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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78화 (7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78화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난 핸드폰을 쥔 채 심호흡을 했다.

아마 고모는 내 번호를 모르고 있었을 거다.

집을 나온 후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따로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내게 남아 있는 사람 중 ‘가족’이라 부를 만한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정으로서의 가족은 절대 아니고, 혈육으로서의 가족일 뿐이지만.

심장이 거세게 두방망이질을 한다.

이건 회귀 전에도 없었던 일이다.

난 집을 나온 후론 한 번도 고모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한다.

-누구세요?

전화기 너머 고모가 나에게 누구냐 묻는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 이럴 법도 하다.

목소리가 살짝 작아진 것이 겁이라도 먹었나 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으면 절로 무서운 생각이 들겠지.

난 천천히 입을 뗐다.

“봉태윤입니다.”

내 이름 세 글자를 들어설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짝 위축되어 있던 숨소리가 금세 편안해진다.

아니, 편안을 넘어 약간의 흥분감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이제 곧 넘어올 대사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아마,

-아 X발 이 새끼가 이제야 전화를 거네.

그럼 그렇지.

욕이다.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더해진다.

-내가 안 그래도 너 찾으려고 했어. 분수를 몰라도 정도껏이지. 연예인 흉내라도 내는 중이야?

예전부터 그랬다.

고모는 내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이런 반응이었다.

너 같은 새끼가 어딜 밖에 기어나가냐면서.

집안에 처박혀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라고.

그러면서 뒤에 꼭 붙이는 말이,

-지 애미 애비도 잡아먹은 새끼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밖으로 나돌아.

내가 엄마 아빠를 잡아먹었다는 말이었다.

하도 안 듣다가 들어서 그런가.

데미지가 쌓이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난다.

난 저 말들을 어린 시절부터 매일 들어왔다.

그땐 한마디, 한마디가 아팠었는데.

“고모. 말조심하세요.”

이젠 아프긴커녕 간지럽지도 않다.

-뭐? 미쳤냐?

“조용히 좀 하시라고요, 고모.”

-너나 입 닥쳐. 어디 함부로 입을 나불거려! 내가 너 연습생 계약이고 뭐가 싹 다 찢어버리는 수가 있어!

내가 조용히 하라는 한마디 했다고 지금 이렇게 박박 악을 지르며 무리수를 둔다.

난 아직 미성년자라 친권자인 고모의 동의 없이 계약이 불가능해서 WD엔터와 연습생 계약할 때 고모를 끼고 계약을 했다.

한데 지금 그 계약서를 찢겠다며 아주 발악을 하는 거다.

지는 나한테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했으면서.

내가 한마디 대들었다고 이렇게 할 말 못 할 말 안 가려가며 냅다 되는 대로 뱉는다.

이 인간이 이렇게 추한 인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한테 온갖 궂은일을 시키면서 내가 하기 싫다 하면 욕이란 욕을 다 하며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땐 몰랐다.

고모가 하는 말이 다 맞는 말인 줄 알았다.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고모가 하라는 모든 걸 다 해야만 했다.

가볍게는 가사 노동에서부터.

그 외에는 거의 조롱에 가까운 체벌이나, 화풀이로밖에 안 보이는 매질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저건 병이다.

아마 나를 자기 밑에 깔아두고 어떤 권력놀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내가 그 말들을 들을 필요는 없다.

“계약서 찢든 말든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몇 개월 후면 저 성인이에요. 그때 다시 계약 체결하면 되고요.”

사실 연습생 계약서를 고모가 지금 해지해 버리면 일이 복잡해지긴 한다.

더쇼케2 경연은 4월 초면 끝난다.

그때 우리가 1등을 하게 되면 제일그룹과 WD엔터 사이에 합작회사가 세워질 거다.

그 합작회사로 계약서가 이관되어야 하는데, 그때 이관할 계약서가 없어지는 셈이니까.

다만 사정 설명을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합작회사에선 어떻게든 계약 문제를 해결한 후 데뷔를 시킬 거다.

이미 방송을 탄 데뷔 그룹의 멤버니까.

다만,

‘일단은 계약서가 남아 있는 게 가장 안전하긴 하지.’

이게 가장 베스트이긴 하다.

물론,

“계약서 찢으세요. 나중에 다시 체결할게요.”

고모한텐 이렇게 세게 나가는 게 낫다.

-내가 찢으라면 못 찢을 줄 알고?

“찢으라니까요.”

-야! 너 어디서 이렇게 건방지게 굴어! 내가 너 입혀주고 먹여주고 재워준 것도 모르고 이따위로 싸가지없게 구는 건데!

내가 계약서 찢겠단 말에 꿈쩍도 안 하니 다른 방향으로 악을 지른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다, 라…….

“나한테 뭘 먹이고, 뭘 입히고, 어디에서 재워줬는지, 잊었어요?”

어처구니가 없다.

-사람 하나 더 거둬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네가 모르는구나?

“사람 하나 키우는 거 힘들죠. 하지만 고모는 날 키운 적 없잖아요.”

-뭐?

“그건 학대에요. 고소당하기에 충분한.”

-뭐? 학대? 야아!

난 핸드폰에서 귀를 잠시 뗐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악을 지른다.

몇 년이 지나도 이 인간은 변하질 않는다.

내가 이렇게 드잡이질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다.

그래도 몇 년 만에 이렇게 전화해서 말을 받아치니 짜릿한 맛은 있었다.

다만 본론은 꺼내야 한다.

“고모. 얼굴 한번 보죠.”

-뭐? 얼굴을 봐? 당장 집으로 들어올 생각이나 해! 내가 너 계약서고 뭐고 다 찢어버리고 너 애미 애비 잡아먹은 호로 새끼인 거 전부 풀어버릴 거니까!

내가 얼굴 한번 보자는 말을 하니 또 같은 레퍼토리로 날 협박한다.

“하아. 맘대로 하세요. 그러면 저도 고모 고소할게요.”

-하, 참나. 고소? 너 같은 새끼가 하는 말을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뭐, 말은 못 믿어도 증거는 믿겠죠.”

-증거?

“보여드려요?”

난 고모 번호로 이미지 파일 한 개를 보냈다.

맞아서 멍들었던 흔적들이다.

“더 있는데, 더 보여드릴까요?

-……내가 그랬다는 증거도 없잖아? 어디서 뭣도 아닌 걸로 협박질이야!

“고모가 때렸다는 증거도 있는데, 그것도 보내드려요?”

-……뭐?

“예전에 전화하면 몇 대 처맞은 걸로 또 집 나갔냐며 욕하셨잖아요. 들어오면 더 처맞을 줄 알라고 으름장도 놓으셨고요.

-…….

“그것도 다 녹음되어 있어요.”

요즘 핸드폰이란 참 좋다.

통화 녹음이 가능하니까.

내가 처음 사용했던 핸드폰에도 통화 녹음 기능이 있었다.

“아, 지금 이 통화도 녹음 중이었어요.”

물론 지금 핸드폰도 당연히 통화 녹음 기능이 있고.

“그러니까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요. 장소랑 시간은 제가 정해서 알려드릴게요.”

-……너 X발 만나서 죽여 버릴 수도 있어 내가.

“하, 참나.”

죽여 버린다라.

“……진짜 무섭네요. 하하.”

어쩜 이리도 저 말이 안 무섭게 들릴까.

“죽을 때 죽어도 얼굴은 봐야죠. 제가 또 문자 할게요.”

이제 보니 고모라는 인간은 그저 악랄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었다.

악랄하고 찌질하며 겁까지 많은 인간이었다.

이런 인간한테 그간 그토록 밟히며 살아왔다니.

그 사실 자체가 나한테 치욕이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고모.”

-이, X발 새,

뚝.

난 고모가 더 욕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가 올 걸 대비해 곧바로 고모 번호를 차단해 버리기도 했고.

하도 고함치는 걸 들어서인지 한쪽 귀가 축축하게 느껴진다.

“하아아아.”

난 한숨을 푹 내쉬며 귀를 어루만졌다.

이거 난청 생기는 거 아닌가 싶은데…….

“……태윤아.”

거실 한구석.

내가 눈치 못 챈 사람이 있었다.

운이 형이었다.

“……형?”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통화 내용을 들었으려나.

아마,

‘들었겠네.’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이 적막한 거실에 안 퍼졌을 리가 없으니까.

“그, 어디서부터…….”

“아, 그게,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라. 물 마시려고 나왔다가, 아주 조금만 듣게 됐어…….”

아주 조금만이라.

사실 아주 조금만 들어도,

‘거를 타선 없이 전부 욕인데.’

나랑 통화 중인 상대가 일반적인 사고 흐름을 가진 인간이 아닌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고모랑, 통화를 한 거야 지금?”

그 욕을 한 바가지로 쏟아내던 인간이 고모라는 걸 운이 형이 들은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형들에게 내 가정사를 알릴 생각까진 없었다.

이게 뭐 좋은 거라고 알린단 말인가.

한데,

“아……. 그게요.”

지금 이 상황에선 말을 안 하기에도 애매하다.

물론 무답으로 응할 수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운이 형 성격상 내가 못 물어볼 걸 물어봤구나, 하며 돌아갈 테니까.

한데,

“……고모 맞아요.”

형에게 알릴 생각은 없었는데,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운이 형 얼굴 위로 그늘이 들기 시작한다.

“괜찮아, 태윤아?”

형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네. 괜찮아요. 늘 있던 일이라. 정말로…….”

그렇게 말을 하려는데,

“괜찮아. 말 안 해도 돼.”

운이 형이 소파로 다가와서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꽤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운이 형이 차분하게 손바닥으로 내 등을 토닥여줬다.

분명 통화를 마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고모야 늘 나한테 욕을 하던 인간이니까.

굳이 이제 와서 감성적으로 굴거나 신세 한탄 따위 할 생각 없었다.

한데 왜 갑자기 이렇게 울컥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

“괜찮아. 내가 무슨 일이 있던 건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랑 있잖아.”

난 운이 형 품에 안겨서 입술을 깨물었다.

울 생각은 전혀 없다.

울 만한 일도 아니고.

한데,

‘뭘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피부에 닿는 운이 형의 온기가.

등을 일정한 박자로 토닥여주는 손길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마치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마냥 마음으로 스며들어 왔다.

원래 내 성격이었다면 운이 형이 안아줄 때 그대로 몸을 내뺐을 거다.

한데,

꽈악.

……오늘은 조금 더 세게 운이 형을 안았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적막하게 울려 퍼졌다.

어쩌면 조금 놀랐었나 보다.

욕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들을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그 놀랐던 마음이 지금 차분하게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거실 소파에 앉아서 운이 형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후 내 숨소리가 고르게 펴진 걸 느낀 걸까.

“……가서 잘까 이제?”

운이 형이 조심스레 물었고,

“……네.”

난 천천히 답했다.

운이 형과 나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잘 자. 잠 설치지 말고. 이불 목 위까지 덮고.”

“네. 고마워요.”

“아냐. 내일 보자, 태윤아.”

분명 오늘은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생각할 게 많으니 밤새 생각 정리를 하면 될 것 같았는데,

“…….”

왜인지, 깊은 잠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불 끝을 꽉 쥐고 있던 손이 부드럽게 펴진다.

그렇게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아, 망할.”

난 회귀 후 처음으로 아주 거하게 늦잠을 자버렸다.

문제는,

“아아아아악!”

“큰일 났어!”

“으아아아악!”

“우리 대체 왜 단체로 늦잠 잔 거야!”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늦잠을 잤던 거였다.

오늘은 합숙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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