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5화
강현성과 나는 결국 강남 근처에 있는 24시간 프랜차이즈 버거집에 들어왔다.
국밥을 먹잔 의견을 철회하고 강현성을 따라왔다.
“입맛이 안 맞네요.”
“네.”
“국밥을 대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좋아하는 거죠?”
“그 말은, 분명 문제가 될 수도 있을 만한 발언일 텐데요……?”
“취향입니다.”
국밥 싫어하는 한국인이라니.
이건 뭐 커피 안 마시는 이탈리아인 같은 거 아닌가.
난 어처구니없단 듯 강현성을 바라봤다가 눈앞의 무인 계산대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아무거나 아침 메뉴를 시킨 후 자리를 물색했다.
강남이긴 하지만 시간이 워낙에 이른 시간인지라 매장은 한산했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닐지 몰라도 강현성은 꽤 얼굴이 유명하니까.
강현성의 메뉴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내 메뉴가 나왔다.
각자 따로 주문을 해서 서로 어떤 걸 먹는지는 공유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끝이라고요?”
“네.”
강현성은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끝냈다.
이러면 아침 세트 메뉴 시킨 내가 뭐가 되는가.
“무대 전에 짜게 먹으면 붓잖아요.”
“내가 뭐가 됩니까 그러면.”
“생각해 보니 우리 같은 무대에 서네요.”
강현성은 내 식판 위의 메뉴 중 가장 염분이 많아 보이는 메뉴만 슬쩍 옆으로 빼냈다.
“무대 끝나고 나서 드시든가 하세요.”
“이러면 음료수만 마시란 거 아닌가요.”
“제로죠?”
“네.”
“그건 마시세요.”
제로 아니었으면 음료수도 뺏었을 놈이다.
나도 보통은 우리 형들이랑 있으면 메뉴 타박을 하는 편이긴 한데,
‘어째 형들한테 미안해지네.’
형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체감됐다.
강현성은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나도 쪼로록 거리며 음료수만 빨아댈 뿐이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 매장은 음악도 안 틀어주는 매장이라 적나라한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내가 불렀으니 내가 입을 떼는 게 맞다.
“아침 식사를 요청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네. 말해봐요.”
“선배님은 왜 아이돌이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
강현성이 무슨 말이냔 듯 미간을 구기며 날 바라본다.
“호구조사 합니까?”
“아뇨.”
“뭐 잡지에 실을 인터뷰예요?”
“……아닌데요?”
“그런 질문을 카메라 밖에서 받아본 건 처음인데요.”
“…….”
난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숙였다.
이 질문이 뜬금없는 질문인 건 맞다.
사실 이런 질문을 사석에서 하는 아이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은 질문이니까.
아이돌도 결국 직업이다.
처음에야 그 동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다 보면 관성적으로 하게 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미 현실에 찌든 사람에게 강제로 동심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는 질문이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거예요? 어디 쓸데가 따로 있어요?”
“아뇨.”
쓸데라면 있긴 하다.
[1등 확률 : 83%]
이 확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싶으니까.
사실 지금도 충분히 높은 확률이다.
83%면 꽤 든든한 수치니까.
하지만 이번 3차 경연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이번에 온리원이 1등 하면 게임이 바로 끝나는 거니 말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1등 해야 한다.
그런 중요한 판에 1등이 되지 못할 확률을 17%나 남겨두고 싶지 않다.
최대한 10% 안쪽으로 떨어뜨릴 생각이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궁금하다고 이런 자리까지 만들 성격은 아니지 않나요?”
“…….”
뭔데 나를 이렇게 잘 파악하고 있는 거지.
평소의 나라면 강현성이랑 밥 먹을 생각 따위 안 했겠지.
다만,
‘들어 봐야 하니까.’
인정하기 싫지만 이 바닥에서 만난 인간들 중 가장 나랑 성격적으로 닮은 건 눈앞의 이 인간이다.
이 인간은 누가 봐도 프로 아이돌이다.
팬들에게 다정다감하고.
무대 잘하고.
자기관리 철저하고.
어디서 그런 동기가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이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후배 진로 상담 해준다 치고 부탁드립니다.”
“뭐, 알았어요.”
강현성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다시 입을 뗐다.
“처음엔, 당연히 동경이었죠.”
“네.”
여기까지야 당연하다.
“그 뒤엔, 질투였고요.”
다만 여기서부턴 살짝 의외였다.
“그다음부턴 분노였어요.”
“……?”
“제가, 데뷔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던지라.”
얼추 알고는 있다.
셀유돌 말고도 강현성의 연습생 생활기도 그다지 편치만은 않았던 것을.
“사실 지금은 내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는지를 거의 잊은 상태이긴 해요. 어느 정도는 직업적인 마인드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또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른 결의 답이다.
난 강현성 입에서 좀 더 직업적이며 좀 더 건조한 답이 나올 줄 알았다.
한데,
“팬들이랑 소통하는 것도 즐겁고, 무대에 서는 건 늘 좋죠. 하나하나 커리어를 쌓아가는 성취감도 크고요.”
“……아이돌 그 자체네요?”
“……네?”
“아닙니다.”
나와 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형들이랑 더 닮았다.
강현성에게서 우리 형들이랑 닮은 구석을 발견하게 되다니.
괜히 형들이 겹쳐 보이는 느낌이라 고개를 돌렸다.
“원했던 답이랑은 다른가 보군요.”
“다른 답이 어딨나요. 선배님 이야긴데.”
“기대하던 바가 있었을 텐데요.”
“아닙니다.”
“그래요?”
“네.”
우리 둘 사이에 또 한 번 침묵이 찾아왔다.
음료수는 이미 다 먹어서 얼음만 남아 있다.
“봉태윤 씨 내부적으로 벽에 부딪힌 상황 아니에요?”
강현성이 내게 역질문을 했다.
“봉태윤 씨는 왜 아이돌을 하고 싶었던 겁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름 마련되어 있긴 하다.
“아마, 사랑받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그 뒤에 ‘였을 겁니다’는 뭐예요.”
“확신은 못 하겠어서요.”
“그러면 지금은 왜 아이돌을 하려는 겁니까.”
“…….”
시스템이 시켜서요.
라는 답은 속으로 삼켰다.
“처음 아이돌을 하고 싶었던 이유와 지금 망설이게 된 이유 사이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처음과 지금 사이?
“사랑받고 싶어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치면, 지금은 사랑받기 싫어서 아이돌을 하기 싫어진 거겠죠.”
“아이돌이 하기 싫다곤 안 했는데요?”
“아이돌이란 직업에 어떤 망설임이 있는 거잖아요, 지금.”
독심술이라도 하나?
“사랑받고 싶어서 했다가, 지금 망설이게 되는 거면, 답은 사랑받기 싫어서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리 도식적으로 풀이해 주니 이해가 가긴 한다.
어쩌면 저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집착이 어린 시절엔 있었던 거 같다.
반면 형들의 죽음과 골방 칩거, 회귀, 라는 과정을 겪게 된 지금의 나는,
‘사랑받고 있을 만한 여유가 있나.’
상상 속의 행복한 아이돌 라이프에 거부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다만,
[1등 확률 : 83%]
확률에 변함이 없다.
강현성의 말이 맞는 말이긴 한데, 무대에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아이돌이 사랑받기 싫어 한다라,
‘그게 말이 되나?’
어쩌면 난 뿌리부터 틀어진 건가 싶었다가,
‘깊이 생각하지 말자.’
더 생각했다간 83%에서 더 밑으로 떨어질까 봐 마음을 다잡았다.
“근데, 어쨌든 지금 아이돌을 하려고 노력 중인 거잖아요.”
“네.”
강현성이 말을 더 이었다.
“그러면, 사랑받기 싫은 게 아닌 거겠죠.”
“……?”
“정말 사랑받기 싫다, 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돌을 때려치우지 않았을까요.”
흐음.
사실 처음엔 정말 때려치우려고 하긴 했어서…….
할 말이 없다.
“뭔가가 싫다는 건 생각보다 큰 감정이라, 결코 끌어안고 갈 수 없거든요.”
다만 강현성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정말 싫었다면 아이돌을 하지 않을 수많은 꼼수를 생각해 냈을 것 같다.
그 말은,
‘영 글러먹진 않았다는 건가.’
이런 희망을 가져봄 직도 하다.
“사랑받기 싫은 게 아니라, 사랑받을 줄 모르는 걸 수도 있어요.”
“사랑받을 줄 모른다고요?”
“뭐, 생각은 알아서 해봐요.”
A or B인 줄 알았던 선택지에 C가 생겼다.
동시에,
[1등 확률 : 84%]
확률이 올랐다.
내가 살짝 놀라서 강현성을 쳐다보자,
“도움이 됐나 보네요.”
강현성은 희미하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갑시다.”
강현성이 진짜 도움이 될 줄이야.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사랑받을 줄 모른다라…….’
마음속에 걸리는 데가 있었다.
사랑받을 줄 모르는 건 고질적인 나의 문제일지 모른다.
어쩌면 알고 있었는데 애써 무시했던 문제.
‘쪽팔리네.’
가장 약한 부분이 들춰진 것 같았다.
한데 고무적인 것이,
‘해결해 보자. 이번 기회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짐을 하는 것만으로,
[1등 확률 : 85%]
확률이 올랐다.
* * *
강현성과의 아침 식사를 끝낸 후 숙소로 돌아왔다.
스튜디오로 출발하기 전에 숙소에 들러서 챙겨야 할 게 있었다.
보조 배터리나, 이어폰 같은, 일상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야 했다.
숙소에 들어가니 형들은 이미 다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들이었다.
이제 나 없이도 잘들 일어나는 것 같다.
“어디 갔다 왔어?”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는 나를 보며 운이 형이 물었다.
“잠깐 아침 산책 좀 했어요.”
차마 강현성 만나고 왔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태윤쓰~”
동준이 형이 휘적휘적 걸으며 가볍게 손 인사를 한 채 소파에 풀썩 앉았다.
“자! 다들 준비 끝났지?”
연훈이 형이 최종 점검을 하고 이제 출발하려나 보다.
“태윤이는 오늘 강현성 선배님네랑 같이 출발하지?”
“네.”
“그러면 스튜디오에서나 봐야겠네.”
“맞죠.”
“아쉽다. 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날 안아줬다.
“오늘 우리 1등 하자!”
“무조건 1등 합시다!”
“다들 무대에서 아주 관객들 잡아먹겠단 마음으로 춤추자!”
“넵!”
형들과 나는 3차 경연 무대에 대한 마음을 다잡았다.
형들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빼먹은 건 없나 마지막으로 점검한 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강현성네 연습실 앞으로 가니 팀원들이 모두 집합한 채였다.
“결원 없으면 이제 출발합시다.”
“네에~”
이 팀은 미니 버스를 빌려 9명이서 다 같이 이동할 예정이었다.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은 그대로 강남에 있는 샵으로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다시 또 경기도에 있는 세트장으로 출발했다.
더쇼케2 3차 경연이 펼쳐질 세트장으로 가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오늘이 기점이네.’
오늘 세이렌이 1등을 한다면 파이널까지 최종 우승자가 누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온리원이 1등을 하면, 그대로 끝이다.
[1등 확률 : 85%]
아직은 아쉬운 확률을 눈에 담은 채, 난 마인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사랑에 대한 주제가 날 이토록 골치 아프게 할 줄은 몰랐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야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다.
* * *
더쇼케2 3차 경연의 촬영일.
3차 경연 방청에 당첨된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스튜디오 근처에 모여 있었다.
단순히 방청을 기다리는 것을 넘어 하나의 이벤트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비공굿 나눔이라던가.
SNS로만 알고 지내던 파랑새 친구들을 만난다던가.
다만 방송 초기 방청단과 지금 방청단 사이에는 분위기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게 있었는데,
-이운 공녀님 띠부씰 개예쁨;;
-아 늑대태윤 너무 갖고 싶음……ㅈㅂ 선착 안에 들었으면
초기엔 온리원 중심으로 이뤄지던 비공굿 나눔과 같은 이벤트들이 이젠 세이렌을 중심으로도 꽤 일어난단 거였다.
어느새 세이렌 팬덤도 꽤 생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세이렌 팬덤과 온리원 팬덤 사이의 신경전도 그만큼 거세졌는데,
-나만 봉태윦 뚝딱이 같냐?
-봉태윦 ㅈㄴ 끼 없는 거 왜 팜?
-얘네가 까는 거 보니 우리 애들이 잘하긴 하나 보다~~
방영 직전까지도 SNS상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다.
그중 최고 화제는 봉태윤 끼 없음에 대한 부분이었다.
전방위적으로 깔 게 없는 세이렌에게서 그나마 찾아낸 흠이었기 때문이다.
이 악물고 그 지점만 공략하는 사람들과 필사적으로 먹금 하며 버티는 사람들 간의 묘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선을 넘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
더쇼케2의 3차 경연 촬영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