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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04화 (10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04화

난 동준이 형과 어색하게 눈을 맞췄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랑 도승이 형이 나눈 대화를 들었을까?

들었다면 어디까지 들었을까?

전부? 아니면 일부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 걸까.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아니면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이니 대충 넘길 생각인 걸까.

수많은 가정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그, 비밀이다, 태윤아.”

내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동준이 형 입에서 먼저 나온다.

“……네?”

뭐가 비밀인 건지.

무엇보다 이 늦은 시간에 동준이 형은 왜 방에서 나온 건지.

이제 와서야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뭘 숨기고 있는 건가 싶어 동준이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

보였다.

동준이 형이 들고 있는 핸드폰 화면 속에 떠오른 어플이.

‘배달 어플……?’

도승이 형이 먹지 말라고 막았더니 밤에 모두 잘 때 시킨 거다.

“형, 설마 지금.”

“……같이 먹을래?”

“……?”

동준이 형 식탐이야 이해는 하다만,

“우리 파이널이잖아요. 이제.”

“응. 그래서, 먹고 30분 런닝 하고 오려고…….”

“컨디션 조절은 어쩌고요.”

“난 원래 잠이 많지 않……,”

“……다고 하기엔 아침에 너무 못 일어나지 않나요?”

“……그렇네.”

그때,

“근데, 태윤아. 진짜 미안한데, 배달기사님 코앞까지 왔어. 기사님이 벨 누르면 형들 다 깨고 우리 끝장이야.”

동준이 형이 핸드폰 화면을 한 차례 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우리, 가 아니라 형이겠죠.”

“한 번만 협조해 주라.”

“야식 먹는데 협조는,”

이라고 말하는 순간,

띵-

벨이 울렸다.

동준이 형은 마치 육상 선수 마냥 인터폰 앞으로 튀어가서 현관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가 길게 이어지기 전 끊어내 버렸기에 간신히 형들 깨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동준이 형은 잠시 날 쳐다보더니,

“이미 날 막을 순 없어 태윤아.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같이 먹던가, 나 혼자 먹게 두던가.”

“……하아.”

“난, 먹을 거야. 내일 강도승한테 처맞다 죽는 한이 있어도 먹을 거야.”

저 결연한 의지를 보니 이제 이건 막는다고 막아질 게 아니었다.

하긴, 그간 우리 스케줄을 보면 이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동준이 형은 식탐이 있는 편이니까.’

먹는 것도 좋아하고, 일반인 기준으로 봐도 많이 먹는 편인 동준이 형이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긴 했다.

“그래요. 먹어요.”

“진짜지?”

“네.”

여기서 더 고삐를 쥐었다간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근데, 그 강도승은 왜 거기서 그렇게 널브러져 자고 있는 거야……?”

동준이 형은 이제야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도승이 형을 보며 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가장 쉬운 답으론,

“몽유병인가 봐요.”

“엥?”

“스트레스랑 몽유병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잖아요.”

“……그래?”

대충 스트레스 탓을 하면 된다.

요즘 도승이 형이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는 건 다들 아니까.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치미 뚝 떼는 거다.

처음엔 저 말이 맞나 싶다가도 말한 사람 반응이 태평하면,

“……강도승이랑 병원 가봐야 하나.”

이리 믿게 된다.

“일단 음식 먹다 깰 수 있으니까 방에 넣어놓자.”

동준이 형이랑 같이 도승이 형 들어서 방으로 옮겨놓으려는 찰나,

똑똑.

배달기사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동준이 형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형은 잽싸게 현관으로 튀어가더니 문 앞에 두고 가달라는 말을 했다.

배달기사가 음식을 두고 가는 걸 듣더니,

스윽.

문을 열고 음식을 가져왔고,

“먹자 태윤아!”

잔뜩 신난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한데,

“……뭘 ……먹어?”

빙의가 끝난 후 쓰러졌던 도승이 형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배달 음식을 받고 잔뜩 신나 있던 동준이 형이 그대로 굳어서 멈춰섰다.

나도 살짝 쫀 채로 도승이 형에게서 떨어졌다.

도승이 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자신이 왜 거실에 나와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야식을 ……시켰네?”

동준이 형이 야식을 시켰다는 거다.

도승이 형은 왜 거실에 나와 있는지는 뒤로 미뤄둔 채 동준이 형만 노려보고 있었다.

“아, 망할. 방에 넣어두고 먹을걸.”

동준이 형은 이미 글렀다는 걸 알아챈 건지 음식을 테이블 위에 턱 내려놓곤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이미 갈 데까지 갔단 건가.

야식을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동준이 형의 태도는 당당했다.

“도승이 형. 미리 선전포고할게요. 난 오늘 먹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마라탕 먹을 거예요.”

이미 동준이 형의 식욕은 기준을 넘어섰다.

오랜 시간 참아온 욕구가 이제 이성마저 넘어선 상태였다.

도승이 형은 방금 잠에서 깬 상태라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진 않은 것 같다.

동준이 형의 저런 도발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동준이 형을 들고 공중에서 한 바퀴쯤 돌았을 텐데.

“……하필이면 마라탕이냐……. 그거 매운 음식이잖아. 속 다 뒤집어질 텐데.”

도승이 형 반응이 생각보다 약하다.

늘 동준이 형이 야식 시키려 할 땐 당장 지구가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막아대더니.

막상 이렇게까지 시켜 버리니 담담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싶은데,

“같이 먹자.”

“……?”

“엥?”

같이 먹잔다.

누구보다 몸 관리에 진심인 저 사람이 말이다.

예상 밖의 전개에 나랑 동준이 형 둘 다 놀라서 가만히 서 있는데,

“저걸 이 밤에 시켜먹을 정도면 이미 막는다고 막아질 게 아니잖아. 차라리 다 같이 먹어서 박동준 혼자 과식 못 하게 막는 게 낫지.”

나름 합리적인 과정이 있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근데 나 마라 처음 먹어 보는데 맛있냐? 맵다고만 들었던 음식인데.”

도승이 형이 마라탕을 처음 먹어본단 거다.

그 말에 동준이 형은 씨익 웃더니,

“오늘 한번 먹어보고 상태를 지켜봅시다.”

“……? 뭔 상태?”

“중독이란 건 시간이 지날수록 천천히 올라오는 법이잖아요.”

야심한 시각.

우리 셋의 야식 타임이 이어졌고.

“……아 미친.”

동준이 형의 마라탕에, 도승이 형이 더 깊이 빠져 버렸다.

“……이걸, 왜 모르고 살았지.”

진지하게 지금껏 살아온 삶을 손해 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도승이 형 탓에 내가 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타고난 마라인이네요. 첫날부터 이런 반응인 걸 보니까.”

“아니, 아. 큰일 났네. 내일 유산소 30분 추가해야겠다.”

도승이 형은 이리 말하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맞다, 근데 아까 둘이 무슨 대화 나누던 거야?”

동준이 형은 마라탕을 먹다 말고 내게 이리 물었다.

“……네?”

“뭔 대화?”

난 놀라서 되물었고, 도승이 형은 진심으로 모르겠단 듯 물었다.

“아니, 아까 둘이 무슨 뭐 특전? 그런 대화 나누던데. 둘이서 폰겜이라도 같이해요?”

특전, 이란 말에 난 소스라치게 놀랐고, 도승이 형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 반응이었다.

“뭔 말이야. 난 모르겠는데.”

도승이 형이 먼저 이리 말했고.

“……저도 모르겠는데요.”

나도 그냥 눈 딱 감고 이리 말했다.

그러자,

“……에이. 장난치지 말고. 나 분명 들었다니까.”

동준이 형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그러곤,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소름이 돋은 듯 젓가락을 탁, 하고 놓더니 제 팔을 쓰다듬었다.

“귀신인가.”

“귀신인가 봐요.”

“집값 떨어지는 소리 하지 마!”

귀신이 무서운 건지 집값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준이 형이 겁먹은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라 이건 이거 나름대로 신선했다.

“아, 근데 난 왜 거실에서 자고 있던 거였어?”

동시에 도승이 형도 내게 질문한다.

난 이번엔 아까보다 좀 더 의연하게 대처했다.

“아, 형 몽유병 있는 거 같더라고요. 거실 나와서 저 핸드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서 픽 쓰러지던데요.”

“……내가?”

“네.”

“방송 끝나고 병원이라도 가봐야겠네.”

“……그, 나중에 다 같이 건강검진 한번 싹 받으러 가죠.”

“그래야겠다.”

그렇게 오늘 밤.

동준이 형은 집에 귀신이 산다 착각하게 됐고, 도승이 형은 본인이 몽유병이 있다고 오해하게 됐다.

두 형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떻게 넘어가긴 넘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새벽에 야식 먹고 늦잠 잔 것에 비해 다들 일찍 일어났다.

오전 7시에 기상했으니 말이다.

얼굴이 조금 부었다는 것을 제외하자면 크게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문제는,

“와, 어제 우리 빼놓고 셋이서 야식 먹은 거야?”

운이 형이 쓰레기통에 있던 마라탕 용기를 보며 서운해했고,

“나도 마라탕 좋아해! 왜 나 빼고 먹어!”

연훈이 형이 삐졌다는 거였다.

뭐, 두 사람이 삐졌다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음에는 다 같이 먹죠. 미안해요.”

그저 미안하단 말만 반복할 수밖에.

아침은 간단하게 빵으로 때우고, 우린 거실에 테이블을 펼친 채 모였다.

오늘은 3월 25일.

더쇼케2 4화가 방영되는 날이자.

파이널 무대 준비 1일 차가 되는 날이다.

더쇼케2 4화 방영이야 저녁에 가서 걱정하면 되는 문제고.

당장 우리가 오전 동안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은 파이널 무대였다.

“어제까지 무대 연습하다가 바로 또 파이널 준비하는 거 빡셀 거 알지만, 그래도 집중해서 한번 해봅시다.”

작곡가인 도승이 형이 주도해서 회의가 이어졌다.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각자 하고 싶은 컨셉들을 하나씩 뱉는 회의였다.

“우리 세이렌이니까 바다 노래 한번 할까?”

“아직 봄인데 좀 이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대면식 무대가 바다 느낌이긴 했잖아요.”

“이번에야말로 섹시를 해볼까.”

“스읍, 무대에서 하기엔 후킹이 약하지 않나.”

“청량?”

“했잖아.”

“청순?”

“비슷하잖아.”

“호러?”

“이 봄에?”

“정장?”

“어두워.”

브레인스토밍 회의이긴 하지만, 어딘가 공방전 같은 느낌이 강했다.

우리가 번갈아가며 제시어를 던지면 작곡가인 도승이 형이 그걸 쳐낸다.

한데 너무 철벽같이 쳐내다 보니 나중엔 다 같이 독기가 올라서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호랑이!”

“뭔 호랑이야, 이 박동준아.”

“토끼 할까?”

“호랑이 나오니까 생각 안 하고 뱉은 거죠, 형?”

“플러피룩 입고 하이틴은?”

“개중에 괜찮은데 끌리진 않아.”

“그럼 그냥 힙합은?”

“나 혼자 랩 와다다 하고 싶진 않아.”

“거북이!”

“아무거나 던지지 말라고 박동준.”

“용왕!”

“형까지 왜 그래요, 진짜. 별주부전 찍어요?”

형들의 만담 같은 회의를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입을 뗐다.

“형들. 지금 이 주제가 우리들의 오리지널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무대잖아요.”

사실 나는 저 미션이 나왔을 때부터, 가슴이 뛰었다.

아이돌 자아도 이제 어느 정도 탑재했고, 무대의 재미도 알아가곤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엔 소설가로서의 의식이 남아 있었다.

“데뷔를 상정하고, 한번 무대를 짜보는 거 어때요.”

“데뷔를 상정하고?”

“무슨 말이야?”

내가 이 말을 뱉을 날이 오다니.

괜히 옛 생각이 나서 숨이 가빠지는 걸 애써 누르며 입을 뗐다.

“우리, 다 같이 세계관 짤래요?”

소설가들이 가장 기뻐하는 시간.

세계관 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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