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06화 (10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06화

오전 시간 동안의 회의가 끝나고 오후 시간 동안엔 연습이 이어졌다.

아직 세계관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연습은 본격적으로 이어지진 않고 가벼운 몸풀기 정도로 이어졌다.

이미 유명한 안무들을 따며 동작들을 연습해 본다든가.

파이널 무대에 쓸 만한 테마나 분위기 등을 찾아보며 그에 어울리는 안무들을 한번 만들어 본다든가.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연습이 이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았으요~”

빡세지 않은 연습이었기에 오늘만큼은 다들 상쾌한 상태로 연습실을 나갈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는 집으로 돌아와 더쇼케이스2 4화를 관람했다.

이제 얼추 방송 후의 인터넷 반응을 보는 것엔 익숙해진 걸까.

“오늘은 진짜 온리원분들 위주로 편집됐네.”

“2차 경연 1등이잖아요.”

형들도 나도.

처음 더쇼케2 1화를 봤을 때만큼의 긴장감은 없었다.

아쉬운 점은 4화의 내용이 온리원 중심이었다는 점인데…….

‘예상했던 거니까 뭐.’

2차 경연 1등이 온리원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이긴 하다.

그간 온리원을 오만하고, 콧대 높은, 살짝은 안일한 1인자 캐릭터로 잡아둔 빌드업이 이번 화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마치 시청자들의 질타 속에 온리원이 각성하여 새롭게 재탄생한 느낌으로 편집되었으니까.

특히 그 절정은 박영호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 있었다.

-흡, 으음…….

-어?

-영호야?

-아이고…….

-하하하, 영호 씨가 많이 기쁜가 봅니다.

-훈훈한 장면이지 않을 수 없네요.

그냥 보기만 해도 이렇듯 가슴이 찡해지는 장면인데,

-1차 경연, 실수를 했던 온리원의 박영호.

-형들한테 너무너무 미안했거든요……. 근데 이렇게 1등을 하니까……. 흐읍!

1차 경연에서 실수했던 장면을 중간에 삽입하고.

그 뒤에 인터뷰 장면까지 삽입하니.

‘휴먼드라마 한 편 뚝딱이네.’

아주 맛있는 성장 서사 하나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웃긴 건,

“형은 또 왜 울어요.”

“슬프자나…….”

연훈이 형이 저걸 보고 운단 거다.

그날 현장에서도 울었던 거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방송에서도 온리원을 보며 눈물 흘리는 연훈이 형을 잡아줬다.

클로즈업까지 해서 잡아주는 걸 보니 박수철 피디가 보기에도 저 장면이 꽤 재밌었나 보다.

일단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면,

-얘들아 너무 고생 많았어ㅠㅠㅠㅠㅠ

-진짜 ㅅㅂ 우리 애들한테 인성이니 뭐라느니 한 얘들 어디 감?

-아 진짜 개속시원함

-ㅅㅂ 우리 애들한테 망해라 망해라 한 사람들 다 어디 갔냐 ㅋㅋ

-강현성 진짜 개미친놈 같음;; 어케 월야를 나르시시즘으로 받음?

└세이렌이 했던 동양풍 전부 다 서양 중세풍으로 바꾼 것도 개미친 포인트임ㅇㅇ

└이거 나 지금 백번 돌려보는 중 (테라스에서 추락하는 강현성.gif)

└이것도 개미친놈임 (박영호 뒤에서 목 움켜쥐는 강현성.gif)

└ㅇㅇ 죽어줄게;;

그간 방송에서 비호감으로 편집되느라 늘 고통받던 온리원 팬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렸단 듯 터져 나오는 SNS 글들에 피드가 온통 온리원으로 가득 차버렸다.

물론 이는 내가 현장 반응을 투명하기 보기 위해 더쇼케2 출연 그룹의 모든 팬덤 계정을 다 팔로우해 둬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으나.

‘평소보다 버즈량이 확실히 많네.’

박수철 PD의 큰 그림이 정확히 먹혀들어 간 것 같다.

초장부터 압도적 강자였던 온리원을 쭉 압도적 강자로만 그렸다면 이런 카타르시스는 없었으리라.

한 가지 의외인 건,

-아 연훈이 박영호가 우니까 딱복에서 물복 되는 거 봐 ㅠㅠㅠ 이러면 안 되는데 우는 거 너무 귀엽다 ㅠㅠ

-우연훈 개귀여움 ㅠㅠ ㅠ

-저기서 울고 있는 남성 누구임? 지금 개급함;;

└이 남성은 세이렌의 메인보컬이자 아기말랑납작복숭아인 리더 우연훈입니다……. 이 남성이 마음에 드셨다면 4월 8일 더쇼케2 파이널 무대 때 투표 부탁드립니다

└아기말랑납작복숭아의 남자친구인 이혼하고 싶은 남자 1위 유죄남 봉떤 남자 봉태윤도 영업합니다…….

‘우리 반응도 호의적이네.’

온리원을 살리는 선택을 하면서도 우리를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간 박수철의 편집 스타일을 보면 늘 한쪽을 살리고 한쪽을 죽이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온리원의 성장과 각성을 조명하면서도 세이렌을 죽여놓지 않고 같이 띄워줬다.

‘건강한 라이벌 구도라도 잡으려는 건가.’

사실 진짜 화제 되는 건 치열한 라이벌 구도인데.

박수철 PD 손에서 이리 건강한 편집이 나올 줄은 몰랐으나.

‘나름 자기 나름의 판단이 있는 건가.’

누구 하나를 죽이는 것보다 둘 다 살리는 게 이득이 되리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일단 우리 팀 반응 위주로 쭉 살펴보자면,

-이게 라이트 라고요?

└이게 자체제작이라고요?

└이게 중소돌이라고요?

└이게 아직 데뷔 안 한 그룹이라고요?

전반적으로 무대 퀄리티에 대한 놀라운 반응들이 대부분이었고.

-와 지금 저 의상이 태윤이가 직접 만든 의상인 거임?

└개돌았는데요;;

└대체 WD는 일을 얼마나 못하면 의상조차 이딴 걸 골라옴? 봉태윤 없었으면 어쩔 뻔함

└와 근데 한복이랑 믹스 매치한 거 진짜 개쩌는 듯ㅇㅇ

엉망인 의상 탓에 WD엔터에 대한 욕이 반.

그런 의상을 살린 것에 대한 놀라움이 반이다.

사실 통찰이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다.

‘방송으로 보니까 진짜 신기하긴 하네.’

난 내가 통찰을 사용할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잘 모른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 확인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한데 저런 식으로 미친놈처럼 표현될 줄은 몰랐다.

-얘는 이렇게 접신한 거 같은 순간마다 뭐가 터지는 듯.

-리얼 천재 아님 이게?

-가요계가 빼앗아 온 타 업계의 재능충으로 봉태윤 추가해야 할 듯.

-k-돌이 뺏어온 밀라노의 인재

내가 보기엔 미친놈인데 남들이 보기엔 천재적인 순간인가 보다.

시스템 빨이긴 하지만 뭐.

남들에게 천재로 보인다 해서 나쁠 건 없다.

-이 장면 나올 때 진심으로 탄성 나옴 (제단 무너지는 장면.gif)

-강도승 혼자 위로 올라가는 거 자극 너무 심한데;;

-우연훈은 쓰러질 때도 왜 청초함?

-아 제발 동준이 음색 좋은 것도 봐주세요. 진짜 이 집 댕댕이 못 하는 거 없다고요.

-봉태윤 나랑 결혼…… 열아홉 살이라고요? 죄송합니다……. (제단에 검 박아넣는 봉태윤.gif)

-이운……. 우리 공녀님 춤 좀 보세요 여러분……. 나풀나풀거리는 것이 사람인지 나비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운 센터로 나오는 장면.gif)

비록 1등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팬들이 이 무대를 잘 즐겨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3차 경연을 앞두고 살짝 우리 상승세가 주춤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현상 유지는 했네.’

온리원과의 격차가 많이 벌어지진 않을 수 있도록 현상 유지는 된 모양이었다.

유입도 나름 꽤 늘어난 추세고.

팬덤도 서서히 조직화 되어가고 있다.

아직 온리원에 비하면 다소 규모가 작긴 하나.

‘파이널에 갈 때쯤이면, 해볼 만할지도 몰라.’

이제 영 부족한 느낌은 아니었다.

온리원도 사실 강현성 한 사람이 잘난 거지, 아직 나머지 멤버들은 인지도가 약하다.

사실 강현성을 빼자면 우리가 전반적으로 온리원보다 형편이 나은 상황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아직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기회가 많으니 최종 우승이 영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 방송도 재밌었다~”

“온리원분들이 잘하긴 하셨네.”

“현성 선배님 춤 진짜 잘 추시는 거 같아.”

“에이~ 형이 더 잘 춰요, 제가 보기엔~”

형들은 방송이 끝난 후 광고 화면을 보며 이리 말했다.

크게 나쁠 것 없이 끝난 방송이었기에 이런 느긋한 반응이 가능한 거 같았다.

아마 온리원 쪽은,

‘지금쯤 축제겠네.’

아마 다 같이 춤이라도 추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간 쌓아 올린 빌드업이 정확하게 고점에 터졌으니까.

다만,

‘강현성이 신나서 춤추는 건 딱히 상상이 안 되는데.’

별로 좋지 않은 그림이 그려져서 급히 망상을 멈췄다.

-짜릿하게 비틀어라!

-킹시 콜라 라임! 상큼하게 터지는 맛!

난 광고를 보다 말고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형들도 이제 볼 만큼 봤다 싶은 건지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이제 뭐 할까.”

“흐음. 연습이나 더 할까?”

“난 헬스 하러 갈 건데, 같이 갈 사람 있어요?”

원래 같았으면 연습을 할 테지만 아직 뚜렷한 파이널 곡이 안 나왔다 보니 시간이 붕 뜬다.

도승이 형은 헬스를 하러 가겠다 하고, 운이 형은 춤 연습을 더 하겠다 한다.

동준이 형은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박동준 나와.”

“아 왜요.”

“어제 마라탕 먹은 속죄를 하러 가자.”

“아니, 이미 오전에 연습한 걸로 다 소화……,”

“안 됐어. 플러스 알파로 더 태워야지.”

도승이 형이 잡아가서 헬스장으로 향했으며.

“형은 저랑 연습할래요?”

“그럴까?”

연훈이 형은 운이 형이랑 같이 춤 연습을 하러 갔다.

“전 집에서 세계관 짤게요.”

난 형들에게 이리 말한 후 노트북을 들었다.

“집 잘 지키고 있어~”

“살아서 돌아올게, 태윤아.”

“엄살 부리지 마, 박동준.”

“밤에 보자, 태윤아.”

형들은 각자 내게 인사한 후 숙소를 떠났다.

적막해진 거실에 홀로 남은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노트북을 켰다.

‘……이게 얼마 만이지.’

난 노트북 화면 위에 떠오른 한컴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가사 작업은 꾸준히 해왔으나 그건 대부분 핸드폰 메모장으로 했다.

글을 쓰기 위해 한컴을 켠 건 정말 오랜만이다.

난 차분하게, 머릿속에서 정리해 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이건 아이돌의 세계관이지 웹소설이 아니므로 분명 다른 문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재밌는 이야기의 문법은 비슷한 법이다.

웹소설식 전개들을 조금씩 섞되, 결국은 팬들이 즐기며 따라올 수 있는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왜 이 이야기가 회귀 직후부터 떠오른 걸까.’

타자를 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회귀 직후부터 난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세이렌 세계관에 대한 걸 구상해 뒀으니까.

하지만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다.

당장은 머릿속에 있는 걸 옮기는 게 급선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쓰던 중.

“잠깐, 쉬었다 하자.”

난 벌써 2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른 걸 보고 타이핑을 멈췄다.

얼추 머릿속에 있는 걸 전부 적어둔 상태였으므로 이쯤에서 한번 환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후우우.”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물도 한 잔 마시고.

다시 마무리 작업을 하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순간.

‘음?’

갑작스레.

지이잉-

‘뭐야?’

능력이 발동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가 잠시 정지하고.

눈앞에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화악!

아지랑이 사이를 뚫고 반투명한 스크린 하나가 떠오른다.

‘미래시?’

미래시라는 능력이 뜬금없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은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다.

한창 글 쓰던 중이었기에 흐름이 끊기면 어쩌나 싶어 짜증이 밀려왔지만,

‘……일단 보자.’

시스템이 보여주는 장면 중 헛된 건 없으니 미래시의 스크린을 바라봤다.

한데,

‘……음?’

그간 미래시는 내가 있는 미래의 한 장면을 보여줬는데.

이번 미래시에는 내 모습이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들 셋이 서 있었는데,

‘승연 씨랑 현아 씨랑, 윤태형 팀장?’

WD엔터의 실무진들이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미래시에 내가 없단 게 아니라,

-만일 얘네가 우승하면 제일 그룹 쪽에 말해서 우리들 합작회사로 그대로 이직하게 해달라고 말해준다니까.

-아니, 근데 팀장님……. 이게 옳게 된 게 아니잖아요.

-걔네 입장에서야 우리가 맘먹고 정산율 후려쳐 준다고 하면 당연히 오케이 하겠지. 정산율 10퍼센트만 더 가져와도 우리 세 사람 연봉은 충분히 나오고도 남아.

-그건 알지만……. 이건 인간적으로…….

-……너네 지금 자선사업 하냐?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이 셋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문제였다.

종합하자면,

‘형들이랑 내 정산율 후려쳐서 윤태형 저 새끼가 자기 직장 이직하겠다는 거야?’

우리 뒤통수를 쳐서 자기 배를 불리겠단 이야기였다.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내,

후웅-!

미래시가 끝이 났고, 세계가 원래 속도로 돌아왔다.

난 작업 중이던 세계관 파일을 저장한 후, 곧장 핸드폰을 들었다.

“하아아.”

어쩌면 한번은 짚고 넘어갔어야 할 문제.

이참에 준비를 제대로 시작해야 할 거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