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18화 (11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17화

박수철 피디는 준비된 연습실과 호텔을 두루 살폈다.

연습실의 경우 PPL이 아니니 대충 봐도 되겠지만, 호텔의 경우엔 PPL이 맞았다.

해서 카메라 위치나 조명 등을 더욱 신경 쓰는 중이었다.

사실 박수철의 성격상 광고라 해서 더 신경 써서 구도를 잡아주진 않는다.

원래 하던 대로 하고 말지.

지금 그가 호텔 현장에 와서 구도가 잘 나오나 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이유는 하나.

“호텔 촬영 잘 뽑아야 해요~ 이거 광고 단가 장난 아니거든요.”

프로그램 제작비를 물어와 주는 광고 담당자가 며칠 전부터 옆에 붙어서 종알종알댔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어련히 알아서 잘 찍어줄 거.

이러니 더 찍어주기 싫다.

하지만 일은 일이니, 대충 할 순 없었다.

실제로 이 호텔 광고를 받음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확 여유가 생긴 건 맞으니,

‘그냥 받아주자.’

이 정도 까탈이야 받아줄 만하다.

“여기 침대 시트 살짝 틀어진 거 같은데? 이거 좀만 잡아줘요~”

광고 담당자는 현장을 두루 살피며 어디 하나 옥에 티라 할 만한 구석이 없는지 자꾸만 확인했다.

뭐, 여기까지는 자기 일에 열정 있는 것이니 좋다.

하지만 열정은 자칫 과하면 진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건 바로,

“근데, 세이렌이랑 온리원 라이브 방송 할 때 호텔 로고 노출 진짜 안 되는 거 맞죠? 진짜 그거 너무 아쉬운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보통 아이돌들 라이브 방송 하면 막 수천에서 수만 개씩 SNS에 글 쏟아지잖아. 그때 호텔 로고 같이 들어가 주면 홍보 효과 진짜 제대로 일 거 같은…….”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박수철은 더 들어주기 싫다는 듯 말을 끊고 들어갔다.

뭐 알게 모르게 뒤에서 광고 좀 더 해주는 거야 이 바닥에 흔한 일이니 상관없다.

이건 광고의 문제가 아니라,

“얘들 안전 사고 날 수 있어서 안 된다고 했잖아요. 호텔 특정돼서 누가 침입이라도 하면 책임질 거예요? 파이널 무대 전날에?”

“……알았어요. 나도 그냥 해본 소리예요.”

“얘들이 어느 호텔에 묵었고, 뭐 여기서 어떤 거 하면서 놀았고. 이런 거 나중에 특별편으로 넣어준다니까. 광고비 헛돈 날렸단 소리 안 나오게 할게요.”

박수철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제야 광고 담당자도 한 수 물러났다.

“알았어요. 특별편 내보내기 전에 우리한테 한번 컨펌 받는 거죠?”

“네. 걱정 마요.”

이쯤에서 대화가 끝나나 싶었는데,

“아, 근데 이건 일적인 건 아니고 진지하게 궁금한 건데요.”

“네. 또 뭐요.”

“감독님이 보기엔 누가 우승할 거 같아요?”

“…….”

박수철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그런 것이냐.

그건 아니고,

“그 질문만 어제오늘 해서 한 100번 들은 거 같네요.”

하도 많이 들은 질문이라 그렇다.

“그래서 100번 다 뭐라 대답했는데요.”

“궁금해요?”

“왜요? 맞힐 자신이라도 있어요?”

“자신 있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인데.”

“오오~”

광고 담당자가 눈을 빛내며 어서 말해달란 듯 채근하자,

“온리원이요.”

박수철은 별거 아니란 듯 툭, 하고 답을 내놓았다.

“진짜요?”

“네.”

“왜 온리원이에요?”

“세이렌 좋아하세요, 담당자님?”

“아니, 막 그건 아닌데, 너무 단호하게 말하길래 이유가 있나 싶었죠.”

“아, 별건 아니에요.”

“뭔데요?”

“제가 원래 이런 내기 같은 거 할 때 늘 역배에다가 걸거든요.”

“그 말은, 세이렌이 결국 우승 확률이 높단 말이네요?”

“그렇긴 하죠.”

광고 담당자는 박수철의 말을 듣곤 더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담당 피디의 픽은 온리원.

하지만 정배는 세이렌이라니.

결국 이 말은,

“누가 될지 모르겠단 말 돌려서 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었다.

“하하하!”

박수철은 담당자의 말에 웃기만 할 뿐 따로 대답하진 않았다.

* * *

오전 9시.

우린 오늘 라방과 멘파가 이어질 호텔에 도착했다.

MVP 특전이라 그런지 확실히 어중이떠중이 특전을 준 건 아니었다.

‘이 정도면 특전이란 소리 나올 만하긴 하네.’

손에 꼽힐 정도의 국내 유명 호텔까진 아니지만, 젊은 층을 상대로 급부상 중인 5성급 호텔이었다.

외관부터 기존 호텔들보다 훨씬 젊고 예술적인 느낌이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사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여기서 연습실까지 얼마나 걸린다고요?”

“도보로 10분이요.”

“하아. 다행이다.”

“그러니까요.”

“가볍게 몸 푼다 생각하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구나.”

다들 머릿속에 연습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상 수능 보기 전날 가족끼리 다 같이 호캉스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거다.

아니, 어쩌면 수능보다 더한 이벤트일 수도 있다.

더쇼케2 파이널인데.

“하아아.”

난 호텔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피할 수 없는 거면 차라리 즐길 생각이었는데 좀처럼 좋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때마침 저 멀리서 카메라 감독님과 작가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린 로비에 선 채 더쇼케2 제작진들을 기다렸다.

“여기 마이크부터 차실게요!”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우린 제작진이 건네준 마이크를 착용한 뒤 대기했다.

막내 작가는 호텔 로비 쪽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카드 키를 가지고 왔다.

“이게 카드키고요. 부대시설 사용 관련해서는 저희가 문자로 따로 전달드릴게요.”

우린 따로 데스크에 가서 안내받는 것 없이 바로 스위트룸이 있다는 24층으로 이동했다.

처음 호텔에 왔을 때엔 마냥 귀찮고 불안했는데,

“…….”

“…….”

“……은근히 또 기대가 되긴 하죠?”

막상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니 호텔 스위트룸이라는 게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되긴 했다.

침묵을 깨고 나온 동준이 형의 한 마디에 한창 긴장 중이던 다른 형들의 표정이 단번에 풀어졌다.

다들 파이널 전날이라 연습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는데,

“막상 또 간다니까 기대되긴 한다.”

“나 스위트룸은 처음 가봐.”

“그래. 이왕 온 거 조금이라도 즐기는 게 낫겠네.”

어쩌면 나름 괜찮은 환기가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내 엘리베이터가 24층에 멈췄다.

우린 카드키에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

“……아니.”

“……세상에.”

“……와.”

다들 잠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떡 벌렸다.

돈 많은 동준이 형조차 잠깐이나마 굳을 정도였다.

이게 방송용 그림을 따려고 일부러 커튼을 걷어둔 건지는 모르겠는데,

“뷰가 미쳤어!”

서울 시내가 한 번에 보이는 통창 뷰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큼직한 거실과 널찍한 킹사이즈 베드.

추가로 두 사람이 더 잘 수 있는 싱글 베드 두 개까지.

큼지막한 욕조는 기본이었고, 재질과 마감에서 완성도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지는 소파와 테이블, 의자 등은 자본의 맛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스위트룸이라는 게 침실과 거실을 포함한 방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호텔이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이래서 좋구나…….’

호텔도 다 같은 호텔이 아니었다.

“와, 여긴 다른 호텔 스위트룸 중에서도 진짜 좋은 편인데……?”

심지어 동준이 형이 말하길 다른 호텔 스위트룸들보다도 시설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첫 스위트룸 경험을 하필이면 이 정도 룸에서 하게 되다니.

‘괜히 눈만 높아졌네.’

아마 앞으로 다른 호텔들을 가게 될 시 괜히 기준만 더 높아지게 될 거 같았다.

“여기 진짜 셀카 맛집이야!”

연훈이 형은 벌써 통창 앞으로 가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침대 푹신하네.”

도승이 형은 침대의 푹신함 정도를 체크 중에 있었고.

“냄새 좋다!”

운이 형은 방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동준이 형은,

“룸서비스 뭐 있지?”

역시나 먹는 게 먼저다.

“얌마!”

“아! 나도 안 시켜요! 그냥 뭐가 있는지 보기만 하는 거예요!”

물론 그러다가 도승이 형에게 혼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각자 호텔 방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무렵,

지잉.

우리 다섯 명의 핸드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이건 모두가 확인해야 할 공지가 있단 거다.

형들과 나는 호텔 구경하던 걸 멈추고 핸드폰을 확인했다.

문자 내용은 별게 없었는데,

“오늘 3시부터 차례대로 맨파고, 7시에 라방이네요?”

“맨파를 각 팀당 1시간밖에 안 하는 거야?”

“형 대체 맨파를 몇 시간 할 생각이었던 거예요.”

“한 다섯 시간쯤 하면 좋지 않을까?”

“오…….”

오늘 멘션 파티와 라이브 방송 일정을 다시 한번 공지해서 알려주는 거였다.

오늘 멘션 파티는 더쇼케이스2 파랑새 계정으로 이뤄진다.

3시부터 4시까지 원바이원이 멘션 파티를 진행하고.

4시부터 5시까지는 온리원이 멘션 파티를 진행한 후.

5시부터 6시까지는 우리가 멘션 파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 후 7시에 일괄적으로 라이브 방송 시작이고.

맨파 할 때와 라방 할 때 조심해야 할 언어와 이슈 등은 전날에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이미 전달받았다.

그것만 잘 지킨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짐 풀고 우리 연습실로 갈까?”

“네에~”

“갑시다~”

“연습합시다아~”

문자를 받고 나니 호텔 구경한다고 들떴던 마음이 다들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금세 자리를 정리하곤 연습실로 이동할 생각을 하니 말이다.

나도 짐을 풀고 형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5시부터 멘파고 7시부터 라방이니 지금부터 약 7시간은 연습을 더 할 수 있다.

‘괜찮겠네.’

파이널 전날이니 컨디션 조절한다는 셈치고 나쁘지 않은 연습량이었다.

머릿속으로 동작들을 점검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오?”

“와!”

“안녕하세요!”

하필이면 복도에서 온리원을 마주치고 말았다.

“방금 막 들어오신 거예요?”

온리원을 만난 게 반가운 건지 형들은 친목을 시작했다.

“아, 네. 방금 막 들어왔어요.”

“세이렌분들은 지금 룸 투어까지 끝내신 거예요?”

“네! 저흰 이제 연습하러 가려고요.”

“그렇구나. 연습 잘하세요!”

“화이팅!”

전에 광고 촬영 이후로 온리원과 급격하게 친해진 덕인지, 스스럼없이 나누는 인사였다.

한데 나는 이 자리가 조금 불편했는데,

‘답장 안 했는데.’

오늘 길에 받았던 강현성의 문자에 내가 답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부터 강현성의 눈동자가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답장을 안 하려고 안 한 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읽고 씹은 꼴이 되어버린 셈이다.

차라리 읽지나 말걸 싶었는데,

“답장해요. 봉태윤 씨.”

“……?”

“답장?”

“……뭔 소리야?”

이 미친놈이 남들 앞에서 꼽을 준다.

“……네. 하겠습니다.”

“그럼 밤에 봅시다.”

온리원은 그렇게 말한 후 본인들의 방으로 이동했고,

“무슨 답장?”

“볼일 있어? 현성 선배님이랑?”

형들은 아까 그 대화의 맥락을 궁금해했다.

“아뇨. 별거 없고 그냥 안부 문자 주고받는 거예요.”

난 대충 아무렇게나 둘러대며 주의를 돌렸다.

형들도 크게 신경 쓰진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그냥 대충 답장을 빨리 보낼 생각이었다.

이따 밤에 시간 되냐는 질문이었으니,

‘안 됩니다, 라고 보내야지.’

이리 답할 생각이었다.

연습하고 컨디션 조절할 시간도 없는데 강현성과 밤에 만날 시간이 어딨겠는가.

한데,

‘……뭐야.’

그새 강현성에게서 문자가 하나 더 와 있었다.

내가 핸드폰을 안 보는 사이 하나 더 보내둔 거 같았는데,

‘……이게 뭔 소리야 대체.’

-말해줘야 할 게 있으니까 밤에 나와요.

내용이 너무 수상쩍었다.

그냥 단순히 어그로를 끄는 건지.

아니면 진짜 말할 게 있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도 일단,

-네, 나가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이거 하나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