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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90화 (9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0화

솨아아-

솨아아아-

자쿠지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만 2층 중간정원에 요란하게 퍼져 나갔다.

강현성과 나 사이에 대화는 일절 없었다.

사실 뻘쭘하기도 하다.

이게 팀의 다른 사람들과 자쿠지를 할 때엔 이러지 않았다.

남자들끼리 같이 탕에 들어가는 일이야 잦으니까.

이런 상황에 어색함이나 뻘쭘함 같은 걸 느끼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한데 강현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럽게 어색하네.’

지금 이 분위기는 여태 내가 겪어왔던 모든 목욕탕 분위기 중 제일 어색하다.

자쿠지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어 다행이다.

강현성이랑 같은 탕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소름이 돋았다.

한데 남이랑 살 닿는 게 싫어서 자쿠지를 안 하려 했다니,

‘이유도 참 자기 같은 이유네.’

강현성이라면 그럴 법한 이유였다.

이후로도 강현성과 나 사이에 침묵은 계속 유지 되었다.

이게 처음에만 조금 어색했지 물이 차오르고 시간이 지나니 꽤 괜찮아졌다.

‘좋네. 물 온도 딱 적당하고.’

한 10분 정도만 몸 지지고 나면 잠도 더 잘 올 거 같았다.

왜 자쿠지가 힐링 스팟마다 설치되어 있는지 알겠다.

이걸 하는데 힐링이 안 될 수가 없겠다, 란 생각이 들 정도니까.

몸이 노곤노곤해지니 이대로 잘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즈음,

“연습 안 힘듭니까.”

“……예?”

강현성이 대뜸 질문을 해왔다.

이대로 물속에 코 박고 잠들 뻔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힘들죠.”

난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며 답했다.

“그래도 해야 하잖아요.”

“맞죠.”

강현성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3차 경연 누가 1등 할 것 같아요?”

강현성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자꾸 질문을 해왔다.

한데 누가 1등 할 거 같냐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저희 그룹이요.”

“근거는 있어요?”

“네. 있습니다.”

“뭐죠?”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근거라 함은 시스템이 책정해 준 [1등 확률 : 80%]라는 이 수치다.

한데 이걸 말할 순 없지 않은가.

그냥 대충 배짱부리며 뭉갰다.

“저희가 1등 하면 이대로 서바이벌 종료인 거 아시죠?”

“네. 압니다.”

온리원이 3차까지 1등을 하면 그대로 끝이다.

물론 기다려준 팬들이 있으니 파이널 무대는 할 거다.

하지만 점수 산정하는 것 없이 더쇼케2를 사랑해 준 시청자들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하는 콘서트 느낌일 테지.

지금처럼 1등을 가리기 위한 마지막 최종 경연 느낌은 아닐 거다.

“3차 경연에서 온리원이 1등 해서 프로그램 조기종영 되는 꼴은 안 나게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네?”

난 내가 방금 뭘 들은 건가 싶어서 강현성을 쳐다봤다.

저건 자기네 팀이 3차 경연에서 1등 안 했으면 싶다고 말한 거 아닌가?

내가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얼굴에 단 채로 강현성을 쳐다보니,

“양가적인 감정인 겁니다.”

“뭐가 양가적인데요.”

“이대로 3차를 우승하고 이 지루한 서바이벌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요?”

“좀 더 끌어서 파이널에 최종 우승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걸 양가적인 생각이라고 합니까? 그냥 우승하고 싶단 생각 아니에요?”

“그것도 맞네요.”

난 또 우승하기 싫단 마음과 우승 하고 싶단 마음이 충돌 중인 줄 알았는데.

그냥 빠르게 우승할지 임팩트 있게 우승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란 거였다.

사람 농락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

“우리가 우승할 겁니다.”

난 강현성에게 선전포고하듯이 말했다.

“네, 뭐. 생각은 실컷 하세요.”

강현성은 살짝 비웃듯 그리 말하며 물기에 젖어 축축한 머리칼을 한껏 쓸어넘겼다.

“계약이관이나 데뷔 프로모션 지원 같은 거 말고 안 밝혀진 우승 특전 중 하나가 뭔 줄 알아요?”

그러곤 뜬금없이 갑자기 이런 걸 질문했다.

맥락 없이 튀어나온 질문이라 고개를 갸웃하니 강현성은 날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사실 계약이관이나 데뷔 프로모션 지원 말고 다른 우승 특전이 무엇인 줄 나도 알고는 있다.

회귀 전에 나도 이 프로그램을 다 봤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걸 말하면 안 된다.

제작진들이 극비에 부치고 있을 테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리얼리티 제작입니다. 시간 차를 두고 나중에 제작해 주겠다는 공수표가 아니라 경연 후 바로 다음 주부터 촬영되는 리얼리티요.”

그래, 저거다.

이걸 어째서 강현성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파격이긴 하지.’

그냥저냥 리얼리티 제작이 아니라 더쇼케이스2 바로 다음 화부터 이어지는 리얼리티 제작이다.

이건 꽤 메리트가 크다.

더쇼케이스2 화제성이 빠지기 전에, 따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도 아니고 더쇼케이스2가 방영되는 그 황금 시간대로 바로 들어간단 거니까.

심지어 제목도 더쇼케이스2 그대로 쓴다.

그 밑에 부제로 리얼리티 주제에 따른 제목을 달아주는 거고.

원래 아이돌 리얼리티는 그 팬들만 본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건 그냥 팬들만을 위한 걸 넘어서 유입량 자체를 극대화시킬 수도 있는 거니까.’

이 시간대에 이 정도 푸시면 데뷔 전부터 유입을 극대화시킨 후 어느 정도 코어화까지 시킬 수 있다.

한데 이건 비밀일 거다.

이걸 어떻게 강현성이 아나 싶어서 빤히 쳐다보니,

“지금 이 프로그램 경연하는 거까지 다 나오면 6부작밖에 안 돼요. 지금 편집하는 분량으로 보면요.”

강현성이 이리 말했다.

맞는 말이다.

더쇼케2의 장점은 편집할 때 질질 끄는 거 없이 바로바로 넘어간단 거다.

편집 호흡이 굉장히 빠르지만 그 덕에 더 재밌는 거고.

다른 프로그램이 2주 동안 방영할 거 한 주 만에 방영하는 거니까.

“근데 이 프로그램은 10부작이거든요. 알잖아요. 방송 정보 검색하면 나오니까.”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끄덕해 줄 뿐이었다.

“나머지 4부작이 뭘까 해서 아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리얼리티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해줍니까?”

“인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겁니다”

“비리 아니에요?”

“제가 이걸로 뭐 사적인 이득이라도 취했습니까?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고, 제 지인이 답해준 건데.”

그래, 뭐.

사실 이걸 안다고 해서 강현성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미션 같은 거 전달받은 것만 아니라면야 문제 될 건 없다.

“추잡한 방법 써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강현성은 내 눈빛에서 일말의 불신감을 느낀 건지 짜증 난다는 말투로 이리 말했다.

난 시선을 거두며 일부러 먼 곳을 쳐다봤다.

괜히 또 눈빛으로 시비 털릴까 싶어서.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이걸 그럼 나한테 왜 말해줘요?”

대체 왜 나한테 이 정보를 공유해 주냐는 거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굳이 공유받을 만한 정보는 아니긴 했다.

다만 강현성 입장에서야 나름 고급 정보를 나에게 공유해 준 거긴 하다.

이 정도의 호의는 거저 주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거다.

뭔가 싶어서 보니,

“그날 기도실 왜 찾아온 거였습니까.”

“…….”

이거 물어보려고 지금 빌드업 해온 거다.

‘하아.’

난 강현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며칠 잠잠해서 이제 잊었나 싶었는데 아직도 그걸 궁금해하고 있었다니.

세상 살면서 이해 안 가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그냥 좀 좋게좋게 넘어가 주면 안 되는 건가.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은 늘 같을 거다.

“……걱정돼서 갔다고 했잖아요.”

시스템이 시켜서 갔다, 라는 말은 죽어도 내뱉을 수 없다.

강현성은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진짭니까?”

“네.”

“저를 그쪽이 왜 걱정해요?”

“어…….”

뭐라도 말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말릴 게 분명하다.

“와야 할 시간이 넘었는데 안 오면 걱정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아무 말이나 둘러대 봤으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약속 시간 늦는다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죠.”

강현성은 넘어가지 않았다.

“제가 원래 잔걱정이 많은 타입입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잔정도 조금 많고요.”

“아까 말보다 더 안 믿기는데요.”

“…….”

이 정도면 정말 취조다.

강현성은 흔들림 없는 동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누가 시켰어요?”

그러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리 물었다.

누가 시켰냐니.

그래, 시키긴 했지.

시스템이 시켰으니까.

하지만 이걸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대충, 그럴 법하게 하면 되려나.’

지금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늘어놓는 것보단 이게 나을 것 같다.

“……네. 시켰습니다.”

내가 이리 말하니,

“……음. 그렇군요.”

흔들림 없던 강현성의 동공이 잠깐 흔들렸다.

우리 둘 사이 침묵이 흐른다.

“……누가 시킨 거죠?”

이내 재질문이 들어왔으나,

“그건 말하기 어렵죠.”

이리 둘러댔다.

뭐 대충 윗분이 시킨거다, 라는 뉘앙스만 풍겼다.

윗분은 윗분이지.

시스템의 탈을 쓴 뭐 신 같은 그런 존재일 테니까.

다만 강현성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 미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강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쿠지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대형 타월로 몸을 닦으며 물기를 털어냈다.

“제가 그럼 그쪽한테 고마워할 필요가 없었던 거군요.”

고마워할 필요라.

사실 뭐,

“네. 그렇죠.”

맞다.

딱히 고마울 필욘 없지.

강현성은 날 빤히 내려다보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보죠.”

그대로 중간정원을 벗어났다.

자쿠지에는 이제 나 홀로 남았다.

강현성이 나간 자쿠지는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난 순식간에 텅 비워지는 강현성 자쿠지 속 물을 쳐다봤다.

물이 전부 다 빠져나간 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닦고 방으로 돌아왔다.

자쿠지까지 했고, 연습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잠이 안 오네.’

쉽사리 잠이 쏟아지진 않았다.

* * *

쏟아지지 않을 것 같던 잠도 결국 피로 앞에선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잠들까 싶었던 밤이었지만 정신 차려 보니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하아아…….”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나서 알람을 껐다.

오전 8시.

그래도 아주 못 자진 않았다.

오늘 연습은 오전 9시부터다.

대충 씻고 옷 갈아입고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난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를 생각했다.

다만 생각은 5초를 넘어가지 못했고 그냥 집히는 거 아무거나 걸쳐 입고 나갈 계획이었다.

머리를 감고.

세수도 하고.

이제 슬슬 연습실로 내려가 보려고 했는데,

지이이잉.

핸드폰이 진동했다.

“음?”

더쇼케2 제작진에게서 온 전화다.

보통 공지는 문자로 알려주거나 한다.

전화까지 할 일이 뭐가 있나 싶었는데,

‘아.’

순간 어떤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설마 하고 전화를 받아보니,

-태윤 씨? 일어나셨어요?

프로그램 막내 작가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다급해 보인다.

살짝 겁도 먹은 거 같고.

아주 작은 단서들뿐이지만, 그림이 그려진다.

“네.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최대한 담담한 척 말하며 물어봤지만,

-그, 고모라는 분이, 지금 오셔서요. 빨리 나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아…….

고모, 라는 단어를 듣자,

‘후우.’

손가락 끝이 잠깐 떨리는 듯싶었다.

다만,

“네. 나가겠습니다.”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끝을 내러 가는 자리다.

어쩌면 혈연의 탈을 쓴 악연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될지 모른다.

난 손에 쥐고 있던 옷을 바라봤다.

나도 몰랐는데,

‘강현성이 맞춰준 옷이었네.’

미래시에서 보고 왔던 그 옷이었다.

그냥 입을까 싶었다가,

‘아냐.’

다른 옷을 입었다.

정해진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을 다잡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건물을 나서고, 마당을 걷고, 숙소 입구로 나가보니,

‘왔네.’

그곳에 고모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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