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13화
[미션 성공.]
[보상을 수령합니다.]
[통찰의 통제권이 강화됩니다.]
[잠깐 통증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언제나 그렇듯 통증이 이어진단다.
난 조금은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이제 이 통증에 익숙해질 만큼은 익숙해……,
‘흐읍!’
……지지 않았다.
처음 통찰의 통제권을 갖게 되었을 때만큼이나 아프다.
그때는 몸 안에 기존엔 없던 신경계를 하나 뚫어놓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 뚫린 길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다.
다행인 점은 내가 통증에 심적인 대비를 할 수는 있었다는 거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악물었다.
옆에 있는 거 아무거나 잡고 잠깐 버텼다.
방송이 다 종료되었기에 망정이지, 방송 중에 이런 모습을 보였으면 채팅으로 우냐는 반응 장난 없었을 거 같다.
“……후우. 하아.”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는다.
이내 몸 안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그 감각이 사라지고 난 후.
“후우우.”
심호흡 한 번으로 통증을 갈무리하고 나자,
“이제 제 팔 좀 놓으시죠. 태윤 씨.”
“……에?”
뜬금없이 강현성이 내게 이리 말한다.
이제 보니,
‘미친.’
아까 통증을 못 이겨 옆에 있는 거 아무거나 잡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강현성 팔뚝인 모양이었다.
“피 안 통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난 슬그머니 손을 풀었다.
한데 손 마디마디가 뻐근한 걸 보니,
‘진짜 세게 잡았던 모양인데?’
강한 악력으로 강현성 팔을 붙잡았던 모양이다.
한데 강현성은 크게 얼굴색 변하는 것 없이 가만히 있었다.
통각이 둔한 건지 아픈 걸 잘 참는 건지.
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사과하려는데,
“아픕니까?”
강현성이 내게 먼저 물었다.
“……아뇨.”
“아파 보이던데요.”
“……그냥, 가끔 혈압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난 대충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
멀쩡히 서 있다가 갑자기 옆에 사람 붙잡는 거면 저혈압만 한 핑계가 없다.
“혈압 잘 챙기세요. 갑자기 훅 갑니다.”
“……네. 고맙습니다.”
분명 사과하려고 했는데 걱정이나 듣고 대화가 끝나 버렸다.
“오늘 라이브 방송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때맞춰 스태프분들이 장비를 치우며 이리 말하고 있었다.
“저희 오늘 5화 방영 예정이니까 다들 본방 사수 부탁드려요~”
그때 한 제작진의 말에,
‘맞다. 오늘 5화지.’
촬영에 집중하느라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지금 시각이 5시 30분.
‘방송까지 30분 남았네.’
시간이 애매하다.
오늘 촬영을 한 세트장은 경기도에 있다.
어떤 수를 써서도 30분 안에 숙소까지 가긴 어렵다.
‘오늘은 차 타고 숙소 가는 길에 봐야겠네.’
그리 생각하고 슬슬 퇴근 준비를 하려는데,
“오늘 다 같이 방송 볼까요오?”
갑자기 연훈이 형이 이런 말을 한다.
“오!”
“좋아요!”
“좋습니다!”
“어차피 스케줄도 없으니까 다 같이 보는 거 좋을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온리원 멤버들도, 우리 형들도 다 반색한다.
도승이 형은 이런 거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뭐야.’
저 형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다.
다들 친구 만들고 싶어서 저렇게 안달인데, 대체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다.
“방송 시간 맞추기 애매하니까 여기서 다 같이 볼까요?”
연훈이 형은 어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말고 여기서 다 같이 보자는 말도 꺼냈다.
다만,
“세트장 비워줘야 하지 않아요, 형?”
이게 중요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교실처럼 꾸며진 세트장이다.
우리 타임이 끝났으면 이제 다음 타임을 위해 비워줘야 하는 게 맞다.
그때,
“오늘 여기서 다 같이 방송 보실 건가요?”
박수철 피디가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이리 묻는다.
“아, 넵! 간만에 다 같이 모였으니까 방송도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럼 편하게 보고 가세요. 어차피 예약을 오늘 밤 12시까지 해둔 곳이라 괜찮을 겁니다.”
“진짜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재밌게 보다 가요~”
……이렇게 다 같이 방송을 볼 공간까지 마련이 되어 버렸다.
“좋다, 태윤아. 그치?”
연훈이 형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묻자,
“……네. 좋네요.”
난 대충 이리 답했다.
그냥 편하게 집 가면서 방송 보려고 했는데.
꼼짝없이 불편하게 보게 생겼다.
방송 내용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아니면 그냥 방송을 보는 환경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나만 빼고 다들 친목을 원하는 분위기이긴 하네.’
영 반갑진 않지만 나 하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순 없다.
우린 먼저 승연 씨 현아 씨에게 가서 허락부터 받았다.
“여기서 다 같이 보고 싶다고요?”
“봐도 괜찮죠~ 저흰 그러면 이 근처에서 저녁 먹고 올게요. 뭐 사다 줄까요?”
“아뇨, 밥은 저희가 찾아 먹을게요.”
“방송 끝나고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별로 큰 문제 없이 이루어진 허락이었다.
우리가 허락받은 것을 본 온리원도 본인들 매니저에게 방송 보고 숙소 가겠다는 말을 하러 갔는데…….
“아 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말 한번 하면 좀 알아들으세요! 진짜 짜증 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가뿐하게 허락을 받은 우리와 달리, 온리원 쪽에선 좀 큰 소리가 들린다.
뭔가 하고 보니,
‘싸우나?’
온리원을 대표해서 물어보러 간 박영호가 매니저에게 일방적으로 혼나는 그림이었다.
큰 소리가 들린 것에 우리도 놀랐지만, 더 놀란 건 온리원 쪽인 거 같았다.
당연히 될 줄 알고 막내를 보낸 건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니 놀랄 법도 하다.
“제가 가볼게요.”
강현성이 움직였다.
강현성은 뭔가 다르긴 한 건가.
박영호 앞에선 짝다리 짚고 있던 매니저가 똑바로 선다.
대신 눈빛은 아까보다 더 흉흉하게 바뀌었다.
“뭐가 문제죠.”
“촬영 끝나고 바로 숙소 복귀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스케줄대로 안 하는 겁니까.”
“단순히 숙소 돌아가는 것까지도 스케줄입니까? 그리고 방송 보고 돌아가는 게 큰 문젠가요?”
“하아……. 그냥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세요.”
“저희가 방송 보는 게 거슬리시면 먼저 퇴근하셔도 됩니다.”
“그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강현성 씨가 책임질 겁니까? 에? 그쪽이 책임질 수 있냐고요.”
저 둘 사이에 어떤 앙금이라도 있는 걸까.
말을 하는 매니저의 눈빛에 악이 가득했다.
마치 맺힌 게 있던 사람처럼.
강현성은 차분한 어조이긴 했으나 은은하게 화가 난 것이 공기로 느껴졌다.
“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택시비 드릴게요. 차키만 두고 가시면 됩니다.”
“됐네요. 누굴 믿고 그렇게 합니까.”
“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그냥 지금 다 같이 차 타고 가자고요. 애초에 그렇게 되어 있는 스케줄이었잖아요.”
“지금 5시 30분입니다. 원래 스케줄은 8시까지 잡혀 있었고요. 스케줄상으로도 지금 가는 건 아닙니다.”
“그거야 원래 딜레이 생각해서 앞뒤로 크게 잡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먼저 가시라니까요. 택시비도 드릴게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건 결코 일반적인 가수와 매니저의 관계는 아니었다.
마치 서로 경계하고, 기 싸움을 하는 관계 같았지.
안 그래도 파이널 무대 앞두고 의기투합해도 모자를 판에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아. 맞네. 우리랑 사정이 다르지.’
저 매니저가 왜 저러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파이널 무대에서 온리원이 우승하게 되면 TH엔터와의 전속계약은 그대로 합작회사로 이전이 되니 저러는 거다.
아마 회사 측에서 온리원을 잘 구슬려서 우승까진 못하게 하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텐데, 온리원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서 화가 난 것이리라.
아마 강현성과 둘이서 설전도 그간 꽤 벌여왔을 거 같고.
저 매니저의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그 과정은 다소 이해가 갔으나,
‘저건 선 넘었는데.’
그렇다 해서 이런 태도로 나올 필요는 없다.
‘이건 그냥 화풀이하는 거잖아.’
저건 사람 자체가 다소 고압적인 면이 있는 거다.
이내,
“아 그냥 갑시다. 빨리빨리 타요.”
매니저가 차키를 들고 그대로 세트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
차량 열쇠가 매니저 손에 있는 한 저건 가불기다.
그냥 따라 나가야 한다.
물론 택시 타고 간다는 옵션도 있을 테지만,
‘위험하게 어떻게 그래.’
굳이 안지 않아도 될 위험부담이다.
사실 나 같아도 저 상황은 많이 빡칠 거 같다.
보는 사람 없으면 진짜 욕이라도 나갈 만하다.
다만,
‘참을 건 참아야지.’
화를 내고 싶은 대로 내며 살 순 없는 법이다.
강현성은 세트장 밖으로 나가 버리는 매니저를 잠시 쳐다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쉽지만 방송은 같이 못 볼 거 같습니다. 오늘 촬영 고생 많으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현성은 이리 말하곤 돌아서려 했는데,
탁.
나도 모르게 강현성의 팔을 잡았다.
“……뭐 하는 거죠?”
강현성이 당황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며 묻는다.
“아.”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랬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같이 보는 거 귀찮고 불편해서 누구보다 싫어했던 게 난데.
왜 막상 간다고 하니 붙잡았나 싶다.
아마,
‘동질감이라도 느꼈나.’
소속된 회사가 녹록지 않다는 데에 어떤 동질감이라도 느꼈나 보다.
“죄송합니다. 그, 말할 게 있었는데 까먹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난 붙잡았던 팔을 놔줬다.
강현성은 이상하단 듯 날 쳐다보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팀원들을 데리고 나갔다.
세트장에 우리와 승연 씨, 현아 씨만 남게 됐을 때.
“와, 진짜 무섭네요, 저 매니저분.”
승연 씨가 먼저 이리 말했고,
“그러니까요. 요새도 저렇게 거칠게 하는 분이 계신지 몰랐어요.”
현아 씨가 말을 받아서 이리 말했다.
“무섭다…….”
“온리원분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으시겠네요.”
“쉽지 않다.”
“살벌하다, 살벌해.”
형들도 온리원이 떠나간 자리를 보며 한마디씩을 했다.
“일단, 그러면 저희도 그냥 숙소로 갈까요?”
“방송은 가는 길에 노트북으로 보죠.”
“네.”
“알겠습니다~”
우린 승연 씨 현아 씨와 함께 차량에 올라탔다.
온리원은 그새 출발한 건지 이미 주차장에 보이지 않았다.
난 숙소로 돌아가는 도로 위에서 TH엔터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에도 크게 좋은 소식은 안 들려오던 회산데.’
사실 내가 온리원을 걱정할 건 없다.
형들 목숨이 달렸는데.
남 신경까지 써줄 여유는 없으니까.
한데,
‘……내가 개입해서 미래가 바뀔 수 있을 테니까.’
원래는 온리원이 이 프로그램 우승자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우승할지 알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우승한다면,
‘TH엔터에 남겠지.’
온리원의 운명은 내가 살다 왔던 미래와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괜히 생각이 무거워지려는데,
“노트북 켰어?”
“네. 핫스팟도 연결했어요.”
“보자~”
형들이 다 같이 노트북을 켜고 OTT 사이트에 들어갔다.
나도 고개를 빼꼼 뺀 후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지금 시각은 6시가 살짝 넘은 시각.
방송도 광고가 끝나고 이제 막 시작했나 보다.
“기대된다.”
“어떻게 나오려나.”
난 형들과 함께 방송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온리원…… 흐음.’
우리가 우승하게 된다면 온리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