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99화
세이렌 팬은 봉태윤의 등장과 함께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교복에 라니.
예상치 못했던 조합이었다.
봉태윤이 상큼하고 청량한 재질의 무언가를 할 줄 몰랐다.
센터일 줄은 더더욱이나 몰랐고.
다만 거세게 뛰는 심장과는 별개로,
‘잘할 수 있겠지?’
한편엔 이런 걱정도 가능했다.
그녀가 보기에 봉태윤은 무대 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멤버가 아니다.
무대 아래에서 전체 그림을 조율하는 걸 더 잘하는 거 같다.
훗날 세이렌의 프로듀서 같은 거 하면 잘 해내겠다, 싶은 느낌의 멤버였는데,
‘센터라…….’
팬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팬이기에 그녀는 봉태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반주가 고조되고.
첫 번째 벌스가 나오기 전.
그녀는 봉태윤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 잘하든 못하든 그런 건 상관없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데.
근심 따위 버리고 봉태윤만 두 눈에 가득 담았다.
그 순간,
‘……어?’
봉태윤과 잠깐 시선이 맞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봉태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이내 싱긋하고 웃어 보이더니,
딴-
들려오는 반주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안무에 시동을 걸더니,
‘……!’
그녀 예상보다 훨씬 더.
아니,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귀여워!’
귀엽고 순진하게 웃고 있었다.
‘진짜 귀여워!’
방금 전에 했던 근심 따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 *
이런 적은 나도 처음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87%라는 애매한 확률에 근심을 털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긴 했지만 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단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고.
심호흡을 하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에 맞춰.
관객들의 눈을 바라보니.
‘……괜찮네?’
걱정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저번 2차 경연에서 얻은 나름의 팁이었다.
난 사람과 눈을 맞추면 긴장을 풀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한데 아침부터 사랑 타령을 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음?’
어딘가 달랐다.
날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이 이전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해야 하나.
그러던 중 한 관객과 눈이 맞았는데.
‘……내 팬분인가?’
아무 근거도 없지만, 괜히 그냥 내 팬 같았다.
해서 더 빤히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그 눈을 바라보자 한 줌 남아 있던 긴장조차 사라졌고.
할 수 있을까, 로 남아 있던 내 질문이 할 수 있다, 에서 이걸 왜 못해, 라는 확신으로 변화했다.
내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를 내가 알아채지 못할 리는 없었다.
난 시야 한편의 수치를 다시 확인했다.
[1등 확률 : 90%]
‘……!’
하루 종일 염불을 외던 수치.
90%를 달성했다.
그 덕일까.
아니, 그 덕만은 아닐 거다.
“후우.”
오늘 무대를 분명하게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고.
-지금 이 순간~
-기다린 걸까~
-언젠가 만날,
-너와의 만남!
첫 번째 벌스를 내뱉으며 지난 2주간 죽어라 연습했던 안무를 시작했다.
-터지는 Spotlight
-넌 나의 Shining Star
-마침내 만난
-우리의 First Shot!
몸이 더없이 가볍고, 표정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도 느껴진다.
내가 늘 서왔던 무대들과는 반응이 극명하게 다르단 게 말이다.
물론 이 모든 게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Don’t─ Don’t─ Don’t─ Don’t─
-더는 망설이지 마 마
-Now Now Now Now
-지금 내 손을 잡아
난 더없이 밝게, 더없이 신나게.
이 무대의 컨셉을 의도하지 않고도 정확히 지켜가며,
‘재밌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이어갔다.
* * *
봉태윤 팬인 방청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대를 바라봤다.
그녀가 아는 봉태윤이 맞나 싶었다.
본인의 최애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또 저렇게까지 춤을 잘 출 수 있는지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센터인 이유가 있었어!’
봉태윤이 괜히 센터인 것은 아니었단 거다.
사실 19살로 가장 교복이 잘 어울릴 나이니까 센터에 세운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긴 했지만,
‘상큼하다 진짜.’
무대를 보니 우려가 날아갔다.
누가 이 무대를 기획한 거고, 누가 봉태윤에게 이런 컨셉을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팬은 속으로 감사하다는 말만 수백 번 반복했다.
다른 팀원들이 센터로 나와 무대를 이어가고는 있었지만 봉태윤 팬의 눈에는 봉태윤밖에 보이지 않았다.
강현성이 센터로 나와서 춤을 추는 것도 보고.
박영호가 피치를 올리며 고음을 소화하는 것도 들었으며.
김시운이 가장 음이 높은 파트를 무난하게 해치우며 환호성을 끌어내는 것도 들었으나,
‘태윤아!’
그녀의 눈은 온통 봉태윤에게만 가 있었다.
그러다 대망의 후렴구.
센터인 봉태윤이 다시 무대 중앙으로 나오며.
-Never Mind~ 저 푸른 하늘을
-달려가! 전부 안을 거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한껏 끌어안고──
“꺄아아아아!”
“와아악!
“허억!”
의 전매특허 같은 후렴 안무를 시원하게 소화해 냈다.
팀원 9명의 목소리가 한데 섞인 후렴구 멜로디는 청량하게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노래의 청량감과 동작의 시원함에 칼군무라는 시각적 쾌감까지 더해지니 탄성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Never Mind~ 네게 달려가
-긴 밤을 새며 말할 거야
-오랜 날 기다려왔던
-순간을 전부 네게 줄게
마치 첫사랑의 달콤함과 설렘을 한도까지 채워넣은 듯한 무대였다.
움직일 때마다 살랑거리듯 나부끼는 교복 셔츠와.
자연스럽게 찰랑이는 헤어스타일.
무엇보다 저 환하고 상큼한 미소들까지.
컨셉에 누구보다 충실한 무대였다.
무대는 1절을 지나 2절을 넘어서 슬슬 아웃트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방청객 팬은 아쉬울 거 없는 무대였다고.
청량 봉태윤을 본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거라며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는데,
-Never Mind~
-Never Mind~
후렴구의 멜로디가 3절에 가서 반복되기 시작했다.
마치 EDM에서 하이라이트를 위해 음을 하나씩 빌드업 하듯.
멜로디가 한데 겹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마지막 후렴구 동작에서 움직임을 멈춘 뒤 무대 위에 가만히 서 있는 멤버들 탓에 긴장감은 점점 더 더해졌다.
슬슬 엔딩이구나 생각했던 그 시점에,
-난 저 푸른 하늘을
-달려가! 전부 안을 거야!
후렴이 한 번 더 반복됐고,
-Never Mind! 네게 달려가
-이 맘을 전부 전해줄게
또 한 번 반복됐으며,
-Never Mind!
세 번째.
-Never Mind!
네 번째까지 반복되었다.
이내 다섯 번째에,
팡!
폭죽이 팡! 하고 터지며 무대 위로 꽃가루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가루가 날리는 무대 위.
멤버들은 이제 자유롭게 춤을 추며 무대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마치 축제의 하이라이트 같은 벅차오르는 장면이었다.
봉태윤도 객석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팬들과 직접 아이콘택을 하며 안무를 이어갔다.
방청객 팬은 본인 쪽으로 다가온 봉태윤을 보며 숨이 턱 막히는 느낌마저 받았다.
‘잘생겼어억!’
잘생긴 내 새끼가 내 앞에서 춤을 추는데 엄청 열심히, 심지어 잘 추기까지 했다.
이건 두 눈이 아니라 뇌의 주름 사이사이에 전부 새겨야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봉태윤은 다시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잊지 않을 거야
-너와 내 첫 번째 순간을
-시간이 지난다 한들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마지막이라 할 수 있을 법한 후렴구가 이어지고.
-Never Mind~
-Never Mind~
-Never Mind…….
후렴구가 서서히 사그라들 듯 작아지더니,
이내 모든 반주가 뮤트 되었다 싶을 때,
-넌 나의 전부야.
센터에 서 있던 봉태윤이 고개를 들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원곡엔 없던 아웃트로를 했으며,
탁-
그와 동시에 무대는 암전.
“미친!”
“아아악!
“대박!”
“태윤아아악!”
“꺄아아아아!”
객석엔 비명과 탄성만 난무했다.
* * *
강현성 팀의 무대가 종료되었다.
메인 피디 박수철과 세컨 작가 김민영은 넋이 나간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
“아아악!”
“대박!”
“태윤아아악!”
“꺄아아아아!”
스튜디오엔 방청을 온 관객들의 함성과 비명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함성이야 원래 무대가 끝나면 질러주는 게 보통이긴 하지만 지금 이 함성은 어딘가 달랐다.
정말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진심 가득한 탄성이라 해야 하나.
마치 스튜디오 전부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윤 씨가, 저렇게 그, 귀여웠던가……?”
박수철의 물음에,
“……아뇨.”
김민영 작가는 단호하게 답했다.
제작진들도 봉태윤이 귀여운 캐릭터가 아닌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세이렌의 막내긴 하지만 얼굴이나 성격만 보면 우연훈이나 박동준이 막내에 더 어울렸다.
한데 오늘은,
“뭔가, 와, 대단하네요.”
“현장 분위기 진짜 좋다.”
“살짝 그, 덥지 않으세요?”
“음?”
박수철은 그제야 느꼈다.
스튜디오 내부 온도가 정말로 미세하게 올라간 느낌이었다.
이게 여러 무대를 진행하며 관객들 체온으로 올라간 온도이긴 하겠지만,
‘확실히 더 더워졌는데?’
루미닌 무대 때보다 확실히 더 더워졌다.
그 말은 관객들이 더 크게 리액션했고, 더 크게 반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 참나. 무대 잘한 걸 온도로 느껴보긴 또 처음이네.”
“그니까요.”
예상했던 주먹에 맞는 것보다 예상 못 했던 주먹에 맞는 게 더 아프다.
이 무대도 그런 무대였다.
끼 없는 봉태윤이니, 막내미 없는 봉태윤이니, 그런 평가가 있긴 했다만,
“태윤 씨 무대 잘하네.”
봉태윤은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버렸다.
본인이 의도한 거든 아니든 말이다.
때마침,
“강현성 팀의 무대, 잘 보고 왔습니다. 마치 축제를 연상케 하는 마지막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던 무대이지 않았나 싶네요. 나현 씨는 어떻게 들으셨나요?”
“와, 저도 정말 관객이 된 마음으로 즐겁게 들었던 무대였습니다. 계속 귓가에 후렴구가 맴도는 것 같은데요?”
MC들이 나와서 멘트를 시작했다.
박수철은 이제 슬슬 이번 경연에서 뽑을 만한 장면을 다 뽑았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마지막 어필 시간 가져야죠! 다들 오늘 무대 소감 및 투표 독려 부탁드립니다!”
다만 그 생각은 곧바로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론 봉태윤이 투표 독려 및 어필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기 때문인데,
“어, 우선 그간 해본 적 없던 컨셉의 무대라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무대였습니다.”
일단 여기까진 크게 특별할 건 없었다.
그저 적당히 숨차 보이고, 적당히 청초해 보이는 저 마스크가 꽤 훌륭하다, 라는 정도의 감상이었지.
원래 이 어필 시간은 박수철도 크게 기대 안 했다.
그냥 팬들 서비스용으로 본인들 최애 용안 감상이나 실컷 하라고 넣어준 거니까.
한데,
“마지막으로, 투표 독려를 하자면,”
전혀 예상치 못한 한 방 나왔는데,
“……나 뽑아줘요, 누나.”
“……?”
“……!”
“나 1등 하고 싶어요.”
봉태윤이, 처음으로 자기 나이를 팔아먹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끄아아아악!”
“태윤아아아!”
“아아아악!”
“오와아악!”
……실로 엄청났다.
함성도 비명도 아닌 포효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