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19화
세이렌의 팬이 순식간에 달린 답멘에 감격하고 있을 무렵.
그 순간에도 세이렌을 태그한 멘션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아무리 세이렌의 타이핑 속도가 빠르다 한들 결국 답멘을 하는 속도보다는 멘션이 달리는 속도가 더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렌은 끝까지 일정한 속도로 멘션을 꾸준히 달았다.
-[#도승] 저는 운동할 때 가슴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편이에요. 근데 가슴만 발달하면 라운드 숄더가 생길 수 있어서 등 운동도 다음 날 바로 합니다ㅋㅋㅋ
-[#동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마라탕이요! 원래는 스테이크 제일 좋아했는데 작년엔가 처음 마라탕 먹어봤다가 완전 폴인럽했어요ㅎㅎ 근데 마라탕 속 고수는…… 흠…… 취존해 주세요 ㅋㅋ
굳이 세이렌의 팬이 아니더라도 멘션이 달리는 속도를 보면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이렌이 지금 최대한 많은 답멘을 달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멘파에서 세이렌이 달아준 총 답멘의 수는 약 120개.
처음엔 200개는 달지 않을까 싶던 파이팅이었으나, 실제 그 수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다만,
-ㅁㅊㅋㅋㅋ세이렌 얘네 멘파에 왤케 진심임?
-나 이렇게 답멘 많이 달아준 거 처음 봄;;
-얘네 뭐 단체로 파랑새 중독자임?
200개가 되지 못했다 해서 답멘 개수가 적은 게 아니다.
1시간에 120개를 해내려면 1분에 답멘을 2개 이상씩은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들이 답멘 하는 개수도 결코 적지 않았으나,
-얘넨 거의 광기 아님?
-서바이벌에 절여진 듯ㅋㅋㅋㅋ
-아니 얘들아 왜 이런 걸로까지 경쟁을 해ㅠㅠㅠㅠ
세이렌의 120개라는 수치는 워낙 인상적이라 멘파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파랑새 피드에는 세이렌 이야기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연습실에 앉아 이 모든 정황을 확인하던 봉태윤은 핸드폰을 끄며 생각했다.
‘진짜 손가락 터지겠네.’
손가락도 근육이고, 너무 많이 쓰면 손가락에도 근육통이 올 수 있단 걸 오늘 처음 알게 된 봉태윤이었다.
* * *
멘파가 끝난 후 형들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은 채로 축 처져 있었다.
“진짜 하얗게 불태웠어.”
“손가락 아파.”
“이게 전자파가 진짜 인체에 유해한가 봐. 손가락 끝이 따끔따끔거려.”
워낙 집중해서 1시간 동안 멘파를 진행하다 보니 기운이 빠진 것이리라.
나도 저릿저릿한 손가락을 주물주물하며 형들 옆에 앉았다.
형들의 경우 어떤 마음일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엔 다른 팀보다 답멘을 하나라도 더 달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했던 멘파다.
하지만 막상 달리는 멘션들을 보니 하나하나 대충 답하면 안 될 거 같단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해서 다른 팀보다 많이 답해야 한다는 경쟁심보다는, 한 사람에게라도 더 많이 답을 해주잔 사명감으로 임했다.
뭐 결국 그 사명감 덕에 다른 팀보다 훨씬 많은 멘션을 달게 된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재밌네.’
이런 식의 사이버 소통.
나쁘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거긴 한데 꽤 즐기면서 했던 거 같다.
이런 게 왜 궁금한가 싶은 질문들도 많았는데, 이런 게 궁금할 정도라는 건 정말 우리를 좋아해 주는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호의가 가득한 공간 속에서 사소한 질문들에 답을 해주는 일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관심 받아보겠냐.’
파이널 경연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이 한층 무뎌진 느낌이 든다.
우리가 멘파를 끝내고 처져 있는 와중.
끼익.
연습실 문이 한 차례 더 열리더니,
“연습 끝났나요?”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들어왔다.
“이제 우리 라방 하러 이동해야 하는데, 그냥 이 상태로 라방 할 순 없어서 빠르게 헤어랑 메이크업 받아야 하거든요.”
“남은 시간이 1시간밖에 없어서, 일단 호텔로 이동한 후 한 사람씩 씻고 나오면 그 자리에서 메이크업이랑 의상까지 다 진행할게요.”
생각해 보니 이리 처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1시간 후면 라방이다.
“맞다.”
“얘들아! 일어나자!”
우린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재빨리 짐을 챙겨 연습실을 나선 후 차량에 올라탔다.
하루 종일 연습에 멘파에 라방까지.
쉽지 않은 하루이긴 하나,
‘……왜 괜찮지……?’
이런 아이돌식의 스케줄이 의외로 체질에 맞는 거 같았다.
* * *
박수철을 비롯한 더쇼케이스2 제작진들은 내일 파이널 무대가 열릴 공연장을 미리 찾아왔다.
수용인원 총 5,000명의 공연장이었다.
다른 1군급 아이돌들이 수만 명 단위의 공연장을 빌리는 것에 비하자면 초라할지 몰라도,
“얘들 쫄진 않겠지?”
“에이~ 이 정도에 쫄면 아이돌 아니죠.”
“그치?”
더쇼케2 출연진들에게는 이 5,000명이 들어올 공연장도 꽤 크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다 아이돌들이니까,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 거란 희망찬 생각만 품었다.
또 실제 5,000명이 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건 공연보다는 방송에 가까운 콘텐츠다 보니 장비 설치와 안전거리 확보 등을 위해 실제 수용 인원은 3,000명으로 줄인 상태다.
아마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카메라랑 동시송출 하는 장비들 설치는 다 끝났지?”
“네. 문제없어요.”
“각 그룹별로 LED랑 효과들도 다 준비됐고?”
“네네.”
“내일 국장님도 오신다고?”
“네. 온대요.”
“하아. 진짜. 꼰대 양반. 이런 날엔 좀 쉴 것이지. 그 영감 은근 관종이야. 카메라에 나오는 거 좋아한다니까.”
“뭐, 온다는데 어쩌겠어요.”
“……그치.”
박수철은 습관적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암튼, 정리 잘하고.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고, 난 다시 호텔 쪽으로 이동할게. 거기 상황도 봐야 할 거 같다.”
그가 걸음을 돌려 무대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아, 피디님. 그 저희 파이널 끝난 후에 바로 리얼리티 시작하는 거 있잖아요.”
“어. 그게 왜.”
“그거 진짜 바로 촬영 시작해요?”
“바로 시작해야지. 우리 거의 쌩라이브로 나가야 될 수도 있어.”
“근데, 우승팀 회사에서 협조 안 하면 어떻게 해요?”
“……뭐?”
“아, 그냥. 지금 우승 가능할 거 같은 팀이 두 팀인데, 사실상 두 팀 다 회사가 그렇게 깔끔한 느낌은 아니잖아요.”
“어차피 합작회사로 계약 이관은 당연히 되는 건데, 걔네가 막을 게 있나.”
“몸으로 막고 못 보낸다! 하고 배 쨀 수도 있잖아요.”
“그건…… 진짜 폐급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죠.”
“그러면, 뭐.”
박수철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법정싸움 가는 거지 뭐. 데뷔까지 과정 지저분해지는 거고. 어휴.”
박수철은 그리 한숨을 쉬곤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나 진짜 간다, 이제.”
“네. 안전운전 하세요.”
박수철은 호텔로 이동하며 방금 전 구성작가와 이야기 나눈 사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TH엔터와 WD엔터.
“흐음…….”
확실히 둘 다 깔끔하게 끝날 거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 * *
호텔에서 진행된 라방이 방금 막 끝이 났다.
각 팀별로 너튜브 라이브 기능을 사용해 라이브 방송을 했다.
후원은 당연히 막아두었고.
총평을 하자면,
‘무난했네.’
크게 이슈가 될 만한 무언가는 없는 방송이었다.
호텔명이나 호텔 위치 등이 밝혀지면 안 되기에 통창 앞에 커튼을 치고 그 앞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다행히 호텔명이나 위치 등이 노출되는 일 없이 안전하게 방송이 잘 끝났다.
그나마 이번 방송에서 좀 반응이 터졌던 장면을 꼽자면,
“연훈이 형 삑사리 난 거 처음 봤네요.”
“……놀리지 마……!”
“놀린 적 없어요. 그냥 처음 봤다고요.”
“이이익!”
연훈이 형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삑사리가 났던 거다.
그간 모든 노래를 완벽하게 불러왔기에 역체감이 크게 느껴졌다.
심지어 노래 부르던 중간에 삑사리 난 게 아니라 첫 음 잡다가 바로 삑사리가 난 거라 더 웃겼다.
“형 삑사리 난 거 벌써 클립으로 돌아다녀요~”
“아아악! 안 돼!”
동준이 형은 어디서 또 야무지게 연훈이 형 삑사리 클립을 찾아와서 재생했다.
[깔!수록 멀어져 가…….]
[깔?]
[푸흡!]
[하하하하!]
연훈이 형이 발라드 첫 음을 잡다가 바로 삑사리를 낸 게 또 한 번 거실에 울려 퍼졌다.
“박동준…… 못됐어…… 나빠…….”
연훈이 형은 너무 큰 상심에 전투 의지마저 잃고 엎드려 우는 척을 했다.
“근데 반응은 엄청 좋아요, 형~”
“……진짜?”
동준이 형이 보여준 화면엔 연훈이 형 삑사리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들이 꽤 많았다.
-ㅋㅋㅋㅋㅋ연훈이 귀여웤ㅋㅋㅋ
-자기도 놀랐나 봐ㅜㅜㅜㅜ
-말랑복숭아 놀라쪄ㅠㅠㅠㅋㅋㅋㅋㅋ
대체로 귀엽다, 그럴 수 있다, 재밌다는 결의 반응들이었다.
“그냥 즐겨요~”
“하아…… 그래…….”
그렇게 연훈이 형 삑사리에 대한 수다가 마무리되었다.
때마침 도승이 형이 대화에 끼어들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바로 잘 거예요, 아니면 연습 좀 더 하다가 잘 거예요?”
이후 일정을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방송이었기에 현재 시각은 8시 30분이다.
잠을 자기에도 애매하고, 저녁밥을 먹기에도 애매하며, 연습을 하기에도 애매하다.
파이널 전날 괜히 무리했다가 몸살이 오면 낭패이기도 하고.
연훈이 형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오늘은 모처럼 호텔에도 왔으니까 일단 푹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 연습하고 가자!”
결론을 내놓았다.
“진짜요?”
당장 연습 안 한단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동준이 형이었다.
“나 그럼 지금 빨리 씻을게요!”
아마 욕조를 계속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육체 피로에 반신욕만 한 게 없긴 하지.
형들은 호텔 방 곳곳으로 흩어지며 각자 할 일을 했다.
도승이 형은 헤드셋을 끼운 채 노트북을 꺼내 들었고.
운이 형은 안경을 꺼내 들더니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연훈이 형은,
“나 좀만 잘게. 딱 30분만 뒤에 깨워줘.”
잠깐만 잠을 잘 생각인가 보다.
그렇게 스위트룸 거실엔 나 혼자만 남게 됐다.
물론 나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
-주차장으로 내려와요.
강현성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난 형들의 눈치를 살짝 살핀 후,
“저는 그럼, 간단하게 산책 좀 하고 올게요.”
마스크와 모자를 챙겨 든 후 조심스레 호텔방을 빠져나왔다.
“너무 늦지 말고.”
“위험한 데는 가지 마~”
“올 때 메로나!”
“얌마 박동준!”
“올 때 메로나 취소…….”
“네. 금방 다녀올게요.”
난 형들이 해주는 말을 가볍게 넘겨들으며 호텔 방 밖으로 나갔다.
강현성이 말한 대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뭐야.’
“왔어요?”
강현성이 차량 한 대와 함께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라 할 때부터 걱정되긴 했는데,
‘하아.’
“타요. 마땅히 우리가 갈 만한 곳도 없잖아요.”
이 새끼 나랑 드라이브 갈 생각이었다.
“……와 진짜 좀 싫은데.”
“……뭐요?”
아…….
실수로 본심이 입 밖으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