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97화 (9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7화

방청객은 두 눈에 힘을 주고 무대를 바라봤다.

우연훈의 얼굴이 전광판에 한가득 잡힌 상태였는데,

‘개잘생겼잖아……!’

잘생겼단 말을 수천 번 되뇌어도 부족한 얼굴이었다.

그녀의 최애는 우연훈이 아닌 봉태윤이었다.

차애로서 우연훈을 좋아하는 느낌이었는데,

‘미친…….’

저 얼굴의 조형적인 미가 주는 압도감에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널 그리워할 것 같아

-우리가 어디 있든지

-두 눈 감아도 맘이 벅찼던

-그 순간들이 말야─

귀에 감기는 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도저히 현실 같지가 않았다.

혼자서 튠을 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맑고 고운 소리였다.

센터에 서 있던 우연훈이 물러나고 박동준이 센터로 나왔다.

-그때엔, 그날엔,

-모두 기적 같았던

-어린 날의 나에겐

박동준의 음색은 어딘가 사람을 홀리게 하는 데가 있는 음색이었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소리가 단단한 게 느껴지니 어느 파트에 갖다 붙여도 찰떡같이 달라붙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뒤,

다시 센터가 바뀌며 이운이 전면에 등장했다.

-기다린 만큼

-설레온 만큼

-주고픈 게

-참 많았어

이제부터 본격적인 안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운이 관객들 쪽으로 아련하게 손을 뻗으며 한 발 훅 다가오고,

그 뒤로 마치 바람이 불 듯 팀원들이 뒤따라 나오며 V자 대형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대형이 바꾸며 앞으로 전진하니 성큼 하고 크게 도약한 느낌이 드는 안무였다.

일순간 반주에 드럼 비트가 더해지더니,

-늘 곁에 머물렀어─

-용기가 부족했어─

-보는 것만으로 빛이 나는 너를 잊지 못하겠어─

강도승의 속도감 있는 랩이 이어졌다.

랩과 함께 고조된 비트는 브릿지 파트로 이어졌다.

절로 빨라진 속도감에 관객들의 몰입도가 올라간 순간,

-그날의,

-너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연합팀 멤버인 한도영과 유지혁이 페어 안무를 짜며 센터로 나왔다.

-이 마음 모두─

-그 추억 모두─

-한곳에 담아─

-네게 전할 거야

곡의 반주가 풍성해지며 분명한 하이라이트 지점에 닿았다 싶은 순간,

마치 터지듯 반주가 쏟아지며 스튜디오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더니.

-사랑해──

우연훈이 센터로 나와 고음을 있는 힘껏 내질렀다.

그간 노래를 잘한다는 인식은 있었으나, 정확히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은 안 되던 우연훈이었다.

해서 사람들은 내심 우연훈 노래 실력의 밑천을 털고 싶어 했는데,

-널 사랑해──

-그 순간에──

-다 말할 수 있었다면──

‘미친’

‘대박.’

‘지금 내가 뭘 듣는 거야?’

‘……미쳤네.’

팬이고 아니고를 넘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입을 떡 벌리게 할 정도의 고음을 우연훈은 연이어 쏟아냈다.

-이 마음 모두

-내 진심 모두

-한곳에 담아

-꼭 말할 거야

후렴구 중간 부분에 이운과 박동준이 나와 한 마디씩 번갈아 가며 곡을 이어갔다.

한차례 휘몰아치듯 나온 고음과 반주 등에 사람들의 정신이 나가 있을 무렵.

일순 반주가 조용해지더니,

-널 사랑해.

우연훈이 조용히 센터로 걸어 나와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 순간,

“꺄아아아아!”

“와아악!”

“연훈아악!”

“끄아아아!”

관객들은 단체로 짠 것 마냥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세이렌 팬 방청객은 속으로 확신했다.

‘오늘은 우리 애들이 1등이다! 이건 무조건 1등이야!’

이 무대를 넘어서는 무대가 나올 리가 없다고.

청순에서 끝일 줄 알았는데 첫사랑의 아련함까지 담아버린 이 곡은 케이팝 덕후라면 싫어할 수 없는 구성이었다.

그 예시로,

‘심장 아파!’

그녀는 지금 진심으로 왼쪽 가슴 한쪽이 뻐근했다.

다만 아픈 것 따위야 상관없었다.

이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을 수 있다면.

한 장면이라도 더 뇌에 새길 수만 있다면.

지금 마음 같아선 심장 정도야 기꺼이 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 * *

박수철 피디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우연훈 팀 무대에 대한 관객 반응이 지금껏 했던 경연 중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간 눈 뒤집어지는 무대 장치들도 많이 봐왔고.

칼같이 맞춘 안무 퀄리티에 탄성이 나오는 무대들도 많이 봐왔으나.

‘이런 건 또 처음인데?’

고음으로 사람 소름 돋게 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 고음으로 소름이야 자주 돋아봤다.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하지만 마치 기다려왔단 듯 저렇게 후련하게 터뜨리는 고음은 처음이었다.

저 타이밍에.

저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마치 보여주듯 터뜨리는 고음이라니.

심지어 그에 대한 관객들 반응까지 드라마틱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지니 그간 느껴본 적 없던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찌리릿 흐르는 게 느껴졌다.

고음은 한 번 내지르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널 사랑해──

-그 순간에──

-다 말할 수 있었다면──

처음 쏟아낸 고음보다 음이 조금 더 올라간 고음을 연달아서 다시 쏟아낸다.

“우연훈 노래가 저렇게 좋았다고?”

“……저희도 놀랐어요.”

“완전 미쳤잖아……?”

경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정도 고음은 우연훈도 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목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진심 같아 보였다.

꺼내지 못했던 오랜 마음을 온 힘을 다해 꺼내놓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듯했다.

심지어 고음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 하이라이트 구간의 진짜 백미는,

-널 사랑해.

그렇게 고음을 쏟아내던 우연훈이, 순식간에 처연해진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이리 읊조리는 거였다.

“꺄아아아아!”

“와아악!”

“연훈아악!”

“끄아아아!”

함성이 아니라 비명이 터져 나오는 무대를 보며,

“됐다!”

박수철은 저도 모르고 육성으로 기뻐했다.

세이렌이 3차를 1등 할지 안 할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프로그램 최고의 한 장면은 건져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난 무대 위에 선 형들을 거의 홀린 듯이 바라봤다.

대기실에 모여 앉아 있는 현재.

나뿐만이 아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상태였다.

이건 홀린 듯이 볼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형들이 청순을 한다 했을 때 일말의 걱정을 사실 안 할 순 없었다.

청순은 임팩트를 주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보자마자 깨달았다.

‘내가 멍청이였어.’

우려할 게 없었다고.

오히려 우려한 내가 멍청이였다고.

도승이 형이 내가 아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음악과 무대에 관해서라면 한참 해박한 사람이다.

또 운이 형이 안무를 짜기 애매한 곡에 오케이 했을 리도 없다.

늘 퍼포먼스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니까.

형들은 애초에 내 도움 없이도 1인분 이상씩을.

어쩌면 일당백 이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걱정을 했다니,

‘쪽팔리네.’

진심으로 창피한 순간이었다.

청순에 아련을 섞는 건 너무도 당연한 공식인데,

‘정해진 공식으로 이렇게까지 무대를 짜는 건 정말 재능의 영역이겠네.’

그 공식을 이토록 완벽하게 무대로 녹여내니 경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압권은 연훈이 형의 고음 릴레이였는데,

“와 미친!”

“소름 돋았어!”

“허어업! 저게 지금 몇 옥타브야?”

“연훈 님 미쳤다…….”

이 대기실에 있는 멤버들마저 감탄을 터뜨렸을 정도였다.

난 몸에 힘이 빠져 소파에 몸을 축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젠 그냥 감상의 영역이었다.

‘어쩌면 처음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형들이 진심으로 하는 무대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형들과 늘 같은 무대를 서다 보니 가끔 잊곤 한다.

저 사람들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지를 말이다.

속으로 주접을 떨며 흐뭇한 마음으로 형들 무대를 감상했다.

그때,

“어때요.”

옆에 앉아 있던 강현성이 물었다.

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답했다.

“좋아요.”

좋은 거 앞에선 좋다는 말 이상은 사치다.

이제 다시 무대에 좀 집중하고 싶은데,

“끝?”

강현성이 계속 말을 건다.

짜증이 밀려오려는데,

“좀 더 자세히 봐요.”

강현성은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는 사람처럼 내게 말했다.

“표정이랑 춤선이랑 관객들 환호성이랑 좀 더 큰 시야로 다시 확인해 봐요.”

강현성은 다른 팀원들에겐 들리지 않게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확실히,

‘……다르네.’

강현성이 말해준 방식대로 무대를 보니 이전과 다른 점이 분명히 보였다.

이전엔 그냥 형들 무대 잘한다, 라는 식의.

그저 감상하는 팬의 마음이었는데,

‘관객들 함성에 따라, 달라지잖아?’

형들 무대를 자세히 뜯어보니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흐름이 있었다.

관객들이 호응을 해줄수록 노래도, 춤도, 표정도 한층 살아난단 거였다.

“다르죠?”

강현성이 다시 한번 내게 물었고.

“……그러네요.”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일 거 같아요.”

“……?”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요.”

강현성은 거기까지 말하곤 내게서 멀어졌다.

난 아까보단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모니터를 올려다봤다.

강현성이 한번 개입하고 나니 아까와 같은 즐기는 마음이 아닌 분석하는 마음으로 형들을 바라보게 됐다.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무대의 전반적인 컨디션이 달라진다.

이게 아마 관객들과 호흡하며 무대를 꾸려간다, 라는 식의 교과서적인 문장의 실전 예시일 거다.

그렇다면 강현성이 말한 왜일 거 같냐, 라는 질문은,

‘이런 식의 관객과의 호흡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건가.’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난 다시 한번 형들을 바라봤다.

형들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물론 무대 중이니 컨셉에 맞춰 아련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다.

지금 느껴지는 밝음은 표정에서 느껴지는 밝음이라기보단,

‘얼굴이 밝네.’

사람들 자체에서 빛이 나는 거 같았다.

결국 답은,

‘관객들이 보내주는 사랑에 반응할 줄 아는 건가.’

현재 내가 안고 있던 문제.

사랑받을 줄 아냐, 라는 문제와 닿아 있는 거였다.

지금 형들은 관객들이 보여주는 환호성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무대로 보답하는 중이었다.

마치 스펀지처럼 관심과 사랑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반면 그간의 나를 떠올려 보자면,

‘튕겨내는 수준이었으려나.’

무대에서 느껴지는 그 관심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동작들 해내는 것에 더 급급했지.

어찌 보면 저번 경연 무대에서 도승이 형이 내게 해줬던 말과 아직까지도 닿아 있는 문제일 수 있었다.

‘무대를 즐길 줄 모르는 거구나.’

난 무대에서 행복하지 않다.

저번 무대에선 그게 나를 믿지 못해서 무대를 즐길 줄 모르는 줄 알았다면,

‘그냥 이런 환호와 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네.’

나라는 사람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늘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을 거고.

하지만 전략적으로.

또 형들을 지켜내겠다는 그런 사명감으로.

적어도 무대에서만큼은,

‘해보자.’

관객들이 보내는 환호와 관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과거에 묶인 나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지금 당장은 힘들 거다.

하지만 곧 올라갈 무대에서는.

인생에서 딱 5분 정도만큼은,

‘……할 수 있어.’

지금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형들처럼.

나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넘어서야 하는 벽의 모범답안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설까.

두루뭉술하기만 하던 ‘사랑’에 대한 문제가 실마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1등 확률 : 86%]

그간 85%에서 멈춰 있던 확률이 다시금 올랐으며,

-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우리 형들의 무대도 환호 속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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