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1화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연습을 마친 후 형들과 조식을 먹으러 왔다.
파이널 당일이니 당연히 과한 식사는 하지 않았다.
괜히 나트륨 먹었다가 얼굴이 부을 수도 있고.
기름진 거 먹었다가 장에 탈이 날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었다가는 공연 때 힘을 낼 수도 없기에 적당히 조절해서 먹었다.
물론,
“박동준. 당장 그 볶음밥에서 떨어져.”
“……하아.”
동준이 형은 조절을 실패할 뻔했지만 말이다.
도승이 형이 옆에서 밀착 감시를 한 덕에 동준이 형도 가벼운 아침식사로 접시를 채워올 수 있었다.
샐러드 조금과 계란후라이. 시리얼 대신 견과류를 넣은 그릭 요거트로 아침을 시작하니,
‘너튜브 브이로거 된 느낌이네.’
감성샷 하나 찍어줘야 할 거 같았다.
“여기 뷰 너무 좋다. 우리 사진 찍자!”
난 생각만 한 걸 연훈이 형은 실천에 옮긴다.
“일로 모여봐!”
우린 연훈이 형 근처로 동그랗게 모였다.
뒤에 시티뷰를 배경으로 두고 다 같이 셀카를 찍었다.
‘나중에 자컨 같은 거 만들 때 제일 잘하겠네.’
연훈이 형을 위해서라도 데뷔 후에 자컨 촬영은 늘 건의해 봐야 할 거 같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고.
1층으로 내려가니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바로 공연장으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의상도 다 그쪽에서 받기로 했고, 오늘은 대기실이 넓어서 메이크업이랑 헤어 담당 쌤들도 다 출장으로 불렀어요.”
“와.”
“이러니까 진짜 공연하는 느낌이다.”
“라이브 방송에서 실수 안 하겠지?”
“……진짜 긴장되네.”
그간 무대를 앞두고 긴장 안 하던 형들이 오늘따라 유독 긴장 중이었다.
다만,
‘긴장될 만하지.’
단순한 무대가 아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고.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이다.
긴장이 되는 게 당연한 거다.
더 나아가.
‘미션…….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나의 경우엔 더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도승이 형의 목숨이 걸린 미션이다.
‘실수하지 말자.’
조금의 어긋남도 용납할 수 없다.
물론 과한 긴장은 그 자체로 실수가 될 수 있으니 마음을 적절하게 달랬다.
‘잘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말자.’
손바닥을 꾹꾹 누르며 차량에 올라탔다.
우리가 착석을 마치자 승연 씨와 현아 씨도 운전석과 조수석에 각각 올라탔다.
“그럼 출발할게요!”
“넵!”
“갑시다!”
“후우우.”
그렇게 파이널 무대가 이뤄질 공연장을 향해 출발했다.
* * *
더쇼케이스2의 파이널 공연이 있는 날.
아이돌들의 공연장으로 유명한 한 체육관 앞에 사람들은 벌써부터 모여 있었다.
생방송 시작은 6시.
현재 시각은 낮 12시.
실제 입장 시간은 4시부터라 해도 벌써 모여 있기엔 꽤 이른 시각이긴 했다.
하지만,
“어? 저기서 나눔 한대!”
“아, 진짜?”
“헐, 여기 줄 왜 이렇게 길어?”
“이 줄 무슨 줄이에요?”
“저도 몰라요. 그냥 사람들이 서길래…….”
“아…….”
공연 시작 전 으레 이뤄지곤 하는 아이돌판의 나눔 문화 덕에 사람들은 이 이른 시간부터 공연장 앞에 모여 있는 거였다.
파랑새에서만 만나던 친구를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하고.
원래 친구였는데 함께 덕질까지 시작하게 된 친구와 놀러 나오기도 하고.
내 가수가 잘 되었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 온갖 굿즈들을 만들어 나눔을 해주려고 나오기도 한다.
물론 입장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나오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들로 공연장 앞은 벌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
세이렌의 팬인 한 여성은 손에 여러 굿즈들을 쥔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늑태윤 스티커 너무 귀여워…….’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이런저런 굿즈들로 손이 무거워진 세이렌의 팬이었다.
이걸 이렇게 받기만 하는 건 너무 죄송한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으나, 일단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다음엔 나도 간단한 건 만들어서 나눔 해볼까.’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나눔받은 굿즈들을 하나하나 찍어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저거 늑태윤 스티커 어떤 금손이 만든 거예요?
-왘ㅋㅋㅋ이운공녀띠부씰 퀄리티 넘 좋다ㅋㅋ
-비공식포카 멤버별로 다 있는 거예요?
-댕댕동준 스티커 개귀여웤ㅋㅋ
-연훈이 초등학교 졸사는 왜 있는거예요?ㅋㅋㅋㅋㅋ
처음엔 파랑새에서 알게 된 온라인 지인들이었지만 최근에 몇 번의 오프까지 같이한 덕에 훨씬 친해진 상태였다.
다 같이 세이렌 덕질을 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방청에 당첨된 건 그녀 혼자뿐이었다.
이번 생방송은 워낙 경쟁이 치열했기에 사실 그녀 혼자만이라도 당첨이 된 게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진짜 개부럽다
-저도 방청 안 됐어도 그냥 갈 걸 그랬나 봐요ㅠㅠㅠ
-그래도 목포에서 서울은 좀
-그쵸?ㅋㅋㅋ
그녀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또 한 번 파랑새를 뒤졌다.
나눔을 받을 만한 글이 또 올라왔나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가능하면 지방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러던 중,
“온리원 나눔 한대 저기서?”
“,아 진짜?”
“와 현성네컷 진짜 귀엽다.”
“영호 얼굴 프린트한 걸로 지금 교회 주보 만든 거야?”
“아, 역시 홀리 크리스천이다.”
온리원 나눔줄이 저기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세이렌 나눔줄을 찾으려다 말고 그녀는 잠깐 온리원 줄을 쳐다봤다.
온리원 나눔줄도 세이렌 나눔줄 못지않게 길다.
아니지, 온리원 나눔줄이 긴 게 당연하긴 하다.
이번 방송을 통해 세이렌도 빠르게 팬덤을 키워 나가고는 있지만, 온리원은 강현성이라는 치트키가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방송 후 몇 달 만에 이렇게까지 팬덤을 키운 세이렌이 대단한 거라고 봐야 했다.
오늘 여기저기서 세이렌 나눔을 많이 하고, 줄도 꽤 길길래 세이렌이 당연히 우승할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다시 한번 주위를 차분히 둘러보니,
‘온리원도 장난 아니구나.’
세이렌과 온리원의 팬덤 크기가 거의 비등했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사실 세이렌은 걱정할 만한 그룹이긴 하다.
WD엔터가 얼마나 일을 안 하는지는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반면 그렇게까지 일 안 하는 회사에 있기엔 세이렌 멤버들이 너무 유능하다.
조금만 더 구색이 갖춰진 회사였더라면.
조금만 더 자본이 받쳐주는 회사였더라면.
세이렌은 더쇼케라는 프로그램 없이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그룹일 거다.
그러니,
‘우리 애들이 꼭 우승해야 하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녀는 세이렌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한데 WD엔터에 있다간 오래 보긴커녕 데뷔조차 못 하지 않을까 싶다.
세이렌 팬은 핸드폰을 들어 다시 연락을 돌렸다.
파랑새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아닌 그녀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친구들뿐만이 아닌 엄마, 아빠, 남자 혈육에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야야야야야 오늘 생방에서 세이렌 문투 꼭 해줘야 한다?
-진짜 문투 한 번만 해주라ㅠㅠㅠ
-아빠! 세이렌! 사이렌 아니고 세이렌! 틀리면 안 돼!
이런 표 하나하나가 전체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바라봤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제발 들어주길 바라며 기도했다.
* * *
공연장에 도착하고 난 후부터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일단 공연장의 크기가 꽤 크단 것에 일차적으로 놀랐으나 그런 놀라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수없이 많은 리허설이 필요했다.
우리들이 무대 사이즈에 적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리허설.
그 후 의상을 간단하게나마 걸치고 해보는 리허설.
카메라 동선에 맞춰서 해보는 리허설.
마이크와 LED, 무대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리허설.
그 밖의 카메라 감독님들이 기본 세팅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 서 있어주는 역할까지.
바쁠 수밖에 없는 스케줄이었다.
심지어 우리만 리허설을 할 게 아니라 다른 네 팀도 똑같이 리허설을 해야 하니 더 바쁘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전부터 이어진 정신없는 리허설들을 마치고.
우린 대기실로 돌아와 잠깐 숨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지금쯤이면 다른 팀이 올라가서 리허설 중일 거다.
역시나,
“타 팀 이동 중입니다! 복도로 나오지 말아주세요!”
이번에도 각 그룹별로 무대 비밀 엄수는 당연하다.
“이제 리허설은 전부 끝났죠?”
“네.”
“슬슬 메이크업이랑 헤어 마무리하죠.”
우린 거울 앞에 앉아서 출장 온 메이크업과 헤어 담당 쌤들에게 몸을 맡겼다.
“다들 무대 준비 잘 하셨어요?”
“잘 하긴 했는데……. 긴장은 되네요.”
“열심히 준비는 했어요.”
“저희 잘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우린 담당 스태프들과 무대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난 아무 말도 않고 거울만 노려보고 있었고.
오늘 무대 준비야 정말 토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렇게 무대 준비를 또 하라고 하면 정말 도망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퀄리티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다.
지금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
그건 바로,
‘온리원은 무대 어떻게 준비했으려나.’
현재 우리의 유일한 경쟁 그룹이라 할 법한 온리원에 대한 거였다.
결국 이건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그냥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다른 팀보다 더 잘하는 게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온리원보다 우리가 나아야 할 텐데.’
그러니 온리원 무대가 어떨지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한데,
‘……왜 이러냐.’
온리원이 우리보다 못하기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엉망인 무대는 안 들고 왔으면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기고 싶어 하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묘한 감정이었다.
“하아아.”
난 한숨 한번 쉬는 걸로 감정을 갈무리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내 담당 쌤이 묻는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가만히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자! 끝났습니다!”
약 10분쯤 기다리니 모든 작업이 종료되었다.
거울을 보니,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방송에 들이밀어도 시청자들에게 송구할 만한 상태는 아닌 거 같았다.
“진짜 오늘 화장 엄청 잘 됐어요.”
“태윤 씨 진짜 잘생겼어요, 오늘.”
다만 옆에서 날 과하게 띄워주는 메이크업과 헤어 담당 선생님들 탓에 조금 머쓱해졌다.
무대 전이니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건 좋으나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싶은데,
“와 태윤아……?”
“오늘 태윤이 무슨 일이야……?”
“막냉이 살 빠졌어?”
“봉태윤 너 요즘 공복 유산소라도 하냐?”
형들까지 이리 말한다.
‘……그 정도라고?’
거울을 다시 봐도 그 정도는 아닌데.
그냥저냥 듣기 좋은 소리였다 치고 넘어갔다.
내가 가장 조용히 있어서 그런지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이 제일 빨리 끝났다.
난 형들 세팅이 끝나길 기다리며 뒤쪽 소파에 가서 앉았다.
핸드폰으로 현재 더쇼케 시청층의 여론을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지이잉.
‘……음?’
지난 며칠간 잠잠하던 능력이 갑자기 또 발동될 조짐을 보였다.
‘하아. 또 왜 이러냐.’
능력 발동은 왜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순간마다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난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며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통찰은 내 통제권 아래 있으니 이렇게 혼자 발동되려 하는 건 하나뿐이다.
‘미래시 나오려나 보네.’
난 마음을 다잡았다.
괜히 무대 전에 멘탈 흔들리면 안 된다.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정면을 응시하니.
후웅!
시간이 정지하고 허공 위에 아지랑이 같은 반투명한 막이 떠오른다.
오늘은 어떤 미래가 보이려나 하고 바라보는데,
-오늘 제일그룹 쪽에서 엔터 사업 담당하시는 분들 오셨다면서요. 다른 게 아니고…… 오늘 우리 애들이 우승하게 되면 어차피 한솥밥 먹는 식구 되실 분들이니 피디님이 자리만 한번 마련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이런 미친.’
WD엔터의 빌런.
윤태형 팀장이 미래시에 등장했다.
그리고 윤태형과 함께 미래시에 등장한 사람.
다름 아닌,
-그거 부탁하려고 오신 겁니까?
-아유, 그거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 피디님 한번 얼굴 뵙고 인사도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하하!
-방송 시작한 지가 몇 달짼데 처음 뵙네요.
-제가 좀 자주 왔어야 했는데 일이 바쁘다 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요.
-아, 일이 많아요?
-하하, 네, 뭐. 의외로 바쁩니다!
더쇼케2의 박수철 피디였다.
-네, 뭐. 일단 세이렌 우승하면 자리 한번 마련해 보죠. 명함 하나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난 미래시 속의 윤태형을 빤히 쳐다봤다.
일 못하고 능력 없으며 늘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
그 사람이 나와 형들 등에 빨대를 꽂으려고 판을 깔고 있었다.
‘……이 망할 새끼가.’
속에서 열불이 끓고 화딱지가 나려는 순간,
후웅!
미래시가 끝이 났다.