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7화
자고 일어나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어 한동안 정리를 다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일어나자마자 제일 처음 들은 건 미션 성공 알림이었다.
마치 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미션 성공 알림이 귓가에 울렸다.
아니, 이건 내가 깨길 기다렸다기보단 알람처럼 내가 깰 때까지 반복해서 울린 것 같았다.
자는 동안에도 얼핏 미션 성공 알림이 반복해서 울리는 걸 들었으니까.
동시에 시야 한구석에 있던 1등 확률에도 변화가 생겼다.
75%로 고정된 줄 알았던 것이 밤사이에 5%나 더 올라서 80%가 되어 있었다.
즉,
“……대체 뭔 일이야.”
밤사이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들이 일어났단 거다.
우선 미션 성공 알림을 유심히 들어봤다.
[미션 성공.]
[김준혁과 이영준의 약점을 쥐어 둘 사이를 갈라놓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내가 약점을 쥐어서 둘 사이를 갈라놓았단다.
난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게 아니라 둘이 내 방에 쳐들어와서 나한테 린치를 가하는 거였다.
그 과정 중에 핸드폰 녹음파일도 지우려 들고.
난 밤에 둘을 기다렸다가 쳐들어온 녀석들을 역으로 제압한 뒤 관련 증거들을 제작진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김준혁과 이영준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는 게 아마 이 미션의 종착지일 줄 알았는데,
‘둘을 갈라놓는 게 이 미션의 종착지였어?’
시스템과 나 사이에 미션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른 모양이었다.
다만 방향은 달라도 결괏값은 같았는데,
“지금 옆 팀 난리 났어요, 태윤 씨.”
“김준혁 씨랑 이영준 씨 어젯밤에 나란히 하차했대요.”
“……네?”
밤사이에 두 사람이 하차를 했단다.
“저도 방금 진영 씨랑 상훈 씨한테 들은 거였어요. 두 분도 아침에 일어나서 제작진한테 통보받았대요.”
김주현은 이 이야기를 우리 팀의 원바이원 멤버인 최진영과 김상훈에게 들었단다.
그 말은 일단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정보라는 소리긴 하다.
다만,
‘밤사이에 하차?’
내 핸드폰은 멀쩡하고, 밤사이에 내 방에 누가 들어온 흔적도 없는 데 하차라니 꽤 의아했다.
일단은 나도 두 사람의 하차를 노리긴 했던 거니 잘된 일이라고 생각은 했다.
아니지, 오히려 내 손을 쓰지 않고 일이 해결이 되었으니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저 둘의 하차에 내 지분이 없으니 후에 개싸움이 날 수 있을 가능성 자체가 없는 거니 말이다.
둘이서 나란히 사라져줬으니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한데 하차하게 된 과정이 꽤 골 때렸는데,
“둘이 싸웠다고요?”
“그냥 싸운 게 아니라, 꽤 크게 싸웠대요. 준혁 씨는 발목이 완전히 꺾였다고 하더라고요.”
“이영준은요?”
“그 사람은 얼굴에 멍들고 입술 터지고 난리 났대요.”
“그래서 하차하는 거예요?”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둘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하차라니.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이래서,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게 종착지였던 거였네.’
둘을 하차시키는 게 종착지가 아니라 갈라놓는 게 종착지였던 거다.
이이제이라고 하나.
역시 오랑캐는 오랑캐로 치는 거다.
어쨌든 훨씬 깔끔하게 일이 종료된 것 같았다.
뭐, 둘이 조금 다친 것 같긴 하다만 그건 뭐 업보라고 생각해서 별로 안타깝진 않다.
다만 걱정은,
‘형들 연습 괜찮으려나.’
이거였다.
해서 아침에 형들 숙소로 슬쩍 가봤다.
원바이원의 김준혁과 이영준이 빠져서 남은 건 우리 형들 넷과 블레슈의 한도영, 유지혁 둘뿐이었다.
8인조였던 팀이 6인조가 되었으니 처음부터 전부 다 무대를 뜯어고쳐야 할 거 같아서 현장 분위기가 박살 나 있을 줄 알았는데,
“왔어?”
“어?”
“태윤이야?”
형들은 내가 숙소에 놀러 가자 거실로 나오더니 격하게 나를 반겨줬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특히 얼굴이 좋아 보이는 건 동준이 형이었는데,
“아~ 진짜 속이 다 시원하다.”
“동준아!”
“스읍!”
“아 왜요~”
동준이 형은 그 둘이 사라진 것이 꽤 마음에 든 눈치였다.
다른 형들은 일단 팀원이 하차하게 된 것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다만,
‘다들 조심은 해도, 얼굴색은 좋네.’
그 둘이 사라진 게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 건 아닌 듯싶었다.
아니, 오히려 다들 묵은 체증이 내려간 얼굴들이었다.
“무대는 다시 짜야 하는데 괜찮아요?”
“응. 어차피 그거 못 쓸 무대였어. 원래도 처음부터 다시 다 짤 생각이었거든.”
“곡도요?”
“응. 곡도 바꿀 거야.”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작게 웃었다.
따로 생각해 둔 부분이 있나 보다.
“어떤 컨셉 지금 구상 중인데요?”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보니,
“어? 지금 스파이 짓 하는 거야?”
“뭐야.”
“견제! 하압!”
형들이 오바를 떨며 날 밀쳐냈다.
동준이 형은 이상한 기합을 넣으며 날 뒤로 탁 밀치기까지 했다.
뭐 장난으로 이러는 거긴 하지만 묘하게 속상했다.
내가 원래 이 팀 리더인데.
‘하아…….’
강현성에 대한 원망만 커지는 순간이었다.
“힌트를 주자면, 청순이야.”
한데 도승이 형 입에서 나온 힌트에,
“오.”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오, 라고만 반응할 뿐이었다.
한데 내 반응에서 부정의 기운을 느낀 건지,
“뭐야. 듣지도 않고 별로냐?”
도승이 형이 예민하게 받아들이고는 눈을 흘긴다.
“아니에요.”
“뭐가 아냐 임마.”
“그냥 오, 한마디 했는데 왜 그래요.”
“……그냥 오, 가 아니었잖아.”
“우우우 강도승 쪼잔쟁이.”
“얌마!”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이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며 말장난을 이어간다.
도승이 형은 음악 관련된 거면 묘하게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청순이라.
사실,
‘좋은 선택이려나.’
청순이라는 컨셉 자체는 좋다.
아니, 어떤 컨셉이든 그 자체로 엉망인 컨셉은 드물다.
조선 무사와 중세 기사가 일대일 대결을 벌인다, 라는 컨셉 빼고 말이다.
내가 청순을 우려하는 것은,
‘훅을 주기 어려울 텐데.’
무대에 한 방이 과연 있을까, 란 것이다.
경연에서 검고 어둡고 빡센 비트를 많이 가져오는 이유가 있다.
어찌 됐든 임팩트를 주기 쉽기 때문이다.
어느 파트에 댄브를 넣든 안 어색하기도 하고.
그냥 가사 없이 냅다 빡센 비트만 늘리며 안무를 쭉 이어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청순은 그게 어렵다.
임팩트를 주기도 어렵고, 무대를 다채롭게 꾸미기도 어렵다.
다만,
[1등 확률 : 80%]
1등 확률에 변화가 없다.
만일 저게 정말 안 좋은 무대였다면 떨어졌으리라.
일단은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을 믿어봐야겠다.
“나중에 우리 무대가 더 좋을 수도 있어!”
연훈이 형도 나에게 선전포고하듯 이리 말한다.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난 형들에게 이리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6인조가 됨으로써 아마 퍼포먼스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생길지도 모른다.
다만 그만의 장점도 있을 수 있을 거다.
어쨌든 이번 무대는 개인전이니까.
6인조가 된 만큼 개인에게 더 많은 분량을 줄 수 있는 셈이다.
“그럼 연습 후에 또 놀러 와.”
“심심하면 와.”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오늘?”
“일단 저녁에 시간 보고 또 오든가 할게요.”
난 형들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를 빠져나왔다.
다시 내 숙소로 돌아가니,
“왔어요?”
“아, 네.”
“연습하러 갑시다.”
다들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거실에 앉아 몸을 풀고 있었다.
난 지하로 내려갔다.
오늘부턴 예능식 촬영이 없다고 들었다.
그 말은 곧,
“회복시간이랑 연습시간 지켜서 칼같이 연습합시다. 스케줄대로만 하면 큰 무리 없이 오늘 연습량 전부 소화할 수 있으니 걱정 마요.”
연습과 연습과 연습만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나도 연습을 싫어하진 않는다.
무대를 잘 해내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이니까.
한데 강현성은,
‘……진짜 심한데.’
벌레였다.
연습벌레.
* * *
MT라는 이름의 합숙 훈련장으로 오고 며칠이 흘러갔다.
우리 팀을 비롯한 모든 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습에 몰두했다.
원바이원의 경우 멤버 둘이 하차했다는 것에 꽤 충격을 받은 듯싶었었다.
우리 팀의 원바이원 멤버인 김상훈과 최진영도 그 당일에는 연습에 크게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만 금방 털고 무대 연습에 집중을 시작했는데,
“사실 저희도 걔네 안 좋아했어요.”
“걔네가 회사에 오래 있던 연습생이고, 걔네 중심으로 초기에 팀이 만들어진 거라 기죽어서 별말은 못했는데, 저희 전부 걔네 싫어했어요.”
“뭐, 전부라고 해봐야 저랑 진영이랑, 지금 루미닌 연합팀 가 있는 경준이뿐이지만요.”
“어쨌든, 회사 내부에서도 걔네 활동중지 잠정적으로 결정한 상태고, 상황 봐서 방출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진영과 김상훈도 원래 김준혁과 이영준을 안 좋아했단다.
“한 가지 걸리는 건 파이널 무대 때 셋이서만 무대 꾸려야 한다는 건데,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 둘의 하차 소식에 초반에 집중을 못 한 건 파이널 무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나 보다.
둘 다 딱히 김준혁과 이영준의 하차에 안타까움을 느끼진 않는 걸 보니 말이다.
이 정도면 그 둘의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가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같은 팀 멤버마저 한 줌 동정조차 안 할 정도니까.
남은 건 두 멤버의 프로그램 하차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인데,
‘뭐, 그건 제작진들이 알아서 하겠지.’
애초에 프로그램에 크게 비중 있는 출연진들은 아니었으니 아마 거센 반발 같은 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고.
가끔 숙소 내에 있다는 자쿠지나 스파 시설 이용하고.
다시 연습하고.
밥 먹고.
동일한 패턴의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종종 난 고모에게서 연락이 오긴 했다.
아니, 연락이 왔다기보단 내가 종종 차단을 풀어서 고모에게서 오는 욕 가득한 문자들을 확인한 거였다.
-야 X발 새X야. 전화 받아. 이 미친…….
아직은 전부 여물지 않은 거 같아서 조금 더 두기로 하고 난 당장의 일들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만 같은 며칠이 흐르고.
3월 18일 금요일이 되었을 때.
“오늘은 더쇼케이스2 방영일입니다~”
“저녁 연습은 오늘만 잠깐 멈추고 다 같이 마당에 모여주세요!”
제작진들에게서 이런 공지가 날아왔다.
“……들었죠?”
“네.”
“후우…….”
그 말에 온리원 멤버들의 얼굴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유로는,
‘오늘 방영분이 미니게임 방영분이지.’
이날 나름 온리원 팀에게 소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다들 아는 박영호 뜀틀 사건이다.
일단 당일에 어떻게 사고는 나지 않도록 수습은 했지만 편집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저번 주 방영분에서 박영호의 다리 부상을 크게 조명하지 않은 걸 보면 오늘 방영분에서도 뜀틀 사건을 크게 다루진 않을 거 같다.
프로그램 자체에도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한데 만약에, 라는 가정은 피할 수 없는 거니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단, 마당으로 이동하죠.”
“넵.”
우린 다 같이 마당으로 이동했다.
마당엔 캠핑용 의자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다.
가운데엔 팝콘과 나쵸 같은 극장용 과자들도 세팅되어 있었고.
흰 가벽을 설치하고 뒤쪽에 프로젝터를 둔 상태다.
“영화 보듯이 가볍게 시청하며 리액션 해주시면 됩니다.”
뭐 세팅은 안락하니 좋다.
지금이 3월이라 저녁에 조금 쌀쌀하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태윤아! 일로와!”
그때 연훈이 형이 나를 불렀고,
“전 가보겠습니다.”
“아, 네?”
“태윤 씨?”
강현성 팀 사람들이 잡아채기도 전에 빠르게 의자를 들고 형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갔다.
강현성 팀 사람들은 다소 황망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으나 내 팀은 여기다.
“연습 잘하고 있어요?”
“당연하지~”
“우리 완전 청순해!”
“기대되네요.”
“너 또 우리 컨셉에 초치냐!”
“아니에요, 형.”
“도승아 태윤이한테 예민하게 굴지 마.”
난 형들과 만담을 나누며 팝콘을 슬쩍 가져왔다.
동준이 형이 한 움큼 집어서 입에 와라라 털어넣자 도승이 형이 손가락으로 입에 들어간 걸 전부 빼내 버렸다.
“으읍! 악!”
“무대 전에 체중 조절 하라고 임마!”
“팝콘이잖아!”
“팝콘은 살 안 찌냐? 한 조각씩 먹어.”
“아주 물도 못 마시게 하겠네?”
“물도 마시지 마, 임마.”
“와, 사탄.”
난 이제야 집에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방송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번 미니게임 방영분은 크게 걱정하진 않고 있다.
뭐 박영호 뜀틀 건을 어떻게 편집하냐는 걱정되긴 하지만.
‘우리는 크게 잘못한 거 없으니까.’
우리 쪽은 문제없다.
딱히 시스템에서 경고가 없는 걸로 보아 프로그램 전체 방향에도 문제는 없을 거 같고.
가벼운 마음으로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내 오늘치 방영분이 시작되었는데,
“……으음?”
“오?”
“엉……?”
“흠.”
악마의 편집은 아니다만, 오묘한 편집은 맞았다.
일단 논란될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온리원 부상 건은 아예 조명하지도 않았고.
그냥 다 같이 하하호호 웃으며 게임하는 걸로만 편집이 되었으니까.
한데,
‘이거……. 흐음. 불편하네.’
이번 회차도 역시나 우리가 주인공인 회차였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주인공이었단 거다.
이전 회차들보다 더더욱이나.
물론 주인공 롤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그거야 우리 팀끼리만 있을 때 문제가 없는 거고,
‘뒤통수가…… 따갑네.’
지금 여긴 여러 팀이 모여 있는 합숙소다.
심지어 이번 미션은 팀 간 연합 미션이고.
물론 본인들이 방송에서 활약하지 못한 거니 남탓 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는 건 본인들 얼굴에 침 뱉기이긴 하다만…….
‘사람 간의 일이란 건 논리와 이성만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니까.’
팀 간 연합 미션을 하는 데에 우리가 꽤 껄끄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