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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91화 (91/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1화

그곳에 고모가 서 있었다.

고모와 함께 서 있던 막내 작가님이 내게 손짓했다.

마치 구조신호처럼도 보이는 손짓이었다.

터벅터벅 그쪽으로 걸어가니,

“그, 가족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하하.”

막내 작가는 마치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저 반응을 보아하니 이 고모라는 인간이 막내 작가님을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가 예상됐다.

봉태윤 어딨냐며 욕이라도 한 사발 했겠지.

난 다시 한번 고모를 바라봤다.

나잇살을 숨기지 못하겠지만 펑퍼짐하고 어두운 옷을 입고 왔다.

목에 걸린 저 큼지막한 진주 목걸이는 여전하고.

하얗게 뜬 화장에 표독스레 뻗은 아이라인까지.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다.

조금 더 늙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반면 고모는 꽤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놀랍겠지.

처음 집을 나갔을 땐 17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된 애가 지금 184센티까지 자랐는데.

난 고모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 인간이 이렇게 작았구나.’

아마 옛날 같았으면 손이 먼저 나왔을 거다,

내 머리채를 잡아챘겠지.

한데 지금은 머리채를 잡을 만한 높이가 안 나올 거다.

내가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내려다만 봐서일까.

“눈을 누가 그따위로 뜨래?”

별 같잖지도 않은 걸로 트집을 잡는다.

“고모를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고, 누가 그따위로 예의도 없이 굴어?”

이제 손이 나갈 만한 체력도, 피지컬도 안 되니 입으로 털려는 모양이다.

아줌마들끼리 기선 제압할 때에나 쓰는 멘트들 아닌가.

만나기 전에는 조금은 두렵고 떨렸는데,

‘하, 참나.’

막상 보고 나니 어처구니없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갑시다.”

해서 난 뭐라 대꾸하지 않고 그냥 걸음을 옮겼다.

“야! 봉태윤! 너 누가 고모한테 말을 그따위로 해! 어!”

그러자 고모가 발작 버튼 눌린 사람 마냥 급발진을 한다.

내가 이렇게 자기 무시하는 걸 실제 눈으로 보니 꽤 혈압이 오르나 보다.

전에 저 여자 집에 얹혀살 때엔 늘 쭈글거렸고, 기죽어 있었으며, 하라는 건 다 했으니까.

“셋 셀 테니까 여기 와서 똑바로 서.”

고모는 아직도 나를 어린 애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기 말 한마디에 무서워서 벌벌 떨던.

다만,

“고모.”

난 이제 저 여자 앞에서 떨지 않는다.

“따라오세요. 거기서 그러고 계시지 말고요.”

해서 오든 말든 그냥 걸음을 옮겼다.

안 오면 지 손해겠지 뭐.

오늘이 지나면 난 다시는 저 사람을 내 삶에서 다시 마주할 생각이 없으니까.

일단 어서 좀 이 근방을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라도 형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안 되니 말이다.

너무 떡하니 숙소 입구라 자칫 잘못하면 형들이 보고는 아는 체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약 30초쯤 뒤도 안 보고 걷자,

‘참나.’

뒤에서 고모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이 근방에 카페는 하나뿐이니 그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 * *

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저 여자도 뒤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일단 카페 풍경을 쭉 살폈다.

미래시에서 보고 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미래시에서 볼 땐 못 느꼈는데 실제로 보니 다소 오래된 카페인 것 같았다.

우선 CCTV 위치를 확인했다.

카운터 쪽에 하나, 홀 중앙에 하나.

총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정도면 뭐.’

아예 없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 다행이다.

고모라는 여자는 벌써 자리에 가서 앉아 있었다.

커피값 계산도 자기가 하기 싫단 거다.

그래 뭐, 커피값 받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는 주인분을 보니 나이가 꽤 되는 할아버님이었다.

이 정도면,

‘차라리 낫다.’

어디 가서 소문날 리는 없겠다.

난 아메리카노가 나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아예 음료를 들고 이동했다.

당연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후 녹음 기능도 켰고.

혹여나 저 여자가 아메리카노를 내 얼굴에 뿌려 버릴까를 우려해 아이스로 시켰다.

음료를 들고 가서 앉으니,

“여기까지 사람을 왜 끌고 와? 너랑 나랑 나눌 대화가 그렇게 많아?”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참 듣기 나쁘게 한다.

“우선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제가 연락드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난 먼저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방송국에 가서 깽판 좀 쳤다. 왜?”

“회사가 아니라요?”

“내가 너네 그 회사에 있는 그 새파랗게 어린 년들 생각만 하면 아직도 열이 뻗쳐! 아주 그 미친년들이…….”

고모는 회사,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승연 씨와 현아 씨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대충 요약해 보면 고모가 어떤 깽판을 쳐도 끝까지 정보를 알리지 않고 함구했단다.

다만,

‘방송국까진 막을 수 없었으니까.’

회사에서 안 통하니 이 미친 여자는 더쇼케2 제작진들 번호를 알아내 그쪽을 뒤진 모양이었다.

‘하아. 진짜.’

뭐, 어차피 찾아올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괜히 나 때문에 여기저기 피곤하게 만든 거 같아 기분이 영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를 왜 찾아온 건데요.”

난 본론을 물었고,

“돈 내놔.”

저 여자도 후진하는 거 없이 본론을 꺼냈다.

난 말없이 저 인간을 노려봤다.

“제가 왜요. 빚진 것도 없는데.”

“그간 키워주고 먹여준 건 빚 아니니?”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요? 먹고 남긴 거 주고, 거실 한구석에서 재우고. 그걸 누가 키워주고 먹여줬다 합니까. 기르는 개한테도 안 그래요.”

“그것도 못 먹는 애들 태반이야. 거둬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이 썩을 놈이…….”

다시 한번 욕 퍼레이드였다.

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돈 없어요.”

난 다시 말을 이었다.

“방송 나오면 한 회에 몇백에서 몇천씩 받는다며.”

“그건 유명한 사람들이나 그렇죠.”

“아이돌들이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면서.”

“저희 아직 데뷔도 안 했어요.”

“야, 이빨 까지 말고 돈 내놓으라고. 어디서 있는데 없는 척을 하고 있어.”

“하아아.”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난 진짜로 돈이 없다.

어디서 이상한 거나 주워들어서 나한테 돈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뭐 통장이라도 까줘요? 진짜 없다고요.”

“다른 통장에 돈 빼놓고 가짜로 보여줄지 내가 어떻게 알고?”

“……미치겠네.”

대체 왜 이렇게까지 돈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오천 정도만 줘봐. 없으면 오늘은 일단 천 정도만 주고 달마다 오백씩 보내고.”

“……뭐라고요?”

내가 방금 뭘 들었나 싶다.

오천이 오천 원은 아닐 테고.

오천만 원일 거다.

천도 당연히 천만 원일 거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가만히 저 인간을 노려봤다.

궁금한 게,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다가 쓰려는 겁니까?”

왜 이렇게까지 돈을 요구하나 싶었다.

물론 저 집이 돈이 많진 않다.

정확히는 많았는데 다 탕진했다.

한때 저 여자가 아주 돈 잡아먹는 하마처럼 살았으니까.

부동산 투기 한다며 어쭙잖게 기웃대다가 돈 털리고.

주식 하다가 돈 날리고.

그 스트레스를 못 이겨 도박에 손댔다가 날리고.

그렇게 날리고 날리고를 반복만 하던 인간이니 돈돈돈 거리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갑자기 오천만 원을 달라고 하는 건 뭔가 있단 거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어디다가 쓰려는 거냐니까요.”

“그냥 달라고 하면 주면 될 거지 어디서 말꼬리를 붙잡아?”

“억지 부리지 말고요.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 여자는 한참을 씩씩대다가 겨우 입을 뗐다.

“이번에 민지 대학 갔어.”

김민지.

저 여자 딸내미다.

동시에,

“아, 3수 하고 결국 갔어요?”

심보가 아주 나빴던 여자애이기도 했다.

“야! 걔가 간 대학이 그냥 대학인지 알아? 너 같은 새끼는 백날 공부해도 못 갈 대학이야!”

뭐 의대라도 갔나 싶어서 들어보니 그냥 지방에 있는 대학교였다.

청의대학굔가 뭔가.

일단 나는 들어본 적 없는 학교다.

내가 백날 공부해도 못 갈 대학 또한 절대 아니었고.

하긴, 김민지 그 인간도 막돼먹은 인간이긴 했다.

재수한답시고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처놀기나 했겠지.

그러니까,

“당신 딸 대학 등록금이랑 생활비를 지금 나한테 대라고요?”

그 딸내미 등록금과 더불어 지방에서 생활할 때 드는 비용이 필요한 거다.

자취를 해야 할 테니까.

한데,

‘어처구니가 없네.’

그 김민지라는 인간도 저 여자 못지않게 나한테 막대했던 사람이다.

때리고 할퀴고 무시하고 밟고.

꼴 보기 싫다며 꺼지라는 말을 늘 반복했으며.

네가 너무 밉상이라 네 부모가 너 때문에 죽은 거라는, 개쓰레기 같을뿐더러 논리적이지도 않은 말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렸을 때 한 말이 아니다.

얼추 인지력이 생길 만큼은 자랐던 중학생 때 이후부터 쭉 그런 말을 내게 수시로 해댔다.

당연하게도 그때 당시 나눴던 메시지 내역도 내게 남아 있고.

이제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혈육으로서 이야기 들어주는 건 이제 여기까지가 끝이다.

“아줌마.”

난 고모라고도 부르기 싫어 아줌마라 불렀다.

“제가 드릴 돈은 한 푼도 없어요.”

이제부턴 내가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성공한다 한들 그때에도 당신한테 드릴 돈은 한 푼도 없을 거고요.”

고모라는 인간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혈압이 오르는 것이리라.

“야악! 봉태윤!”

겁이라도 주려는 건지 나한테 악을 질렀지만,

“그쪽이 어렸을 때부터 저 때렸던 증거들, 전부 파일로 가지고 있거든요.”

난 내가 할 말을 그대로 이어갔다.

핸드폰을 조작하여 대표적인 증거 몇 개만 고모 핸드폰으로 보냈다.

“아동학대로 신고라도 할 수 있어요.”

다만 고모는 콧방귀도 끼지 않고 대답했다.

“아동학대? 야! 그게 뭐 증명이 그렇게 쉬운 줄 아니? 게다가 이미 다 큰 상태에서 고소? 아이구, 무서워라. 어디 할 거면 해봐.”

아마 전에 내가 보냈던 증거들을 보고 몇 가지 자료조사를 했나 보다.

한데,

“거기서 끝이면 저도 말 안 했죠.”

난 김민지가 나한테 했던 막말이 담긴 메시지 내역도 보냈다.

동시에 고모라는 인간이 나한테 했던 막말 내역도 보냈고.

고모한테 처맞을 때 녹음해 두었던 사운드 파일도 보냈다.

그 사운드 안에는 폭력 정황이 뚜렷한 단어들과 효과음들이 잔뜩 있다.

이 모든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아오길 잘했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내가 성공하게 될 때.

그때에만큼은 이 지옥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간절하게 모아왔던 증거들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리라 늘 기다렸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 거 같았다.

“……이 미친 새끼가!”

고모가 더 화를 낸다.

“고소해! 세상일이 다 니 맘대로 될 거 같아? 어!”

아주 악을 쓰며 당장에라도 날 잡아 죽일 듯이 군다.

“너 대한민국 법이 우스워 보이지? 판결까지 한참 걸리는 거 모르니?”

아마 믿는 구석이 따로 있나 보다.

“네, 그럴 수야 있죠. 근데 법에만 기댈 생각은 저도 없거든요.”

난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고모를 쳐다봤다.

저 미친 여자도 어쨌든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

자기 딸. 김민지.

나한텐 식은 밥 주고 틈만 나면 구타하거나 잡일을 시켰지만 자기 딸은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인간이다.

“이번에 청의대학교 갔다면서요.”

원래는 어느 대학교 간지 몰라 애매했던 부분인데, 방금 지 딸 자랑한다면서 대학교 이름까지 말해준 덕에 좀 더 협박이 수월해졌다.

“청의대학교 게시판에 이 자료들 전부 풀어버릴 거예요.”

김민지 이야기가 나오자 고모는 그제야 움찔대기 시작했다.

“몇 개월 지났다가 사라지는 논란이 되지 않게 분기마다 꾸준하게 계속 올릴 거고요, 가능하면 전단지도 만들어서 뿌릴 생각이에요.”

“대학은 졸업하면 끝…….”

“취직하게 되면 취직한 회사마다 뿌릴 거고요.”

“연애하게 되면 상대방 애인에게.”

“결혼하게 되면 그쪽 친가에.”

“만일 애를 낳게 되면 당신 손주이자 김민지 자식한테까지 보여줄 겁니다.”

저 미친 여자를 이기려면 저 여자를 공격하면 안 된다.

이미 잃을 거 다 잃은 여자니까.

진짜 무너뜨리려면 아직 망가지지 않은 저 여자 딸을 건드려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김민지 인생 아주 골치 아파지게 만들 겁니다.”

난 고모 쪽으로 상체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못 할 거 같죠? 당장 대학교 게시판부터 시작해 볼까요?”

요새 SNS란 양날의 검이다.

소문을 빠르게 퍼뜨릴 수 있으니까.

청의대학교 학생들로만 구성된 SNS 페이지를 찾았다.

이제부턴 어렵지 않다.

자세한 자료와 함께 메시지만 전송하면 되는 거다.

“제가 지금 전송 버튼만 누르면 김민지 인생 상당히 피곤해지게 되는 거예요.”

난 핸드폰 화면을 고모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어떻게 할래요?”

그 순간,

“X발 새끼야악!”

다혈질인 사람이 결국 참지 못한 걸까.

턱.

내 머리채를 잡아채더니,

“너 내가 만나면 죽여 버린다고 했지?”

눈에 살기를 담은 채 이리 말했다.

다만,

턱.

난 간단하게 저 여자의 손가락을 내 머리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눈을 맞추며 말했다.

“죽일 거면 여기 말고 좀 더 카메라에 잘 잡히는 데서 죽여야죠.”

고모라는 인간은 그제야 카페 주변을 훑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앉은 자리는 카운터 CCTV와 홀 CCTV 두 곳 모두에 걸리는 시야권이었다.

이제 클라이맥스로 가겠구나 싶은 그 순간,

“태윤이한테 손 떼!”

뒤쪽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달려왔다.

다름 아닌,

‘연훈이 형?’

우리 팀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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