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6화
루미닌 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루미닌 연합팀의 무대는 크게 눈에 띄는 것 없이 무난무난하게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연습량이 부족한 건지 디테일이나 완성도가 살짝 부족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뭐, 3차 경연 연습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연한 거였다.
난 루미닌의 무대는 본체만체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일단 저쪽에 앉아 있는 김준혁과 이영준을 계속 바라봤다.
김준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뭔가 화가 난 것 같긴 하지만 그것보단 멘탈이 더 터졌단 게 맞는 표현 같았다.
반면 이영준은 상태가 조금 더 심했다.
노골적으로.
아주아주 노골적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적의였다.
이쯤이면 놀라울 정도다.
어쨌든 내 손엔 저 새끼들 커리어 박살 낼 확실한 물증이 들려 있다.
그걸 알고도 저런 반응인 게 놀랍다.
김준혁은 아마 내 손에 약점 있단 걸 알아서 적당히 화를 삭이는 느낌이라면,
‘이영준은 뭐야.’
저 한 놈은 사리판단을 못 하고 당장의 분노에 몸을 맡기는 타입인 거 같았다.
난 이영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거 더 쳐다봤다간 도발하는 걸로 알고 촬영 중에 달려들 거 같다.
적어도 그런 꼴은 면해야 하니까.
대신 그 옆에, 연훈이 형과 눈이 맞았는데,
-태윤아. 괜찮아?
연훈이 형이 입 모양으로 내게 물었다.
난 그 말에 고개를 끄덕할 뿐이었다.
다만 연훈이 형 눈동자엔 근심이 한가득 서리고 있었다.
그러곤 이영준과 나를 잠시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저었다.
이내,
“자! 루미닌 팀의 무대도 끝이 났습니다. 평가해 줄 사람들 거수 부탁드립니다!”
루미닌 팀의 무대에 대한 비판 시간이 이어졌다.
무난무난하고 적당히 봐줄 만했기에 크게 쓴소리 없이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루미닌 팀의 무대마저 마무리되고 난 후,
“그러면, 오늘 서로에게 해준 피드백 잊지 않고 내일부터 다시 연습에 매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중간점검, 이라는 괴팍한 콘텐츠가 종료되었다.
“끄아아아~”
“자! 일어납시다~”
강현성 팀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굳은 관절을 풀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굳어 있던 발목을 살살 돌렸다.
이제 들어가서 연습을 마저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폐기해야 할 쓰레기도 걸러내야겠네.’
시스템이 의도하고 있는 그 방향이 맞는지 최종 확인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에 따른 방비도 해야 할 거고.
생각할 게 많아 머리가 무거워지려는데,
“봉태윤!”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동준이 형이었다.
“너 괜찮냐?”
“뭐가요.”
“걔네 성격 진짜 더러워. 뭐 듣는 입장에선 속 시원하고 좋긴 했는데, 이거 일 날 수도 있어.”
“걱정 마요.”
“걱정할 짓을 안 해야 걱정을 안 하지.”
동준이 형은 잠시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언제나 장난기 가득한 사람인데 지금은 진지함이 얼핏 엿보인다.
“진짜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나도 속 뒤집어지는 거 참고 있다고. 쟤네 눈 돌아가면 뒤 없이 들이받아.”
“고마워요.”
동준이 형이 이렇게 진지하게 충고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난 형이 안심할 수 있게끔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어봤다.
“그……, 표정을 왜 그렇게 하는 거냐?”
“…….”
별 효과는 없는 거 같다.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난 형에게 이리 말한 후 다시 걸어갔다.
사실 아주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만,
‘할 건 해야지.’
이미 시작한 거, 끝은 맺어야 했다.
* * *
박수철은 현장을 정리하는 스태프들 사이에 서서 생각했다.
어쨌든 누구 하나가 김준혁과 이영준 기를 꺾어주길 바라서 만든 이벤트였다.
실제로 봉태윤이 그가 원하던 걸 그대로 해줬고.
한데,
‘찜찜하네.’
깔끔하게 끝난 것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원래 쓴소리 좀 듣고 나면 기 좀 죽은 후 더 괜찮아지는 게 정상인이다.
어쨌든 쓴소리란 게 귀에는 써도 장기적으론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한데 방금 김준혁과 이영준의 반응은 조금 남달랐다.
아니, 김준혁은 예상 안의 반응이었다.
문제였던 건 이영준이었다.
“눈이 미친 놈이던데 그냥…….”
감정 조절 못 하고 넘어갈 만한 일도 크게 만들어버리는 타입의 인간 같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기다려보는 거였다.
어쨌든 밤이 지나고 나면 격했던 감정도 한풀 꺾이는 게 당연하다.
오늘 밤만 잘 넘어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었다.
* * *
밤 12시가 되어서야 연습이 끝났다.
중간점검에서 누가 봐도 가장 좋은 무대를 펼친 건 우리 팀이었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하는데도 가장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도 우리 팀이었다.
다른 팀들 숙소 불이 다 꺼진 걸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1시간을 더 연습했다.
12시 자정이 딱 되자마자,
“연습 끝.”
강현성이 이리 말했고,
“흐아아아!”
“와! 나 죽을 뻔했어, 진짜!”
“나 손에 힘이 안 들어가.”
“고관절이 빠진 거 같은데요 나.”
“그거 그렇게 쉽게는 안 빠질걸.”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지며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강현성과 함께 연습을 해보니 느끼는 게 많다.
첫째.
쟤는 더쇼케 안 나왔어도 어떻게든 성공했겠구나 싶다.
연습량이 무슨 미친놈이다.
둘째.
마른 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
진짜 안 될 것 같은 순간에도 옆에서 기 센 사람이 강하게 잡으면 어떻게든 해낸다.
지금 그렇게 물기를 쥐어짜 낸 마른 오징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제 올라가서 씻고 내일 아침밥 먹고 8시까지 다시 모입시다.”
강현성이 건조한 목소리로 이리 말했고.
“……네.”
“……알겠습니다.”
팀원들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이리 답했다.
난 수건을 목에 걸친 채로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건물 지하에 연습실이 있다 보니 확실히 이런 게 편하다.
그냥 바로 위로 올라가면 숙소인 셈이니까.
나름 이 MT의 순기능인 요소들이다.
우리가 숙소로 올라오니 제작진들이 기다렸단 듯 우릴 반겨줬다.
“연습 끝났어요?”
“네? 아 네.”
“그럼 지금부터 각자 개인 방 저희가 잠시만 들어가도 되죠?”
“아, 네. 그거 물어보시려고 지금까지 기다리셨어요?”
“집중 중인 거 같아서, 최대한 안 깨려고 했어요.”
나름 세심한 배려도 할 줄 아는 인간들이었다.
다른 프로그램 같았으면 연습 중에 들어와서 그냥 물어보고 바로 진행했을 텐데.
아니지, 개인 방에 들어가도 되냐는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을 거다.
우리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제작진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유를 물으니,
“밤에는 촬영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거 때문에 카메라 전원 꺼두는 겁니다.”
“아, 겨우 그거 하려고 기다리신 거였어요?”
“네, 뭐 어차피 할 것도 없었는데요, 뭐. 하하.”
원래 개인 방마다 관찰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밤에는 카메라 전원을 꺼두기로 했는데 고작 전원 끄는 거 하려고 몇 시간을 기다려준 거다.
새삼 제작진들에 대한 좋은 감정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다만,
‘내가 올라가서 다시 켜야겠네.’
난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그렇게 거실에서 약 5분간 대기시간을 갖고 난 후,
“자! 전원 다 껐다고 합니다. 이제 올라가서 푹 쉬세요!”
“네에!”
“감사합니다~”
우린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이 펜션은 큰방 2개와 작은방 5개.
총 7개 방이 있다.
온리원 멤버들이 큰 방을 같이 쓰고 나머지 팀원들이 독방을 쓰기로 했다.
나는 혼자 세이렌에서 떨어져 나왔단 이유로 가장 먼저 독방을 받았다.
“다들 잘 자요.”
“잘 자고 내일 봐요~”
우린 거실에서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다.
난 방으로 들어간 후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침대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머리칼을 말렸다.
창밖을 보니 이미 제작진들도 다 철수한 상태였다.
하루 종일 촬영으로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이젠 다른 펜션들과 다를 바 없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난 내 방 구석에 설치된 관찰 카메라들을 확인했다.
그러곤 가장 넓은 앵글로 최대한 큰 그림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아 참고로,
‘지문인식 해제하고 핀 번호로 바꿔야겠네.’
핸드폰 잠금 방법도 교체했다.
방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두고.
핸드폰은 잘 보이는 곳에 방치했다.
내가 생각한 그림이 맞다면 그대로 게임 끝이고.
그게 아니라면 뭐 아닌 대로 다행일 터였다.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시스템의 계획과 나의 계획은 그 결이 살짝 다른 거였고, 밤사이 이토록 크게 일이 번져 있을 줄은 말이다.
일단 결과적으로 보자면, 난 꿀잠을 잤고, 밤사이 모든 일은 마무리되어 있었다.
* * *
새벽 3시.
하루 종일 촬영하고 연습까지 한 상태에서 깨어 있기에는 너무 야심한 시각.
김준혁과 이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영준의 경우 아직도 분기를 가라앉히지 못한 건지 눈가에 핏발이 잔뜩 선 얼굴이었다.
“야 김준혁. 가자.”
이영준이 옆에 누워 있던 김준혁을 발로 툭툭 찼다.
김준혁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침대에서 일어나진 않았다.
이유는 하나,
“야, 진짜 할 거냐…….”
그는 이 계획에 이제 썩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에야 막 얼차려를 당했으니 홧김에 그런 계획을 세울 수는 있다 쳐도, 직접 실행까지 하려고 하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 거였다.
“야 X발 이제 와서 뺀다고? 너 그 개X끼가 아까 중간점검 때 X나 우리 꼽준 거 기억도 안 나냐?”
반면 이영준은 어째 시간이 갈수록 봉태윤에 대한 적대감만 커져가고 있었다.
아마 얼차려를 준 것보다 사람들 앞에 있는 데서 창피를 준 게 더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근데, 그거 지운다고 해서 뭐 어쩌게. 지우는 게 복수야? 그러면 속이 좀 시원해져?”
다만 김준혁은 어느 정도는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사실 그도 봉태윤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객관적인 기준에서.
타인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본인들이 악이고 봉태윤이 합리적 선임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야, 난 안 해, 할 거면 니 혼자 해. 이 멍청한 새끼야.”
결국 김준혁은 빠지는 선택을 했고,
“뭐라 했냐?”
이영준은 김준혁의 워딩에 기분이 확 나빠지고 말았다.
“멍청한 새끼라 했다, 왜.”
김준혁은 물러서지 않고 답했다.
아무리 친구라고는 하나, 범죄에까지 가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잘못한 건 우리 쪽이었잖아. 솔까 나 같아도 누가 뒤에서 내 가족이나 친구 욕한다 하면 개빡돌 거 같은데, 걔라고 안 그러겠냐.”
“야, X발 너 처신 똑바로 해. 지금 누구 편드냐?”
“그리고 솔직히, 아까 중간점검 때 우리 무대 반응 개 싸한 거 못 봤냐. 솔직히 나도 말하고 싶었는데, 중세 기사랑 조선 무사 개오글거려. 네가 X나 하고 싶다 졸랐잖아.”
“야, 너도 하고 싶다매, 멋있다고 해놓고 남들이 안 좋다 하니까 이제 와서 태세전환이냐?”
“그래. 이제 와서 태세전환이다. 그꼴 당하고도 셀프 모니터링 안 되면 그건 지능 차이야.”
안 그래도 말이 거친 두 사람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서로에게 비수를 꽂기 시작했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서로에게 욕을 던져대기를 수없이 반복한 끝에.
결국 주먹이 나간 건 이영준이었다.
“……X발 쳤냐?”
한 대 맞았다 해서 가만있을 성격의 김준혁이 아니었고, 김준혁의 주먹도 똑같이 이영준의 안면을 가격했다.
이제부터 봉태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주먹과 발은 서로의 몸을 향했고, 누가 더 많이 때리는지, 누가 더 덜 맞는지, 누가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지만이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 개싸움은,
“끄아악!”
이영준이 김준혁의 발목을 실수로 꺾어놓은 후에야 끝이 났다.
그리고 새벽 4시.
봉태윤의 귓가엔,
[미션 성공.]
[김준혁과 이영준의 약점을 쥐어 둘 사이를 갈라놓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미션 성공 알림과 함께,
[1등 확률 : 80%]
성공 확률 상승 알림이 떴으나,
“……음?”
고된 연습으로 꿀잠을 자던 봉태윤은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