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0화
“……그, 헛소리한 겁니다.”
난 급하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강현성의 저 짜게 식은 눈빛은 무엇을 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라고 그쪽이랑 드라이브가 막 유쾌한 건 아닙니다. 갈 만한 곳이 없잖아요.”
“……하하.”
강현성이 굉장히 찜찜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는,
“타세요.”
지 혼자 운전석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옆 조수석 문을 열고 차량에 올라탔다.
현재 이 차량은 렌트카인 모양이었다.
차량에 올라타기 전 확인한 번호판에 히읗이 들어갔던 걸로 기억하니까.
“오늘 저랑 드라이브하려고 렌트카까지 빌렸습니까?”
내가 물으니,
“……갈 만한 곳이 없다고 했잖아요.”
“네네.”
난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안전벨트를 찼다.
강현성은 부드럽게 악셀을 밟았다.
차량이 앞으로 튀어나간다.
의외로 운전을 꽤 능숙하게 하는 것 같아 놀랐다.
이내 호텔을 빠져나가고, 도로 위에 올라탈 때까지.
“…….”
“…….”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량 속 전자장비들이 작동하는 소리.
타이어가 바닥면에 닿아 마찰하는 소리.
핸들 돌리는 소리 등만 적막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사실 내가 대화를 시작해야 할 이유는 없긴 하다.
강현성이 요청해서 나온 거니까.
하지만,
‘할 말 있다며, 왜 안 하는데.’
궁금한 마음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었다.
말해줘야 할 게 있다고 불렀으면 그 말해줘야 할 게 무엇인지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강현성은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하기만 했다.
그러곤 처음 꺼낸다는 말이,
“북악 스카이웨이 가봤어요?”
“……뭐요?”
“그, 유명한 드라이브 코슨데.”
“안 가보긴 했는데, 지금 거길 가자고요?”
“네.”
“갈 데 없어서 드라이브 가는 거 맞아요, 진짜?”
“…….”
이 새끼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강현성 드라이브에 내가 이용당한 느낌이 자꾸만 든다.
혼자 나오기 적적한 거면 지 멤버들이나 데리고 나올 것이지.
느낌상 별 대단한 이야기는 안 나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북악이든 남악이든 어디든 가죠.”
그렇게 차량은 북악 스카이웨이 쪽으로 나아갔다.
* * *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정체가 일어나는 구간이 있었다.
신호대기에 걸린 차에 앉아 강현성과 나는 또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진짜 아무 말도 안 할 겁니까?”
답답해진 내가 먼저 물었다.
자기가 해줘야 할 이야기가 있다 해서 불렀으면서.
왜 말을 안 해준단 말인가.
뭐 어그로를 끈 거든 아니든.
일단 뭐라도 구색은 갖출 만한 그럴듯한 거짓말이라도 늘어놓는 게 성의 아닌가 싶었다.
“급할 거 없잖아요.”
한데 이 자식은 혼자 여유로운 척을 하며 이리 말했다.
급할 거 없다니.
“내일 파이널인데 뭐가 안 급해요. 빨리 듣고 들어가서 자야죠.”
파이널 전날에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흐음. 사실 막 큰 건 아니고.”
강현성은 이제야 본론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한데 큰 건은 아니라고?
그렇게 어그로를 끌었으면서 큰 건은 아니라니.
역시 이용당했다 싶었는데,
“우리 소송당할 수도 있단 거 알려주려고요.”
“……뭐요?”
큰 건이 아니라고 하더니 너무 큰 건이 훅 하고 들어왔다.
여기서 지칭하는 우리, 가 어떤 우리인지가 모호했다.
강현성과 나를 지칭하는 우리인지.
아니면 온리원을 지칭하는 우리인지.
일단 반응을 살피자니.
“TH엔터랑 어떻게 되든 법정공방은 못 피할 거 같아요.”
온리원을 지칭하는 우리, 였다.
“우리가 우승을 하면 아마 TH엔터에서 불공정계약으로 소송을 걸 거고요.”
흐음. 그렇지.
실제로도 회귀 전 온리원은 제일그룹과의 합작사로 계약이 이관되는 데에 잡음이 꽤 있었다.
법원으로 간다 안 간다 이야기가 계속 나오던 중 갑자기 극적으로 협상에 성공하며 겨우 이관이 마무리된 전례가 있었다.
“그리고 우승을 못 한다면, 제가 TH엔터를 소송할 생각이거든요.”
한데 뒤이어 나온 말은 꽤 충격이었다.
“……그쪽이 TH엔터를 직접 소송할 거라고요?”
“네.”
이건 내가 모르던 미래다.
아니, 그렇지.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내가 회귀 전에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TH엔터랑 전속계약 해지하고 다른 회사로 이적할 겁니다.”
난 멍하니 강현성을 바라만 봤다.
꽤 사이즈가 큰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강현성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다만,
“……이걸 왜 저한테 이야기해 주는 겁니까?”
소송이야 뭐 당연히 중요한 이슈가 될 소스이긴 하다만, 나한테 굳이 이렇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왜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나 싶은데,
“이게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만일 그쪽 팀이 우승해서 제일그룹과 합작사로 계약 이관되면 WD엔터도 따로 고소할 수도 있단 거 알려주려고요.”
“우리 회사가요?”
“상식적인 일 아닙니까. 그래도 미리 인지하고 있으면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이거 받아요.”
“명함이네요?”
“유어스 활동할 때 만나게 된 변호산데, 연예계 쪽 계약 관리 전문입니다. 따로 연락해 둬요.”
“흐음.”
강현성이 왜 보자 한 건지 알겠다.
자기네들은 분명 송사가 일어날 거 같으니, 너네도 이에 맞춰 대비해라.
라는 걸 알려주려고 부른 거다.
겸사겸사 변호사도 소개시켜 주려 한 거 같다.
한데,
‘WD엔터가 고소라.’
내가 아는 WD엔터는 고소하지 않을 거다.
우리를 아껴서 그런 거냐?
그건 절대 아니고,
‘고소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 귀찮은 거 싫어하는 인간들이 할 리가 없지.’
귀찮음으로 똘똘 뭉쳐 어영부영 기어가는 게 WD엔터다.
그리고 미래시에서 보고 온 대로 WD엔터, 아니지 윤태형 그 인간은 우릴 상대로 고소를 하지 않고 딜을 하려 할 거다.
물론 이게 고소보다 더 악질적인 느낌이긴 한데.
암튼, 고소 쪽으로는 크게 걱정할 건 없다.
그래도,
“고마워요. 명함 잘 받아둘게요.”
이 명함은 받아둬서 나쁠 건 없을 거다.
“이제 더 할 말 없습니다. 민감한 문제라 만나서 이야기하려 했던 건데, 금방 끝났네요.”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차량을 돌리려 했다.
용건을 다 나눴으니 이제 같이 있을 이유가 전혀 없긴 했다.
다만 기왕 차까지 빌린 성의가 있으니,
“북악 스카이웨이인가 거기 찍고는 오죠.”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가 뭔지 확인은 하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 * *
강현성과 북악 스카이웨이인가 하는 데를 찍고 돌아왔다.
총평을 하자면,
‘이게 유명 드라이브 코스라고?’
대중들 취향에서 한발 멀어진 느낌이었다.
산이라 올라가는 동안 귀도 먹먹해지고.
길은 구불구불해서 멀미 나고.
도착 후 바라본 서울 야경은 멋있긴 했는데,
‘남산타워가 모든 방면에서 상위호환인데.’
더 나은 대체재가 있는 마당에 굳이 북악 스카이웨이를 선택하진 않을 거 같다.
강현성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에 실망한 느낌이긴 했다.
이후 돌아오는 동안 우리 둘은 서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미 나눌 만한 대화는 다 나눴으니 의미 없는 수다는 불필요했다.
호텔 주차장에 도착하고 난 후.
난 안전벨트를 풀고 차량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한데,
“내일이 파이널인데, 자신 있습니까?”
강현성이 내게 질문했다.
난 나가려다 말고 다시 엉덩이를 시트에 붙였다.
파이널에 자신 있냐.
우리의 파이널 곡은 다.
세계관은 내가 만들었지만 이 곡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멤버들 모두의 손길이 스며 있다.
이런 곡을 들고 있는데 질 것 같다 답하는 건,
“자신 있습니다.”
멤버들에게도, 나에게도 도리가 아니다.
“그쪽은요?”
난 강현성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저도 자신 있습니다.”
강현성도 한 치 고민 없이 답했다.
뒤이어,
“만일 우승하지 못해서 계약 이관 안 되면, 제가 아까 준 그 변호사한테 연락해요.”
내 걱정까지 알차게 해준다.
“전속계약 해지하고 난 후 나한테 다시 연락하면, 따로 자리 만들어 볼게요.”
“걱정해 주는 겁니까?”
“해줄 때 받아요.”
“근데 우승할 생각이라 그런 걱정 필요 없겠네요.”
“하, 참나.”
“선배님도 소송 준비 잘 하셔서 승소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걱정해 주는 거네요?”
“해줄 때 받으세요.”
난 그리 말하곤 차량 밖으로 나갔다.
“내일 봅시다.”
그렇게 강현성과 인사를 나눈 후 호텔 로비로 올라갔다.
대화가 길게 이어진 게 아니라 그런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진 않았다.
드라이브까지 갔는데 2시간이면 얼마 안 걸린 거니까.
다만,
‘산책치곤 오래 걸리긴 했네.’
벌써 10시 30분이다.
8시 30분에 나왔으니 2시간이나 산책을 한 거다.
형들이 걱정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연락 온 게…… 없네?’
아무도 나에게 뭐 하고 있냐는 연락 따위 보내지 않았다.
소소한 배신감을 느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24층으로 올라가는데,
지이잉.
그새 핸드폰이 진동했다.
긴 진동.
이건 전화다.
예상이 맞을까 하고 확인해 보니,
-연훈이 형
맞다.
그래 2시간 산책을 했는데 걱정을 안 할 리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아보니,
-태윤아, 혹시 지금 밖이면 근처에 약국 문 연 곳 있는지 좀 봐줄 수 있을까?
“…….”
걱정해서 전화한 게 아니라 심부름시키려고 전화한 거다.
하아…….
이게 날 너무 믿는 건지 아니면 안전불감증인 건지.
물론 다 큰 성인 남자가 밤에 돌아다닌다 해서 큰일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묘하게 섭섭하네.’
이런 생각이 안 들진 않았다.
한데,
“약국이요? 누구 아파요?”
약국이란 소리는 꽤 당황스럽다.
파이널 전날인데.
아프면 안 된다.
-아, 아픈 건 아니야. 전혀 그런 건 아닌데.
뭔가 말이 길어진다.
무슨 문제인 건가 싶었는데,
-내일 아침에 단체로 긴장할까 봐 청심환 같은 거 팔면 미리 사둘까 싶었지.
“아.”
굉장히 일반적인 문제였다.
하긴, 아무리 무대 좋아하고 잘하는 형들이어도 생방송에 파이널 무대면 긴장될 수밖에 없을 거다.
더군다나 5,000명 규모의 공연장이라는데,
‘지금껏 서본 무대 중 제일 크겠네.’
사이즈에 압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면서 약국 몇 군데 보이긴 했는데 문 연 곳은 없더라고요. 내일 아침에 사죠.”
-후우우. 그래. 알겠어. 근데 너 왜 아직까지 안 들어와? 너무 늦은 거 아니야?
다행히도 연훈이 형이 날 조금은 걱정했다.
“이제 올라가는 길이에요.”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도 열렸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객실문을 열었다.
그러자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형들이 일제히 날 바라본다.
“왔어?”
“산책 어땠어?”
“메로나는?”
“얌마 박동준!”
“히잉…….”
평소와 같은 형들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산책 잘 다녀왔어요. 근데 왜 여기 모여 앉아 있어요?”
내가 나가기 전까진 흩어져서 개인 시간 갖고 있었는데.
뭔가 하고 보니,
“그냥, 괜히 내일 무대 의식하니까 긴장돼서 다 같이 앉아서 우리 옛날 영상들이랑 사진 보고 있었어.”
“옛날 영상들이랑 사진이요?”
“응. 그냥 추억팔이 하는 거지.”
난 운이 형이 보여준 사진을 확인했다.
내가 거의 처음 WD엔터 들어왔을 때인데,
“와. 제가 연훈이 형보다 키가 작네요?”
내가 연훈이 형보다 키가 작은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리 태윤이 저 때가 귀여웠는데에……. 지금은 징그럽게 커버렸어.”
“……상천데 그 말은.”
“장난이야 장난~”
“이리로 와서 앉아. 사진이나 더 꺼내보자.”
그렇게 야심한 시각에 시작된 사진 추억팔이는 너무 늦지 않은 시각까지 조금 더 이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5성급 호텔이라 그런지 확실히 숙면을 취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 거 같았다.
새벽 5시.
고작 5시간밖에 못 잔 거지만,
‘개운하네.’
이상하리만치 몸이 개운했다.
난 침대에 앉은 채로 형들을 둘러봤다.
원래라면 다들 베개에 머리 박고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어야 하는데.
“흐아암.”
“잘 잤다.”
“끄으으으~”
“어우, 개운해.”
다들 벌써 일어난 상태였다.
어제 우린 킹사이즈 침대와 싱글 사이즈 침대 두 개를 전부 이어붙여서 다 같이 잠들었다.
잘 때는 분명 일렬로 나란히 잔 거 같은데 일어나 보니 누워 있는 위치가 뒤죽박죽이다.
다 같이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게 처음이라 그런가.
우린 서로를 보며 재밌단 듯 웃다가……,
“이제 준비하자.”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현재 시각은 새벽 5시.
파이널 무대까지 약 13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