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6화
더쇼케2의 메인 피디 박수철은 완성되어 가는 무대 세트를 바라봤다.
세트가 마무리되어가는 걸 보는 게 피디로서의 루틴 같은 거였다.
세트가 잘 완성이 된다면 오늘 촬영도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하나.
미신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세트 작업이 잘 끝나면 안심하고 촬영할 수 있었고.
세트 작업이 잘 안 끝난다면 한 번 더 여러 가지 사항들을 체크해 볼 만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출연진들 다 왔지?”
“네. 다 도착해서 팀별로 대기실 찢어뒀습니다.”
“오늘 촬영이 잘되어야 할 텐데.”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다시 세트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촬영은 다른 촬영들보다 유독 중요한 촬영이었다.
어쩌면 프로그램의 향방이 갈릴 수도 있는 촬영이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세트 제작 과정도 평소보다 더 주의 깊게 보는 중이었고 말이다.
“오늘 온리원이 1등 하면 최종 우승이지?”
“파이널 무대가 그냥 송별 콘서트 같은 게 되겠죠.”
“막판에 긴장감이 훅 꺾이긴 하겠네.”
“뭐, 어쩔 수 없죠. 조작할 순 없잖아요.”
온리원이 1등을 하느냐 다른 누군가가 치고 올라오느냐.
오늘 경연의 주인공이 어쩌면 이 프로그램 자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담당 피디로서 누가 주인공이 되든 최대한 그 주인공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편집은 하겠다만…….
‘가급적이면 온리원 말고 다른 팀이면 좋겠네.’
그래도 파이널 무대까지 화제성을 이어가려면 새로운 팀이 급부상하는 게 좋긴 했다.
지금으로선,
“세이렌 얘들은 잘하고 있어?”
세이렌이 가장 유력하긴 했다.
“연습 영상들 떠온 거 보면 잘하긴 해요.”
“잘하긴 해요, 는 살짝 불안한 워딩인데?”
“아뇨. 그냥 잘해요. 엄청나게.”
“뭐야. 그럼 불안한 거 없잖아.”
“근데, 강현성네 팀도 엄청 잘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불안하긴 하네.”
담당 피디로서 대놓고 세이렌을 응원하는 건 안 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파이널 경연을 굿바이 콘서트로 바꿔야 하나.”
“일단은 좀 더 지켜보죠, 피디님.”
“후우. 그래.”
“그리고 강현성 팀에 봉태윤이 끼어 있기도 하니까. 두 팀 다 잘하는 게 세이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래. 그럴 수 있지. 좋게 좋게 생각하자.”
박수철은 전자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나 담배 한 대 태우고 온다.”
걱정도 날릴 겸 니코틴 타임을 가지려는데,
“피디님!”
저 멀리서 세트 제작 팀원이 박수철에게로 급히 달려왔다.
전자담배를 입에 물고 밖으로 나가려던 박수철은 그대로 굳어서 팀원을 쳐다봤다,
세트 제작에 문제가 생긴 건가.
하필이면 이 중요한 타이밍에 징크스에 걸리다니.
오늘은 날 잡고 제작 상황을 쭉 되짚어봐야 하는 날인가 싶었는데,
“세트가…… 너무 잘 나왔습니다.”
“……뭐?”
“이게 예상보다 1시간은 일찍 끝날 거 같아요! 오늘 아주 제작 과정이 매끄럽게,”
“얌마! 놀랐잖아!”
“……네?”
“하아. 아니다.”
“……네, 암튼, 그, 오늘은 예상보다 1시간 일찍 리허설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세트 제작 팀원은 그리 말한 후 웃으며 현장으로 돌아갔고, 박수철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트가 잘 만들어져?’
이렇게 팀원 한 명이 뛰어와서 세트가 잘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늘 뭐가 되려나?’
미신인 것은 알지만, 이상하게 예감이 좋았다.
“슬슬 리허설 준비시켜 보자. 나 담배 한 대만 빠르게 태우고 올게.”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흡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느낌이 좋아설까.
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 * *
스튜디오에 도착한 후 난 강현성네와 함께 대기실로 이동했다.
현재 상황은 이전 경연들에서 그룹별로 철저하게 비밀 엄수를 시켰던 것과 유사하다.
다른 팀 대기실 방문 금지.
리허설 시청 금지.
본촬영 전까지 서로의 무대는 철저하게 비밀인 거다.
물론 합숙하며 중간점검 하는 시간에서 얼추 보긴 했으나.
‘그게 전부가 아니니까.’
결코 그 수준에서 멈춰 있는 팀은 없을 테다.
무엇보다 우리 형들 팀은 아예 곡부터 안무, 컨셉까지 싹 다 바꿨으니 정보 자체가 전무하다 보는 게 맞다.
다만 이 팀 사람들은 별로 걱정하는 게 없는지,
“몸이나 풀고 있을까요?”
“마지막 점검 한 번씩 하죠.”
경연을 준비는 하되, 긴장한 기색들은 없었다.
그럴 법한 게 이렇게까지 무대 완성도를 끌어올렸는데도 지게 된다면, 그건 뭘 가져와도 질 수밖에 없단 것일 수 있으니까.
심지어 오전에 했던 리허설에 대한 반응도 좋았으니 더더욱 걱정할 게 없을 거다.
‘온리원이 이미 1등을 두 번 해서 크게 긴장 안 하는 건가.’
또한 온리원의 경우 이미 분명한 선두다 보니 이번 무대에 부담감을 조금 덜었을 수도 있다.
그 밖의 원바이원 멤버들이나 블레슈 멤버들은 이미 1등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했기에 긴장을 덜한 것일 수도 있고.
반면 나는,
[1등 확률 : 85%]
이 확률을 노려보며 자꾸만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모든 지표가 긍정적인데, 자꾸만 안 좋은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 무대 1등을 못 하게 되면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다.
물론 85%면 어지간해선 1등을 할 거란 수치이긴 하지만,
‘위험해.’
이런 중요한 기점에서 85%면 위험한 수치다.
실수 한 번으로 수치가 급락할 수 있으니 말이다.
90% 이상으론 올려야 할 텐데,
‘흐음.’
사실 사랑받을 줄 모른다, 라는 화두를 노력으로 극복할 수도 없는 것인지라 90% 이상의 확률은 아직까지 요원한 일이었다.
“그, 태윤 씨……. 괜찮아요?”
내가 너무 1등 확률 칸만 뚫어져라 보고 있어설까.
박영호가 눈치를 보며 내 걱정을 했다.
“아, 네. 괜찮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온리원의 김주현이 내 어깨를 안마해 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괜히 좋은 분위기에 초 치는 사람이 된 거 같아 표정을 부드럽게 풀어봤다.
강현성은 그런 나를 보더니,
“어디 고장 났습니까? 표정이 왜 그래요.”
“…….”
괜히 태클이다.
난 평소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연팀 무대 스탠바이 해주세요~
한 제작진이 돌아다니며 이리 말했다.
“벌써 촬영 시간이에요?”
“와, 빠르다.”
“오늘은 어떻게 되려나.”
팀원들은 이리 말하며 각자 기대감을 표현했다.
반면,
‘심호흡하자.’
어김없이 난 긴장 중이다.
강현성은 그런 나를 자꾸 흘끔거렸다.
난 손바닥을 꾹꾹 눌렀다.
긴장이 되니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느낌이다.
때마침.
“티비 틀게요~”
팀원 한 사람이 스튜디오 상황을 보여줄 티비를 켰고,
“벌써 많이들 오셨네.”
“진짜 시작이구나.”
티비 화면 위로 스튜디오 화면의 실황이 떠올랐다.
관객들이 스튜디오에 꽉꽉 차 있었다.
경연 시작임이 시각적으로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더쇼케이스2의 MC, 개그맨 김영진입니다.
-가수, 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MC 두 사람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MC들의 의미 없는 분량용 멘트들이 이어지고.
그에 따른 방청객들의 적절한 리액션들이 이어진다.
-오늘 무대는 이전 경연들과 다른 방식으로 꾸며졌다고 하던데, 어떻게 꾸며진 건가요, 나현 씨?
-오늘 경연의 주제는 , ‘우리의 무대’로 연합으로 팀을 꾸려 미션을 하는 경연입니다. 다섯 그룹은 세 개의 팀으로 나눠졌는데요. 지금 그 세 팀의 구성원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화면 위로 세 팀의 명단이 나온다.
그러자 관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MC들 마이크를 타고 들어올 정도의 웅성거림이라면 현장에선 정말 큰 소란이 일었단 것이다.
‘원바이원 멤버 둘이 사라진 거에 대한 웅성거림이려나.’
다만 이미 그 두 멤버의 활동 중지에 대한 공지가 회사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올라간지라 다들 예상은 했을 거다.
‘나 혼자 팀에서 떨어져 나와서 그런가.’
어쩌면 나 혼자 세이렌 중심 팀에서 떨어져 나와 온리원 중심 팀에 끼어 있어서 웅성거림이 커진 걸지도 모른다.
뭐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마음을 차분히 하자.’
무대를 앞두고 다시 한번 쪼그라든 내 마음을 걱정해야 한다.
1등 확률을 90% 이상으로 만드는 거엔 실패했지만, 85%도 결코 나쁜 수치가 아니다.
과한 걱정은 오히려 독이다.
-자! 그러면 지금 첫 번째 무대를 꾸릴 팀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MC 김영진이 말했다.
오늘 무대 순서는 제작진들이 임의로 꾸렸다.
일단 결과적으로 내가 속한 강현성 팀은 마지막 엔딩 무대다.
오늘 오프닝 무대는 바로,
-우연훈 팀의 무대,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우리 형들이 속한 팀이었다.
형들의 무대에 괜히 내가 더 긴장된다.
어떤 무대를 꾸려왔을지.
얼마나 잘할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손바닥을 꾹꾹 누르고 있자니,
“봉태윤 씨.”
옆에서 누가 날 불렀다.
“네?”
볼 필요도 없이 강현성이었다.
“그쪽 형들 무대 보며 긴장이나 푸세요.”
“……무슨 소리예요?”
“그쪽이 무대 좀 망친다 해도 큰 문제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
난 강현성의 말을 바로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형들의 무대가 시작되고,
‘……!’
강현성의 말을 이해했다.
지금 이 85%라는 1등 확률을 올린 건 내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왜 이렇게 잘해…….’
무대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역시 우리 형들은 재능충이라고.
* * *
방청에 당첨되어 스튜디오를 찾은 세이렌의 팬은 팀원 구성안을 보고 여러모로 놀랐다.
원바이원 멤버 둘이 활중 때린 거야 알고 있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우리 태윤이만 왜 다른 팀이야?’
세이렌 멤버들이 전원 한곳에 모여 있는데 반해 봉태윤만 엄한 곳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녀는 크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 같은 반응인 건 아니었으니,
“근데 솔직히, 봉태윤 빠진 거면 사실상 더 좋아진 거 아니야? 걔 끼 X나 없잖아.”
“야! 조용히 말해.”
“아, 쏘리쏘리.”
몇몇 다른 그룹의 팬들이 이를 두고 헛소리들을 떠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애한테 봉태윤 묻었네.”
“미친년아 하지 마. 누가 듣는다니까.”
유독 귀가 좋은 세이렌의 팬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물론 안 좋은 소리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봉태윤이 아이디어 다 내던데 큰일 난 거 아니야?”
“일단 무대 봐야겠네.”
“와 강현성 팀은 싹 다 180 이상이네?”
“피지컬 맛도리 그룹 아니냐.”
“강현성 팀은 싹 다 비주얼이네.”
봉태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대화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의견들이 뒤섞인 용광로 속.
한 가지 확실한 건,
‘태윤이가 화두네.’
봉태윤이 이번 경연에서 생각 외로 더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단 느낌이었다.
세이렌의 팬은 주변으로 뻗어 있던 청각을 닫은 채 정면을 주시했다.
이제부턴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괜히 안 좋은 말을 들었다가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우연훈 팀의 무대,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MC의 멘트와 함께 우연훈 팀이 등장했다.
매일 화면으로만 보던 애들을 드디어 실물로 볼 수 있단 사실에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무대 위로 우연훈 팀의 멤버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점점 흥분 게이지가 올라가는 와중.
딴-
반주가 들려왔다.
청량한 느낌의 전자음과 아련한 음색의 피아노 음이 울려 퍼졌다.
‘설마, 청순?’
청순 컨셉의 스트라이크 존을 노리는 반주였기에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내 무대 조명이 켜지고,
아이들 의상이 드러났을 때.
‘셔츠에 슬랙스?’
심장이 거칠게 방망이질을 한다.
대체 어떤 청순인가 하고 눈에 힘주고 전방을 주시하니,
-널 그리워할 것 같아
-우리가 어디 있든지
-두 눈 감아도 맘이 벅찼던
-그 순간들이 말야
우연훈의 미성을 전면에 내세운 도입부와 함께,
‘미친 너무 잘생겼잖아?’
숨이 턱 막히는 얼굴 공격이었다.
세이렌 팬은 숨을 헛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귀와 눈이 동시에 행복사 할 거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