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11화
콜라로 만든 화채라니.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다.
한데 도승이 형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니,
진지하다기보단,
‘왜 광기가 엿보이는 거 같지?’
은은하게 눈동자가 돌아 있다.
들어보니,
“다들 콜라 화채라 하면 거부감부터 갖고 보는데, 먹어보면 진짜 아니거든. 그걸 오늘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보이면 사람들이 콜라 화채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낼 수 있겠지.”
‘뭐야, 이 형,’
도승이 형이 생각보다 콜라 화채에 진심이다.
아니, 대체 콜라 화채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집착한단 말인가.
도승이 형이 뭐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나마 집착하는 거라면 음악 정도인데.
‘음악과 콜라 화채가 동급인 건가?’
도승이 형 세계 속에선 음악과 콜라 화채가 동일한 비중의 주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살짝 무서워지려 해서 거리를 조금 벌리려 했는데,
‘아.’
온리원을 트윗양으로 앞서야 하는 미션을 받은 지금,
‘이거네.’
그 미션 성공의 선두에 서줄 사람을 찾은 것 같다.
“콜라 화채, 맛있겠는데요?”
“그렇지?”
“이번 방송에서 해보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드디어…….”
도승이 형이 살짝 감복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난 형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곤 방금 도승이 형과 이야기 나눈 것을 들려줬다.
“에? 그건 무슨 괴식이야?”
이건 동준이 형의 반응.
“아, 하하하…….”
이건 연훈이 형의 반응.
“진심이지……?”
이건 운이 형의 반응이었으나.
“진심이고, 괴식 아니고, 자신 있는 요리야.”
도승이 형의 굳은 심지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가 요리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제 스튜디오로 출발하겠습니다~
스태프들이 하나둘 철수하고 있었다.
우린 콜라 화채에 대한 주제를 잠시 접어둔 채 차량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도승이 형의 콜라 화채 수다가 길게 이어졌고,
“하자! 해요! 콜라 화채 만듭시다!”
“그래, 도승아. 콜라 화채 하자.”
“하아. 네가 이렇게까지 진심인 거 처음 봤어, 도승아.”
참다못한 형들의 동의에 힘입어 우리의 요리 주제는 콜라 화채로 픽스 되었다.
* * *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나서는 놀이공원에 있을 때보단 훨씬 정석적인 광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 광고의 스토리라 한다면 세이렌 고등학교 학생들과 온리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땡땡이를 치고 놀이공원에 간단 거다.
그렇기에 우린 교실로 꾸며진 세트장에 앉아 지루해하는 컷, 창밖을 바라보는 컷, 공부하는 컷 등을 찍었다.
이게 각각의 인물에 맞춰 캐릭터도 있었는데,
“태윤 씨는 뒷자리에서 수업 안 듣고 창밖만 바라보는 기 센 학생입니다. 무슨 느낌인지 알죠?”
“……예?”
“그리고 도승 씨는 뒷자리에 앉아서 잠만 자는 체육 특기자 학생이고요.”
“제가요?”
“동준 씨는 중간에 앉아서 교과서에 막 낙서하고 노는 그런 캐릭터예요.”
“와! 저 진짜 학교 다닐 때 그랬는데!”
“연훈 씨는 수업은 열심히 듣지만 자꾸만 창밖으로 시선이 가는, 막 놀고 싶은 마음을 주체 못 하는 그런 순수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친구들 데리고 땡땡이치러 가는 주동자고요.”
“주동자예요, 제가? 좋다!”
“마지막으로 운이 씨는 반장 캐릭턴데, 이 뿔테 안경 쓰고 맨 앞자리 앉아서 필기 열심히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다가 연훈 씨가 손 붙잡고 억지로 끌고 놀이공원으로 데려가는 거고요.”
“저 실제로 반장이었어요. 신기하다.”
나름 형들 캐릭터 해석을 잘해낸 것 같았다.
문제는 왜 내가 기 센 학생인지 모르겠단 거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는데.
한데 캐릭터에 맞춰 의상에 디테일들을 더하고, 헤어까지 다시 만지고 나니,
“와 태윤아! 그,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하세요.”
“진짜 양아치 같아!”
“……하하.”
내가 봐도 진짜 양아치 같았다.
광고는 각자 캐릭터에 맞춘 설정 컷들도 알차게 찍었다.
“태윤 씨! 좀 더 반항적인 눈으로! 옳지! 좋다~”
“저,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
“원 테이크에 바로 오케이네!”
나부터 시작된 설정 컷들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도승 씨! 그냥 편하게 허리 숙인 채 자고 있다가 슬그머니 고개 드는 컷만 찍을게요.”
“네.”
“오오! 좋아요~”
이게 감독이 좋은 작업물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진짜 우리가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촬영이 빨리 진행된단 건 긍정적인 신호이긴 했다.
“연훈 씨는 똘망똘망하게 앉아 있다가 지금 창밖 슬쩍! 좋다! 크으! 어우 너무 잘생겼네.”
“진짜요?”
“네에~”
연훈이 형도 한 테이크 만에 오케이.
“운이 씨, 막 열정적으로 공부해 보세요! 필기도 하고, 칠판도 보고! 오케이!”
“동준 씨 낙서 잘 그리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운이 형과 동준이 형도 한 테이크 만에 오케이였다.
이후 다 같이 교실에 앉아 있는 풀샷 컷 하나.
쉬는 시간 중에 잡담 나누는 컷 하나.
연훈이 형이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는 운이 형의 팔목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컷 하나.
다 같이 가방 들고 단체로 복도로 뛰쳐나가는 컷까지 찍었다.
워낙 일사천리로 촬영이 진행되니 감독이 대충 찍나 싶었는데,
“와 좋다!”
“뭐야.”
“진짜 무슨 하이틴 드라마 같아.”
“……진짜 잘 나왔네.”
중간에 모니터링을 해본 결과 대충 찍은 게 아니었다.
우리가 보기에도 준수한 퀄리티의 작업물이었다.
‘저 감독님, 일을 잘하는구나.’
하긴. 킹시콜라쯤 되는 다국적 대기업이 고른 인물인데.
어중이떠중이를 앉혀 놨을 리는 없었다.
이다음엔 원래 콘티에는 없던 추가 컷을 찍었는데,
“여기 이 사거리에서 온리원 고등학교 학생들이랑 세이렌 고등학교 학생들이 딱 만난 거죠. 운명적으로다가!”
놀이공원에서 다 같이 섞여서 노는 식으로 촬영을 했다 보니 이런 설정컷을 하나 더 넣어야 했다.
온리원과 우리는 사거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컷을 찍었다.
이거 옛날에 한국 고등학교 폭력 서클을 다룬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 있다.
영화에선 이대로 횡단보도 중앙에서 만나 기 싸움을 하는데,
“놀이공원 같이 갈래?”
“그럴까?”
지금은 우리 팀 연훈이 형과 온리원 박영호가 나와서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둘 다 상큼한 느낌의 인물들이라 대사가 오글거리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후 온리원과 우리가 다 같이 섞여서 놀이공원을 향해 뛰어가는 컷을 찍고.
대여해 온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씬까지 찍었다.
여기까지 찍고 나자,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광고 본 촬영은 끝이 났다.
오후 3시.
새벽부터 만나서 촬영하긴 했으나, 중간 이동 시간을 제외하고 난다면 정말 빠르게 촬영이 완료된 셈이었다.
광고 촬영을 담당하던 스태프들이 떠나고.
광고 감독도 우리한테 촬영 즐거웠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다만 우리랑 온리원 그리고 소수의 더쇼케 측 스태프들은 현장에 남아 있었는데,
“자~ 이제 라이브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슬슬 준비하죠!”
오늘 오후 4시에 예정된 라이브 방송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이란 말에,
“후우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승이 형은 혼자 긴장을 시작했다.
“오늘 요리 콘텐츠에 쓸 식재료들 적어서 제출해 주시면 저희가 사 올게요~”
그렇게 식재료 리스트 제출 시간이 다가오고.
우린 세트장 구석에 모여서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온리원 몰래 작성을 하게 됐다.
나름 라이브 방송에서 하는 요리다 보니 경쟁심이 붙었나 보다.
그리고 난,
“수박을 이 정도는 사죠.”
“응?”
“그리고 이것도 필요할 거 같아요.”
“태윤아?”
수박화채에 꼭 필요하다고 말하긴 어려운, 그렇지만 있으면 좋은 재료들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리스트 작성을 끝낸 후 제작진에게 건네주니,
“……진심이시죠?”
“네.”
“……네. 그, 일단 알겠습니다.”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오후 4시.
세이렌의 한 팬은 시간에 맞춰 W라이브에 들어갔다.
오늘 온리원과 세이렌의 라이브 방송이 예정되어 있었다.
세이렌의 라이브 방송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방송을 탄 지 얼마 안 된 그룹이기도 했거니와, 데뷔조차 하지 않은 팀이기에 W라이브 채널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SNS도 회사 SNS 외에 발견되는 게 없어서 세이렌의 사진이나 떡밥 등이 늘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광고의 일환일지라도 W라이브에서 시행되는 라이브 방송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애들 어떤 컨셉으로 광고 찍었으려나.’
오늘이 광고 촬영일인 건 다들 아는 사실.
아마 광고 촬영 중 입었던 의상 그대로 입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것이다.
그 착장이 어떤 착장일지, 얘들의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은 어떨지.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그녀였다.
때마침 고지했던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라이브 방송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방송 시작 전.
입장 인원은 대략 20,000명.
‘꽤 많네?’
프로그램 자체가 잘 되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수치이긴 하나, 그래도 컨셉 자체가 망돌인 프로그램이다 보니 꽤 놀랍긴 했다.
시청자 수는 20,000명에서 계속 늘어 30,000명 선을 금세 돌파했다.
“오…….”
그녀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짧게 감탄했다.
“잘하면 십만 명 찍으려나.”
십만, 이라는 수치에 꽤 놀랄 뻔했다가, 해외에서 잘나가는 1군 아이돌의 SNS 라이브 방송에 수백만 단위의 사람들이 모인단 걸 깨닫고는 금세 숙연해졌다.
‘어쩌면 강현성 끼고도 이 수치면 낮은 걸 수도 있겠네.’
그녀는 흥분하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면을 바라봤다.
언제쯤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할지 궁금한 가운데,
탁.
“어?”
줄곧 검게만 칠해져 있던 막이 사라지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꺄아아아아
-안녕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얘들아
-와 진짜네
-개잘생겼어
-얘들아 안녕 해줘
-Hi from Brazil
-안녕하신가. 페루는 당신들을 사랑한다.
순식간에 채팅창이 빠르게 위로 올라가고.
하트가 쏟아져 나온다.
그녀도 채팅을 치면서 빠르게 하트를 연타했다.
동시에 두 눈은 화면 속에 나타난 세이렌을 훑기에 바빴다.
어떤 착장을 입었을지 궁금했는데,
“와, 교복?”
다들 베이지색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 옆의 온리원은 네이비색 교복이었고.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광고 감독에게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윤이 교복 너무 잘 어울려ㅠㅠㅠㅠ
-연훈이 완전 복숭아야ㅜㅜㅜ
-도승아아ㅏ
-박동준 무슨 일이야
-운아아아아
-공녀님 교복 무슨 일이야ㅠㅠㅠ
-OMG So cute
-Wooni my prince
-동준. 당신은 귀엽다.
세이렌 팬들은 교복을 입었다는 그 사실에 감격해 채팅을 마구 쏟아냈다.
한데 그냥 교복만 입은 것이 아니었다.
-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인사드리겠습니다.
-Say yes! 안녕하세요! 세이렌입니다!
-Be your ONLY ONE, 안녕하세요. 온리원입니다!
상큼하게 서서 아이돌식 인사를 하고 있음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
‘앞치마?’
다들 앞치마를 매고 있단 거였다.
더 나아가,
‘우리 애들은 왜 손에 목장갑을 끼고 있는 거야?’
온리원과 달리 세이렌 멤버들은 앞치마에 목장갑까지 차고 있었다.
마장동에서 도축하는 분들의 착장과 비슷하다.
일단 앞치마를 입었다는 데에서 요리 콘텐츠를 한단 건 알겠다.
아니나 다를까.
-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콘텐츠는 바로 요리 콘텐츠입니다!
-킹시 콜라를 활용해 요리를 만들고, 서로가 만든 음식을 다 같이 먹어보는 방송입니다!
박동준과 김주현이 MC로 나서며 오늘 요리 콘텐츠를 할 거라고 공언까지 해줬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
‘왜 목장갑인데?’
대체 왜 세이렌만 목장갑을 끼우고 있냐는 거다.
그 의문은 방송이 진행될수록 더 진해졌는데,
-온리원 팀은 어떤 요리를 할 예정이신가요?
-저희는 클래식한 콜라 요리죠. 콜라 찜닭을 해볼 예정입니다.
-오오.
-맛있겠다.
-세이렌은 어떤 요리를 하실 건가요?
-저희 요리는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아, 뭐죠? 궁금한데요?
-……그, 콜라 화채라고. 하하.
메뉴명을 들으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콜라 화채?
-??
-그게 무슨 괴식임?
-??????
-이거 광고주 보고 극대노할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콜라 화채ㅋㅋㅋㅋ
일단 콜라 화채라는 메뉴가 무슨 메뉴일지 감도 안 온다.
다만 화채라는 메뉴를 들으니,
‘목장갑을 정말 왜 낀 건데?’
세이렌 손에 목장갑이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
손질할 거라곤 과일밖에 없는데 도축하는 사람처럼 장비를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목장갑을 근데 왜?
-콜라 화채에는 고기가 들어감?
-아니ㅋㅋㅋ목장갑을 대체 왜 차고 있는 거야ㅋㅋㅋ
그녀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는지 다들 채팅창에 목장갑에 대한 것을 묻는다.
그 채팅을 본 걸까.
봉태윤이 화면 앞으로 가까이 왔다.
-사람들이 저희가 왜 목장갑을 찬 건지 궁금해하시네요.
봉태윤은 손에 찬 목장갑 위로 고무장갑까지 추가로 차더니, 구석에서 수박을 수레째 끌고 왔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수박 한 통이 아닌 ‘수레’였다.
-????
-태윤아?
-아니 왜?
-콜라 화채가 대체 뭔데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람들의 의문이 극에 달할 무렵.
봉태윤은 세트장 중앙에 수박 수레를 세워뒀다.
-원래 화채는 다 같이 먹을 때 더 맛있는 음식이잖아요.
이제야 사람들은 왜 목장갑을 꼈는지 알게 됐다.
-지금부터 화채 20인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없이 반복될 칼질에 손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