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10화
박수철은 더쇼케 담당자로서 광고 현장에 따라 나온 상태였다.
사실 광고 촬영이라고는 하지만 크게 독특한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니다.
중간에 라이브 방송을 켜는 것 외엔 말이다.
어차피 한 달짜리 단기 광고고.
배경도 놀이동산이라는 평범한 배경이고.
의상마저 베이직하니까.
그냥저냥 시간 때우다 가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와~ 온리원분들 교복 핏 장난 아닌데요?”
막상 교복 입은 온리원을 보고 나니.
“세이렌분들도 교복 진짜 잘 어울리신다~”
또 교복을 입고 등장한 세이렌을 보고 나니.
‘좋은데?’
이 그림이 그냥 단순히 잘생긴 애들이 예쁜 옷 입고 나와서 예쁜 짓 하는 그림이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안녕하세요, 선배님!”
“너무 딱딱하게 선배님, 선배님 안 그러셔도 돼요.”
“그치만……. 선배님이시잖아요.”
“저희 동갑이잖아요.”
“네!”
“그냥 친구 하죠.”
“진짜요?”
저 두 그룹이 친목하는 그림을 보니,
“그, 감독님. 세이렌이랑 온리원 각각 그림 따지 말고 섞어서 그림 따는 거 어때요? 구성은 그대로 가고요.”
광고 감독에게 이런 제안을 하게 됐다.
처음엔 그냥 잘생긴 애들이 서로 친목하는 걸 보는 정도의 가벼운 재미가 전부 일 줄 알았던 박수철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와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거 잘하면 터지겠는데?’
‘진짜 잘생긴 애들’이 모여서 ‘진짜 친목’을 하면 그 뻔한 구성만으로도 ‘진짜 재밌는’ 영상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 * *
두 팀을 섞어서 광고 촬영을 한다는 말에 우리 형들과 온리원 모두 화색을 보였다.
그간 친목질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참았는지 모르겠다.
보통 이 나이대 남자들이 만나면 서열 놀이 하거나 묘한 신경전 같은 걸 할 법도 한데,
‘뭘까.’
참 순박한 사람들이다.
때마침,
-저희가 놀이공원 개장 전까지 컴팩트하게 오전 촬영 끝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조 구성은 여러분이 임의로 빠르게 픽스해 주세요! 3인조 두 개랑 4인조 하나로 만드시면 됩니다!
어떻게 조구성을 해야 하는지 공지를 해줬다.
이제 조구성을 해보기 위해 다 같이 모여봐야 할 거 같았는데,
‘왜 이미 조 구성이 끝난 거 같지.’
아까 친목질하던 구성 그대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도승이 형이 온리원의 김주현이랑 같이 있고. 그 곁에 김시운이 추가로 붙어 있다.
운이 형과 동준이 형이 같이 있고 그 곁에 이철운과 박영호가 함께 있다.
그리고,
“저희 셋이 조 할까요?”
“네!”
“……하하.”
강현성, 나, 그리고 연훈이 형이 함께 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조가 다 정해져 버렸다.
-오늘 광고 컨셉은 들으셨죠?
“네에!”
-기구 하나씩 배정해 드릴 테니까 그곳 가서 촬영하면 됩니다. 기구 타는 동안엔 이 액션캠으로 촬영하시고요.
오늘 광고 컨셉은 봄 소풍.
촬영 방식은 장비가 세팅된 기구로 가서 해당 기구를 타며 노는 거다.
기구를 타는 동안에는 우리가 액션캠으로 찍고, 이동하면서 돌아다니는 건 스태프들이 찍어준다.
이렇게 나온 촬영본들을 감독이 알아서 잘 편집해서 광고로 만드는 거다.
여기서 드는 의문.
이게 왜 킹시콜라 광고, 냐는 거다.
그냥 놀기만 하는 건데.
그 이유는 지금 밝혀지는데,
-여기 킹시 콜라 머리띠 가져가세요.
오늘 우리가 착용할 소품들에 전부 킹시콜라 로고가 박혀 있으며.
-킹시콜라도 받아 가세요.
마시는 음료는 전부 킹시콜라일 거며,
-놀이기구 중 킹시콜라 마크 붙어 있는 것들만 저희가 탈 기구입니다. 그 외의 장소는 대관을 안 했으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모든 놀이기구들이 킹시콜라 버전으로 리뉴얼 되어 있단 거다.
‘무슨 영역 표시도 아니고.’
킹시콜라가 지들 돈 쓰겠다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조금 웃기긴 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기구 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젠 각 조가 어느 기구에서 촬영할지를 고르는 시간이다.
이 기구가 어찌 보면 가장 문제인데…….
‘좀, 편안한 게 있으려나.’
어떤 기구를 탈지 알려주지 않았단 거다.
그냥 기구 타고 노는 장면을 딸 거라고 계획만 알려줬지.
사파리라든가, 회전목마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옥의 트위스트
-영혼 탈출 수직 낙하!
-폭포를 타고 쑤우욱!
……기구 이름이 다 이따위다.
이름만 봐선 어떤 종류의 놀이기구인지 감도 안 온다.
이런 생각을 읽은 건지 감독이 기구명 뒤에 종류를 따라 적어줬다.
-지옥의 트위스트(바이킹)
-영혼 탈출 수직 낙하!(롤러코스터)
-폭포를 타고 쑤우욱!(후룸라이드)
……별 도움은 안 되는 정보였다.
과연 촬영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서는데,
“다 재밌을 거 같은데요?”
“그러네요.”
양옆의 강현성과 연훈이 형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어설까.
“안 재밌어 보여요?”
강현성이 내게 물었고,
“안 재밌어 보여, 태윤아?”
연훈이 형도 내게 물었다.
“……재밌어 보이네요.”
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리 말했다.
이실직고할 게 있다면,
‘촬영 잘할 수 있으려나.’
난 놀이기구를 잘 못 탄다.
때마침,
-자 그러면 기구를 정할 텐데, 어떤 기구 타고 싶으세요?
기구 정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셋 다 쉽지 않은 기구라 고민이 앞서는데,
“저희 바이킹이요!”
“후룸라이드 가져가겠습니다!”
앞선 두 조가 다른 두 기구를 선점해 버렸고,
“미친…….”
남은 건 롤러코스터였다.
그래, 뭐 한번 눈 딱 감고 타면 되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한 기구 선택해도 돌아가며 다 타볼 테니까 너무 아쉬워 마세요~
……듣던 중 반갑지 않은 소리였다.
* * *
끼이이익.
쿵.
끼이이익.
쿵.
롤러코스터가 올라간다.
난 반쯤 정신을 놓았다.
사실 이 영혼 탈출 수직 낙하!를 타러 오는 길에도 생각이 많았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걸 말이다.
킹시콜라 광고면 상큼함, 짜릿함, 이런 게 포인트일 텐데.
‘이거 나만 너무 호러 아니야?’
표정 관리를 하려 했다.
하지만,
끼이이익.
쿵.
롤러코스터가 레일을 타고 천천히 꼭대기로 올라갈 때마다,
‘……잠깐의 빈사 체험을 한다고 생각하자.’
도무지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이런 식의 기형적인 긴장감은 분명 심혈관질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더군다나 자칫 잘못해서 사고가 나게 되면 그대로 사망할 수 있다.
실제 롤러코스터 사망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지 않는가.
안전바를 잡은 손에 힘이 더해진다.
이제 곧 고점이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모든 고통은 지나가는 법이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데,
꽈악.
연훈이 형이 내 손을 꽉 잡아줬다.
걱정해 주는 마음에 괜한 감동이 오려는데,
“재밌겠다, 태윤아!”
……그냥 흥분한 거였다.
소소한 배신감을 느낄 무렵,
후우우웅!
롤러코스터가 그대로 낙하했다.
“꺄아아아아아!”
연훈이 형이 소리를 지르고.
“아, 아아.”
난 차마 소리를 지를 기력도 없어서 입만 벙긋벙긋댔을 뿐이다.
강현성도 놀이기구를 못 타는 걸까.
아무 비명도, 소리도 안 들린다.
그때,
“……재밌네?”
이 미친놈은 흥분해도 큰 소리를 안 지르는 놈이었던 거다.
그렇게 탑승 인원 셋을 태운 영혼 탈출 수직 낙하!는 힘차게 레일 위를 달려갔다.
롤러코스터가 시작일 뿐, 광고 촬영은 멈추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아~”
“아……. 아아…….”
“……괜찮네?”
바이킹으로 이동해 몸 관절이 뒤틀리는 경험을 한 뒤.
“오오오오~”
“아아…….”
“……음.”
후룸라이드로 가서 물보라를 맞았다.
하나하나가 전부 위험천만한 놀이기구들인지라 매번 사선을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별수 있는가.
광고 촬영인데 빼지 말고 들어가야지.
다행인 점은 이걸 찍는 스태프들의 표정이 밝단 거다.
난 내가 놀이기구를 못 타니 청량하고 짜릿한 그런 느낌이 안 났을 거 같아 걱정했는데,
‘……뭔가 맘에 드는 건가?’
쓸 만한 그림이 저 사람들 기준으론 꽤 나왔나 보다.
“태윤아, 괜찮은 거 맞지?”
그때 연훈이 형이 날 보며 묻는다.
이제 연훈이 형도 눈치를 챈 상태였다.
내가 놀이기구를 못 탄단 걸 말이다.
하긴 못 알아챌 리가 없다.
기구만 타면 그렇게 굳어버리는데.
“잠깐 쉬었다 갈까요?”
강현성이 구석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스태프들이 기다렸단 듯 콜라와 츄러스를 건네준다.
“여기서 그거 먹으면서 한 컷 땁시다!”
우리 셋은 벤치에 앉아 츄러스와 킹시 콜라를 먹었다.
다만 그냥 먹은 것은 아니고,
“조금 더 표정 밝게!”
“좀 더 기뻐 보이게!”
“서로 먹여주고 그러세요~”
이런저런 주문사항이 많았다.
가장 고역인 건,
‘먹여달라니.’
이 주문이다.
이 악물고 연훈이 형만 쳐다보려는데,
스윽.
강현성의 츄러스가 냅다 비집고 들어온다.
이거 안 먹었다간 그림이 이상하다.
그걸 한 입 베어문 후 난 바로 연훈이 형에게 츄러스를 줬다.
연훈이 형은 내가 준 츄러스를 한입 크게 베어물더니,
“맛있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이런 리액션을 한다.
아니, 이건 시켜서 나오는 리액션이 아니라 그냥 찐 리액션이다.
그때,
“제가 준 츄러스는 맛이 없나 봐요, 태윤 씨?”
강현성 저 자식이 나한테도 리액션을 요구한다.
“와, 아아. 맛있다. 하하.”
난 얼굴 표정이 굳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리액션을 해줬지만,
“진심이 아닌데.”
“읍!”
강현성은 이리 말하곤 내 입에 츄러스를 그냥 욱여넣었으며,
“하하하!”
연훈이 형은 그게 웃긴지 웃음을 터뜨렸다.
난 츄러스를 우물거리며 강현성을 잠시 째려봤다.
뭐, 어찌 됐든 분위기가 좋으니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콜라 마시는 장면까지 야무지게 딴 후,
“이 정도면 볼 만한 그림 다 나왔네요.”
휴식 겸 촬영이 일단락되었다.
이후 우리 셋이 놀이공원을 뛰어다니는 장면.
콜팝 같은 걸 먹으며 킹시 콜라를 또 한 번 마시는 장면.
놀이기구 앞에서 셀카 찍는 일상적인 장면 등을 더 찍은 후,
“이제 놀이공원 개장 시간 다 되어가네요.”
“슬슬 철수합니다!”
오전 촬영인 놀이공원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촬영 시작 전에 모였던 놀이공원 입구에 다시 모이니,
“뭐야.”
“하하하!”
“동준이 머리카락이 왜 그래!”
다들 끝내주는 촬영을 하고 온 걸까.
동준이 형은 머리카락이 산발이고.
도승이 형은 교복이 살짝 찢어져 있으며.
운이 형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온리원 멤버들도 다들 정상은 아니었고.
아마 우리가 가장 얌전하게 놀았나 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자, 다들 촬영 잘 마치셨죠?
“네에!”
-이제 세트장으로 이동해서 학교 수업씬 찍을 겁니다~
때마침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촬영 일정은 오전에 놀이공원 가서 노는 거 찍고, 오후엔 세트장 가서 학교 장면을 찍는 거다.
실제 광고에선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겠지만, 장소 특수성상 이런 식의 순서로 촬영 계획이 짜여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세트라지만 학교 가야 한다니까 기분 이상하네.”
“그러니까요.”
이번 촬영을 계기로 다들 친해진 건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그때,
-그리고 오늘 라이브 방송 메인 콘텐츠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난 죽어가던 눈빛을 되살려 광고 감독을 다시 바라봤다.
라이브 방송 메인 콘텐츠 발표라니.
어쩌면 오늘 하루의 운명이 저 콘텐츠에 달려 있을 거다.
돌발 미션으로 받은 게 라방에서 트윗양으로 온리원을 이기라는 거니까.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려는데,
-오늘 라이브 방송은 ‘요리’가 메인 콘텐츠입니다!
꽤 무난한 게 나왔다.
‘요리?’
킹시콜라랑 요리가 접점이 있나?
왜 굳이 요리인가, 싶은데.
-단, 킹시 콜라를 활용한 요리입니다!
갑자기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
‘콜라로, 요리?’
단순 기우일진 모르겠으나.
‘괴식 아니야?’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뒤이어 괴식 만들기, 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 한마디가 더 나왔는데,
-콜라가 메인 재료로서 활용이 되어야지, 사이드로 두는 건 안 됩니다!
햄버거 세트처럼 콜라를 곁들이는 게 아니라, 콜라를 식재료로 활용하란다.
트윗양으로 온리원을 이겨야 하는 미션을 받은 가운데 요리 콘텐츠라.
‘흐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찜닭을 만들까? 스읍. 너무 흔한데.’
마땅한 게 없어 골치가 아픈데,
탁.
도승이 형이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러곤,
“콜라로…… 요리?”
‘뭐야.’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왜인가 하고 보니,
“태윤아, 너 콜라 화채 먹어봤냐?”
“……예?”
“콜라로 만든 화채. 우리 집은 화채 그렇게 먹거든.”
……뭔가, 본인만 좋아하는 괴식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