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2화
“태윤이한테 손 떼!”
갑자기 연훈이 형이 튀어나왔다.
내 뺨을 후려갈기려고 준비 중이던 고모조차 살짝 놀라서 주춤거릴 정도의 박력이었다.
“뭔데 우리 태윤이한테 손찌검을 하세요!”
내 앞에 서서 고모를 막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연훈이 형은 어딘가 필사적인 얼굴이었다.
“왜 사람을 때리려고 하냐고요!”
고모는 갑자기 난입한 제삼자 탓에 꽤 당황하는 모양새였다.
다만 저 인간이 이런 거에 화를 꺾을 사람이 아니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자기 화가 풀릴 때까지 끝을 봐야 하는 사람이다.
“야! 넌 뭔데! 뭐 하는 새끼야!”
저건 대답을 바라고 묻는 질문은 아니었을 거다.
한데,
“태윤이 형이에요! 고모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예요? 네?”
연훈이 형은 또박또박 그 질문에 대답을 했다.
심지어 역질문까지 했다.
연훈이 형이 이렇게까지 똑 부러진 사람인 줄은 몰랐다.
한데,
‘고모인 걸, 알고 있네.’
말하는 걸 보니 아마 나랑 고모가 대화하는 걸 조금은 들었던 거 같다.
일단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고모 앞에서 저렇게 바락바락 대들면 안 된다.
물론 나야 상관없지만,
“이런 X발 싸가지 없는 X끼가 어디서 어른 앞에 목청을 높여!”
연훈이 형은 맞으면 안 된다.
저 미친 여자가 손을 바짝 들어 올려 뺨을 갈길 태세를 취했다.
맘 같아선 여기서 주먹이 나갔을 거다.
하지만 때리면 안 된다.
맞아야 한다.
스윽.
난 연훈이 형을 내 뒤로 보냈다.
그러곤,
쫘악-!
고모가 후려갈기는 뺨을 내가 대신 맞았다.
“태윤아!”
연훈이 형이 놀라서 소리친다.
사실 뭐, 아프진 않다.
옛날엔 이거보다 더 세게 더 자주 맞아와서.
내가 한 생각은 별게 없었다.
‘CCTV 시야권이네.’
이 정도면 어느 카메라에든 분명하게 잡혔을 구도다.
주머니에 꽂아둔 핸드폰에도 이 소리가 분명하게 녹음됐을 거고.
“이, 미친……!”
내가 갑자기 난입해 뺨을 맞자 고모는 꽤 놀란 얼굴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발 빼겠지.
하지만,
“하, 그래. 잘됐어. 어차피 좀 처맞아야 했는데, 더 처맞게 이리 대. 너 연예인 짓 못 하게 오늘 내가 얼굴 박살 내줄 테니까.”
이 미친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한번 꼭지 돌면 끝을 봐야 한다.
이 거지 같은 성격 탓에 수억을 날리고 집안을 풍비박산까지 낸 사람이다.
투기하다가도 일이 안 풀리면 홧김에 더 돈을 박아버리고.
주식을 하다가도 화를 못 이겨 고점에 넣었다 저점에 뺐다를 반복하며 돈을 날리고.
도박하다가도 본인이 호구 잡힌 걸 아는데도 끝까지 가던 사람이다.
“돈 못 받는 대신 화라도 풀어야지. 너 일로 와. 내가 오늘 죽여 버릴 테니까.”
고모는 표정을 잔뜩 구기고는 소매를 걷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때리겠단 말이다.
어렸을 때에도 저런 모션을 취하면 난 반쯤 마음을 내려놓곤 했다.
질릴 때까지 맞아봤던 기억이 있어설까.
별로 무섭지도, 감흥이 생기지도 않다.
한데,
“때리지 말라고──!”
연훈이 형이 소리를 질렀다.
한데,
“……!”
고모가 주춤거릴 정도로 아주 큰 목소리였다.
사실,
‘뭐야?’
나도 놀랄 정도였다.
연훈이 형 성량이 좋은 건 알고 있다.
노래 부를 때 보면 아니까.
한데 그런 사람이 정말 진심을 다해, 있는 힘껏 악을 지르니 귀청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여기에 더해,
“지금 여기서 뭣들 하시는 겁니까! 남의 매장에서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카페 주인 할아버님까지 합세했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우리를 말리려고 눈치 보고 있던 것 같았는데 이제야 타이밍을 잡은 것 같다.
뭐, 어쨌든 제삼자 둘이 달려와서 말린 덕일까.
“하,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고모도 한풀 꺾였다.
“당장 나가세요! 당장!”
카페 주인이 우리를 내쫓았다.
그렇게 카페 밖으로 내쫓겼다.
거리 한복판으로 나와서도 고모는 나를 계속 노려봤다.
“너, 두고 봐, 내가 진짜 죽여 버릴 거니까.”
그놈의 죽인다는 소리는 이제 아무런 자극조차 없어졌다.
내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게 더 자극된 걸까.
“야! 내가 하는 말이 장난 같아!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말의 수위가 더 세진다.
연훈이 형이 내 팔목을 잡아챈다.
이대로 이 자리를 피해버리자고 말하는 것만 같다.
연훈이 형한테 미안하지만,
“저기요.”
난 아직 이 미친년과 나눌 대화가 남아 있다.
“쥐뿔도 없으면서 소리만 지르는 거, 이제 그만 좀 해요. 시끄러워 죽겠으니까.”
“뭐? 뭐 이 X끼야?”
“늙어서까지 입에 욕 달고 살지 마시고요. 추해 보이니까.”
“야!”
“그리고, 다신 날 찾아오지도, 어디 가서 내 가족이라고 말하지도, 돈 같은 거 요구할 생각조차도 하지 마요.”
“봉태윤!”
“우리 다신 보지 말고 삽시다.”
이쯤하고 이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한데,
“내가 너 부모 죽인 호로새끼인 거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알게 해버릴 거야!”
저 여자가 기어코 선을 넘었다.
“부모 잡아먹은 괴물 같은 새끼가 어디서 사람인 척 방송에 얼굴을 들이밀어? 넌 평생 니 부모한테 속죄하며 시체같이 살아야 할 X끼야! 주제 파악을 해!”
저 말도 어린 시절부터 질리게 들었던 말이라 이제 와 새삼스레 아프진 않았다.
다만, 저 말을 이렇게 공개적인 거리에서 입에 담았다는 사실이, 꽤 거슬렸다.
“태, 태윤아.”
난 연훈이 형의 손을 잠시 놓았다.
그러곤 고모라는 년 앞으로 다가갔다.
“누가 호로자식이라고?”
때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지금 마음 같아선 정말 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고, 난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거야.”
사실 떠올리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들이다.
하지만 기어코 저 여자는 내가 옛날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죽였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지껄이지 마.”
“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살인할 팔자였어. 무당이 네놈 X끼 사주에 죽는 게 아주 가득하단 말까지 했다고!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이 거지 같은 꼴을 안 봤을 텐데.”
“아, 그래?”
내가 살인할 팔자라는 말.
그 말도 정말 죽어라 질리게 들었던 말이다.
한데 이제 보니 알겠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겠단 것을 말이다.
“연예인 하겠다는 애한테 부모 죽인 놈이라는 소문 한번 나면 이미지에 도움이 되겠니? 어?”
고모라는 년이 나한테 협박질을 시작했다.
이게 먹힐 거라 생각하나 보다.
한데,
“소문내.”
사실 이젠 별로 상관없다.
“소문내는 순간, 난 김민지한테 갈 거야.”
나도 똑같이 협박하면 되는 문제니 말이다.
“내가 살인할 팔자라 그랬다면서.”
난 고모라는 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게 우리 부모라고? 개소리하지 마.”
애초에 좋은 말로, 합리적인 말로 해서 될 상대가 아니다.
“잘 생각해 봐요. 사회적 죽음도 죽음이지, 안 그래?”
“야아아아!”
고모가 또 한 번 머리채를 잡아채려 했지만,
탁.
난 가볍게 몸을 돌리는 걸로 그 손길을 피해냈다.
그러곤 고모 쪽으로 다시 한 번 더 걸음을 옮겼다.
“당신 딸 인생 아주 피곤하게 만들어줄게. 어디 가서 평생 얼굴 못 들고 살게 만들 자신 있거든.”
“민지한테 손대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아?”
“해보든가.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니까.”
고모라는 여자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이 한 번 더 나갈 차례다.
다만,
꽈악.
내가 손목을 먼저 잡았다. 그러곤 조금만 힘을 주자…….
“꺄아아악!”
고모가 목청껏 비명을 지른다.
“내 앞길 막으려 들면 나도 네 딸 앞길 막을 거고, 다시 한번 내 앞에 찾아오면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어. 알겠어?”
난 이 미친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딸 건사하고 싶으면 처신 잘해.”
거기까지 들은 고모는 자리에 털썩 하고 주저앉더니 멍하니 날 올려다봤다.
“난 방구석에 앉아서도 당신 딸 매장시킬 수 있단 거 잊지 말고.”
주저앉은 고모를 뒤에 둔 채 걸음을 옮겼다.
한차례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하아.’
도무지 마음이 씻겨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난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저 끝에 연훈이 형이 서 있었다.
연훈이 형 얼굴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왜일까.
평생 한 번도 연훈이 형 얼굴 보고 이런 적이 없는데,
‘……이상하네.’
지금은 눈을 맞추질 못하겠다.
“태윤아.”
연훈이 형이 내게 손을 건넸다.
다만,
“……가요, 형.”
지금은 그 손을 잡을 힘이 생기질 않았다.
* * *
숙소까지 가는 동안 연훈이 형과 나는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연훈이 형이 뒤따라오고 내가 앞장서 가는 그림이 쭉 이어졌다.
숙소에 다 왔을 때.
난 연훈이 형과 다시 마주 봤다.
형은 어딘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보려고 본 건 아니었어.”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연습 전에 애들 커피 사주려고 나왔다가 듣게 돼서. 처음엔 사적인 일인 거 같아서 나가려 했는데, 때리려는 거 보고 놀라서 나도 모르게…….”
연훈이 형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
한데,
‘왜 이러냐 정말.’
마음이 영 불편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줘서인가.
도무지 형과 눈을 맞출 만한 용기가 안 들었다.
“……아니에요. 형이 사과할 게 없어요.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웠어요.”
난 연훈이 형에게 이리 말했다.
전에 운이 형한테 걸렸을 때에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때보다 심하다.
그땐 고모가 직접 나타나진 않았으니까.
“태윤아.”
연훈이 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나를 불렀다.
내가 고개를 못 들고 있자,
꽈악.
형이 다가와서 날 끌어안았다.
“너무 고생 많았어, 태윤아.”
뭔가 전이랑 비슷한 레퍼토리로 흘러가는 것 같다.
한데,
“…….”
고모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가 않았는데.
지금은 어딘가가 고장 난 사람 마냥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했어, 태윤아. 괜찮아.”
등을 토닥여 주는 그 일정한 박자가 이토록 큰 위로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숙소 앞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 * *
아침부터 거친 일이 너무 와다다 들이닥쳐서일까.
그날 오전 시간 내내 무엇에도 크게 집중하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멘탈이 털린 게 경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1등 확률 : 80%]
이 수치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니 말이다.
연습도 이젠 몸에 익었기에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이 지나고.
저녁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저녁 연습까지 끝낸 후.
“오늘이 합숙 연습 마지막 날이네요. 그동안 연습량이 많았을 텐데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강현성의 마무리 멘트까지 들은 후 연습이 끝이 났다.
“후아!”
“뭔가 시원섭섭하네요.”
“그래도 확실히 무대 준비는 제대로 할 수 있던 거 같았어요.”
“아직 24일 경연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요.”
그렇게 모범 답안 같은 멘트들이 몇 차례 오간 후 우린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합숙 마지막 날이라 해서 방송국에서 이벤트를 준비하고 그런 건 없었다.
그냥 그날 저녁밥을 뷔페식으로 조금 더 푸짐하게 차려줬다뿐이었지.
촬영을 하긴 했으나 대본이 있는 촬영은 아닌, 방송에 한 5초 남짓 나갈 자료용 촬영 같았다.
난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복기했다.
오전에 난리가 있었다는 것을 빼면 전체적으로 무난한 하루였다.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다.
그때,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이곳에 들어와서 누가 내 방문 두드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뭔가 싶어서 문을 열어보니,
“……형들?”
우리 멤버 형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서 있나 싶어서 보니,
“태윤아. 가자.”
“……?”
“연훈이 형이 차 빌렸대.”
“……네?”
“피디님한테 밤에 잠깐 그룹끼리 드라이브 갈 거라고 말씀도 드렸어, 그러니까 액션캠 하나 주면서 가볍게 놀면서 촬영도 해오기만 하면 오케이라고 하시더라고.”
뭔가, 내가 모르는 이런저런 일들이 꽤 진행된 것 같았다.
다만 마음이 영 내키지는 않았다.
형들한테 미안하지만 이걸 가야 하나 싶었는데,
[1등 확률 : 81%]
그간 움직이질 않던 수치가 갑자기 올랐다.
결국,
“……네. 가죠.”
난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