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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08화 (10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08화

세계관과 가사를 짠 후부터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도승이 형은 작곡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손이 빠른 편이다.

컨셉과 가사가 확실해지니 곡 찍는 것에 더 거침이 없어졌다.

당일 오전 중에 러프 본이 나왔을 정도니까.

“<새로운 시작>이 컨셉인 거니까, 이런 식의 청량한 전자음들 많이 섞어 봤어.”

“좋은데요?”

“코드 진행 자체도 무거울 거 없이 전반적으로 가볍게 이어지게 짰고.”

러프 정도였지만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얼추 완성본에 가깝게 뽑은 덕분에 당장 연습을 하기에 부족함 없는 상태였다.

운이 형은 러프버전 반주를 듣자마자 어떤 퍼포먼스를 짤지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흐음. 좀 동작들이 크고 확확 자주 바뀌면 멋질 것 같은데. 곡 자체가 가볍고 경쾌하니까.”

“확확……. 자주……?”

우리 팀 중 가장 춤이 약한 편인 연훈이 형이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겁먹었겠으나,

‘통찰 만세네, 아주.’

이 시스템이 준 능력 덕분에 몸치는 진작에 탈출했다.

워낙 통찰을 빈번하게 쓰다 보니 춤 실력 자체가 이젠 꽤 늘기도 했다.

이제 팀 내에서 가장 춤이 약한 사람은 내가 아닌 연훈이 형이었다.

“노래는 부를 수 있게 짜줄 거지……?”

“그럼요. 걱정 마요.”

“다행이다.”

“어떻게든 부를 순 있을 거예요.”

“……불안한데?”

연훈이 형과 운이 형이 동작에 대한 난이도 조절로 의견을 조율하는 동안.

“형들 다 바쁘네~”

난 동준이 형과 함께 뒤로 빠져서 이 상황을 관망했다.

동준이 형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이런저런 페이지들을 휙휙 넘기고 있었다.

사실 이전부터 조금씩 걱정하던 게 있다.

‘박탈감 같은 거 안 느끼겠지.’

형들은 각기 다들 잘하는 게 하나씩 있다.

나도 요즘은 작사를 맡고 있고,

동준이 형이 자신만 역할이 없는 것에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가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태윤아. 귀 대봐.”

“네?”

형이 대뜸 귀를 대보란다.

가져다 대니,

“……오늘 새벽에 잠깐 나가서 치킨 시켜 먹을까?”

……역시.

기죽을 일 따위가 없는 인간이다.

“도승이 형!”

“어? 어어? 봉태윤! 이러기야!”

난 지체 없이 도승이 형을 불렀으나 방에 들어가 곡 작업에 한창인 도승이 형은 내 외침을 듣진 못했다.

“강도승이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치킨은 선 넘었잖아요.”

“다시는…… 야식 안 사줘…….”

동준이 형이 배신당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을 즈음,

끼익.

대뜸 방문이 열리더니,

“방금 누가 나 부르지 않았어?”

도승이 형이 목 근육을 주무르며 나왔다.

“헙!”

동준이 형이 입을 굳게 닫고 소파 구석으로 파고드는 사이,

“아, 제가 불렀어요.”

난 태연하게 도승이 형에게 말했다.

“그, 곡 작업하던 것 중에 브릿지 부분 조금만 더 늘려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파이널이니까 좀 화악 하고 터지는 느낌이 드는 구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러곤 동준이 형 치킨 건이 아닌, 브릿지 파트 길이에 대한 건을 이야기했다.

“아, 그래 뭐. 한번 늘려볼게.”

도승이 형은 뭐 별거 아니란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도승이 형이 들어가자 그제야 동준이 형은 고개를 들더니 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진짜 못 됐어.”

아마 어제 도승이 형이랑 헬스장 간 게 꽤 힘들었나 보다.

도승이 형한테 겁 따위 먹은 적 없던 동준이 형이 이런 반응일 정도면 말이다.

그렇게 오전과 오후 시간 내내 우린 다 같이 곡을 만드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도승이 형도 손이 빠르고 운이 형도 손이 빠르다 보니 저녁이 되었을 땐 다 같이 합을 맞춰볼 수 있을 정도까지 무대가 구체화 되었다.

“내려가서 맞춰볼까?”

반주에도 도승이 형이 가볍게 가이드를 불러서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우린 도승이 형 목소리로 녹음된 가이드를 따라 운이 형이 짠 안무를 하나둘 수행해 봤다.

“일단 냅다 어렵게 짠 거니까 하면서 난이도 낮출 거 있으면 낮추자.”

가이드를 듣고.

안무를 외우고.

어려운 부분이나 현실적으로 구현이 안 될 것 같은 부분들은 조정을 하는 등.

늘 해오던 대로 연습을 이어갔다.

문제는,

“와, 근데 이번 안무가, 진짜 역대급인 거 같아요.”

연습에 있어서 힘들단 말을 잘 안 하는 동준이 형이 이리 말할 정도였단 거다.

안무의 동작 자체는 어려운 게 없다.

문제는,

“호흡이 왜 이렇게 빨라요?”

“이 정도 호흡으로는 나와야지 반주 느낌이 살 거 같아서.”

안무의 호흡이 지금껏 해온 것 중 제일 빠르단 거다.

“할 수 있다! 우리 다 집중해서 한 번씩만 더 맞춰보자!”

연훈이 형이 축 처진 멤버들을 다시 끌어 올려서 안무 연습을 이어갔다.

* * *

그렇게 연습 첫날이 흘러갔고.

두 번째 날에는 본격적인 반주 세팅 및 편곡에 들어갔으며.

셋째 날에는 파트 분할과 레코딩.

넷째 날에는 완성된 음악에 맞춘 최종 안무 픽스까지 이어졌다.

다섯째 날.

“와아악!”

“끝!”

“와 진짜 힘들어억!”

우린 완성된 반주와 완성된 안무에 맞춰 라이브를 시도해 봤다.

결과는 어찌저찌 성공.

문제는 한 곡 하자마자 다들 푹 퍼져 버렸다는 거다.

이제부터 답은 없다.

그냥 죽도록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하아. 하아.”

“후우우.”

“폐……. 폐가 아파…….”

난 쓰러진 형들을 쭉 바라보며,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지난 경연에서 강현성에게 배워온 유용한 한 가지.

“너무 힘들 때 한 발 더 가면 다음부턴 조금씩 쉬워진대요.”

마른 오징어에서 물 짜기를 시도했다.

형들은 연습실 바닥에 엎어진 채 꿈쩍도 안 하더니,

“……하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으아아악!”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연습을 이어갔다.

“고강도 유산소 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

연훈이 형이 이상한 구호를 만들어서 외쳤으나,

“고강도 유산소!”

“고강도 유산소!”

“다이어트!”

형들은 그 이상한 구호를 그냥 나름 따라가 주며 열의를 불태웠다.

그래 뭐.

고강도 유산소이긴 하니까.

난 뇌를 비우고 음악에 맞춰 안무를 췄다.

그렇게 다섯째 날 연습도 하얗게 불태운 후.

“하아아.”

“이 정도면, 이제 구색은 얼추 갖췄다.”

“후우우.”

“구색 한번 갖추기 진짜 어렵네요…….”

형들과 나는 연습실 벽에 기대앉아 영혼 없는 눈을 한 채 허공을 바라봤다.

그때,

지잉.

연훈이 형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자가 ……왔네.”

연훈이 형은 멍한 목소리로 이리 중얼거리더니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리더에게만 오는 문자의 경우엔 방송 공지인 경우가 많다.

또 무슨 공지인 건가 싶어 형들과 나는 연훈이 형 핸드폰만 멍하니 바라봤다.

제발 별것 없는 일이기를.

그냥저냥 지나가는 스팸이기를.

다들 말없이 간절한 눈빛으로만 형을 바라봤는데,

“……아아아……. 흐으으으…….”

연훈이 형이 문자를 보자마자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진다.

“……뭐길래 그래요?”

난 연훈이 형 핸드폰을 집어서 내용을 확인해 봤다.

그러곤,

“……하아. 진짜 이 망할…….”

엎어져서 신음하는 연훈이 형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뭔데 그러는 거야?”

“큰일이라도 난 거야……?”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다가온다.

두 형도 문자를 보더니,

“아 미친.”

“세상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이리 말했다.

우리가 이토록 격한 반응을 하는 이유는 하나.

“왜……. 지금 광고 촬영을 한다는 거야……?”

“아니! 이걸 촬영 이틀 전에 이렇게 통보하듯이 알려주는 게 어딨어!”

전에 미니게임에서 우리가 따낸 ‘킹시 콜라 광고 촬영권’이 하필이면 지금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사람들 같으면 광고 찍는다 하면 좋아할 것이다.

우리도 광고 찍는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첫째, 광고 촬영이 4월 1일인데 3월 30일인 오늘에서야 그걸 공지해 줬다는 점.

둘째,

“우리 연습은 언제 해?”

“그냥, 지금 더 하죠.”

“하아…….”

파이널 무대라 가뜩이나 더 신경 써야 하는데 그 흐름을 탁 끊어버린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게 지금 저희만의 문제가 아닌가 봐요.”

“응?”

“지금 블레슈 도영 씨한테 연락왔는데 블레슈는 연습하다 말고 내일모레 제주도로 떠나야 한대요.”

“그 미니게임에서 얻은 특전들 그냥 지금 일괄적으로 다 시작하는 거야?”

“진짜……. 끔찍하다 끔찍해.”

제작진들 일 처리 방식에 우리의 편의 따위야 애초에 없단 걸 잘 알고는 있었으나,

‘너무하긴 하네.’

파이널 무대 앞두고도 이러는 건 선을 넘었다.

하지만,

“오늘 진짜 안무 확실하게 몸에 새겨서 자다가도 튀어나올 수 있게 하자.”

“좀만 더 해보자.”

“아자아자!”

별수 없다.

제작진 놈들 스케줄에 우리가 맞출 수밖에는.

마른 오징어에서 물 짜기를 이미 한 번 써먹었는데,

‘마른 오징어에서 물 두 번 짜게 생겼네.’

오늘은 조금 혹사당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던 다섯째 날 연습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 * *

지옥과도 같았던 다섯째 날 연습이 끝나고.

더 지옥 같았던 여섯째 날 연습까지 끝이 났다.

그리고 4월 1일.

광고 촬영 날 아침이 밝아왔다.

하루 연습 일정 빵꾸 날 걸 예상하고 이틀간 연습량을 1.5배씩 늘리다 보니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가서 힘든 티 내지 말고. 씩씩하게 잘하고 오자.”

“넵.”

“알았어요.”

정해진 스케줄이니 힘들다고 내색하기보단 없는 힘이라도 박박 긁어모아야 했다.

형들과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승연 씨와 현아 씨를 만났다.

두 사람도 새벽 기상이 피곤한 건지 얼굴색이 좋지만은 않았다.

“샵으로 출발할게요~”

“오늘 광고 촬영 콘티들은 다 받아보셨죠?”

“네.”

“네에~”

“광고 촬영 중간에 라이브 이벤트 있는 것들도 다 확인하셨고요.”

“넵!”

“했습니다~”

광고 촬영을 위한 메이크업을 받으러 샵으로 이동하는 길.

현아 씨와 승연 씨는 이번 킹시콜라 광고 촬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줬다.

사실 이미 메일로 오늘 촬영 일정과 콘티, 컨셉 등을 다 전달받은 상태이긴 했다.

그래도 한 번 더 듣는다 해서 나쁠 건 없으므로 귀를 기울였다.

“광고 촬영이야 현장 가서 감독님들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는 하니까, 일단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 같긴 하거든요.”

승연 씨는 그리 말하며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다시 입을 뗐다.

“근데 진짜 문제는 이건데…….”

승연 씨가 진짜 문제라 칭한 것.

그건,

“킹시콜라 홍보 프로모션으로 라이브 진행한다는데, 문제없겠죠?”

오늘 광고 촬영 중간에 들어갈 라이브 방송이었다.

당장 있을 광고도 문제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이 라이브가 맞았다.

“라이브 가셔서는 말하기 전에 꼭 생각하고 말하셔야 돼요.”

“그, 이건 나름 어제 저랑 현아 씨가 짜본 최근 민감한 주제들이랑 논란될 만한 어휘들이거든요. 한 번씩만 확인해 보세요.”

형들과 나는 현아 씨와 승연 씨가 마련해 준 자료들을 읽었다.

“와, 진짜 감동이에요…….”

연훈이 형은 우리를 위해 이런 걸 해줬다는 게 감동스럽나 보다.

사실,

‘이제 일 잘하시네, 두 분.’

나도 꽤 놀랍긴 하다.

우리가 성장하는 것처럼 두 분도 점점 성장하는 거 같아서.

다만 쓸데없는 사념은 넣어두고 난 자료집을 읽었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된 자료들이었다.

라이브 방송에서 하면 안 될 것들을 머릿속에 새기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행 시뮬레이션을 조금 돌려보려 했는데,

[돌발 미션 발발.]

‘……아.’

아주 오랜만에, 돌발 미션이 튀어나왔다.

그래.

뭔 소리 하나 들어나 보자라는 마음에 가만히 있어 보니,

[금일 진행될 라이브에서 온리원보다 높은 파랑새 트윗양을 기록하시오.]

[성공 시, 통찰의 통제권 강화.]

[실패 시, 통찰 통제권 회수.]

‘……선 넘네?’

이 시스템이란 놈이 점점 날 갖고 노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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