폐급 중에서도 폐급이란 거였다.

“아마 우리가 짠 컨셉이 아직도 싫어서 그러는 거 같아.”

“싫어서 일부러 연습 방해한다고요?”

“게임하다 보면 자기 말대로 안 해주면 게임 던지는 애들 있잖아.”

“네.”

“딱 그런 정도의 애들이야…….”

“어차피 최종 1등은 물 건너갔다 싶으니까 지들 맘에라도 드는 무대를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어차피 잃은 거 없다고 더 막 나가는 느낌이야.”

“아니, 방송 타면 욕먹을 거 뻔히 알 텐데 그런다고요?”

“자기네들 딴에는 지들이 영악하게 편집점 잘 골라서 그렇게 군다고 생각하나 봐.”

“와…….”

미래가 슬슬 보인다.

미래시가 없어도 볼 수 있는 미래다.

해당 촬영분이 방영되었을 때 그 둘이 어떤 여론 속에 내던져질지 말이다.

피디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형들이 말해준 정도의 작태였다면 감춰질 수 없다.

더 나아가,

‘이건, 각이 섰네.’

아마 제작진들 중에도 이 사태를 확인한 사람들이 많을 거다.

매일 연습실 촬영분 떠가서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아마 제작진들 내부적으로도 현재 누가 말썽이고, 팀별로 어떤 이슈가 있는지 보고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합숙 훈련에서 뭐가 생겨도 분명히 생길 수 있을 거 같은데.’

제작진 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합숙 훈련 가서 마저 더 이야기해 보려고.”

“어떻게든 해봐야지.”

“후우.”

형들은 한숨을 푹 내쉬며 전의를 다졌다.

다만,

[1등 확률 : 63%]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다짐들과는 달리 확률은 자꾸 떨어지기만 한다.

이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 트롤러 둘 때문에 1등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말이다.

덩달아 나도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었지만,

“일단, 씻어 태윤아.”

“우리도 자자.”

“너무 애 붙잡고 안 좋은 소리만 했다.”

형들은 내가 더 걱정할까 싶어 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도승이 형과 연훈이 형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랑 운이 형도 방으로 들어갔다.

운이 형은 곧장 이불을 편 후 누웠고 난 샤워실에 들어갔다.

‘쉽지 않네 상황들이.’

샤워를 하며 어떻게 하면 합숙에서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낼지 생각했다.

고모와의 인연을 마무리 짓는 것과.

고삐 풀린 김준혁과 이영준을 잠재우는 것.

대충 생각해 둔 바가 있긴 하지만,

‘가서 또 봐야지.’

현장 상황은 알 수 없으니 속단할 순 없다.

몇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만 놓고 여러 가지 플랜을 짜두는 것밖에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머리칼을 말리고 방으로 나오니,

“자요, 형?”

운이 형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난 방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도 불이 꺼진 채였다.

아마 형들 전부 잠든 것 같았다.

하긴.

하루 종일 폐급들 상대하고 왔는데 기 빨리는 것도 당연하겠지.

난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곤 오래전에 지웠던 번호를 더듬더듬 기억해 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래 간단 말이 맞나 보다.

잊으려고 그토록 노력했건만 아직도 고모의 핸드폰 번호 8자리가 선명히 기억난다.

난 번호를 꾹꾹 누른 후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뭐 예의 따질 사람도 아니고.

상관없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다.

이내,

-여보세요?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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