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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85화 (8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5화

난 김준혁과 이영준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방금 전 좋은 무대를 펼치고 와서일까.

이상하게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어떤 비판을 해도 편집으로 살려줄 것만 같은 느낌.

물론 이런 느낌에 속아 선 넘는 발언은 하면 안 되겠지만.

일단 자신감은 생겼다는 거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때 김준혁, 이영준과 눈이 맞았다.

김준혁은 나와 눈이 맞더니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이영준은 살짝 쫀 것 같긴 한데 일부러 딴청 피우며 나랑 눈을 안 맞추려고 했고.

그냥 시선만 맞았을 뿐인데도 짜증이 솟구친다.

그때,

[1등 확률 : 69%]

수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 형들을 보니,

‘하아. 미치겠네.’

형들 표정이 점점 더 썩어들어간다.

특히 운이 형은 얼굴이 새빨갛기도 하다.

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창피한 것 같은 얼굴이다.

반면 김준혁과 이영준은 어딘가 득의양양한 얼굴이다.

마치 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것을 보여줄 때가 되었군.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

한데 김준혁과 이영준의 표정이 펼수록,

[1등 확률 : 68%]

확률이 자꾸 깎인다.

그 순간,

딴-

곡이 시작되었다.

웅장한 브라스 음부터 시작한다.

금관악기가 초장부터 박히니 확실히 압도하는 구석이 있다.

그 위로 대금 소리가 올라탄다.

금관악기가 그려놓은 굵직한 선 위로 가벼운 피리 소리 한 줄기가 어지러이 떠다니는 느낌이다.

오묘하고 웅장하다.

이건,

‘도승이 형 작품이네.’

victory 0505 씨 노래다.

전에 도승이 형 작업실에서 이거저거 막 눌러보다가 형이 들려줬던 샘플 중 하나였으니까.

그때보다 조금 더 디벨롭한 느낌이다.

“와아”

“반주 뭐야?”

“미쳤는데?”

사람들에게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역시 도승이 형 작곡은 동 나잇대에선 견줄 사람이 거의 없다.

아니, 그냥 작곡가로서도 재능 있는 편이다.

다만,

‘뭘까.’

여기까진 기대 이상인 상태라 뭐라 판단을 못 하겠다.

어째서 1등 확률이 자꾸 떨어지는지 확인을 해봐야 하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지 1초 만에 문제가 나왔다.

이영준이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어색한 사극 톤으로 대사를 친다.

무대 초반 액팅을 넣은 거다.

뭐 대충 뮤지컬 형식인 건 알겠는데,

‘미친놈 아니야 그냥?’

반주 들으며 적당히 무대에 몰입 중이었는데 뜬금없이 내 몰입을 깨뜨리는 포인트였다.

그러자,

-그대인가. 감히 내게 대적한 자가?

‘미친……. 와.’

그 옆에서 김준혁이 무슨 중세시대 기사마냥 고고하게 걸어온다.

두 사람은 어디서 주워온 건지 나뭇가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마 저게 검인가 보다.

전에 숙소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세 기사와 사이버펑크 조선 무사가 일대일 하는 무대라고 했는데,

‘그게 이딴 싸구려 액팅 느낌이었다고?’

그걸 무대에 컨셉으로 녹인 게 아니라 그냥 인트로에 액팅으로 그대로 갖다 박아버렸다.

아니, 애초에 컨셉으로 무대에 녹인다 해도 너무 오버한 컨셉이라 잘 녹아들지도 모르겠는데,

‘이따위로 그냥 갖다 박아버리면 누가 이걸 먹겠냐고. 심지어 완성도도 구리잖아.’

어처구니가 없어도 너무 없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감이 없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제 보니 이건 감의 문제가 아니다.

‘지능의 문제야.’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면 당연히 하지 않을 선택이다.

‘하아…….’

고작 인트로 조금 본 것일 뿐인데 형들이 어떤 고난을 헤쳐 온 건지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대는 계속 김준혁과 이영준 중심으로 이뤄졌다.

다른 팀원들을 댄서로 쓴 느낌이었다.

아직 가사도 제대로 안 나온 건지 음악은 대충 멜로디만 있는 상태였다.

그래 뭐, 가사는 안 나왔을 수 있다.

아직 3차 경연까지 시간이 꽤 있으니까.

하지만,

‘엉망이야.’

팀이 아니다 저건.

그냥 김준혁과 이영준의 소꿉장난이다.

운이 형 얼굴이 왜 그토록 새빨갛게 달아올랐는지 알겠다.

나 같아도 이런 무대를 사람들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하라 그러면,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상상도 하기 싫다.

이내 무대가 애매한 지점에서 끝이 났다.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 같은 2절 후렴구 지점에서,

뚝.

반주가 끊겼다.

“저희가 이 이상 아직 완성된 게 없어서, 여기까지입니다.”

김준혁이 자랑스레 이리 답하고는 관중을 훑어봤다.

사람들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하하.”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치 로봇마냥 삐걱대며 천천히 박수를 쳤다.

실제 무대가 여기까지밖에 완성 안 된 것이든.

아니면 꼴에 작전을 짜서 대충 절묘한 타이밍에 끊은 것이든.

어쨌든 이 무대를 더 안 봐도 된다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다만 남아 있는 고역은,

‘저 새끼들은 뭔데 저렇게 당당한 얼굴이야?’

김준혁과 이영준은 자신들에게도 칭찬이 들어올 거라 굳게 믿는 느낌이었다.

살짝 숨을 벅차게 쉬며 우리를 바라보는데,

‘실제로 별로 숨도 안 찬 것 같은데.’

별로 안 힘들어 보이는데 억지로 숨찬 것 같은 연기를 하는 걸로 보였다.

한데 이 자식들의 환상을 단번에 깨부수는 순수하고 맑은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는데,

“그, 어, 이거 다른 팀들 견제하려고 페이크 무대 만드신 거죠……? 근데 어느 정도는 진짜 무대랑 비슷한 걸로 준비해야 그래도 형평성에 맞는 거 아닌가요……?”

온리원의 박영호가 교회 청년부 회장 짬바 가득 섞인 선량한 목소리로 극딜을 꽂아버렸다.

김준혁과 이영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간다.

우리 형들은,

‘다들 고개를 푹 숙였네.’

지금 이 참극이 꽤 가슴이 아픈 건지 고개를 숙인 채였다.

아니, 이제 보니,

‘동준이 형은 웃참 중인데?’

방금 얼핏 봤다.

동준이 형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간 걸.

김준혁과 이영준의 얼굴이 썩어들어간 걸 보니 이거 페이크 무대가 아니라 진짜 무대다.

“어느 포인트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그냥 비판만 하시면 저희로선 조금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영준은 마이크를 받더니 이를 악물고 역질문을 건넸다.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붉었다.

“아! 그, 페이크 무대가 아니군요. 죄송합니다. 이게 어느 포인트에서 그렇게 느껴졌다기보단, 전반적으로…….”

박영호는 말끝을 흐리며 괜히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누군가에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거다.

하필이면,

‘왜 나랑 시선이 맞는데.’

나한테 구조신호가 왔다.

해서 손을 들어 마이크를 받았다.

“네. 전반적으로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박영호가 하려는 말을 대충 때려 맞혀봤다.

박영호는 그거였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시선이 내 쪽으로 모인다.

지금 고민 중이다.

여기서 정말 다 털어버리는 게 맞을지.

잘못하면 방송에 악인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 순간,

‘뭐야.’

박수철 PD와 눈이 맞았는데,

‘저 눈깔 뭔데.’

마치 어서 뱉으라고, 걱정 말라고, 라고 말하는 듯한 눈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 아는 눈치였다.

다만 저 유혹에 넘어가면 편집에서 망할 수도 있다.

한데 그런 내게 안심을 주는 사인 하나가 나왔는데,

‘뭘 하든 괜찮아?’

박수철이 손으로 입을 가리킨 뒤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었다.

그러곤 마우스와 키보드를 쓰는 시늉을 한 뒤.

손으로 엑스자를 그린다.

이건 그냥 대놓고 너 악편 안 할 테니 저 둘 죽여놓으라는 말이다.

이 정도로 신호를 줄 거면 그냥 와서 내 귀에 속삭이는 게 더 효율적이었을 거 같긴 하다.

암튼 피디의 사인도 받았겠다.

난 입을 뗐다.

“초반 액팅도 사실 너무 허술합니다. 대사의 독창성이나 훅도 부족하고, 그저 사극 하면 떠오를 법한 말투와 중세 기사 하면 떠오를 법한 대사를 가져다가 쓴 느낌입니다.”

김준혁과 이영준의 얼굴이 붉어진다.

워딩이 조금 강했나 싶어서 걱정이 되려는데,

[1등 확률 : 70%]

수치가 다시 올라왔다.

그 말은,

‘뭐야?’

얘네를 털수록 1등이 될 확률이 높단 거다.

해서 다시 한번 입을 뗐다.

“그리고 이건 분명 연합팀 미션인데 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준혁 씨와 이영준 씨만 계속 센터를 번갈아가며 서는데, 왜 그런 건가요? 다른 팀원들은 센터에 좀 서면 안 되는 건가요?”

이번엔 진짜 시비조였다.

이것도 시스템이 어떻게 받아들이나 보는데,

[1등 확률 : 71%]

오른다.

됐다.

이건 털수록 오르는 거다.

“반주는 좋았습니다. 웅장하고 오묘하고 귀를 사로잡는 구석이 분명 있었습니다. 한데 반주의 독특함이 액팅의 전형성 탓에 5초 만에 무너집니다. 안무에서도 두 사람이 센터를 계속 고집하다 보니 동선이 단일화되어 보는 맛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난 계속 둘을 까내렸다.

아니, 까내리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솔직한 감상을 필터 없이 말한 거다.

욕만 안 섞었을 뿐 그냥 묶어놓고 패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럴수록 김준혁과 이영준은 얼굴이 붉어졌다.

특히 이영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몸이 살짝 떨리는 것도 같았다.

뭔가 터지기 직전의 무언가 같다.

원래의 나였다면 여기서 멈췄을 거다.

한데,

[1등 확률 : 74%]

1등 확률이 더 올라버렸고,

“이번 무대는 뭐랄까.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무대였습니다.”

결국 내 입에서 최종 결론까지 나오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러자,

“……하아, 진짜.”

이영준이 반응한다.

줄곧 입 꾹 닫고 듣기만 하더니 마지막에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쳐든다.

그러곤 날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거 눈빛만 보면 당장에라도 달려와서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다.

난 평소와 같은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이영준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한마디를 꺼냈다.

“진짜 어지간히 하세요, 봉태윤 씨.”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1등 확률 : 75%]

1등 확률이 또 한 번 올랐다.

난 속으로 쾌재를 외쳤지만,

“오…….”

“아…….”

현장 분위기는 말 그대로 곱창이 났다.

뒤에 있는 우리 형들도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본다.

오직 한 사람.

동준이 형만 날 보며 싱긋 웃어줄 뿐이었다.

사실 이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나도 쫄렸을 거다.

악편 당해서 완전히 나락 가겠구나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시스템이 알려주는 1등 확률과.

박수철 PD의 그 사인들 덕에 딱히 쫄리는 게 없었다.

심지어 지금도 박수철 PD는 무슨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날 쳐다본다.

아무리 봐도 저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네, 그러면 이걸로 태윤 없는 태윤 팀의 무대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철 PD는 딸 만한 건 다 땄다고 생각했는지 무대를 급히 종료시켰다.

이제 남은 건 루미닌 팀의 무대였다.

태윤 없는 태윤 팀 팀원들이 자리로 돌아온다.

이영준은 분기가 넘쳐 흐르는 게 절절히 느껴지는 걸음걸이였고.

김준혁은 멍한 것이 멘탈이 털린 표정이었다.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은 내 어깨를 한 번씩 툭툭 친 후 자리로 돌아갔다.

난 별걱정을 안 하는데 나 외의 모두가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강현성조차 꽤 의외라는 듯 날 보며 미간을 구기고 있었다.

난 그런 반응들에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신기하긴 하네.’

대체 왜 김준혁, 이영준을 털수록 1등 확률이 올랐는지 모르겠다.

박수철 PD가 악편을 안 할 게 확실하니 오른 건가?

사실 그것만으론 빈약할 거다.

그 순간 이영준과 잠시 눈이 맞았는데…….

‘진짜 한 대 칠 거 같네.’

이 생각이 들었다가,

‘아.’

갑자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더니, 꽤 그럴 법한 그림이 하나 만들어졌다.

사실 내 추론과 상상으로 만들어진 그림이라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러면, 깔수록 확률이 올라간 게 말이 되는데……?’

뭔가 말이 되는 그림이었다.

애초에 시스템은 나한테 쟤네를 품으라고 돌발 미션을 던져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난 어떻게든 약점을 쥐고 쟤네 기를 꺾어서 무대 하나만 잘 해내보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쓰레기도 재활용되는 쓰레기와 불에 던질 쓰레기가 나눠지는 건가.’

시스템은 내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난 혹시 모를 개싸움을 막기 위해 저 둘을 재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만,

‘시스템은 쟤네를 태우라고 하고 있는 거 같네.’

시스템은 개싸움 따위 걱정 말고 저 둘을 보내버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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