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8화
오늘 촬영에 방청을 온 세이렌 팬은 넋이 나간 상태였다.
방금 전 우연훈 팀의 무대를 보고 난 후 줄곧 이런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MC들이 나와서 멘트를 치고 있는데도,
‘개미쳤어. 연훈이 미쳤어! 아니, 그냥 애들 다 미쳤어!’
머릿속은 방금 전 무대를 계속 리플레이 하고 있었다.
왜 무대 보고 나오면 마음속에 최애냐 아니냐 가릴 것 없이 눈에 박히는 멤버가 있다고 하는지 알 거 같았다.
‘그게 사람이야? 아니, 미쳤잖아 그냥.’
노래를 잘한다는 게, 어느 정도 들어줄 만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진기명기에 가까운 수준이 되면 그 자체로 사람을 홀려 버리는 것 같았다.
하물며 우연훈은 가만히 병풍으로만 서 있어도 매력이 넘칠 마스크다.
4세대 남돌 중 저만한 비주얼이 없으니까.
그런 인물이 노래까지 저 정도로 해버리니.
‘감탄 나와.’
인간으로서 순수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우연훈 팀 팀원분들은 잠시 나오셔서 투표 전 마지막 어필 해주시길 바랍니다!”
투표 전 마지막 어필 시간이 시작되었다.
방청객은 지금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방청 온 게 다 좋은데 모두에게 일일이 등급을 매겨야 한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MC의 말에 맞춰 우연훈 팀의 팀원들이 무대에 일렬로 서서 마이크를 돌려가며 투표 독려를 했다.
투표 독려라기보단 그냥 무대 소감 같은 걸 말하는 느낌이었다.
참, 여러모로 셀유돌 느낌이 나는 장면이라 몇몇 팬들에겐 PTSD를 유발하긴 하겠으나,
‘애들 얼굴 가만히 볼 수 있는 건 좋네.’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오늘 무대, 새로운 팀원분들과 새로운 도전 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투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블레슈의 한도영이었습니다!”
“오늘 블레슈 멤버분들과 좋은 무대 만들게 되어서 재밌었습니다! 투표 잘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투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좋은 환호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A등급을 주신다면…… 무한한 감사를 바치겠습니다. 하하.”
우연훈 팀의 팀원들은 저마다 무대 소감 및 투표 독려 멘트를 했다.
하지만 이런 거에 익숙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조금씩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마저도 세이렌 팬인 방청객의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좋은 무대를 보여줬으니 뭘 하든 그냥 다 좋게 보이는 거였다.
다만 한 가지 딜레마인 것은,
‘그냥 다 A 주고 싶은데.’
모두가 수고한 무대인데 누군 A, 누군 B 이렇게 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조별과제도 무임승차 한 거 아니면 같은 점수 주는 게 국룰인 건데.
방청객은 고민 끝에,
‘우리 애들만 A 주자…….’
팬심과 객관성 사이의 나름의 합의점을 찾았다.
세이렌 애들만 A를 준다는 데에 객관성이 어디 있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우리 애들이 잘했으니까.’
이건 팬이 아닌 입장에서 봐도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할 터였다.
우연훈뿐만 아니라 세이렌 멤버들 모두가 1인분 이상씩을 했다.
이운의 춤선은 그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해 보다가 눈이 튀어나올 거 같았고.
강도승 랩은 과하게 멋 부리지 않고, 듣기 싫은 쿠세가 없는 깔끔한 래핑이었으며.
박동준은 곡이 밋밋해지거나 중간부가 흔들린다 싶을 때쯤 어김없이 등장해 쫀득한 보컬로 곡의 재미를 채웠다.
다들 A를 받기에 충분한 활약들이었다.
그렇게 점수를 다 주고 나니,
‘태윤이……. 걱정되네.’
문득, 강현성 팀에 간 봉태윤이 걱정되었다.
형들이 이렇게 좋은 무대를 펼쳤는데, 그 탓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비춰지는 걸 보면 매 무대마다 특히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멤버로 보였는데,
‘흐음…….’
하물며 사람들이 본인 끼 없다고 까는 현재 상황 속에.
형들이랑 떨어져 나와 딴 팀에 가서 무대를 하는데.
과연 압박감을 잘 이겨냈을지 걱정됐다.
‘기다려보자.’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태윤이가 무대를 잘 준비했기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엔.
팬은 조용히 무대를 응시했다.
때마침,
“다음은 루미닌을 중심으로 꾸려진 팀이죠! 최수혁 팀 무대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루미닌의 최수혁 팀이 무대를 시작했다.
그녀는 루미닌의 무대도 집중해서 바라봤다.
* * *
무대의 뒤쪽.
백스테이지라 부를 법한 그곳에 마련된 한 비밀 공간.
거기엔 박수철이 섭외한 자문단이 앉아 있었다.
이번 3차 경연의 무대별 MVP를 선정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이었다.
루미닌 무대가 시작되기 전.
보컬 트레이너, 안무가, 유명 프로듀서로 구성된 해당 그룹은 우연훈 팀에 대한 논평을 시작했다.
“와, 우연훈 씨 보컬, 저분은 이미 저보다 잘 부르시는데요? 하하, 되게 뻘쭘하네.”
보컬 트레이너의 평가는 이러했고.
“이운 씨 안무도 보통이 아니었어요. 이거 코레오까지 이운 씨가 짰다고 하셨죠? 웬만한 댄서분들보다 나은 구석도 있던데…….”
안무가의 평가는 이러했으며,
“이 곡을 지금 강도승이라는 멤버분이 쓰신 거라고요? 저는 당연히 작곡가에게 의뢰한 줄 알았죠. 곡비만 꽤 썼겠구나 싶었는데…….”
프로듀서의 평가는 이러했다.
관객들 반응으로선 우연훈이 확고한 MVP감이었겠지만 각 분야별 프로가 모인 곳에서는 MVP에 대한 논쟁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중,
“근데, 박동준 씨도 너무 귀엽지 않았어요?”
한 남성 안무가가 이런 발언을 했다.
이운의 안무 칭찬을 한 사람과는 다른 안무가였는데,
“아, 그냥 귀엽다고요. 하하. 근데 귀여운 것도 MVP 할 만하지 않나요?”
전문가로서의 소견이라기보단 팬심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사람들은 그 발언에 웃고 마는 식의 반응은 했으나 그 안무가는 꾸준하게 ‘귀여움도 능력이다’ 설을 주장했다.
그렇게 MVP는 나름의 4파전 양상으로 치닫다가 결국 누구 한 사람을 결정짓지 못했다.
총 5인으로 구성된 자문단은 공평하게 투표로 MVP를 정하기로 하고 루미닌 무대에 집중했다.
다만 루미닌 무대 시작 전.
“세이렌 팀 전원 다 잘한다던데, 진짜네요.”
한 보컬 트레이너가 이런 말을 했고,
“아직 한 사람 안 나왔잖아요.”
“아 그래요?”
“봉태윤 씨라고. 막내분 있어요.”
자문단 사이에 봉태윤이라는 이름이 처음 거론되었다.
다만 이 자문단도 아이돌 산업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돌이나 회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반응 모니터링 정도는 한다.
그래설까,
“아, 막내분이 남으셨군요.”
“하하.”
다들 그 이야기를 보고 온 상태였다.
봉태윤 끼 없음, 봉태윤 무대 못함, 과 같은 SNS 피드들을 말이다.
실제로 찾아본 세이렌 무대에서 봉태윤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살짝 경직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간헐적으로 좋은 표정을 보이거나 동작 등이 확 풀리는 경우가 잦았기에 실력이 없다고 판단 내리긴 어려웠다.
또한 형들이 너무 잘할 뿐, 봉태윤 자체의 능력치도 다른 그룹의 멤버들에 비하면 한참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형들에 비해 무대 능력치가 살짝 부족한 멤버인가 보네.’
‘막내니까 아직 성장치가 남았겠지.’
‘섣불리 판단은 말고 지켜보자.’
자문단은 봉태윤에겐 크게 기대하고 있지 않단 거였다.
* * *
형들의 무대가 완전히 종료되고, 투표 독려 멘트까지 끝나고 나자 루미닌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우리 바로 직전 무대이기 때문에 루미닌 무대를 볼 겨를은 없었다.
“다들 의상에 문제없죠?”
“넵!”
“네에~”
의상을 체크하고.
“안무할 때 이 포인트 잊지 마세요.”
안무 중 중요한 지점을 점검하며.
“잘하고 옵시다!”
“파이팅!”
사기를 끌어올렸다.
때마침,
“강현성 팀 스탠바이하겠습니다.”
우리 팀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잘하고 옵시다!”
“예에!”
“준비한 거 다 보여주고 와요!”
사람들은 저마다 응원을 내뱉으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나 또한,
‘잘하고 오자.’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1등 확률 : 86%]
시야 한구석의 1등 확률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86%.
사실 원하던 수준의 수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걱정하는 건 도움 안 되잖아.’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더 이상은 1등 확률을 확인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해내는 게 중요한 타이밍이니까.
딱 5분 정도만.
‘형들처럼.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방금 보고왔던 형들의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본받아볼 생각이었다.
‘나는 연하남이다, 나는 첫사랑 중이다, 나는 귀엽……다.’
다만 마인드 세팅을 하려고 오늘 컨셉들을 줄줄 외워봤지만 이상한 거부감이 몸을 휘감는다.
‘나는 프로다. 할 수 있다.’
오늘은 컨셉에 거부감을 느끼면 안 된다.
내가 센터인 무대니까.
사람들이 끼 없다, 무대 못한다, 라고 날 욕하는 건 알지만,
‘괜히 말릴 필요 없으니까.’
그런 거야 무시하면 된다.
그때,
“태윤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연훈이 형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 있잖아?’
형들이 다 복도에 서 있었다.
무대 끝내고 인터뷰 마친 후 대기실로 돌아가고 있었나 보다.
원래는 무대 전까지 각 팀별로 만나는 일은 절대 없다.
한데 오늘은 동선이 겹친 모양이다.
제작진들도 잠시 당황한 듯 보였으나 어차피 무대 직전인 걸 알고 그냥 넘어가는 추세였다.
“이제 곧 무대 시작이지?”
“괜찮아?”
“컨디션 어때?”
“오늘은 좀 덜 떠는 중이냐?”
형들은 보자마자 날 걱정했다.
이런저런 멘트들을 쏟아내며 내 상황에 대해 묻는다.
무대에선 그렇게 프로처럼 보였던 사람들인데, 무대 아래에서 이리 친근하게 구니 괴리감이 살짝 들기도 한다.
“걱정 마요, 잘하고 올게요.”
난 형들에게 살짝 미소 지어주며 말했다.
내가 보통 미소 짓곤 하면 형들이 표정이 왜 그러냐고 묻는데,
“믿을게.”
“잘하고 와.”
“할 수 있다, 봉태윤!”
오늘만큼은 그런 게 없었다.
“다들 파이팅하세요!”
“무대 잘하고 오시길 기도할게요!”
형들은 강현성 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격려를 보냈다.
강현성 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격려를 받아줬고.
형들은 마지막까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걱정의 눈길을 보냈다.
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형들과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형들은 떠나기 전까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특히 연훈이 형은 마지막까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난 그런 형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괜히 더 의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훈이 형은 한참을 더 날 바라보더니 겨우 걸음을 돌려 대기실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무대 뒤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우리 팀도 타이밍 맞게 무대 뒤쪽으로 이동했다.
무대 뒤쪽으로 이동하며,
‘흐음.’
난 형들이 보낸 그 눈빛을 떠올렸다.
같이 있을 땐 몰랐는데 떨어져 보니 느껴지는 애틋함이 있긴 있나 보다.
사랑받을 줄 모른다, 라는 게 오늘 내내 나를 괴롭히던 화두였는데,
‘아닌가.’
어쩌면 아닐지도 몰랐다.
난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고, 또 줄 줄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대를 앞두고 나를 속이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긴 했으나,
‘할 수 있어.’
자신감이 조금은 샘솟았다.
동시에,
[1등 확률 : 87%]
‘……!’
갑자기 확률이 올랐다.
방금 속으로 되뇐 그 하얀 거짓말이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무대 직전, 좋은 신호였다 생각하며,
“무대 준비 하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 * *
세이렌 방청객은 루미닌의 무대를 보고 난 후 백스테이지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루미닌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나, 사실 본인의 최애가 지금 저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시선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루미닌 팀의 투표 독려 멘트가 끝나고,
“자! 그러면 지금부터 강현성 팀의 무대를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기대하던 그 무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가 암전되고.
어두운 무대 위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암순응 안 된 눈은 흐릿한 형체만 확인할 뿐 인물을 특정 짓지는 못했다.
다만 암순응이 얼추 끝나고.
실루엣 정도는 확인 가능하겠다 싶은 순간,
파앗-!
조명이 켜지며 무대가 드러났다.
그녀는 재빨리 무대 위 본인의 최애를 찾았다.
본능적으로 대형의 맨 끝에서부터 찾았으나,
‘어딨지?’
그곳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센터?’
봉태윤은 대형 정중앙에 서 있었다.
팬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으려다가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고 무대를 주시했다.
센터인 것에 놀라 잠깐 잊었던 한 가지.
‘의상이……?’
의상 또한 범상치 않았다.
‘교복이야?’
지금 봉태윤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풀어헤친 하얀 교복 셔츠에 네이비색 바지.
스니커즈.
자연스럽게 세팅한 앞머리.
‘미친!’
그녀 또한 종종 잊고 있던 사실.
봉태윤은 19살이고, 한창 교복이 잘 어울릴 나이란 거였다.
센터와 의상에 원투 펀치 맞고 정신이 아찔한 찰나,
딴-
청량하고 상큼한 반주가 들려와 버렸고,
‘이거 설마 야?’
기가 막힌 선곡 센스에 팬은 벌써부터 과몰입을 시작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