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4화
난 두 귀를 의심하며 방금 강현성이 뱉은 말을 해석하려 했다.
하지만 해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문장 그대로의 뜻이었으니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려는데,
“와, 자신감!”
“멋있다아아!”
“크으!”
팀원들 반응은 좋다.
방금 그 대사가 자기들 귀에는 멋있게 들렸나 보다.
그래 뭐, 실력 없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면 우습게 들렸겠지만, 강현성은 실력이 좋으니까.
그러니 팀원들이 저런 반응을 해주는 것일 테다.
사실 강현성 정도면 1군은 우습게 달아야 할 실력이긴 하다.
물론 실력 좋다고 1군 되는 건 아니긴 하지만.
난 가볍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수 센터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시겠다는데.
얼마나 대단하신지 그저 지켜나 보면 될 거다.
“메인댄서는 우선 철운이가 맡고, 태윤 씨는 철운이 포지션으로 들어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센터는 강현성이.
메인댄서는 이철운이.
리드댄서는 내가 맡게 되었다.
대대적인 포지션 변경이었으나 이미 안무 숙달을 전부 끝낸 상태라 그런가.
한 번의 합만으로도 포지션에 대한 이해는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디테일이야 당연히 떨어지지만,
‘이 정도만 해도 되겠지.’
이건 본 실력을 다 보이는 경연 무대가 아니다.
적당히 작전도 섞어가며 상대를 교란시키는 게 목적인 중간점검 무대다.
얼추 그럴듯하게 디테일을 떨어뜨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한두 번만 더 맞춰보고 중앙 마당으로 이동하죠.”
“넵.”
“알겠습니다~”
강현성의 지시에 맞춰 우린 중간점검용 연습을 마저 이어갔다.
* * *
박수철 피디는 중앙 마당에 무대를 설치하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있었다.
사실 무대라고 할 거까진 없다.
바닥이 돌바닥이라 다칠 수 있을 거 같아서 나무 판자를 깔아주는 거다.
안무하다 넘어졌을 때 돌바닥에 무릎 박는 것보단 나무 판자 위에 박는 게 부상이 덜할 테니 말이다.
“설치 다 끝났네?”
“네, 뭐. 설치라 할 것도 없이 그냥 바닥에 고정만 시키면 되는 거잖아요.”
“안 흔들리게 잘 고정했지?”
“그 정도야 뭐.”
박수철은 직접 판자 위에 올라가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 해보는 정성까지 보였다.
튼튼하게 잘 고정이 됐다.
“오늘은 이것만 하고 나면 이제 푹 쉬어도 되겠네~”
“피디님만 쉬는 거고 저희는 숙소 관찰 카메라 메모리도 떠와야 하고, 밤 되면 일일이 숙소 돌아다니며 카메라 전원 빼둬야 하고, 암튼 할 거 많아요.”
“소일거리잖아.”
“그 소일거리 피디님이 하시죠.”
“어째 말이 점점 세진다?”
“……하하.”
“메모리는 천천히 떠오고, 밤에 카메라 전원들만 잘 꺼둬. 안 그러면 회사에서 항의 들어올 거야.”
“항의도 해요?”
“몰라. 잠잘 때 촬영하는 것까진 자기들 동의 안 한다고. 밤에라도 좀 편히 쉬게 두래.”
“……음. 뭐 일리는 있네요.”
“그냥 꼬장 부린 거지. 자존심 한번 부리는 거 내가 한번 받아줬다.”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입에 전자 담배를 물었다.
한 입 쭉 담배를 빨아들이며 박수철은 휘적휘적 손을 저었다.
“얼추 잘 마무리하고 중간점검 들어갈 때 되면 불러.”
“네.”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본인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중간점검은 사실 기획에는 없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저녁 밥상 내기 같은 거나 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구성을 달리해 봤다.
이유로는,
‘김준혁, 이영준 얘네가 분명 트러블이 있는 거 같은데.’
김준혁과 이영준이라는 두 멤버들의 성깔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제작진들이 연습실 관찰 카메라 메모리 떠온 것들을 박수철도 당연히 확인을 한다.
이렇게 용량이 큰 파일들은 미리미리 확인해서 쓸 만한 컷들을 건져두는 게 좋으니까.
한데 김준혁, 이영준이 보면 볼수록 쎄했다.
일단 팀 활동에 너무 비협조적이다.
행동을 살갑게 해서 비협조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희석시켰으나 하루 종일 영상 보는 게 일인 박수철 눈에는 보였다.
일부러 뺀질대고 있는 게.
둘째로 의견이 너무 셌다.
합의하여 좋은 방향으로 회의가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회의에 난입하여 아 그거 별로인 거 같은데, 이게 낫지 않겠어요? 라며 훼방을 둔다.
팀 리더 격인 우연훈은 그 말을 하나하나 들어주다 결국 주도권을 뺏기고 말려 버린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좋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대는 더 망가진다.
해서 이번 중간점검을 만든 거였다.
‘김준혁, 이영준을 이번에 누구 한 사람이 잡아야 할 텐데.’
태윤 없는 태윤 팀의 팀원들이 너무 고통받고 있다.
그 고통을 누군가는 끝내줘야 한다.
이는 그가 세이렌을 특별히 편애해서라기보단 프로그램 전체를 위한 생각이었다.
온리원이 2차 경연에서 1등을 하며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간 현재, 그 대항마라 할 수 있는 세이렌이 무너지면 안 된다.
지금 세이렌이 무너지게 되면 프로그램의 긴장감이 파이널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뚝 끊기게 된다.
그러니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흥행을 위해서라도 지금쯤 누군가가 트롤을 잡아줘야 한다.
일단 기대하는 인물은 봉태윤이다.
자기 형들 고생하는 걸 옆에서 말로 전해 듣고 있었을 테니 아마 이 순간을 벼르고 있었겠지.
뭐가 됐든 누군가 나서서 팩트로 김준혁, 이영준을 길들이기만 한다면야, 뒷수습은 박수철이 해줄 생각이었다.
* * *
중앙 마당으로 가니 우릴 포함한 세 팀이 도열해 있었다.
루미닌 팀.
태윤 없는 태윤 팀.
강현성 팀.
다들 연습을 하다 나온 건지 오전의 그 다듬어진 모습들은 아니었다.
특히 표정이 안 좋은 건,
‘미치겠네.’
형들이 있는 태윤 없는 태윤 팀이었다.
내가 분명 김준혁과 이영준을 잡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끝이 아니었나 보다.
형들 표정을 보니 또 한바탕 김준혁과 이영준에게 시달린 얼굴들이었다.
그 순간 한 가지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사실이 있었는데,
‘잠시만. 나 미션 성공 알림이, 안 떴네?’
내가 받았던 돌발 미션의 성공 알림이 없었다.
분명 화장실에 숨어들었고.
녹음해서 약점까지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그게 미션의 끝이 아니었던 거다.
혹시 몰라 미션을 다시 읊어달라고 요청해 봤다.
만일 미션이 끝났다면 시스템은 묵묵부답일 텐데……,
[돌발 미션 발발]
[촬영 쉬는 시간에 화장실 변기 칸에 가장 먼저 숨어 들어가 있으시오.]
[성공 시, 김준혁, 이영준 약점 획득.]
[실패 시, 세이렌 멤버들의 스트레스 상승.]
다시 내 귓가에 선명하게 미션 내용이 흘러들어 왔다.
‘……망할.’
이로써 확실해졌다.
난 미션을 완료하지 못한 거다.
화장실 변기 칸에 숨어 들어가는 것만이 미션의 전부가 아니었던 거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강현성을 찾으라는 미션이었는데, 당시에도 그냥 찾기만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강현성을 일으켜 세워서 밖으로 내보내는 것까지가 미션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다.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는 것이 미션의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었나 보네.’
아직 미션이 끝나려면 한참 남았을지도 모른다.
골이 아파와 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짚었다.
강현성은 그게 내가 아파서 머리를 짚었다 생각했나 보다.
한데 보통은 이러면 괜찮아요? 라고 말할 텐데.
“참아요.”
“……?”
이 미친놈은 다짜고짜 참으란다.
그래 뭐 무대 앞두고 아프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긴 하다만,
‘뭐 하는 놈이야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연습을 열심히 하셨나요, 여러분?”
박수철 PD가 마이크를 들고 멘트를 쳤다.
“네에~”
사람들은 거기에 적당히 대답을 해주며 호응했다.
“다들 중간점검이라 하셔서 많이 놀라셨을 텐데요, 너무 걱정 말고 준비해 오신 것들을 선보여주시면 됩니다!”
박수철 PD는 그리 말하며 사근사근 웃었는데,
‘콜로세움 세워놓고 적당히 놀다 가세요, 라고 말하는 격이네.’
무대를 보고 우리가 직접 비평해 보라 해놓고는 저런 멘트를 치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 그러면 첫 번째로 중간점검 무대를 꾸려볼 팀은, 흐음.”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한 차례 뜸을 들였다.
“강현성 팀! 지금 나와서 무대 준비해 주세요!”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즉석으로 무대 순서 짠 거다.
아주 치밀한 구성안에 탄성이 나올 뻔했다.
“가죠.”
“갑시다.”
“연습한 대로만 하죠.”
우린 중앙 무대로 올라갔다.
보통은 제작진들이 있는 방향에서 춤을 출 테지만, 오늘은 출연진들 방향으로 춤을 춘다.
물론 카메라가 사방에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 춤을 추든 편집에 문제가 없긴 할 거다.
하지만 제작진이 아닌 출연진을 관객으로 둔단 건 꽤 낯선 경험이었다.
“잘해보죠.”
“연습한 대로만 해요.”
“네.”
우린 각자 긴장을 푸는 멘트를 주고받은 후 대형에 맞춰 섰다.
내가 리드댄서로.
강현성이 센터로.
이내,
딴-
인트로가 흘러나왔고.
“어?”
“ 아니야?”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한 채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가 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이 곡은 밝고 가벼운 곡이니까.
강현성이 이런 식의 밝고 가벼운 곡을 고를 거라 예상하긴 어려울 터다.
그 순간,
-지금 이 순간,
-기다린 걸까,
-언제간 만날,
-너와의 만남.
의 시그니쳐 같은 상큼한 첫 번째 벌스가 터져 나왔고.
센터에 서 있던 강현성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표정 연기를 곁들이며 안무를 췄는데,
“와!”
“와아악!”
“대박!”
“뭐야 저거!”
[1등 확률 : 66%]
‘뭐?’
예상을 빗나가는 장면이었다.
강현성은 지금, 표정 연기로 끼를 부리며 안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예상 못 했던 강현성의 상큼함 때문일까.
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 안무를 잊을 뻔했다.
심지어 저 자식이 춤을 추자마자 오랜 시간 멈춰 있던 1등 확률 퍼센트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악!”
“뭐야! 귀여워!”
현장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뒤집어졌다.
제작진들을 포함한 전원이 입을 떡 벌린 채 센터 강현성을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늘 표정 변화 없이 과묵하던 캐릭터가 무대가 시작하자마자 돌변한 거였다.
무대는 점차 진행되어 후렴구까지 이어졌다.
이미 각을 맞추고 맞춘 후렴구였던지라 바뀐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이 딱딱 맞았다.
-Never Mind~ 저 푸른 하늘을
-달려가! 전부 안을 거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한껏 끌어안고──
보기에 시원시원하고 큰 동작들로 구성된 안무였기에 사람들은 두 번째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
“잘 춘다!”
분명 지금 이 무대는 우리가 원래 준비하던 무대보다 디테일이 떨어진다.
편곡 전 버전이라 곡도 경연용에 어울리진 않고.
한데,
‘이거보다, 본 무대를 잘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난 이제야 체감했다.
이게 바로 센터 차이라는 것을.
센터 어떻게 하는 건지 보고 배우라는 말.
지금은 절절히 깨달았다.
‘저 새끼 센터 개잘하네…….’
그건 오만방자한 말이 아니었음을.
더 나아가,
‘망했네.’
내가 어떻게 해야 저놈보다 센터를 잘할 수 있을지.
그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야 알겠다.
센터는 그저 춤을 잘 추고 잘생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무대에 깊이 몰입해, 사람들을 빨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하는 거다.
그 몰입에는 춤과 표정만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숨 쉬듯 나오는 자그마한 발랄 포인트들.
별로 숨이 차지도 않을 텐데 약간 숨이 찬 듯 호흡을 조절하는 포인트들.
가사와 멜로디에 맞춰 미세하게 조정되는 춤선과 임팩트들이,
‘전부 센터의 소양이네.’
어느 것 하나 빼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무대가 끝난 후.
“와아아아!”
“한 곡 더 없어요?”
“멋있다!”
비판의 장이 아닌 환호의 장이 펼쳐졌고,
[1등 확률 : 70%]
1등 확률은 위로 솟아올랐다.
아무래도 내가 센터를 제대로 못 하고 있던 맞았나 보다.
뒷맛이 쓰지만,
‘한 수 배웠으니까…….’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어지는 비판의 시간에서는,
“저는 다 좋았습니다!”
“뭐 말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어요.”
“굳이 따지자면 후렴구 외엔 각이 잘 안 맞았던 거 같다? 근데 별로 막 튀는 단점은 아니었습니다.”
호평 일색이었다.
김준혁과 이영준은 마이크를 잡을까 말까 한참 고민하는 거 같더니 끝까지 잡진 않았다.
아마 내가 꼴 보기 싫어서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겠지만 본인들이 보기에도 이 무대에 비판하는 건 억까가 될 거 같으니 참을 걸 테다.
그렇게 우리가 자리로 돌아오고 난 후.
“자! 그러면 두 번째로 무대를 꾸릴 팀은, 태윤 없는 태윤 팀입니다! 무대로 나와주세요!”
두 번째 타자로 태윤 없는 태윤 팀이 나왔다.
‘왔다.’
난 마음의 준비와 함께,
‘털어버려야지.’
주둥이 준비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