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89화 (8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89화

난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과 눈싸움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한테 은근히 꼽 주던 루미닌 놈들이 나랑 눈을 못 맞춘다.

그래,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다.

방송에서의 입지와 현장에서의 입지 사이에 괴리가 있단 건 알고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방송의 입지가 곧 현장의 입지가 되는 게 순리다.

물론 아직까진 우리가 현장에선 이런저런 태클 받을 입지이긴 하다.

방송에선 주인공이었다 한들 그 외에 얕잡아 보일 만한 구석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데뷔도 안 했고.

온리원만큼 큰 팬덤이 ‘아직까진’ 없고.

무엇보다 회사도 가장 변변찮은 곳이니까.

다만,

‘어차피 다 갈아치울 자신 있어.’

데뷔는 할 예정이고.

큰 팬덤은 현재 형성되어 가는 중이며.

회사도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고 당당하게 대기업으로 갈아치울 예정이다.

전부 그럴 ‘예정’인 타이틀이긴 하다만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알고는 있을 거다.

그 예정이 현실이 될 확률이 몹시 높다는 것을.

그러니 이렇게 일어나서 눈싸움 걸며 광역 도발하는 객기 정도는 사람들 앞에서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꽈악.

이대로 가다간 주먹다짐이라도 할 거라 생각한 걸까.

연훈이 형이 내 옷자락을 잡으며 이제 그만하라는 신호를 줬다.

난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이게 방송에 어떻게 나가게 될지는 모르겠다.

박수철 PD 성격상 아마 신경전이 있었단 걸 티는 내는 연출을 쓸 거다.

그럼에도,

‘우릴 버리진 않겠지.’

루미닌과 우리 중 누굴 더 살릴지는 당연히 각이 나온다.

그러니 편집에 있어서도 딱히 걱정하진 않는다.

저쪽이 시비 털고 내가 그걸 적당히 받아친 정도로만 나올 거라 생각한다.

때마침,

“자! 어떻게, 오늘 방송은 다들 재밌게 보셨을까요?”

박수철 PD가 현장에 들어오며 멘트를 쳤다.

“네에!”

“재밌게 봤습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방송용으로 순식간에 화사하게 바뀐다.

언제 신경전을 했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박수철은 그런 우리를 보며 작게 웃고는 마무리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 하루도 너무 고생들 많으셨고, 이제 돌아가셔서 연습을 더 하셔도, 자유롭게 주무셔도 됩니다!”

“네엡!”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리를 뜬 건 루미닌 연합팀이었다.

이 자리에 오래 있어 봤자 득 될 건 없다 생각한 눈치였다.

나도 형들이랑 작별인사를 했다.

“연습 잘하고.”

“성질 죽이고 살자, 태윤아.”

“내일 또 보자.”

형들은 내가 아까 루미닌과 기 싸움을 한 걸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난 형들의 걱정과 작별인사를 두루 받으며 강현성네 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합숙 훈련도 곧 있으면 끝이다.

그러니 가능한 많은 시간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미 야심한 시각이긴 하지만 연습을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쉬죠.”

“진짜요?”

“와.”

“진짜 쉬는 겁니까 리더님?”

“네. 쉬어요.”

“…….”

강현성은 오늘 쉬는 선택을 했다.

잠시 허탈해지긴 했지만,

‘그래 뭐.’

연습 안 하겠다는 거 억지로 붙잡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숙소 침대에 누웠다.

샤워까지 마치고 눕긴 했지만 사실 개운한 느낌이 드는 밤은 아니었다.

요 며칠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다가 쓰러지듯 자는 게 습관이 되어 그런 건가 싶었다가,

‘아닌가.’

그냥 오늘 하루 컨디션 자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방송은 분명 만족할 만한 방송이었다.

너무 주인공으로 편집되어 버린 탓에 다른 팀의 견제를 받긴 했지만, 잘돼서 견제받는 게 망해서 무시당하는 것보다 100배 낫다.

연습량도 다른 날보다 현저히 적었으니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고.

한데 왜인지 컨디션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간만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런저런 것들을 했다.

형들이랑 찍은 사진들도 좀 보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생각 없이 낄낄댈 수 있는 가벼운 영상들도 틀어보고.

하지만 흥미는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금세 식었다.

이러고 있을 바에야,

‘그냥 연습이나 하자.’

방에서 궁상떨기보단 몸이라도 움직이는 게 나을 터였다.

난 지하로 내려갔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연습실 문을 열었으나.

“……아.”

강현성이 홀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참 어색한 마주침이다.

강현성도 당황한 건지 잠시 멍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한데,

‘남한테 연습하지 말라면서 자기는 연습을 하고 있네?’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반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전으로 평가받는 무대인데.

다만,

‘뭐, 지가 더 연습하는 걸 반칙이라 하는 것도 웃기지.’

대상이 강현성이라 나도 모르게 삐딱 필터가 씌워진 거 같다.

심지어 지금 나도 연습을 하러 내려온 상탠데.

누가 누구한테 뭐라 그런단 말인가.

내가 어색하게 서 있어서일까.

“연습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요.”

강현성이 퉁명스레 물었다.

가만히 서 있지 말란 거다.

“할 겁니다.”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안 할 순 없다.

무엇보다 안 하고 그냥 올라가 버리면 강현성 무서워서 피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이상하리만치 그건 싫었다.

강현성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스피커로 틀어줄까요?”

내게 스피커로 같이 들을거냐고 물었다.

이걸 같이 듣게 되면 그때부턴 정말 같이 연습하는 꼴이 된다.

“아뇨. 각자 이어폰 꽂고 하죠.”

“맘대로 해요.”

난 귀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아서 꽂은 뒤 몸을 풀었다.

이번 우리의 3차 경연곡.

편곡은 잘 끝난 상태다.

어디서 이런 편곡자를 구했는지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됐다.

특히 3절 마지막에 후렴구 무한 반복이라는 키워드를 아주 잘 살려줬다.

물론 진짜 무한 반복은 아니다.

다섯 번 정도 반복하다가 약간 잦아들 듯이 사라지는 편곡이다.

어쨌든 벅차오름과 아련함을 동시에 잡은 편곡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가사와 같은 멜로디만 반복하면 곡이 밋밋해질 수 있단 걸 안 건지 마지막 후렴구 반복 파트에서 멜로디와 가사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그 덕에 3절이 완전 다른 노래처럼 느껴질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게 되었다.

이때 쓸 가사까지 편곡자가 작업해서 같이 보내줬는데,

‘가사까지 이 정도로 쓰는 거면 혼자 곡 다 만들 줄 아는 사람이겠지.’

맘 같아선 강현성한테 번호 받아서 따로 연락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난 음악을 들으며 몸을 푼 후 동작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강현성의 연습법과 팁들은 도움이 많이 됐다.

동작에서 맛을 더 살리는 디테일들과.

호흡을 조절하는 법.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알아서 체력을 보존하는 법.

그 외 등등등.

마치 숨 쉬듯 나오는 팁과 노하우들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능력치 상승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경우 통찰의 힘을 빌려 이미 안무가 거의 완성된 상태이긴 했으나.

‘통찰이 만능은 아니니까.’

강현성의 손을 타고 나니 동작이 한층 깔끔해졌다.

이제 나름 통찰에 대한 기준이 생겼는데 이 능력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나라는 인간의 잠재성을 극한으로까지 깨워주는 것이니 그 결과물은 늘 입이 떡 벌어지는 거지만,

‘타고난 천재를 이길 수는 없어.’

없는 재능을 만들어주진 않는 거다.

즉 크게 재능은 없는 일반인이 죽도록 노력했을 때 닿을 수 있는 최고점까지 날 올려 놓아준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내가 동작을 점검하며 강현성이 말해준 디테일들을 잡고 있을 때.

“봉태윤 씨.”

한창 연습하던 강현성이 날 불렀다.

“동작 거기 그렇게 할 거예요?”

“왜죠?”

“그것보단 이게 좀 더 낫지 않겠어요?”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동작을 한 번 시범을 보여줬다.

디테일이 살짝 달랐다.

다만,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잖아요.”

단체 연습 할 때 알려준 거랑 디테일이 다르다.

“그건 단체 연습 할 때잖아요.”

“……?”

단체 연습 할 때랑 개인 연습 할 때 동작이 달라진다고?

뭔 소린가 싶은데,

“단체로 할 땐 가장 무난하게 좋은 동작 알려주는 거고, 개인 연습 할 땐 좀 더 개인한테 맞는 디테일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구분이 갑니까?”

“……왜 구분이 안 되죠?”

“……예.”

난 강현성이 알려준 대로 동작의 디테일을 바꿔봤다.

확실히 춤이 더 깔끔해진다.

뭐랄까.

그전엔 핏 좋은 기성복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나한테 딱 맞는 맞춤복을 입은 느낌이다.

‘천재긴 천재네.’

셀유돌 때에도 춤 실력은 그중 늘 1위를 달리던 강현성이었다.

사실 지금의 강현성을 만든 건 저 춤 실력이 9할 이상은 한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더 연습을 하고 적당히 땀을 뺐다.

사실 이제 슬슬 돌아가도 된다.

한데,

‘뭐야.’

이게 이상하게 강현성이랑 연습 대결이 붙었다.

누가 더 늦게까지 연습을 하나로 말이다.

둘 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고, 분명 그런 경쟁 따위를 하자는 암묵적인 신호 따위도 없었는데,

‘미치겠네.’

운전을 하다가 은연중에 옆 차랑 속도 내기를 하게 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연습을 하다가 한두 번 눈이 마주쳤는데 그 순간의 분위기와 눈빛에서 묘한 경쟁심이 느껴졌다.

분명 난 11시 전에는 들어가려 했다.

한데 지금은 11시 30분이다.

이러다 자정까지 연습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지금 올라가긴 싫다.

이런 승부욕을 잘 느끼는 타입은 아닌데,

‘……짜증 나네.’

오늘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2시. 자정이 되고.

12시 30분이 되고.

새벽 1시가 되고.

1시 30분이 됐을 때.

‘독한 놈…….’

이제 도저히 더 할 수 없겠다 싶어 일어나려는데,

“수고했어요.”

“……?”

강현성이 목에 수건을 걸더니 먼저 연습실을 나섰다.

역시 존버는 승리하는 건가.

“하!”

난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온몸이 쑤신다.

오늘 무슨 날인가 보다.

루미닌 놈들 꼽에 객기를 부리고.

강현성한테 이상한 승부욕을 느껴서 몸 혹사시키고.

내가 이 정도로까지 기분파는 아닌데,

‘호르몬 때문인가.’

신체에 영향을 받는 거 같았다.

정신은 스물넷이라 해도 몸은 열아홉이니까.

열아홉의 호르몬은 앞뒤 없이 뿜어져 나오는 법이다.

‘5분만 있다가 올라가자.’

바로 올라갔다가 강현성이랑 마주치면 그것만큼 뻘쭘한 게 없으니 여유시간을 조금만 두기로 했다.

5분이 지나고.

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위로 올라갔다.

방에서 씻고 자려는데,

‘자쿠지 할까.’

가볍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땀도 흘렸겠다 야외에서 찬 바람 맞으며 따뜻한 물에 몸 좀 담그고 싶어졌다.

정신도 맑아지고 기분 전환도 될 것 같아서.

해서 수영복으로만 갈아입고 2층 중간정원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나가니,

“아.”

“……또?”

강현성이 수영복만 입은 채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간 다른 팀원들이랑은 자쿠지를 몇 번 했지만 강현성이랑은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강현성은 그런 거 안 좋아한다며 늘 방으로 올라갔으니까.

한데,

“……자쿠지 안 좋아한다면서요.”

“…….”

강현성은 내가 지금껏 본 얼굴 중 가장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자쿠지를 즐기고 있었다.

“……그냥 사람이랑 살 닿는 걸 안 좋아하는 겁니다.”

어처구니가 너무 없다 보니 헛웃음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나도 몸 풀 생각으로 나온 거였으니까.

해서,

솨아아-

강현성 옆에 있는 다른 자쿠지에 물을 받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야심한 시각.

“…….”

“…….”

세상 가장 어색한 자쿠지가 시작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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