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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93화 (9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3화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오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일단 드는 첫 번째 걱정은 지금이 꽤 늦은 시각이란 거다.

이 한 번의 일탈이 컨디션 난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한데,

“가기 전에 하나씩 마시자~”

“……이게 뭐예요?”

“홍삼!”

연훈이 형이 가방에서 홍삼을 꺼내서 돌린다.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요.”

“요즘 편의점에 다 팔던데?”

난 연훈이 형이 건네준 스틱형 홍삼을 쭉 짜 먹었다.

그러곤 다시 형들을 바라봤다.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이 액션캠을 들고 놀고 있다.

“근데 저희만 이렇게 돌발 행동 해도 되는 거예요?”

난 이게 가장 걱정이다.

안 그래도 방송에서 밀어준다니 뭐니 하며 욕먹고 있는데.

이거 방송 나가면 진짜 특혜 소리 나올 만하다.

한데 저 옆에서 강현성을 비롯한 온리원 멤버들이 액션캠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어디 간다고요? 현성이 형?”

“청평호.”

“예에에에~”

동시에,

“와! 자유시간?”

“그냥 아무 데나 다녀와도 되는 거야?”

블레슈도.

원바이원도.

루미닌도 각자 그룹끼리 튀어나왔다.

“사실, 우리가 드라이브 요청하니까 PD님이 그럴 거면 다른 팀들한테도 자유시간 주겠대.”

제안을 우리 형들이 한 건 맞지만 혜택은 모두가 누리나 보다.

이거라면야 뭐.

“네. 알겠어요.”

큰 걱정거리는 해결이다.

“저기 앞에 차 주차시켜 뒀어. 얼른 가자!”

연훈이 형은 렌트카 어플을 켜며 원격 시동을 걸었다.

숙소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이 웰컴 라이트로 우릴 반겨준다.

“오늘 누가 조수석 탈래?”

“가위바위보 할까?”

“됐어. 그냥 태윤이 태워.”

“전 괜찮은데요.”

“아냐. 조수석 타.”

딱히 조수석에 탈 생각은 없었는데 이리 밀어주니 또 나쁠 것도 없었다.

“자~ 갑니다~”

숙소를 빠져나와 도로 위로 올라탄 차는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나름 신나고 정겨운 드라이브다.

“그, 우리 목적지 정해두고 다니는 거예요?”

“아니?”

“목적지가 뭐지?”

“그냥 가.”

이 형들, 목적지를 안 정해두고 있었다.

뭐, 그냥 드라이브니까 그럴 수 있다 치고 가만히 있었다.

한데,

“어? 길 잘못 들었다.”

“어? 잠시만.”

“어?”

“어?”

“어, 잠깐만.”

뭔가, 불길한 소리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 * *

“여기가……. 어딜까 얘들아.”

몇 번의 어? 끝에 우린 영 이상한 곳에 당도하고 말았다.

“일단, 지도를 보면 가평이라고 뜨긴 뜨거든요?”

“그래?”

“근데, 가평인 거 말고는, 사실 아무것도…….”

형들은 어둠과 들판뿐인 공터에 서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봤다.

우린 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한 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앞이 너무 안 보이기에 핸드폰 플래시를 켠 채로 말이다.

막상 걸으니 나름 운치가 있었다.

“여러분~ 저희가 지금 굉장히 낯선 곳에 도착을 해버렸습니다~”

“여기가, 대체 어딜까요.”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이 각자 액션캠을 들고 멘트를 쳤다.

나랑 운이 형, 연훈이 형은 뒤에서 조용히 걷기만 했다.

“너네 팀은 어때? 연습 잘 되어가?”

운이 형이 내게 물었다.

“네. 잘하고 있어요.”

“진짜?”

“이거 이렇게까지 일이 쉽게 진행되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끄러워요.”

“오~”

강현성 팀은 이제 더 손볼 구석이 없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단 뜻이다.

“형네는 어때요?”

“우리도 대박이야!”

“잘하고 있어.”

연훈이 형과 운이 형 둘 다 자신감을 비추는 걸 보니 잘되어가나 보다.

“특히 연훈이 형이 엄청 애써주고 있어.”

“운이가 안무도 직접 짜고 진짜 노력 많이 해줬어.”

운이 형과 연훈이 형 사이에 있다 보면 잃어버린 인류애를 다시 회복하는 느낌이다.

“요즘 힘든 건 없지? 태윤아?”

운이 형이 걱정된단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힘들게 있나요. 그냥 하는 거죠.”

운이 형은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그때,

“여러분! 저기 앞에 무슨 바다 같은 게 있는데요?”

앞장서 걷던 동준이 형이 앞을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 아니야?”

“아, 그런가?”

“응? 무슨 말이야?”

“뭐가 있어?”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이 앞쪽으로 가며 물었다.

나도 형들을 따라 앞으로 갔다.

그러자.

“와.”

“뭐야?”

탁 트인 호수 같은 게 펼쳐졌다.

“앉을 데가 있나.”

“여기 플라스틱 의자 있는데요?”

“더럽지 않나?”

“에이 대충 닦고 앉는 거죠, 뭐.”

동준이 형이 공터에 버려진 플라스틱 의자 다섯 개를 가져왔다.

다 같이 앉아서 물멍을 때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말이 없어졌다.

대자연이 주는 압도감이랄까.

이렇게 멍 때리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니까 아무 생각 않고 어둠 속 호수를 응시했다.

다만 마음을 비워내려 하면 할수록 점점 깊은 곳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때,

“형들은 아이돌 왜 하고 싶었어요?”

침묵을 깨고 동준이 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나?”

“흐음.”

“갑자기?”

그 질문에 운이 형, 도승이 형, 연훈이 형이 진지한 얼굴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듣는 거 엄청 좋아했었어.”

먼저 입을 뗀 건 도승이 형이다.

“하루 종일 이어폰 끼고 살아서 귀에 염증 났을 정도로.”

“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수가 하고 싶었고, 찾아보니 아이돌이 더 괜찮을 거 같았고, 때마침 오디션도 있고 해서 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지.”

“우우우! 무드 없다~ 재미없는 강도승.”

“얌마!”

도승이 형의 어딘가 현실적인 흐름에 동준이 형은 얄짤없는 비난을 보냈다.

“운이 형은요?”

“나는……. 사실 아이돌보단 댄서가 되고 싶었던 거 같아.”

“댄서요?”

“댄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게, 사실은 그냥 우리 동네에서 댄스학원 선생님 하고 싶었어.”

“에?”

“그, 내가 살던 곳이, 좀 시골이잖아.”

맞다.

이제야 기억났다.

운이 형 상당히 시골 출신이다.

전라도 어디 군 출신이었던 거 같은데.

사투리를 아예 안 쓰니 깜빡 잊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댄스학원 딱 하나 있었거든. 자연스레 나중에 크면 거기 선생님 될 줄 알았어. 근데, 선생님 지인 중 한 사람이 서울에서 아이돌 댄스 트레이너셨고, 뭐 어쩌다 보니…….”

운이 형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한 무언가는 없고 일상적인 느낌이었다.

동준이 형은 좀 더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원한단 듯이 연훈이 형을 쳐다봤다.

연훈이 형은 해맑게 웃고는,

“난 패스!”

이리 말한다.

딱히 말하고 싶은 눈치는 아닌 거 같았다.

그러자,

“태윤쓰는?”

“저요?”

내 차례가 온다.

나도 패스, 라고 말하고 넘어가도 되다만,

‘엄청 기대하네.’

감동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 저 눈을 보니 그냥 넘어가기 애매하다.

다만,

‘가족 놀이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숙식 제공도 받아야 했고.’

내 이야기를 풀어버리면 갑자기 확 무거워져 버린다.

고모한테 매일 맞다 보니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 숙식 제공도 해주고 케어까지 해주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야만 해서 연습생을 했던 거니까.

사실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한데,

‘흐음.’

사실 이것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것 같다.

“제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어쩌면 처음 해보는 질문이다.

속으로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형들은 흥미가 동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특히 동준이 형은 자기가 원하던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 건지 더 내게 바짝 붙는다.

이거 정말 뭐라도 말해줘야 할 거 같은 분위기다.

사실 숙식 제공해 주는 일은 아이돌 말고도 많았다.

당장 구직 사이트만 뒤져도 숙식 제공 아르바이트는 많으니까.

한데 난 그 많은 것들을 제하고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을 본 거다.

‘이상하긴 해.’

물론 그 당시엔 나름 논리가 있었다.

난 어리니까 그런 곳에 함부로 갔다가 큰일 날 수도 있다, 라는 논리였다.

내가 처음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한 건 중학생 때니까 그때엔 그럴 수 있다.

날 뽑아줄 만한 사업장도 없을뿐더러, 중학생을 뽑는 사업장이라면 정말 의심해 볼 만한 사업장일 테니까.

그러니 숙식과 케어를 제공해 주는 가장 안전한 곳은 연습생 숙소였을 것이다.

또 다소 오만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꽤 생겼다는 걸 알기도 해서 연습생이 되는 게 가장 쉽고 안전한 길이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턴 숙식 제공을 받기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

대충 나이를 속일 수도, 아니면 그냥 할 수 있다는 패기로 숙식 제공 업장에 취직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난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심지어 가망이 없는 WD엔터로 옮겨와 어떻게든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려고까지 했다.

이젠 정말 숙식 제공해 주는 일을 하면서 돈 모으는 게 현실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단 건 아마,

“……사랑 같은 걸, 받고 싶었나……?”

대충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었는데,

“응?”

“사랑?”

형들은 내 대답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다만,

“사랑받고 싶어서……인 거 같아요. 아마 나도 모르게 무대 위의 아이돌을 동경했던 거 같아요.”

지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게 가장 그럴 법한 이유인 거 같다.

“나도 저렇게 무대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였던 거 같은데…….”

여기까지만 말하고,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라고 덧붙이려 했는데,

“태유나…….”

“흐읍!”

연훈이 형과 운이 형이 갑자기 울어버렸다.

“……에?”

갑자기 우는 저 둘 탓에 나도 벙쪘고.

“그, 운아?”

“연훈이 형……?”

나와 마찬가지로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도 벙쪘다.

이제 보니,

‘뭐야.’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은 내 고모와 관련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다.

지금 내가 한 말 듣고 본인들 나름 머릿속으로 신파 드라마 한 편을 뚝딱해 버린 것 같다.

이거, 분명 내가 위로받아야 할 거 같은 타이밍인데,

“그, 형들 괜찮아요?”

“태윤아아!”

“우리가 많이 사랑해 줄게…….”

뿌에엥 거리는 두 형을 어쩌다 보니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뭐, 뭐지.”

“우리도 울어야 할 타이밍인가.”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은 멍한 얼굴로 우리 셋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우린 호수 앞에 서서 눈물 샤워를 했다.

얼추 진정이 된 거 같아 슬슬 떠나려는데……,

타다닥.

저 멀리,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음?”

한창 운이 형이랑 연훈이 형을 달래주던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쭉 뺐다.

어두운 곳.

야심한 시각.

정보가 제한된 낯선 장소에서 타인의 출현을 기다리게 되니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오늘 사고가 터지는 건가 싶어 잔뜩 긴장한 채 감각을 최대한 넓게 사방으로 퍼뜨리는데,

파앗-!

이내 강렬한 플래시 빛이 우리를 비췄다.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강렬한 빛 너머,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태윤 씨?”

“우와!”

“대박! 여기서 만나다니.”

……온리원 멤버들이었다.

“세이렌도 창평호 온 거였어요?”

박영호의 해맑은 물음에 난 그제야 떠올렸다.

온리원이 창평호에 가겠다고 떠들었던 것을.

그렇단 건,

‘이 호수가 창평호구나.’

참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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